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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꿈’ 교두보 확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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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오늘 유엔총회는 팔레스타인 국가에 출생증명서를 발급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 단상에 선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은 193개 회원국에 호소했다. 잠시 후 총회장 대형 전광판에 표결 결과가 떴다. 찬성 138, 반대 9, 기권 41표. 압도적 표차로 팔레스타인이 유엔의 비회원 참관(observer) ‘단체(entity)’에서 참관 ‘국가(state)’로 승격되는 순간이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1947년 ‘영국령 팔레스타인’을 각각 유대인과 아랍인 국가 두 개로 나눈 유엔 결의안 181호가 통과된 날이기도 했다. 65년 전엔 이스라엘이 건국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이번엔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로 가는 교두보를 확보했다.

 지난해 팔레스타인은 유엔 정회원국 가입에 도전했다. 그러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규정에 막혀 좌절했다. 이스라엘 편에 선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그러자 안보리 동의가 필요 없는 유엔 산하 유네스코 정회원국 가입으로 미국의 허를 찔렀다. 압도적 지지로 유네스코 회원국이 된 데 고무된 압바스 수반은 다음 수순으로 역시 안보리 동의가 필요 없는 ‘유엔 비회원 참관 국가’ 승인을 추진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극력 반대했지만 중국·러시아와 중동·아프리카 국가는 물론 프랑스·스페인·스위스 등 유럽 국가가 대거 찬성표를 던졌다.

 이런 결과는 최근 벌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무장세력 ‘하마스’ 사이 교전 때문으로 보인다. 무력 충돌이 격화하면서 이스라엘과 협상을 주장해온 온건파 압바스 자치정부의 입지가 쪼그라들었다. 그러자 압바스 자치정부에 ‘국가’ 자격을 줘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쪽 강경파의 입지를 약화시켜야겠다는 국제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PA는 88년 독립선언 후 국제사회로부터 팔레스타인의 유일 대표기구로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2006년 6월 가자지구 총선에서 강경파 하마스에 패한 뒤 요르단강 서안만 장악한 반쪽짜리 자치정부가 됐다.

 유엔은 현재 193개 회원국 외에 각종 단체와 국가를 비회원 참관자로 인정하고 있다. 참관자 중에서도 국가로 승격되면 유엔 산하 각종 국제기구에 정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비회원 참관 국가는 교황청과 팔레스타인 두 곳뿐인데, 미국과 이스라엘이 걱정하는 건 팔레스타인이 국제형사재판소(ICC) 회원국이 되는 것이다. 이번 결의로 팔레스타인은 ‘국가’로 인정받은 만큼 팔레스타인 영토인 요르단강 서안에 주둔한 이스라엘군이나 정착민은 국제법을 위반한 점령군이 된다. 2008년 이스라엘 공군의 가자지구 공습도 ICC 제소감이 될 수 있다.

 팔레스타인의 제소로 ICC가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 조사에 착수하면 미국이나 이스라엘로선 낭패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번 유엔총회 결의는 중동평화에 새로운 걸림돌이 될 뿐”이라고 반발한 이유다. 지난해 유네스코가 PA를 정회원으로 받아들이자 유네스코 예산의 22%를 지원해온 미국은 돈줄을 끊어버렸다. 이스라엘은 PA가 결사 반대해온 요르단강 서안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재개했다. 이번에도 미국과 이스라엘은 보복조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의 국가 승격이 중동평화에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미지수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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