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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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올해 수능 언어 영역에서 3점짜리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이 된다. 만점자가 지난해의 8.4배인 1만4000여 명(전체 인원의 2.36%) 나왔다. 이렇게 만점자가 많아졌다고 좋아할 사람은 수험생이나 학부모 중엔 아무도 없다. 등급이 낮아진 학생은 수시모집에 실컷 원서를 내놓고도 최저학력기준에 미달돼 탈락의 고배를 마실 수도 있다. 자기 실력 때문이 아니라 운 때문에 낙방했다고 생각하는 수험생이 많다면 그런 입시는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지난해엔 외국어 영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올해는 어렵게 출제돼 만점자 수는 4000여 명이었다. 이처럼 매년 영역별로 돌아가면서 만점자가 양산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출제·채점을 맡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측은 “목표치(영역별 수능 만점자 비율이 1%)에 근접했다”며 자화자찬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역시 만점자가 1% 나오면 쉬운 수능이고, 쉬운 수능은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쉬운 수능은 오히려 잠시 잠깐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무자비한 시험이 될 수도 있다.

 수험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만점자 비율 1%도, 이를 두 배 뛰어넘은 쉬운 수능도 아니다. 시험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일 뿐이다. 수능 난이도가 이처럼 해마다 들쭉날쭉하다면 현재 고2 이하 예비 수험생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교육에 몰려가게 된다.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잃은 수능은 사교육업체들을 살찌운다.

 교과부나 평가원 모두 내년 수능에서는 만점자 비율 1% 같은 목표치도 내세울 수 없다고 한다. 현재보다 더 쉬운 A형 수능과 현재 수준의 B형 수능 등 2가지 유형으로 출제되는 등 수능 체제가 대폭 바뀌는데도 현재보다 쉬우면 얼마나 더 쉬운지, 현재 수준은 유지될 수 있는지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고 있다. 난이도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대책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내년 A, B형 시험의 성패는 난이도의 예측 가능성에 달려 있다. 수험생들이 모의고사를 통해 충분히 체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