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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환율전쟁 뛰어든 정부 … 달러 유출입 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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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국제 환율 전쟁에 한국 정부도 뛰어들었다. 말이 아닌 행동을 통해서다.

 거시경제금융회의는 27일 외국환 은행에 대한 선물환포지션 비율 한도를 낮추기로 결정했다. 이 회의에는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한국은행·금융감독원 관계자가 참여한다. 외환 관련 기관이 한 방향으로 입장 정리가 됐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다음 달 1일부터 국내 은행의 선물환포지션 비율 한도는 40%에서 30%로 낮아진다. 외국은행 지점은 200%에서 150%로 하향 조정된다. 지난해 5월에 이어 1년6개월 만의 축소다. 단 금융사 부담을 감안해 1개월간은 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다.

 선물환 포지션은 은행의 자기자본 대비 선물환 보유액 비율을 뜻한다. 이 비율이 축소되면 선물환 거래가 줄어 결과적으로 외화, 특히 달러의 유·출입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 2006~2007년 원화 강세 때는 선물환을 산 은행이 위험을 줄이기 위해 달러를 빌려온 후 이를 다시 외환시장에 내다 팔아 달러가치 하락(원화 강세)을 불렀다. 이 경우 선물환 규제를 강화하면 원화 강세를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낸다. 그러나 지금은 원화 강세가 선물환 거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어서 당장 시장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전날보다 달러당 1.40원 오른 1084.10원에 거래를 마쳤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한도 축소 방침이 이미 지난주 외환시장에 반영된 영향도 있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이번 조치는 당장의 시장보다 앞으로를 대비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미국의 양적완화, 일본의 적극적인 엔화 가치 하락 개입 등으로 촉발된 환율 전쟁이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깔린 셈이다. 재정부는 이번 조치를 발표하며 “선제적 대응”이란 점을 특히 강조했다. 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규제 발표를 통해 달러당 1080원대를 고수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시장에 각인시켰다”고 말했다.

 외화 유·출입 규제는 이제 시작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이날 “추가적인 외환 건전성 규제를 재정부·한은과 함께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시점을 재고 있는 두 번째 조치는 외환 건전성 부담금을 늘리는 것이다. 이 제도는 비예금성 외화 채무에 대해 만기별로 0.02~0.2%포인트의 부과금을 물리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8월 첫 도입됐으며 법정 한도가 0.5%포인트로 인상 여력은 크다.

 이 같은 정부 조치는 최근 원화 가치의 상승세가 매우 가파르기 때문이다. 올 들어 원화가치가 가장 낮았을 때(5월 25일)를 기준으로 하면 10% 정도 올랐다. 특히 최근 3개월간 5% 절상돼 속도가 빠르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날 내년 시장 전망을 통해 “기축통화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약화하면서 원화 수요가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출 중소기업은 이미 아우성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절반(49.5%)이 수출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중점 추진해야 할 사항으로 환율 변동 최소화를 꼽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단기 외화 자금 거래에 세금을 물리는 토빈세 같은 초강도 규제로 이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국제적으로도 논의만 무성할 뿐 구체화된 것이 없고, 한국만 한다고 효과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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