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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글학자 유희와 정영호 교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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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식물학자가 1세기 전 한글 학자를 골똘히 연구하는 데는 그럴 까닭이 있다. 서울대 문리대 정영호(42)교수는「유희는 언문지의 저자로만 알려져 있지만 어디까지나 과학자」라고 말한다. 곧 정교수는 유희를 한글학자로 다루는 일반론을 깨트리고 오히려 과학자의 입장에서 연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동안「메모」해둔「노트」를 내보인다. 거기에는 유희의 연표와 저서 교우관계 및 시대적 배경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적혀있다.
사전적인 풀이를 하면, 유희는 이조 순조 때의 한글학자(1773∼1837)로서 훈민정음 이후 가장 뛰어난 한글연구서인 언문지를 남긴 사람이다. 그러나 정교수는 사전의 풀이부터 고쳐 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희가 남긴 업적 가운데 한글연구는 극히 적은 부분에 불과할 뿐더러 언문지 역시 과학자의 입장에서 분석, 정리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유희가 한글을 정리한 내용을 보면 수리적으로 다룬 흔적이 역력하다. 여러 학설을 비교하며「차트」를 만들고 특히 전자 예­ 즉 한글의 총 잣 수가 l만1백51글자라고 산출해 내는데 이론의 핵심을 둔 것은 그의 과학자다운 태도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언문지는 사실 유희의 문집「문통」에 실린 한편의 논문이다. 오히려 그 문집에는 「물명유고」를 비롯하여「역상수원설」「화리류설」「만물류설」「의학류설」「관상지」「기하원본 급도설」등 천문 지리 물리에 걸친 논문이 많이 발견된다. 당시 실학사상이 전성기를 이룬 때이므로 그의 관심이 두루 미치고 있음은 무리가 아니기도 하다. 그의 가계를 보더라도 아버지 유한규는 천문과 물리에 조예가 깊은 분이었고 어머니 사주당마저「태교신서」를 저술한 분이니 유희는 과학자의 가정에서 자란 셈이다.
그러나 정교수가 주장하는 요점은 보다 구체적이다. 그는 한국의 생물을 분류체계에 맞춰 기술한「물명유고」는 확실히 서구의 과학적 방법론으로 엮어졌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동물. 식물, 광물 및 물과 불에 대해 각각 설명하고 있는데, 우선 대체의 정의를 내리고 해부학적 고찰과 생태학적 균명을 한 기초 위에서 분류학적으로 해설하고 있다. 그래서 이책은 서구적 방법론으로 쓴 최초의 생물학개론이 됨은 물론, 우리가 쓰는 일상용어의 정확한 개념을 찾는데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정교수는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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