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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지에 웬 구청사" 130억 땅찾은 마포구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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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마포구청이 끈질긴 노력 끝에 130억원에 달하는 땅의 소유권을 최근 되찾은 사실이 확인됐다. 구청의 힘겨웠던 땅찾기는 2008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갓 부임한 김영호(58·현 노원구 부구청장) 부구청장은 그해 12월로 예정된 신(新)청사(월드컵로 212) 이전을 앞두고 구(舊)청사 활용 방안을 논의하던 자리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보고를 받았다. 구청사 부지 1만1861㎡(3588평) 중 2142㎡(648평)가 학교법인 한양학원 소유라는 내용이었다. 한양학원은 한양대·한양여대 등을 운영한다. 성산동의 구청사는 1979년 지어졌다.

 따라서 청사를 매각하거나 재건축 하려면 한양학원으로부터 해당 부지를 사야만 했다. 감정가만 130억원이었다. 하지만 김 부구청장은 “사유지에다 구청 청사를 지었다는 게 이상하다”며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서울시청 감사과와 재무과 등에서 30년을 일한 베테랑에겐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김영호

 사정을 알아볼수록 의문이 더 쌓였다. 한양학원은 30여 년간 마포구청에 토지 사용료를 전혀 요구하지 않았다. 97년에 딱 한 번 구청에 무단 점유통지를 했을 뿐이다.

 김 부구청장은 “진짜로 한양학원 소유 땅이라면 어떻게 토지사용료 요구를 안 할 수 있느냐”며 재무팀 직원 2명을 차출해 조사 전담반을 꾸렸다. 하지만 워낙 오래 전 얘기라 확인이 어려웠다. 구청 내에서는 “가뜩이나 인력도 부족한데 부구청장이 괜한 일을 벌인다”는 불만도 터져나왔다.

 김 부구청장이 수소문 끝에 구청사 건설 추진 당시 마포구 도시계획과장으로 근무했던 전직 공무원을 찾아내면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 공무원은 “한양학원이 당시 해당 부지를 포함한 3000평(9917㎡)을 마포구에 기부채납하기로 약속했다”고 알려줬다.

 곧바로 기부 채납 약속을 입증해줄 증거 찾기에 나섰다. 경북 청도에 있는 서울시 문서고로 전담팀이 급파됐다. 직원들은 구청사 건립이 추진되던 77년 이후의 행정 서류 수천 건을 일주일간 뒤졌다. 기부채납 협약서나 계약서는 찾지 못했지만 당시 기부채납 약속을 추정할 수 있는 서류 몇 장을 발견했다.

 한양학원 이사장 명의의 건의서가 대표적이었다. 건의서에는 ‘한양학원이 소유한 임야 6000평을 개간하게 해주면 절반은 구청에 기부하고 나머지 절반은 수익사업으로 개발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해당 부지에 대한 옛 등기부등본과 토지분할 신청서에는 임야 분할 사유로 ‘기부채납을 위한 것’이라고 적혀있었다. 김 부구청장은 “한양학원이 마포구에 낸 건의서가 실제 조치로 이어졌음을 추정할 만한 자료라고 판단했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당시 임야를 깎는 과정에서 암반이 발견되는 등 난공사를 겪으면서 건설과 측량 등에 착오가 발생해 기부된 땅이 미처 구청 소유로 등기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추정됐다.

 마포구청은 이듬해인 2009년 해당 자료들을 제시하며 한양학원 측에 해당 토지의 소유권을 이전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한양학원 측은 “이미 상당한 땅을 구청에 기부했고 문제의 부지는 구청이 무단점유하고 있는 것”이라며 거부했다.

 구청은 그해 한양학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1심, 2심에 이어 지난 15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한양학원이 기부채납 의사를 가졌음이 인정되고 개발로 인해 한양학원이 청사 부지 기부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았다”고 판시했다. 당시 임야이던 이 일대 부지엔 이후 구청과 주택, 학교 등이 들어섰다. 이 덕에 한양학원은 약 12배의 차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노원구로 옮겨간 김영호 부구청장은 “대법원 판결을 전해듣고는 너무나 기뻤다”며 “당시 무심코 넘어갔더라면 땅값은 물론 그동안 내지 않은 토지사용료까지 약 150억원을 낭비할 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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