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아일랜드 경제의 성공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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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는 세계각지에서 4백50여명이 참여한 산업경제학회가 열렸다.

산업경제를 전공하는 학자들의 연례회의였지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오히려 아일랜드의 성공비결에 쏠려 있었다. 이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 최근 6년간 연9. 5% 성장

유럽연합(EU)에서 가장 열악했던 경제가 불과 몇년 만에 가장 잘 나가는 나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최근 6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무려 9.5%에 이르고, 1987년 8천7백달러에 불과했던 소득도 2만5천달러로 급증했으니 어찌 신선한 충격이 아니겠는가.

우리에게 아일랜드는 유럽의 생소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영화 '라이언의 처녀' 의 무대였다는 사실이나 제임스 조이스와 예이츠를 연상시키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굳이 아일랜드와 경제를 연관시킨다면, 19세기 중반에 발생했던 감자 기근이 고작일 것이다.

감자의 대흉작으로 1백만여명이 기아와 병으로 죽고, 1백50여만명이 이민을 갔던 비극적 사건이었다. '아일랜드의 감자' 로 인구의 3분의1이 줄어들었으며, 케네디가도 이때 미국으로 떠났다고 한다.

80년대 말까지도 아일랜드 경제는 순탄치 않았다. 열악한 입지조건으로 모든 산업이 서부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인 수준을 벗어날 수 없었다. 87년에는 한때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고려할 정도로 파산상태에 직면하기도 했다.

실업률이 17%에 이르고,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1백20%에 달하였으니 어떻게 경제적 자립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 위기에 처했던 경제가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실업률은 3.6%로 낮아졌고, 빚은 40%로 줄었으며, 소득은 수백년간 지배받았던 영국을 추월했다. 과연 무엇이 이렇게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을까.

아일랜드의 성공요인을 전문가들은 세가지로 요약한다.

사업환경의 개선을 통한 투자유치의 성공, 경제정책의 일관성, 노사정 연대계약을 통한 사회적 안정이 바로 그것이다.

투자자의 신뢰(Confidence)와 노사협력(Cooperation), 정책의 일관성(Consistency)을 강조해 3C라고 요약한다. 실제 아일랜드는 투자자의 천국이다.

투자에 대한 규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EU에서 가장 좋은 법인세 혜택과 보조금, 원 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뿐이다.

게다가 노사정간의 협약을 통해 임금이 안정돼 있고 노사분규도 없다. 교육투자를 통한 양질의 노동력 공급도 투자유치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이 결과 아일랜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IBM 등 세계적인 정보통신업체의 생산기지로 변모했다. 금융과 제약 분야의 고부가가치에 대한 투자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외국인 투자는 제조업 생산의 50%, 고용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수차례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되고 있는 경쟁력 향상 정책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요인이다.

조세감면을 통해 소득을 보전하고, 대신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있다. 87년 위기 때 체결된 '국가번영을 위한 협약' 이 노사 안정의 받침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비록 협약은 3년마다 다른 정권에서 갱신되었지만, 투자자에게 믿음을 주는 원칙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 정책 일관성 유지가 강점

물론 아일랜드의 성공을 일시적인 호황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작은 섬나라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 특수한 현상으로 폄하할 수도 있다.

정말 그러한가? 아일랜드의 성공요인들은 결코 '더블린 사람들' 만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다.

핀란드나 뉴질랜드, 네덜란드와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물론 중국 경제도 달라지고 있지 않은가. 정책의 일관성과 노사정의 안정 속에 누구나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게 한다면, 불모지에서도 경제는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정치적인 불안정과 노사의 대립속에 정부 규제는 오히려 늘어만 가고 있다. 이런 여건에서 어떻게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 회생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외부 여건만 탓하지 말고 우리 내부부터 달라져야 한다. 밖에서 보는 우리 모습은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鄭甲泳(연세대 교수·동서문제硏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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