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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 송아지-이원수 지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수근이는 학교 시간이 끝나기가 바쁘게 집으로 돌아왔읍니다. 어쩌면 오늘쯤 누렁이가 새끼를 낳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립문을 들어서면서 어머니에게 물었읍니다·
『어머니,송아지 안났어요?』
어머니는 키로 보리쌀을 까부르다가 빙긋 웃으며 가만히 말했읍니다.
『낳았다·』
『났어요 ? 』
수근이는 책보를 마루에 던지고 외양간으로 달려 갔읍니다. 뒤에서 어머니가 『얘, 조용히 해라. 누렁이 좀편히 쉬게·····』
수근이는 가슴이 뛰었읍니다. 아! 정말 났읍니다. 외양간에는 아무일 없은듯이 서있는 어미소 배 밑에 조그만 송아지가 서서 젖을 빨고 있었읍니다·
『야! 어느새 저렇게····? 아침에도 나지 않았던 것이…··』
수근이는 송아지 난걸 처음 보므로 신기하기 그지 없었읍니다. 그리고 갓난것이 벌써 저렇게 의젓한 송아지가 되었을까 하고 생각했읍니다.
송아지는 어미소처렴 누렁이였읍니다. 그 귀랑 눈이랑····어미소보다는 휠씬 귀여워 보였읍니다. 조그만것이 서서 젖을 쪽쪽 빨고 있읍니다·빨다가 머리로 젖통을 콱 들이받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또 쪽쪽 빱니다·어머니가 보리겨를 가지고오시자, 수근이가 말했읍니다·『어쩜, 다 자란것같아·어머니, 송아지 언제 났어요?』『언제가 뭐냐, 아까 났지·』『아까 난게 벌써 저렇게 서서 저래요?
소는 그렇게 빠르단다.』
저녁 어둠이 스며들고 있었읍니다·수근이는 한참동안 송아지 구경을 ,하며,<이 송아지는 내가 맡아서 잘 돌봐주리라·자라면 데리고 다니면서풀도 먹이고 하리라·>는생각을 했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갑자기 소가 두 마리나되어, 수근이는 부자가 된것 같았읍니다·
송아지가 난 것은 오후 세시쯤 이었읍니다. 송아지는 어미소 배에서 나오자 따뜻한 것이 제몸을 핥아 주는걸 알았읍니다. 눈을 떠보니 어미소가 온몸을 고루 핥고 있었읍니다. 기분이 좋았읍니다. 밖은 눈이 부셨읍니다·향긋한 풀냄새와 구수한 쇠죽냄새가 코에 스며 왔읍니다.
짹짹짹 참새 소리가 귀에 따가운것 같았읍니다·
송아지는 누가 가르쳐 주지않았지만 제 몸을 핥아 주는소가 엄마란것을 알았읍니다·『엄마, 고만 핥어·나 일어 날테야.』
그러면서 송아지는 벌떡 일어나 걸어 보았읍니다. 다리가 좀 휘청거리고 발길이 비틀거렸지만 참 기분이 좋았읍니다·마른짚이 깔려 있는데를 밞으니 발바닥이 간지러웠읍니다·어미소가 따라와서 또 등을 핥아 주었읍니다.
수근이가 와서 보고 간 뒤에 송아지는 참으로 굉장한것을 보았읍니다·어두워지던 외양깐이 갑자기 훤히 밝아 지면서 어미 소의 두 눈에 빨간빛이 어리었읍니다· ^
밖을보니 하늘이 온통 빨개져 있었읍니다·송아지는 뒤뚱뒤뚱 걸어나와 하늘을 바라보
았읍니 다· 하늘 한쪽에 서 저녁놀이 서기 시작한 것이 었읍니다·놀은 비늘같은 영롱한 구름으르 서쪽산 위에서부터 하늘가득히 번져가고 있었읍니다·
오랜지 빛깔로 가장자리를 물들인 붉은 구름들이 하늘 한복판까지 좍 꽃부채를 편것같이 보였읍니다·
송아지가 눈을 껌벅거리며 어미소에 말했읍니다·
『엄마.저거 뭐야?』
『저녁놀이라는 거다·들에 나가 일을 하다가도 저런놀이서면 집에 돌아올 때라는걸 알게 되지·』
송아지는 들에 일올 나간다는 짓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저 환한 빨간빚과 노란빛구름-그
구름 사이사이로 파란 하늘이 예쁜 누늬같아 송아지의 눈을 놀라게 했읍니다·
『아가, 이리온. 젖 먹고 자자.』
송아지는 어미소 젓꼭지를 물고 쪽쭉 빨았읍니다. 한참 빨다 보니 놀은 식어져 없어지고 세상은 어둠에 싸여 있었읍니다. 어미소가 꺼멓게 보이고 이상합니다. 송아지는 어미소 몸에 제몸을 바짝 대고 있었읍니다·
『엄마, 이거 뭐야?』
『무엇 말이냐?』
엄말 잘 안보이게 하는것 말야.
『음, 이게 밤이라는 거다. 잠자라고 온거야·』
『밤? 』
송아지는 어둠이 싫었읍니다. 엄마 얼굴도 잘안보이게 하는게 싫었옵니다.
그러나 젖 냄새를 맡으며 엄마 몸뚱이에 붙어 있으니까 무섭지 않고 졸음이 왔읍니다·
수근이는 밤에도 송아지가 보고 싶었읍니다. 가만히 외양간에 가보았지만 어두워 잘보이지 않
았읍니다. 등에 불을 켜가지고 왔읍니다. 불빛에 송아지가 잠이깼읍니다.
『엄마,저거 뭐야?』
『이집 수근이가. 네가 보고 싶어 등불 들고 나온거야.』
『왜 내가 보고 싶어?』
『수근이도 네가 난걸 반가와 한단다. 새로 난다는건 반가운 일이란다.』
수근이는 젖을 빠는 송아지에게 등불을 비춰 보다가,『야! 우리 송아지 참예쁘디,.』하고, 중얼거리며 들어 갔읍니다.
『엄마,내가 예뻐 ?』
송아지가 물었읍니다.
예쁘고 말고! 세상에서 아기가 제일 예쁜거야?
어미소가 송아지의 머러룰 핥아주며 좋아했읍니다.
등불이 가고 나니까 더 어두워진 것 갈았읍니다. 송아지는 밖을 내다보았읍니다. 추녀 아래로 큼직큼직한 별들이 빛나고 있었읍니다. 별들은 꼭 영롱한 초롱들올 하늘에 가득 달아놓은 것 같이 보였읍니다.
『엄마, 저거 뭐야?』
『저전 별이라는 거다. 어두운 밤이면 저렇게 나와서 등불처럼 비춰 준단다,』
송아지는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었읍니다. 이때 외양간에서 또르또르또르....하는 귀뚜라미 소리가 났읍니다.
『엄마, 저거 뭐야?』
『저건 귀뚜라미가 너 잘 자라고 자장가를 불러 주는 거란다. 그러니 어서 자라.』
송아지는 구수한 젖냄새와 쇠죽 냄새를 말으며 뀌뚜라미의 자장가를 듣다가 혼곤히 잠이 들었읍니다.
별들은 조금씩 자리를 옮기며 밤새도록 외양간의 송아지를 비춰 주었읍니다. 어미소는 혓바닥이 아프드록 송아지를 핥아 주었읍니다. 그러면서 자지않고 생각했읍니다.

<우리 아기한테 가르쳐 즐게 많은데....달도 보여 줘야하고 비도 바람도 알려 줘야하고, 그뿐인가, 풀뜯어 먹기, 코를 꿰는 아픔, 멍에를 지는 일, 논 밭갈이. 짐져나르기, 즐거운일 괴로운일 열마든지 알아야 할 것이 많지. 그렇지만 이담에 팔려갈 일은 차마 줄 순 없지·>
이런 생각을 하니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읍니다.
아침이 되었읍니다. 일찌감치 쇠죽통을 들고 온 수근이 어머니가 구유에 여물죽을 부어주었읍니다. 구수한 쇠죽 냄새에 송아지는 잠이 깼읍니다. 세상이 환하게 밝은 걸보고 송아지는 좋아 의양간을 뛰어 다녔읍니다.
울타리 저편에 아침해가 솟아오르기 시작했읍니다. 황금빚 햇살이 찬란하계 쏘아옵니다. 얕은 산 아래에는 아침 안개가 엷은 비단띠를 두른 것같습니다. 햇살을 눈에 받은 송아지가 또 물었읍니다.
엄마 내눈에 이거 뭐야?
그게 햇볕이란다. 햇님이 솟으면 이 세상은 환하지. 네가 뛰어 다닐수 있게 말야
송아지는 밝은 아침을 처음 보았읍니마. 공기가 싱그러운 아침 송아지는 외양간에서 마당으로걸어 나왔읍니다. 마당의 싸늘한 흙이 발바닫에 닿아 기분이 좋았읍니다.
야! 우리 송아지, 마당에까지 나 왔어!
하고 스근이가 달려와서 송아지의 목을 얼싸 안았읍니다.
송아지는 도망을 치려 했으나 수근이의 팔에 안겨 달아나질 못하고 어미소를 블렀읍니다.
엄마, 엄마! 이거 뭐야, 이거 뭐야?
무서워서 어쩔 줄 모르고 부르는 송아지를 고개를 들어 바라보다가 어미소는 힝 웃으며 말했읍니다.
『수근이가 너 사랑해 주는 거다. 무서워 하지 말어.』
그러고는 우물우물 쉬죽을 먹고 있었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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