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3차산업시대 서비스산업 강국이 되자]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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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코넬대학은 한 때 제주도에 호텔경영학 단과대학 설립을 모색했다.

그러나 "대학은 공익기관이므로 이윤을 내서는 안된다" 는 한국 정부 방침 때문에 수지를 맞출 수 없다고 보고 포기했다.

최근 한국에 대대적인 투자를 추진하고 있는 이탈리아 구치의 한국 지사는 본사에 면목이 없다.

본사는 야심찬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데 외국인 투자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인센티브 제도는 제조업 중심이어서 구치는 아무런 혜택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전국에 대형 매장과 물류기지를 세우면 제조업체 못지 않게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텐데 제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세금 한푼 안깎아 주는 것은 너무하다" 고 말한다.

외자유치만 이런 게 아니다. 그동안 한국의 정책.제도는 제조업을 키우는 데만 초점을 맞춰왔다. 이러다 보니 서비스.물류산업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우리는 서비스업 하면 으레 술집.오락실.러브호텔부터 떠올린다. 이 때문에 '서비스업=소비.향락산업' 이란 편견이 각종 제도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인식에도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제조업에선 세계적인 기업을 배출했으면서도 서비스.물류산업에선 세계무대에 내놓을 기업을 찾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여온 '제조업만이 산업' 이라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뜨리지 않으면 고부가가치의 신3차산업을 일으킬 수 없다.

◇ 제조업 중심의 제도.관행=현행 부가가치세제는 원재료를 사다 가공해 완제품을 만들어 파는 제조업에 맞게 돼 있다. 이 때문에 원재료가 거의 안들어 가는 서비스.물류업체는 원재료 매입비용 공제를 받지 못해 상대적으로 세금을 많이 문다.

담보 위주의 대출관행도 서비스.물류산업에 불리하다. 담보로 내줄 공장이나 땅이 상대적으로 적어 은행 문턱을 넘기가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 김휘석 박사는 "한 컨설팅업체가 대기업으로부터 자문계약을 따낸 뒤 이를 근거로 은행에 대출을 신청했으나 딱지를 맞았다" 며 "신용대출 관행의 정착이 아쉽다" 고 말했다.

정책자금 대출도 예외가 아니다. 관광.호텔에 지원하는 관광진흥기금을 보자. 대출을 대행하는 산업은행이 무조건 1순위 담보만을 고집해 담보로 내줄 부동산이 없는 대다수 중소 관광.호텔업체에는 '그림의 떡' 이다.

P관광호텔 관계자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가 되면 관광.숙박업을 지원한다고 야단들 하다가 행사가 끝나면 소비.향락산업이라고 규제한다" 며 "최소한 서비스.물류업도 제조업과 같은 하나의 산업이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고 주장했다.

이렇게 각종 정책자금은 제조업에 집중돼 있는 반면 각종 규제는 서비스.물류산업에 집중돼 있다. 예컨대 제조업은 1백42개 업종 중 23.2%인 33개 업종만 허가제지만 음식.숙박업은 1백% 허가제다.

각종 세제.금융혜택을 받는 중소기업 범위도 서비스업에 불리하게 돼 있다. 제조업은 상시 근로자 3백명 미만이면 중소기업이 되지만 서비스업은 업종에 따라 50~2백명 미만이어야 한다.

산업연구원 김휘석 박사는 "현재의 중소기업 범위는 사람을 많이 썼던 과거 제조업 기준" 이라며 "공장자동화 등으로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차이가 없어졌다" 고 지적했다.

◇ 외자 유치의 틀도 바꿔야=지금도 외국인이 국내에 투자를 하면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가 있다. 문제는 이 혜택을 받자면 첨단기술을 들여오거나 외국인 투자지역에 입주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외자유치에서 한국이 중국에 비해 경쟁력을 가진 분야는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물류업인 만큼 제조업 중심의 외자유치 전략도 수정할 때가 됐다는 지적이 많다.

서비스.물류업체가 들어서기 위해선 고등교육을 받은 인력이 많고, 도로나 항만.공항.철도 등 인프라가 상당히 갖춰져 있어야 하며, 내수시장이 일정 규모 이상 돼야 해 아직까지는 중국보다 한국의 입지조건이 낫다는 것이다.

광운대 한홍석 교수(중국학)는 "첨단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 말고는 제조업 입지조건으로 중국이 한국을 능가한 지 오래" 라며 "노동집약적인 제조업은 중국에 자리를 내주되 이들 업체가 필요로 하는 각종 지원 서비스나 물류를 한국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이 시급하다" 고 지적했다.

외국인투자 옴부즈맨사무소 이현석 전문위원은 "외국인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는 제조업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국내산업의 수준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주고 내용도 일률적으로 정할 게 아니라 업체들이 원하는 맞춤형으로 바꿔야 한다" 고 제안했다.

◇ 우물안 개구리식 발상에서 벗어나야=제조업 중심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제도.관행이나 발상까지 국제 규범에 맞춰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서비스.물류산업은 물건이 아니라 지식과 노하우를 파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규범에 우리 스스로를 맞추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법률 서비스를 보자. 복잡한 파생금융상품 거래나 국제적인 기업 인수.합병(M&A)계약을 국내 법률회사가 유치하자면 그에 걸맞은 전문가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내 사법시험에 합격하지 않으면 변호사 업무를 볼 수 없도록 돼 있는 규제 때문에 이런 전문가를 구하기 어렵다.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 제임스 워커 법률서비스위원장은 "한국에서 활동 중인 변호사는 4천1백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62%가 서울에 있다" 며 "이 정도 인력으로 복잡한 국제 거래나 계약을 한국으로 유치할 수 있겠느냐" 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음성직.신혜경 전문위원, 이재광.정경민.신예리 기자 eums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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