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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社燕秋鴻[사연추홍]

중앙일보

입력

해 질 녘 가창오리의 군무(群舞)가 보고 싶었다. 지난 주말 전북 군산의 철새 축제장을 찾았다. 기대했던 가창오리의 군무는 없었다. 몇 십 마리씩 날아다니는 새 떼가 전부였다. 시베리아의 이상고온 탓이란다. 예년보다 일주일 늦춘 축제가 무색했다. 주인공은 온 데 없고 객들만 북적였다.

철새를 노래한 소식(蘇軾)의 시구가 다시 떠올랐다. “마치 봄 제비와 가을 기러기처럼, 만나자마자 다시 이별이구나(有如社燕與秋鴻, 相逢未穩還相送)/ 동정호의 푸른 풀 아득해 끝이 없고, 하늘 기둥 자색 덮개 빽빽하니 움직일 듯하다(洞庭靑草渺無際, 天柱紫蓋森欲動)/ 호남에서 길게 한 번 슬퍼져, 시인에게 전하다 비웃음만 샀도다(湖南萬古一長嗟, 付與騷人發嘲弄).”

문장가 소식이 오늘날 중국의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인 담주(潭州)로 부임하는 친구 진목(陳睦)을 위해 지은 시의 말미다. 얼핏 만났다 곧 헤어짐을 뜻하는 ‘사연추홍(社燕秋鴻)’이란 사자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사연(社燕)이라 함은 사일(社日)의 제비이고, 추홍(秋鴻)은 가을의 기러기다. 사일은 입춘(立春)과 입추(立秋)가 지난 뒤 다섯 번째 무일(戊日)을 말한다. 올해의 춘사일은 3월 18일, 추사일은 9월 24일이었다. 사(社)는 땅귀신이다. 곡식의 신과 함께 사직(社稷)단에 모신다. 고대 중국 민간에서는 사일에 한데 모여 땅귀신에게 사제(社祭)라는 제사를 지냈다. 사회(社會), 결사(結社)가 예서 나왔다.

봄에 와 가을에 떠나는 제비와 가을에 와 봄에 떠나는 기러기·백조는 일 년에 두 차례 스치듯 만난다. 둘은 서로 목적지가 반대다. 만나면 언젠가 헤어짐을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한다. 만남의 시간이 짧아지면 ‘사연추홍’이다.

철새는 한자로 후조(候鳥)다. 철새는 바쁘다. 삶의 터가 계절마다 바뀌기 때문이다. 10년 전 교수들이 뽑은 한 해의 한자가 이합집산(離合集散)이었다. 그해 대선을 앞두고 철새 정치인들의 당적 바꿈이 잦아서였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지난주 군산으로 내려가던 차 라디오에서 안철수씨의 후보 사퇴 육성이 흘러나왔다. 그와 문재인 후보의 만남과 헤어짐에서 ‘사연추홍’의 제비와 기러기가 문득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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