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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경제] 미국 테러사태에 우리도 왜 난리인가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1일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과 뉴욕에서 테러가 일어났어요.

납치된 두 대의 비행기가 미국 경제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충돌해 건물은 완전 붕괴되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또 워싱턴에 있는 국방성 건물도 테러를 당했어요.

그러자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어요. 자기나라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무자비한 테러로 죽고 다쳤으니까요.

또 미국은 세계 초강대국이라고 자부해왔는데 테러단으로부터 이런 치욕(?)을 당했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 불안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실제 한 때 '제3차 세계대전' 얘기도 나왔어요.

그러나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사상자나 전쟁 우려 때문 만은 아니에요. 우리나라를 봐도 쉽게 알 수 있어요.

대통령이 경제장관들을 소집해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경제부처들은 경제위기를 막겠다는 내용의 3단계 비상대책을 거론하고 있어요.

경제 비상(非常)이란 말에서 나라경제 사정이 긴박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어요.

사실 그래요. 지금 우리는 미국의 테러 피습이 경제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아 매우 걱정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나라경제 사정이 안좋은데 이런 일까지 겹쳤으니 더욱 걱정이에요.

그렇다면 미국이 테러당했는데 왜 우리나라가 영향을 받을까요. 거꾸로 생각해 우리나라가 테러당했다면 미국이 우리나라만큼 경제 걱정을 할까요.

아마 아닐 것이라고 생각돼요. 사상자에 대한 슬픔의 차원에서, 테러에 대한 분노의 차원에서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겠지만, 경제에 대한 영향 때문에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을 것 같아요.

가령 1999년 유고의 코소보전쟁 때 우리나라는 경제때문에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이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재산 피해도 무려 1천8백억달러(2백34조원)나 났지만 유고는 우리나라와 경제적 관계가 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수입시장입니다. 우리나라도 전체 수출액의 약 20%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어요.

오죽하면 미국을 세계의 경제엔진이라고 할까요. 엔진이 멈추면 움직이지 않듯 미국이 멈추면 세계 경제가 제자리에 멈춘다는 의미이에요. 미국의 수입이 줄면 다른 나라의 수출도 타격을 받아요.

이렇게 되면 다른 나라들이 우리나라에서 사가는 물건도 적어지고, 이들 나라에 대한 수출도 줄어요.

수출이 줄면 우리나라 기업들도 물건을 적게 만들게 돼요. 기업은 물건을 만들어 파는 곳인데 수출이 줄어 물건이 덜 팔리면 덜 만들게 돼고, 종업원도 덜 필요해지고, 따라서 실업이 늘어나요.

월급도 줄어드니까 국민들의 소득도 줄고, 이는 다시 소비를 줄여 기업의 생산을 더욱 위축시켜요. 이런 연쇄반응이 일어나면서 경제는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이죠.

그런데 미국 사람들이 테러로 불안해하고 있어요. 대체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어서에요.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 외에는 가급적 안 사면 소비가 줄어들지요. 특히 12월의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테러가 터졌다는 점이 더욱 심각해요.

크리스마스때 미국인들은 1년간 소비의 3분의 1을 해요. 그런 크리스마스 대목이 이번 테러로 크게 위축될 것 같아요.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외국들의 대(對)미국 수출이 줄어들겠죠.

또 미국은 세계의 돈이 모이는 곳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나라이기 때문에 미국 돈인 달러는 세계에서 가장 믿을만 해요.

또 미국이 망할 리 없으니까 미국 은행에 예금하거나 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도 다른 나라보다는 안전하죠.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외국인들이 미국 주식이나 채권을 산 돈이 무려 1조6천억달러(약 2천조원)에요.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만들어낸 국내총생산(GDP)이 5백조원이 채 안됐던 것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어마어마한 돈인지를 알 수 있지요.

이처럼 세계의 돈이 미국으로 모여들었다가 미국의 돈이 보태져 다시 외국으로 나가요. 그런데 미국이 불안해지면 세계의 돈이 갈 곳을 잃어요.

때로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유럽으로 가기도 하고, 일본으로 갈 수도 있을 거에요. 미국이 안정을 되찾으면 다시 미국으로 갈 것입니다. 세계의 돈이 이처럼 제자리를 잡으면 좋은데 그 때까지가 문제입니다.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은 과정을 생각해보면 돼요. 당시 우리나라에 맡겨놓은 돈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해서 외국인들이 갑작스럽게 동시다발적으로 돈을 빼갔어요.

물건을 외국에서 사오려면 상대국에 달러를 지급해야 하는데 달러가 남아 있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세계적인 기구에 달러를 빌려 달라고 구조신호를 보낸 게 IMF관리체제의 시작이었어요.

미국이 불안해지면서 세계의 돈이 안전한 곳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다닐 것이고, 이 과정에서 외환위기를 겪는 나라가 나올지도 몰라요.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돈이 어지럽게 움직이면 경제가 불안해져요.

세계가 미국에서의 테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이런 이유때문이에요. 물론 테러와 이로 인한 여파가 얼마나 심각해질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것이에요.

가령 미국사람들이 소비를 줄이지 않는다거나 돈 흐름이 신속히 안정세를 되찾는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아직은 예측이 어렵지만, 아무튼 우리나라는 이번 테러에 너무 심하게 반응하지 않았나 싶어요.

증시의 경우 세계에서 주가 하락폭이 제일 컸고, 오르고 내리는 변화 속도도 가장 빨랐다고 해요.

물론 테러로 인해 한시바삐 매듭지어야 할 하이닉스 반도체 등의 기업구조조정이 늦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겠죠.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경제의 미국 의존도가 그만큼 심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돼요.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 우리나라에 곧장 영향을 미치는 것, 이런 것이 바로 세계화의 어두운 단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화는 불가피한 추세이지만 이처럼 시도 때도 없이 불안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린 어떻게 해야할지,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김영욱 전문위원 young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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