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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문재인 역할 이정희가 맡아버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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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보수 1 대 진보 2. 여성 2 대 남성 1.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통령 후보의 첫 TV 토론은 묘한 삼각 구도 속에 세 후보가 서로 물고 물리는 상황이 연출됐다.

 양강을 이루고 있는 박·문 두 후보는 상대의 감정을 건드리는 자극적 공세는 자제하면서도 서해북방한계선(NLL), 대북정책, 정치혁신에선 양보 없는 공방전을 벌였다. 문 후보는 당초 예상보다 공세 수위를 대폭 낮췄다. ‘네거티브’보다 ‘포지티브’ 전략에 가까웠다. 이를 놓고 전날 “대선이 거꾸로 가고 있다”며 여야의 네거티브 대선전을 비판했던 안철수씨와의 공조를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반면 이 후보는 ‘박근혜 저격수’로 토론회장에 등극한 셈이다.

 박 후보는 ‘준비된 대통령’ ‘위기 극복의 대통령’ ‘민생 대통령’ 컨셉트로 토론에 임했다. ‘보수 1 대 진보 2’의 수적 열세에서 정책·비전을 강조하는 데 주력하며 ‘1등 후보론’을 부각했다. 오차 범위 안팎의 여론조사 우위로 유리한 지형에 있다는 판단에 따라 침착한 토론전을 시도했다. 그러면서도 NLL 문제 등을 꺼내 확고한 안보관을 보여주려 했다. 외교·안보·북한 분야에선 문 후보에 비해 여론의 지지에서 앞선다는 판단에 따른 전략이다.

 문 후보는 박 후보와 경쟁할 ‘1 대 1 후보’로서의 안정감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뒀다. “정치가 국민의 삶과 너무 떨어져 있었는데 저를 포함해 정치를 하는 모두가 죄인”이라고 몸을 낮췄다. 문 후보는 기조연설에서 ‘적대적·대결적 정치의 비극’을 거론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박 후보도 조문을 왔다가 분향을 하지 못하고 전화로 제게 조의를 표하고 돌아갔다. 적대 정치는 양쪽 모두에 있다”고 하기도 했다. 문 후보는 유세에서 ‘이명박 정부 실정 공동책임론’으로 박 후보를 공격해 왔다. 하지만 이날 그는 한 번도 ‘이명박근혜’라는 식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최근 북한의 장거리 로켓을 나로호와 비유해 논란을 부른 이 후보와 합세해 박 후보를 협공할 경우 ‘종북 프레임’으로 역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동한 듯하다. 박 후보에 대한 공격은 이 후보로도 충분하다는 이른바 ‘차도지계’(借刀之計·남의 칼로 상대방을 공격)’라는 해석도 나왔다.

 박 후보는 문·이 후보의 관계를 파고들며 "민주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문 후보는 “통합진보당이 당을 쇄신한다면 연대하지 못할 게 없는데 지금은 그럴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 했다.

 이 후보는 박 후보를 겨냥해선 거친 표현과 과격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반면 문 후보에 대해선 비판 강도가 현저히 약했다. 문 후보도 이 후보에 대해선 거의 공격을 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 이정희’ 토론은 불꽃이 튀고, ‘문재인 대 이정희’ 토론은 거의 날이 서지 않았으며, ‘박근혜 대 문재인’의 토론은 그 중간쯤의 강도로 진행된 셈이다.

 그러다 보니 ‘박근혜 대 문재인’의 메인 이벤트가 이 후보 때문에 가려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트위터에 “문 후보는 차분하고 침착한 자세를 보여줬지만, 야권 주자라면 직선적이고 공격적인 모습도 보여줘야 했다. 그 역할을 이정희가 맡아버리는 바람에 존재감이 가려진 부분도 있다”고 평했다. 한편 시청률조사업체 AGB닐슨 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이날 토론회의 서울 지역 실시간 시청률은 29%로 집계됐다.

채병건·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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