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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의 비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나나」의 비극이라고 하면「에밀·졸라」소설 이야긴 줄 알 것이다. 그러나 여기의「나나」는 외국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이 아니라 순수한 우리 나라의 말, 그것도 우리가 언제나 말끝마다 붙여쓰기를 좋아하는 말이다. 옆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조심해서 들어보면, 이상스럽게도「…나」「…나」가 연속적으로 튀어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차나 한 잔 합시다』『영화나 구경갑시다』『바둑이나 한판 둘까』『집에나 들어가서 잠이나 자둘까』…끝없이「나, 나」가 폭발한다. 어째서 그런 습관이 생겨나게 되었을까?
그냥「나」자를 빼고『차를 마십시다』『바둑을 둡시다』라고 말하지 않고 왜 꼭 말끝마다「나」자를 붙여야 시원한가? 별 뜻 없이 무심히 말하는 소리지만, 그것을 분석해 보면, 우리 잠재의식 속에 그만큼 생활에의 불만이 가득히 괴어있다는 증좌다.
「…나」는 부정적인 선택이며 도피적인 언사인 것이다.『집에 나가서 잠이나 잔다』는 것은 곧 다른데 가봐야 별수 없다는 뜻이며, 또 집에 들어가서도 신통한 일이 없으니 잠을 자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하다는 불만의 토로다. 『집에 가서 잠을 자야겠다』는 말과는 그「뉘앙스」가 아주 다르다.
그러고 보면 말끝마다「나, 나」를 연발하는 것은 욕구불만을 향해 쏘아붙이는 기총 사격의 소리인 것이다. 따분하고 괴롭고 시시하고 꼴사나운 일들이 많기 때문에 어느덧「나, 나」는 우리의 한 비극적인 관용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엔「나」자에 한자씩 더 붙여서『서독이나, 가서 굴이나 팔까』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액면대로 해석하면 서독에 가서 광부 노릇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뜻이지만, 이것도 실은 한국에선 못살겠다는 불평이다. 단순히 말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독광부의 모집이 있을 때마다 수십 대 일의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옥의 문턱 같은 그 갱구 속이라도 그렇게 만만히「나」자를 붙여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금년 말까지 5백명의 한국인 광부를 받기로 한 서독 광산당국은 폐광이 늘어, 백40명으로 인원을 줄였다.『××나 하자』는 말은 일종의 자포자기의 위장이다.
우리의 대화에서「나, 나」의 비극이 없어지는 날, 정말 잘살 수 있는 시절이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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