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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 장애인에 집 선뜻 내줘 민원 택배 기사로도 씽~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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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이웃을 돕는 안옥문씨가 지체 장애인 김성진(가명)씨와 함께 자신이 제공한 김씨의 집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조영회 기자]

“어려운 이웃을 돕다 보면 저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저 역시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진 않지만 마음만은 부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택시운전을 하며 수년간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사람이 있어 주위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주인공은 아산시 신창면에 살고있는 안옥문(61)씨. 안씨는 지난 3월 지체 장애인 김성진(가명)씨의 어려운 사연을 듣고 자신의 주택을 무료로 임대해줬다. 또 지난달에는 김씨에게 300만원 상당의 전동 휠체어를 구입해주기도 했다.

 “원래 연로하신 저희 어머니를 모시고 싶어 구입해둔 집이었어요. 하지만 어머니가 당장은 올 수 없다고 하셔서 전세를 놓으려고 했죠. 근데 어느날 김씨가 저희 집 앞에서 저를 보고 ‘한 번만 도와달라’며 자신의 딱한 사정을 얘기했어요. 그래서 흔쾌히 집을 빌려줬죠.” 이뿐만 아니라 안씨는 지난 2004년부터 최근까지 마을 이장으로 재직하면서 마을의 노인가정, 기초생활수급자, 장애가정 등 저소득층으로부터 각종 민원서류 발급을 신청받아 각가정에 배달하는 민원 택배 서비스를 자처해 주민들의 칭송을 받아왔다.

이 같은 선행이 알려져 아산시가 지난달 주민화합에 기여하고, 독거노인과 주민복지 향상을 위해 지역발전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해 안 씨에게 아산시장 표창을 수여하기도 했다.

 “저희 마을이 시골이다 보니 행정적 업무를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이웃들이 많아요. 저야 택시 운전을 하면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도와준 것 뿐이지 뭐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안씨 역시 그리 녹록한 삶을 살고 있진 않다. 택시 운전을 하고 버는 돈은 하루 10여 만원 남짓. 그마저도 이리 저리 누굴 돕다 보면 주머니에 남는 돈은 5만원 정도라고 한다.

가족 만류에도 “남 돕는 건 나의 천직”

“운전을 하다 혼자 걷는 어르신들을 보면 따뜻한 밥이라도 한끼 사드리고 싶어져요. 물론 집까지 무료로 모셔드리기도 하죠. 살아가면서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안씨의 이런 선행 때문에 안씨의 부인은 한 때 “삶이 너무 힘들다”며 이혼을 요구하기도 했다. 안씨는 이혼 직전까지 가서야 “남 돕는 것을 자제하겠다”며 만류한 끝에 아내와 관계를 회복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안씨는 남을 돕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오히려 사정이 딱한 김씨에게 집을 무상으로 임대해주고 각종 살림살이까지 구입해주는 선행을 펼쳤다.

 “나중에는 아내도 포기했는지 웃으며 “정말 못 말린다”고 하더군요. 어쩔 수 있나요. 집만 임대해주고 아무 신경도 쓰지 않으면 제가 더 무책임한 거잖아요. 그래도 요즘은 아내한테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꼬박꼬박 갖다 줍니다.(웃음)”

노숙인 보고 마음 아파 나눔 시작

안씨가 처음 택시 핸들을 잡은 건 지난 2001년. 택시 기사가 되기 전까지는 30여 년간 고속버스를 운전했다고 한다. 그는 버스를 운전하며 전국 곳곳을 다녔다. 그리고 매일 같이 버스 터미널 근처에 서성이는 노숙인들을 보게 됐다.

 “어딜 가나 버스 터미널 근처에는 노숙인들이 꼭 있어요. 그들을 보면 마음이 아팠죠. 그때부터 조금씩 남을 돕기 시작했어요.”

 노숙인들 사이에서 ‘천사 버스 안씨’라고 불렸던 그는 고향인 아산에 내려와 지역 노인들을 돕는데도 힘을 아끼지 않았다. 47개월간 매달 10만원씩 경로당 기금을 내놓는가 하면 지역의 어르신이 상을 당할 때면 직접 장례 비용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시골이다 보니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아요. 가끔 연락이 안 돼 집에 방문하면 돌아가신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누구의 부모가 아닌 제 부모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남에게 베푼 만큼 저한테 뭐가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저 이웃끼리의 관심이 더 커져 좀 더 따뜻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기초수급자 자격조건 완화됐으면

안씨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더 있다. 바로 기초 수급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다. 기초 수급자가 될 수 있는 자격조건도 좀 더 완화됐으면 하는 소망도 있다.

 “제가 도와주고 있는 김씨의 경우 원래는 기초수급자 1급으로 지정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인도 정신 장애가 있거든요. 하지만 생활 능력이 있다고 해서 정부에서는 이들을 기초수급자 5급을 부여했어요. 옆에서 지켜보는 제 입장에서는 참 안타깝죠. 김씨처럼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글=조영민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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