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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교수복직·학생석방에 관한 국회건의를 받아들임이 옳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 16일 여·야 총무회담은 [구속학생석방·제적학생 복교 및 소위 정치교수 복직에 관한 건의안]을 여·야의 단일안으로 만드는데 노력하기로 합의하고, 문공위는 이러한 합의원칙에 따라 단일안 작성을 서둘렀으나 건의안주문의 표현상 문제로 격론이 벌어져 결국 실패로 들아 갔다. 그러나 18일의 국회본회의에서는 이런 곡절이 일전하여 여·야가 이 건의안을 수정 통과시켰다. 우리는 건의안 처리와 함께 한·일 협정반대운동을 전개하다가 희생된 학생이나 교수에 대하여 계속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얘기는 되돌아가지만 문공위의 단일안 작성이 실패에 돌아간 것은 구속학생을 석방시킨다든지, 제적학생과 정치교수를 학원에 복귀시키도록 하자는데 관해서는 여·야 간에 원칙상의 합의가 이루어 졌지만, 건의안주문의 표현문제에 있어서, 한·일 협정반대운동에 대한여·야간의 평가가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인 것으로 들린다. 우리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점은 바로 이점인데 한·일 협정반대운동에 대한 정치적 평가문제와, 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희생을 당한 학생·교수의 구제문제는 엄연히 구분되어 다루어져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양자를 혼동시키는데서 신속한 구제가 요구되는 구속학생·제적학생·정치교수의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일 협정반대운동 및 이를 탄압한 정부정책에 대해서는 현재 정치적 평가가 구구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장기간을 두고서 논의가 구구할 줄 안다. 그렇지만 이 운동과 관련해서 학생과 교수들이 가장 많이 화를 입었고, 또 이처럼 화를 입게한 1차적 책임이 여·야 정치인에게 있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라고 한다면, 비준반대 때문에 일부 국회의원이 국회밖으로 이탈했다가 다시 되돌아 온 오늘 그리고 정부·여당이 이 국회의 정치적인 보철·수리를 [국회정상화]라고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는 정치현실하에서, 유독 한·일 협정반대운동에 앞장섰던 학생 및 교수에 한해서 계속 희생을 강요한다는 것은 논리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동안 줄기차게 지속됐던 한·일 협정반대[데모]의 공죄를 이 시점에 있어서 따지고 싶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역사가 그 정당성 여부를 말하여 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현시점에 있어서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학생[데모]가 과잉 항거였다고 하면 정부방위도 과잉 방위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잉 항거, 과잉 방위는 서로들 악순환을 이루어 사회불안·정치불안의 인도되고 과도되었던 것인데, 정치과열상태가 가셔서 사회상태가 평온해진 오늘, 항거했던 측에 대해서만 계속해서 희생과 고통을 강요한다는 것은 정히 사회정의의 요구에 어긋나는 것이다.
『학생 [데모]의 뿌리를 뽑겠다』고 하는 것은 학생이나 교수의 과잉 현실참여, 정치참여를 억제하고 그들로 하여금 맡은바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하겠다는 것이지, 그 이상 더 나아가 [데모]학생이나 정부에 반대한 교수에게 일생을 두고 보복을 하겠다는 뜻이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데모] 열풍이 가라앉은 오늘, 정부는 건의안을 받아들여 이들을 구제하는 것이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가장 현명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정부당국이 구속학생·제적학생·추방교수를 [데모] 억제나 인권탄압의 인질적 존재로 삼는 것을 단호히 반대하는 동시에 또 야당이 그들의 존재를 대여정치공세의 미끼로 삼는 것도 단호히 반대한다. 필요한 것은 이들 희생을 입은 학생·교수들의 신속한 구제이지, 이들의 운명를 떠난 한·일 협정찬반에 관한 정치적 논쟁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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