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꽂이] AI는 양심이 없다 外

    [책꽂이] AI는 양심이 없다 外

    AI는 양심이 없다 AI는 양심이 없다(김명주 지음, 헤이북스)=인공지능(AI)의 발달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윤리적 문제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죽은 사람의 디지털 흔적으로 인한 명예훼손, 퍼블리시티권, 프로파일링과 잊힐 권리 등 죽음과 관련된 윤리 문제, AI 혁신 이면의 차별과 편견, 적대적 공격과 불신 등 신뢰 관련된 문제 등을 다룬다.   격동-메이지 유신 이야기 격동-메이지 유신 이야기(오욱환 지음, 조윤커뮤니케이션)=1868년 메이지 유신은 일본만의 역사가 아니다. 유신을 통해 근대화한 일본은 가장 먼저 조선 병탄에 나섰다.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의 일본 내항부터 도쿠카와 요시노부 막부 쇼군이 메이지 천황에게 통치권 반납을 선언한 대정봉환 등 숨 막히는 일본의 격동기를 알기 쉽게 정리했다.   임진왜란기 손자병법 주해 임진왜란기 손자병법 주해(손무 지음, 노승석 옮김, 여해)=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손자병법』은 후대에 꾸준히 연구가 이뤄졌다. 임진왜란 중인 1594년 명나라에서 간행된 『손자병법 주해』는 이순신 장군이 읽고 노량해전 등에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전 전문가인 저자가 이를 찾아내 고증·번역했다. 다른 판본에 없는 새 주해를 여럿 붙였다.   혁명의 넝마주이 혁명의 넝마주이(김수환 지음, 문학과지성사)=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를 소비에트 아방가르드의 맥락에서 새롭게 독해했다. 1926년 말 두 달간의 모스크바 체류는 연정과 정치, 일과 사랑의 결합이란 측면에서 논의된 바 있다. 저자는 그런 “좌절된 구애 이야기”가 아닌 혁명에 대한 인상기로 읽자고 제안한다.   우토로 여기 살아왔고, 여기서 죽으리라 우토로 여기 살아왔고, 여기서 죽으리라(나카무라 일성 지음, 정미영 옮김, 품)=저자는 마이니치신문 기자였던 2000년대 초부터 재일 조선인 마을 우토로를 취재해왔다. 여러 교포 1세, 2세를 인터뷰하며 발굴한 “기억의 지층”과 더불어 이들의 지난한 삶, 강제 퇴거 소송을 둘러싼 투쟁 등의 역사를 방대한 취재에 바탕해 생생히 풀어냈다.   DQ 디지털 지능 DQ 디지털 지능(박유현 지음, 한성희 옮김, 김영사)=디지털 지능(Digital Intelligence Quotient, DQ)은 하버드대 바이오통계학 박사이자 디지털 교육·윤리 전문가인 저자가 창시한 개념. 미래 세대가 기술에 휘둘리지 않고 디지털 생활을 성공적으로 영위하는 데 필요한 역량과 윤리를 폭넓은 관련 지식과 함께 제시한다.

    2022.05.07 00:21

  • 기원후 1000년, 세계화가 시작됐다

    기원후 1000년, 세계화가 시작됐다

    1000년 1000년 발레리 한센 지음 이순호 옮김 민음사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닿은 건 1492년. 이를 ‘발견’이라 부르는 건 유럽 중심의 시각이다. 알다시피 이곳엔 그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유럽인 중에도 콜럼버스에 한참 앞서 북미 대륙을 다녀간 이들도 있다. 흔히 바이킹이라고 불리는 북유럽의 노르드인들이다.   전해 내려오는 바에 따르면, 노르드인들은 기원후 1000년 무렵 그린란드에서 바다를 건너 지금의 캐나다 북동부 등을 세 차례 탐험했다. 두 번째 탐험 때는 현지에서 배에 타고 있던 토착민 8명을 죽였고, 세 번째 탐험 때는 붉은 천과 모피 등 토착민들과 물물교환을 하기도 했다.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가 쓴 이 책은 기원후 1000년 무렵의 세계를 새롭게 조명한다. 노르드인들처럼 각지에서 지역 간 교류나 이동이 급증하는 등 이른바 세계화가 서구의 대항해 시대나 20세기가 아니라 이 무렵 시작됐단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당시 가장 세계화된 지역은 중국. 1018년 매장된 요나라 황제의 손녀 진국공주 무덤도 이를 보여준다. 시리아·이집트·이란산 유리·황동 그릇, 수마트라·인도산 수정 소품은 물론이고 동유럽 발트해의 호박으로 만든 각종 부장품이 대거 나왔다. 해양무역도 활발해 송나라 광저우와 취안저우는 대표적 국제 무역항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바이킹들의 모습을 그린 상상화. 당시 바이킹들은 토착민과 물물교환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진 민음사] 메소아메리카 문명권에선 유카탄 반도의 치첸이트사가 교류 중심지였다. 현재 멕시코의 마야 유적 관광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곳의 벽화에는 금발을 구슬처럼 땋은 포로, 노르드인들의 것과 같은 방식의 배가 그려져 있다. 저자는 노르드인들이 해류를 타고 여기까지 왔을 것이라고 본다. 그에 따르면 내륙에도 미시시피 계곡을 통해 북미와 중남미를 잇는 교역 루트가 형성됐다. 이를 뒷받침하는 유적으로 미국 일리노이주에서는 메소아메리카 사람들처럼 치아를 성형한 유골이, 뉴멕시코주에서는 깨진 항아리에 흡수된 초콜릿 성분이나 열대 조류인 금강앵무 뼈가 나왔다.   북유럽 사람 중에는 북미를 탐험한 노르드인들만 아니라 동쪽 흑해 너머로 향한 이들도 있었다. 토착민들과 결혼하고 슬라브어를 익히며 현지에 정착한 루스인들이다. ‘러시아’라는 명칭도 여기서 나왔다. 저자에 따르면 루스인들은 단일 민족이라기보다 여러 민족이 뒤섞인 혼성 민족. 1000년 무렵 그 지도자가 된 블라디미르 1세는 정체성을 규합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방법으로 동방정교회, 즉 기독교로 개종한다. 이처럼 지배자들은 신앙심보다도 정치사회적인 이유로 개종을 하거나 국교를 정하곤 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종교 숫자가 감소하고 지금의 주요 종교 위주가 된 것도 1000년 무렵의 특징이다.   노예무역은 이 시기의 이동 요인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스웨덴 고틀란드 섬에도 그 흔적이 있다. 991년 직후 매장된 무더기에서 독일, 불가리아, 잉글랜드, 비잔티움 등 여러 지역 은화가 나왔는데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아랍 은화였다. 루스인들이 동유럽 사람들을 노예로 넘기거나 모피를 팔아 이슬람권에서 받은 대가가 고향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보내진 것이다.   이슬람교 교리는 무슬림을 노예 삼는 것을 금지했고, 주인과 여성 노예 사이의 자녀 등 노예 해방을 장려하는 조처를 했다. 이슬람권이 지속해서 노예를 수입한 배경이다. 동유럽 출신 노예가 많았단 것은 슬라브인(Slav)을 뜻하는 그리스어(sklabos)에서 노예(slave)라는 말이 나온 데서도 짐작된다. 동유럽은 아프리카·중앙아시아와 함께 이슬람권의 3대 노예 수입지였다.   반면 중국은 인구가 많고 자체 노동력이 풍부해 노예무역이 필요 없었다. 영국과 달리 중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것도 인구를 통해 설명하는 시각이 있다. 인구가 넘치니 옷감 생산에도 노동력을 덜 쓰는 기계가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중국의 주요 상품 중 도자기는 증기력·전력 없이도 대규모 가마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했다. 진작부터 멀리까지 수출됐는데, 826년쯤 침몰한 배에서는 아랍 소비자를 겨냥해 아랍 글자를 흉내 낸 문양의 도자기도 나왔다.   1000년 무렵은 말레이 반도에서 아프리카 동쪽 마다가스카르까지, 인도양을 가로질러 머나먼 항해도 이뤄졌다. 저자는 마젤란이나 바스쿠 다 가마 같은 탐험가가 1400~1500년대 ‘발견’한 해로도, 1400년대 정화의 남해 원정 경로도 이 무렵 이미 활용되고 있던 바닷길이라고 본다. 콜럼버스 등 유럽인들이 1490년대 신대륙 등으로 항해하고 정착하지 않았어도 “세계무역의 템포는 계속 빨라졌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2022.04.16 00:21

  • “악마와도 동침한다” 생존 위한 현실주의

    “악마와도 동침한다” 생존 위한 현실주의

    대통령의 외교안보 어젠다 대통령의 외교안보 어젠다 천영우 지음 박영사   엄중한 외교·안보 정책 지침서인데, 특유의 시니컬한 위트가 곳곳에 숨어 있다. 밀어 올려도 다시 굴러떨어지는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30년간 한국 외교를 삼켜온 북핵 문제에서부터 미·중 ‘그레이트 게임’ 속 우리의 활로까지, ‘한반도의 운명을 바꿀’ 5대 과제를 다룬 저자의 관점과 주장은 그래서 더 송곳 같다.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각각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 낸 첫 저서. 북한과 핵·미사일 등 비확산 분야, 유엔 외교의 독보적 전문가답게 새 대통령이 마주할 외교안보 도전과 해법을 씨줄 날줄로 엮은 사례와 함께 제시한다.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할 고통을 당한다”(아테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 “우리는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국익이 영원할 뿐” (19세기 영국 파머스턴 총리). 외교 현장에서 힘도 동맹도 없는 국가들의 운명을 지켜본 저자가 가슴에 담아 둔 현실주의(realism) 외교 금언이다.   저자는 누가 위협인지, 그 위협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판단하는 ‘위협인식’(threat perception)이야말로 외교안보 전략의 출발점이며 그게 고장 나면 적과 동지 구분도, 누구와 손잡고 누구를 경계할지 판단력이 흐려진다고 한다. 한반도 밖에선 한국의 생존과 자주독립을 위협할 가능성이 가장 큰 나라가 중국이다. 미·중 사이 균형자나 중립론은 한미동맹과 양립할 수 없는 현실도피적 환상이다.   미국·인도·일본·호주 안보협의체인 쿼드에 참가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는 저자는 독일, 소련이 1939년 8월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면서 자국을 분할 점령하기로 한 걸 몰랐던 폴란드가 이후 “우리가 없는 데서 우리에 관한 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Nothing about us without us)는 말을 외교의 금과옥조로 삼았다는 예를 든다. 인도·태평양 핵심국들이 우리 없는 자리에서 한반도에 영향을 끼칠 논의를 하는 것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쿼드는 중국의 패권적 횡포를 억지할 집단적 레버리지로 유용한 플랫폼이다.   북한 급변 시 유엔의 역할을 거론하는 이들이 적잖은데, 저자는 통일 과정에서 안보리 개입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와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나라(중·러)가 발언권을 행사해 국익에 해롭거나 한국 정부의 손발을 묶는 결정이 나올 위험이 커진다는 것. 독자적 핵무장론과 전작권 전환에 대한 논쟁적 주장도 흥미롭다.   저자는 “대한민국이 안전과 번영을 확보하려면 과거사에 얽매이지 않고 악마와도 동침할 수 있다는 냉철한 현실주의적 외교안보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민 정서가 국익을 지배하는 고질을 잡아야 한일관계가 바로 선다고 역설한다. 미래지향적 비전, 통 큰 리더십을 가진 양국 지도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총체적 안보 지도가 그려지는, 입체감 있는 책이다. 김수정 기자 kim.sujeong@joongang.co.kr

    2022.04.16 00:21

  • "악마와도 동침한다" 국가 생존 위한 현실주의 외교안보[BOOK]

    "악마와도 동침한다" 국가 생존 위한 현실주의 외교안보[BOOK]

    책표지 대통령의 외교안보 어젠다 천영우 지음 박영사     엄중한 외교·안보 정책 지침서인데, 특유의 시니컬한 위트가 곳곳에 숨어 있다. 밀어 올려도 다시 굴러 떨어지는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30년 간 한국 외교를 삼켜온 북핵 문제에서부터 미·중 '그레이트 게임' 속 우리의 활로까지, '한반도의 운명을 바꿀' 5대 과제를 다룬 저자의 관점과 주장은 그래서 더 송곳 같다.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각각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 낸 첫 저서. 북한과 핵·미사일 분야, 유엔 외교의 독보적 전문가답게 새 대통령이 마주할 외교안보 도전과 해법을 씨줄날줄로 엮은 사례들과 함께 제시한다.    "강자는 할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할 고통을 당한다"(아테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 "우리는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국익이 영원할 뿐" (19세기 영국 파머스턴 총리). 외교 현장에서 힘도 동맹도 없는 국가들의 운명을 지켜본 저자가 가슴에 담아 둔 현실주의(realism)외교 금언이다.      저자는 "대한민국이 안전과 번영을 확보하려면 과거사에 얽매이지 않고 악마와도 동침할 수 있다는 냉철한 현실주의적 외교안보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1차 대전 시기 영국은 지역 패권에 도전하는 독일에 맞서려 숙적 프랑스, 러시아와 손잡았고, 2차 대전 후엔 소련의 유럽지배를 막기 위해 대서양동맹과 나토에 독일을 끌어들였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77년 만에 대외 군사 개입으로 안보 전략을 전환한 독일을 가장 반기는 나라는 현대사에서 독일 침략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프랑스와 폴란드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은 김 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오른쪽은 조한기 당시 청와대 의전비서관. [청와대사진기자단]   저자는 누가 위협인지, 그 위협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판단하는 '위협인식'(threat perception)은 외교안보 전략의 출발점이며 위협 인식에 고장이 나면 적과 동지의 구분도, 누구와 손을 잡을 지 누구를 경계할 지도 판단력이 흐려진다고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가장 큰 위협이고, 한반도 밖에선 지역 패권 확보에 나선 중국이 대한민국의 생존과 자주독립을 위협할 가능성이 가장 큰 나라다. 이를 토대로 한미동맹, 대중국 및 일본 관계 등이 설정돼야 한다. 미·중사이 균형자나 중립 주장은 기존 한미동맹과 양립할 수 없는 현실도피적 환상이다.     저자는 미국·인도·일본·호주 안보협의체인 쿼드에 한국이 참가해야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면서 폴란드의 외교 정책 금언 "우리가 없는 자리에서 우리에 관한 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Nothing about us without us)를 든다. 독일, 소련이 1939년 8월 23일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면서 폴란드를 분할점령하기로 했지만 폴란드는 이를 몰랐다. 인도·태평양 핵심 강국들이 우리 없는 자리에서 한반도 안보와 미래에 영향을 미칠 논의를 하는 것을 허용해선 안 되는 이유다. 쿼드는 중국의 패권적 횡포를 억지할 집단적 레버리지로서도 중요한 플랫폼이다.  〈YONHAP PHOTO-3547〉 북한 김정은, 신형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명령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전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를 단행했다고 3월 25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신형 ICBM 시험발사를 단행할 데 대한 친필 명령서를 하달하고 시험발사 현장을 직접 찾아 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전 과정을 직접 지도했다. 2022.3.25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nkphoto@yna.co.kr/2022-03-25 06:50:36/ 〈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북한 급변시 한국과 미국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국제사회는 어떤 법적 근거에 따라 움직이는지, 핵·미사일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북한군 장교들과 주민들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시나리오별로 저자의 생각을 풀어 낸다. 어떤 정부든 5년내 닥칠 일로 생각하고 대비하고 있어야 할 일이다.    유엔의 역할을 거론하는 이들이 적잖은데, 저자는 통일 과정에서 유엔 안보리의 개입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와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나라(중국·러시아)가 발언권을 행사할 경우 국익에 해롭거나 한국 정부의 손발을 묶는 결정이 나올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독자적 핵무장론과 전작권 전환에 대한 논쟁적 주장도 흥미롭다.    독도 이슈와 한일대륙붕공동개발협정 등 향후 한일관계의 잠재적 뇌관, 해법을 소개한 저자는 과거의 유령과 싸우느라 미래의 적을 판별하지 못하고 대비를 소홀히 하는 것은 화를 자초하는 미련한 짓이며, 국민 정서가 국익을 지배하는 고질을 바로 잡아야 한일관계가 바로 설 수 있다고 역설한다. 미래지향적 비전과 통큰 리더십을 가진 양국 지도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강경하지만 원칙적인, 대한민국의 총체적 안보 지도를 그려볼 수 있는 입체적인 책. 어쩌면 북한 지도부도 일독하고 싶을 거란 생각이 든다.        

    2022.04.15 14:00

  • [책꽂이] 구름의 이름 外

    [책꽂이] 구름의 이름 外

    구름의 이름 구름의 이름(줄리 기옘 글·그림, 이보미 옮김, 김시완 감수, 다섯수레)=학창 시절 배운 가물가물한 구름 종류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림책. 지표면에서의 높이에 따라 어떤 형태의 구름이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12쪽 그림이 모든 궁금증을 풀어준다. 명료한 구름 그림들이 시원하다. 연세대에서 기후변화 연구를 하는 김시완씨가 내용을 감수했다.   광기의 실험, 시장의 반격 광기의 실험, 시장의 반격(심교언 지음, 무블출판사)=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많은 부동산 정책을 쏟아냈으나 가격만 올렸다. 최고의 부동산 전문가 중 하나인 저자가 기록을 남기는 차원에서 2017~2018년 각종 정부 정책의 시장 반응, 파장 등을 언론 보도 내용 등을 곁들여 정리했다. 2019년 이후는 대선 뒤 2권에서 다룬다.   한국의 대전략 한국의 대전략(이교관 지음, 김앤김북스)=냉전 종식 후 유지됐던 미국 지배 국제질서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 등으로 흔들리게 된 원인을 미국의 ‘완전한 승리’ 정책의 실패에서 찾는다. 자유주의 패권에 대한 러시아·중국의 반격이라는 것. 이런 불확실성 시대에 한국은 미국과 전략핵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아무 걱정 없이, 오늘도 만두(황서미 지음, 따비)=서울 17곳, 서울 이외 16곳 만둣집의 군침 도는 탐방기. 부록은 식품업체 7곳의 시판 만두 시식기.   책표지 용꾸라지(21세기선재 지음, 소통과공감)=용꾸라지의 이야기를 한 편의 도시 우화처럼 그려낸다. 용꾸라지는 경기도 행복시 별내습지에 사는 미꾸라지. 용이 되어 하늘을 나는 것이 꿈인데 여러 장애물이 등장한다. 붕어 붕달이, 가재 갑옷전사 등 용꾸라지의 친구들과 함께 자연을 아끼는 어린이, 환경운동을 하는 습지보존협회 간부 등이 등장한다.   책표지 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1·2(강희정 지음, 사회평론)=인도·중국 고대문명을 각각 들여다보고 서양과 다른 ‘미감’의 세계를 풍부한 도판으로 풀어낸다. 서강대 강희정 교수가 서양미술에 익숙한 현대 한국인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구어체 길잡이로 썼다. 대중교양서로 인기를 끈 ‘난처한’ 시리즈로, 깊이와 넓이가 학술서 못지않다.

    2022.03.05 00:21

  • [책꽂이] 그림책 급수한자 6급 外

    [책꽂이] 그림책 급수한자 6급 外

    그림책 급수한자 6급 그림책 급수한자 6급(김화영 지음, 이예지 그림, 하영삼 감수, 도서출판3)=한자의 글자 모양과 어원에 대한 설명, 쓰기 연습, 이미지 등을 버무려 초등학생이 기본적인 한자 150자를 큰 어려움 없이 익히도록 했다.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들이 집필하고 감수했다. 7·8급 두 권도 함께 나왔다. 각각 100자, 50자의 한자를 다룬다.   모란시장 모란시장(이경희 지음, 강)=개와 고양이를 식용으로도, 애완용으로 파는 곳으로 유명했던 성남 모란시장이 배경인 장편소설. 도축시설에서 빠져나온 점박이 개 ‘삽교’의 눈에 비친 인간 세상을 그린다. 시장은 인간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축소판. 대구 머리를 구워 파는 고씨 할머니는 삽교와 고양이 ‘송이’의 말을 알아듣고 교감을 나눈다.   밀레니얼 실험실 밀레니얼 실험실(밀실팀 지음, 김영사)=밀레니얼 중에도 20대 젊은 기자들이 자신들의 눈높이에서 포착하고 취재한 20대들의 이야기. 군인월급·젠더갈등 등에서 청년세대의 생활고, 아르바이트와 취업, 연애와 결혼에 이르기까지 선험적 재단 대신 실제 20대의 생생한 모습과 목소리가 드러난다. 기사 아닌 에세이 형식이라 더 친근하게 읽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루이스 캐럴 지음, 이순영 옮김, 문예출판사)=이 이름난 고전이 처음 출간된 것은 1865년. 이번에 번역돼 나온 것은 그 100여년 뒤인 1969년 나온 살바도르 달리 에디션, 즉 당시 출판사의 요청으로 달리가 삽화를 그린 책이다. 달리 특유의 환상적인 그림과 함께 이 에디션과 달리에 대한 두 편의 서문이 들어있다.   엔드 오브 라이프 엔드 오브 라이프(사사 료코 지음, 천감재 옮김, 스튜디오오드리)=방문간호사로 수백명의 임종을 지켜본 지인이 췌장암 진단을 받는다. 논픽션 작가로 재택의료 현장을 취재해온 저자는 그의 얘기, 자신의 가족 얘기를 아우르며 삶을 마감하는 이상적인 방법에 대한 모색을 이 책에 펼친다. 임종과 장례 때 박수를 쳐달라는 색다른 요청이 인상적이다.   안녕? 나는 호모미디어쿠스야 안녕? 나는 호모미디어쿠스야(노진호 지음, 자음과모음)=그 옛날 기다리던 소식을 전해준 비둘기도 ‘미디어’라는 걸 아시는지. 문자 이전부터 메타버스·빅데이터·인공지능·가짜뉴스 등 지금 시대의 최신 현상까지 포함해 일상의 미디어가 발전해온 과정과 그 면면을 알기 쉽게 풀어냈다. 미디어 현장을 취재해온 기자가 쓴 청소년용 미디어 입문서.   그냥 엄마 그냥 엄마(윤소연 지음, 시공사)=엄마이자 유아교육 연구자인 저자가 만난 세 엄마와 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세 엄마는 선천적으로, 혹은 중도에 시력을 잃었다. ‘보이지 않는’ 엄마의 양육을 오랜 시간 관찰하고 연구하며 저자는 ‘이상적인’ 엄마라는 허구 대신 엄마의 본질에, 세 엄마와 그 자녀들이 각자 지닌 고유한 모습에 다가간다.

    2022.02.26 00:20

  • [책꽂이] 슬픈 중국: 문화대반란 1964~1976 外

    [책꽂이] 슬픈 중국: 문화대반란 1964~1976 外

    슬픈 중국: 문화 대반란 1964~1976 슬픈 중국: 문화대반란 1964~1976(송재윤 지음, 까치)=중국 공산당 사상 통제 뿌리를 찾기 위해 과거를 조명하는 3부작 중 2권. 대증산 정책이었던 대약진 운동(1958~1962)의 실패를 가리고 정적을 제거하고자 마오쩌둥이 기획한 문화대혁명을 다뤘다. 1억1300만 명이 정치적 타격을 입은 문화대혁명은 유례없는 자기 파괴의 역사다.   원자력발전소와 디자인 이야기 원자력발전소와 디자인 이야기(김연정 지음, 행복에너지)=신월성 1·2호기, UAE의 바카라 원자력 발전소 등의 디자인 작업에 참여한 저자가 발전소와 원자로의 외관을 환경친화적으로 디자인하는 과정을 소개했다. 오스트리아 생태주의 건축가 훈데르트바써의 쓰레기 소각장 건축, 국내 원자력 발전 공론화 과정의 찬반양론까지 디자인에 참고했다.   언제 가장 즐거웠니? 언제 가장 즐거웠니?(김라미 지음, 바이북스)=반도체 회사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담당, 이동통신사 네트워크 스페셜리스트 같은 직업을 거친 저자는 어느날 상담실 문을 두드린다.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 그만 울어버렸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나를 찾는 작업은 취미 찾기로 이어진다. ‘프로 취미러’가 전하는 소확행 이야기.   일회용 아내(사라 게일리 지음, 안은주 옮김, 한스미디어)=2018년 휴고상 수상 작가의 신작. 남편이 내 복제인간과 바람을 피운다는 파격적 설정의 SF스릴러다.   시간여행 시간여행(박옥수 지음, 눈빛)=사진작가 박옥수의 사진집. ‘1965-1990’가 부제다. 인파가 빼곡한 71년 김대중 신민당 대선후보의 장충단공원 유세 모습을 비롯해 사진마다 풍경과 인물이 모두 강렬하게 그 시대를 보여준다. 비슷한 집이 늘어선 흑석동의 가파른 비탈, 지금과 사뭇 다른 수원화성 등도 인상적이다.   물고기의 모든 것 물고기의 모든 것(더그 멕케이-호프 지음, 조진경 옮김, 성균관대학교출판부)=선사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멸종위기종 아로나와, 우리네에게 낯익은 짱뚱어를 비롯해 독특한 생태와 사연을 품은 물고기 50종을 그림과 함께 소개한다. 저자는 생물학을 전공한 영국 BBC 자연사 프로듀서. 해박한 지식과 함께 자연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2022.02.05 00:21

  • 이주와 교역, 투쟁과 평화가 물결친 바다

    이주와 교역, 투쟁과 평화가 물결친 바다

    바다 인류 바다 인류 주경철 지음 휴머니스트   바다가 왜 중요한지 물으면 답변처럼 쓰이는 유명한 말이 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교역을 지배한다. 세계의 교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부를 지배하며 결국 세계 자체를 지배한다.”   영국 군인이자 시인·탐험가로도 불리는 월터 롤리(1552?~1618) 경의 말이다. 서양사학자 주경철 서울대 교수의 신작 『바다 인류』는 이 말을 소개하며 이렇게 부연한다. “근대 유럽인의 심성을 잘 나타낸” 말이자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겠다는 언설은 다른 문명권의 텍스트에서는 보기 힘든 표현”(464쪽)이라고.   『바다 인류』는  『대항해 시대』(2008. 서울대학교출판부)로 해양의 관점에서 근대사를 재조명한 저자의 새로운 역작이다. 이번에는 인류사 전체로 범위를 넓혔다. 본문만 900쪽 가까운 방대한 분량인데 통독의 재미가 있다. 동·서양의 이분법이나 서구 중심의 시각 대신 여러 바다를 넘나들며 역동적·입체적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촘촘히 펼쳐낸 덕분이다. 지중해 주변의 전쟁·교역은 물론이고 말레이반도 말라카해협을 장악하는 세력의 부상, 동남아에서 아프리카 동부까지 이어진 인도양 교역의 연쇄 등이 그야말로 ‘세계사’를 읽는다는 실감을 준다.   14세기 일본으로 가다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중국 선박 신안선. 목포해양유물전시관에 복원돼 있다. 배에 실린 800만개의 동전은 중국의 팽창주의적 화폐정책을 짐작하게 한다. [사진 휴머니스트] 중국에서 득세한 이슬람 출신 ‘포’씨 상인들, 고대 해양 강국 페니키아 얘기도 재미있다. 페니키아 식민지 한 곳은 염장 능력이 뛰어나 소금에 절인 참다랑어를 항아리에 담아 멀리까지 수출했단다. 저자는 이를 ‘참치 캔의 원조’라고 표현한다. 한국사도 눈에 띈다. 신라로 귀국한 장보고의 활동, 몽골의 일본 원정이 ‘고려사’에 남긴 기록, 신안 앞바다 침몰선에서 동전이 쏟아진 배경, 19세기 초 평안도의 콜레라 등이 세계사의 맥락 속에서 언급된다.   특히 대규모 원정 이전에 해상교류의 네크워크나 다양한 문화권의 상인들의 릴레이 중개무역을 통해 각 지역의 원거리 교역이 꾸준히 이어진 역사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인도양은 비교적 장기간 그랬다. 저자는 “상대적인 평가이기는 하지만 지중해가 끊임없는 ‘투쟁의 바다’였다면 인도양은 ‘평화의 바다’라 할 만했다”(160쪽)고 평한다.   이 책의 시작은 고대 문명 훨씬 이전이다. 빙하기로 해수면이 낮았던 수만 년 전부터 아프리카를 벗어난 인류의 이동은 오스트레일리아처럼 바다 건너까지 향했다. 사안마다 새로운 시각과 연구를 적절히 담아내 입체감을 더한다. 예를 들어 태평양 섬들까지 인류가 다다른 과정을 16세기 유럽인들은 우연한 표류의 결과로 상상했는데, 바람·해류 방향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일이란 설명, 18세기 쿡 선장의 기록이나 1970년대 시작된 실험이 카누로 원거리 항해가 가능하다고 입증한 사실 등이 이어진다.   물론 근대 유럽의 해양 진출, 이와 대조적인 중국의 해양 후퇴라는 거대한 전환점은 이 책에서도 중요한 대목이다.  정화의 대규모 원정이 과시한 대로 해양력 전성기의 중국은 대내적으로 남북을 잇는 대운하를 정비하면서 대외적으로는 교역을 금지하고 바다에서 스스로 후퇴했다. 역사학자들이 놀라워하는 일이다. 대운하는 결과적으로 중국의 쇠퇴를 부른 셈이다. 중국의 후퇴는 지금의 오키나와에 자리했던 류큐 왕국이 중개무역으로 부상하는 결과도 불렀다.   근대 유럽의 해양 진출에는 전례없는 폭력이 뒤따랐다. 무력을 앞세운 점령이 전염병 확산과 원주민 노예화, 생태계 변화를 부르는 과정은 대서양 길목에 자리한 카나리아 제도 같은 곳부터 겪기 시작했다. 이 책은 노예무역을 비롯한 비극적 이주사를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의 해양 진출 방식을 비교하는 것 못지않게 비중있게 다룬다.   이 책에 담긴 인류사는 바다가 활동의 장벽이 아니라 소통의 공간이 된 역사이기도 하다. 19세기 중반까지 말과 범선을 이용한 인간의 하루 최대 이동 거리는 160㎞였는데 증기선과 철도의 연결로 640㎞까지 늘어난다. 수에즈 운하 개통, 해저 케이블 등도 물리적·시간적 거리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허나 해피엔딩은 멀다. 책은 군사 경쟁과 영토 분쟁,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 등 현대의 바다가 직면한 위기와 해저 도시 등 새로운 도전까지 조명한다. 저자는 바다가 그 어느 때보다 심층적·다차원적으로 이용되는 동시에 악용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태평양 얘기를 곱씹게 되는 것은 그래서다. 태평양 세계를 ‘광대한 바다로 둘러싸인 섬들’이 아니라 ‘섬들로 구성된 바다’라고 표현한 사람은 책 초반에 인용되는 인류학자이자 작가 에펠리 하우오파(1939~2009)다. 바다 때문에 고립된 게 아니라 바다를 통해 연결됐다는 시각이다. 이 책에 따르면, 다른 섬에서 오는 사람들을 통가에서 ‘타히’라고 부르는데 원뜻은 ‘바다에서 온 사람들’이란다. 이들에게 바다는 고향, 이웃 섬에서 오는 사람들도 동향 사람이었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2022.01.22 00:20

  • [BOOK] '참치캔'의 원조는 고대 페니키아?

    [BOOK] '참치캔'의 원조는 고대 페니키아?

    바다 인류 주경철 지음 휴머니스트      바다가 왜 중요한지 물으면 답변처럼 쓰이는 유명한 말이 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교역을 지배한다. 세계의 교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부를 지배하며 결국 세계 자체를 지배한다."    영국 군인이자 시인·탐험가로도 불리는 월터 롤리(1552?~1618) 경의 말이다. 서양사학자 주경철 서울대 교수의 신작 『바다 인류』는 이 말을 소개하며 이렇게 부연한다. "근대 유럽인의 심성을 잘 나타낸" 말이자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겠다는 언설은 다른 문명권의 텍스트에서는 보기 힘든 표현"(464쪽)이라고.    중세 유럽의 베스트셀러 '우주형상지'에 나오는 아메리카 지도. 1561년판이다. [사진 휴머니스트]   『바다 인류』는 『대항해 시대』(2008. 서울대학교출판부)로 해양의 관점에서 근대사를 재조명한 저자의 새로운 역작이다. 이번에는 인류사 전체로 범위를 넓혔다. 본문만 900쪽 가까운 방대한 분량인데 통독의 재미가 있다. 동·서양의 이분법이나 서구 중심의 시각 대신 여러 바다를 넘나들며 역동적·입체적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촘촘히 펼쳐낸 덕분이다. 지중해 주변의 전쟁·교역은 물론이고 말레이반도 말라카해협을 장악하는 세력의 부상, 동남아에서 아프리카 동부까지 이어진 인도양 교역의 연쇄 등이 그야말로 '세계사'를 읽는다는 실감을 준다.    중국에서 득세한 이슬람 출신 '포'씨 상인들, 고대 해양 강국 페니키아 얘기도 재미있다. 페니키아 식민지 한 곳은 염장 능력이 뛰어나 소금에 절인 참다랑어를 항아리에 담아 멀리까지 수출했단다. 저자는 이를 '참치 캔의 원조'라고 표현한다.  14세기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다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중국 선박 신안선. 800만개의 동전이 나왔다. 중국의 팽창주의적 화폐정책을 짐작하게 한다. [사진 휴머니스트]   한국사도 눈에 띈다. 신라로 귀국한 장보고의 활동, 몽골의 일본 원정이 '고려사'에 남긴 기록, 신안 앞바다 침몰선에서 동전이 쏟아진 배경, 19세기 초 평안도의 콜레라 등이 세계사의 맥락 속에서 언급된다.         ━  투쟁의 지중해, 평화의 인도양     특히 대규모 원정 이전에 해상교류의 네크워크나 다양한 문화권의 상인들의 릴레이중개 무역을 통해 각 지역의 원거리 교역이 꾸준히 이어진 역사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인도양은 비교적 장기간 그랬다. 저자는 "상대적인 평가이기는 하지만 지중해가 끊임없는 '투쟁의 바다'였다면 인도양은 '평화의 바다'라 할 만했다"(160쪽)고 평한다.      이 책의 시작은 고대 문명 훨씬 이전이다. 빙하기로 해수면이 낮았던 수만 년 전부터 아프리카를 벗어난 인류의 이동은 오스트레일리아처럼 바다 건너까지 향했다. 사안마다 새로운 시각과 연구를 적절히 담아내 입체감을 더한다.    예를 들어 태평양 섬들까지 인류가 다다른 과정을 16세기 유럽인들은 우연한 표류의 결과로 상상했는데, 바람·해류 방향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일이란 설명, 18세기 쿡 선장의 기록이나 1970년대 시작된 실험이 카누로 원거리 항해가 가능하다고 입증한 사실 등이 이어진다.       8세기 보르부드르 사원의 부조. 당시 동남아지역 주요 국가였던 샤일랜드의 유적이다. [사진 휴머니스트]   물론 근대 유럽의 해양 진출, 이와 대조적인 중국의 해양 후퇴라는 거대한 전환점은 이 책에서도 중요한 대목이다. 정화의 대규모 원정이 과시한 대로 해양력 전성기의 중국은 대내적으로 남북을 잇는 대운하를 정비하면서 대외적으로는 교역을 금지하고 바다에서 스스로 후퇴했다. 역사학자들이 놀라워하는 일이다. 중국의 후퇴는 지금의 오키나와에 자리했던 류큐 왕국이 중개무역으로 부상하는 결과도 불렀다.       ━  반대로 움직인 유럽과 중국     근대 유럽의 해양 진출에는 전례없는 폭력이 뒤따랐다. 무력을 앞세운 점령이 전염병 확산과 원주민 노예화, 생태계 변화를 부르는 과정은 대서양 길목에 자리한 카나리아 제도 같은 곳부터 겪기 시작했다. 이 책은 노예무역을 비롯한 비극적 이주사를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의 해양 진출 방식을 비교하는 것 못지않게비중 있게 다룬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나오는 중국의 국제 상업도시 자이툰(취안저우)의 모습. [사진 휴머니스트]   이 책에 담긴 인류사는 바다가 활동의 장벽이 아니라 소통의 공간이 된 역사이기도 하다. 19세기 중반까지 말과 범선을 이용한 인간의 하루 최대 이동 거리는 160km였는데 증기선과 철도의 연결로 640km까지 늘어난다. 수에즈 운하 개통, 해저 케이블 등도 물리적·시간적 거리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 해피엔딩은 멀다. 책은 군사 경쟁과 영토 분쟁,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 등 현대의 바다가 직면한 위기와 해저 도시 등 새로운 도전까지 조명한다. 저자는 바다가 그 어느 때보다 심층적·다차원적으로 이용되는 동시에 악용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태평양 얘기를 곱씹게 되는 것은 그래서다. 태평양 세계를 '광대한 바다로 둘러싸인 섬들'이 아니라 '섬들로 구성된 바다'라고 표현한 사람은 책 초반에 인용되는 인류학자이자 작가 에펠리 하우오파(1939~2009)다. 바다 때문에 고립된 게 아니라 바다를 통해 연결됐다는 시각이다. 이 책에 따르면, 다른 섬에서 오는 사람들을 통가에서 '타히'라고 부르는데 원뜻은 '바다에서 온 사람들'이란다. 이들에게 바다는 고향, 이웃 섬에서 오는 사람들도 동향 사람이었다.           

    2022.01.21 14:00

  • [책꽂이] 정역 중국정사 조선·동이전2 外

    [책꽂이] 정역 중국정사 조선·동이전2 外

    정역 중국정사 조선·동이전 2 정역 중국정사 조선·동이전2(문성재 역주, 우리역사연구재단)=중국 역대 25종의 정사(正史) 속 ‘한국사 바로 보기’ 두 번째 책. 사마염이 중원을 통일하고 진 왕조를 개창한 때로부터 남북조시대까지를 기록한 『진서』 『송서』 『남제서』 『위서』 『양서』 『주서』 『남사』 등에 담긴 동이전 부분을 각각 새롭게 해석하며 기존의 오류와 왜곡을 바로잡았다.   일본 LP 명반 가이드북 일본 LP 명반 가이드북(사토 유키에 지음, 안나푸르나)=저자가 일본인이지만 번역자가 없다. 무작정 한국에 여행 왔다 신중현·산울림 음악에 충격받아 한국에서 밴드 곱창전골을 결성, 리더로 활동한 사토 유키에이기 때문. 록·포크·시티팝·가요로 나눠 200장의 명반을 소개했다. 일본 대중음악 역사의 전체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가이드북이다.   아바타라 안심이다 아바타라 안심이다(월호 지음, 마음의숲)=‘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한 월호 스님이 아바타·메타버스 시대 행복하게 사는 법을 전한다. 불교적 관점에서 나는 원래 실체 없는 허상, 즉 아바타요 세상과 우주는 거대한 가상현실, 메타버스다. 자신이 아바타임을 깨친 후 그 사실을 널리 알릴수록 좋다. 세상이야말로 도 닦기 최적화된 곳이다.   비틀즈:겟 백 비틀즈:겟 백(비틀즈 지음, 서강석 옮김, 항해)=4인조 완전체로서 비틀즈의 마지막 시기인 1969년 1월, 음악 작업 과정에서 주고받은 생생한 육성을 담았다. 특히 루프탑 공연 등 이선 A 러셀과 린다 매카트니가 찍은 방대한 사진이 소장 욕구를 부른다. 비틀즈의 공식 단행본 출간은 21년만. 피터 잭슨, 하니프 쿠레이시가 서문을 썼다.   존버씨의 죽음 존버씨의 죽음(김영선 지음, 오월의봄)=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이 종종 비극을 부르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 저자는 과로와 이로 인한 죽음을 꾸준히 천착해온 사회학자다. 여러 일터의 구체적 사건을 통해 경쟁적인 성과 장치의 문제, 재난 같은 비상 상황과 과로 죽음의 관계, 여전히 미흡한 제도적 변화를 차례로 살핀다.   역사에 없는 사람들의 미국사 역사에 없는 사람들의 미국사(로널드 다카키·레베카 스테포프 지음, 오필선 옮김, 갈라파고스)=미국사를 백인의 역사가 아니라 아시아인, 멕시코인, 유대인, 무슬림 등 여러 이주민과 아프리카 원주민의 역사로서 조명한다. 이 방면에 선구자 격인 로널드 다카키(1939~2009)의 대표작을 그의 사후 청소년이 읽기 쉽게 다시 낸 책이다.   42가지 사건으로 보는 투기의 세계사 42가지 사건으로 보는 투기의 세계사(토르스텐 데닌 지음, 이미정 옮김, 웅진지식하우스)=17세기 튤립 투기부터 2018년의 비트코인까지, 42가지 사건 중 절반 이상이 21세기의 것이다. 원유, 밀, 구리, 천연가스 등 그때그때 상품은 바뀌어도 시장의 극단적 사건, 똑같은 실수는 거듭된다. 각 장별로 그 개요와 패턴을 정리했다.

    2022.01.15 00:20

  • 안경의 전파로 추적한 문명교류사

    안경의 전파로 추적한 문명교류사

    글래시스 로드 글래시스 로드 한지선 지음 위즈덤하우스   안경은 필수품이지만 천덕꾸러기 신세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거추장스럽기 때문이다. 안경을 꼈는데도 교정시력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도수를 높여줘야 한다. 그래서 라식·라섹 같은 보다 근본적인 수술 처방으로 사람들이 몰린다.   가령 800년 전에는? 달랐다. 당대의 혁신 상품이었다. 지금의 스마트폰, 인터넷망 같은 존재였다는 거다. 별처럼 총기 많았던 옛 시력을 되찾아주는 기이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런 단편적인 관찰에 만족하지 않는다. 안경을 800년 전 세계화의 메타포(13세기에도 세계화 현상이 발생했다는 거다!), 그런 세계화를 가능케 했던 네트워크 공간이 존재했다는 증거로 본다. 안경과 안경의 재료인 유리가 어떻게 처음 만들어졌는지, 그것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세계적으로 퍼졌는지를 방대한 자료를 넘나들며 끈질기게 추적했다. 그래서 책 제목이 실크로드를 연상시키는 ‘글래시스 로드(Glasses Road)’, 안경의 길이다.   신윤복 풍속화의 안경 쓴 선비. 조선의 안경 수입은 17세기 들어 급증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여기서 네트워크 공간에 주목하자. 안경의 길은 선명한, 그러나 밋밋한 몇 개의 길들로 이뤄진 동서교역로 수준이 아니었다. 면적이나 최장 거리가 지중해(296만9000㎢, 4000㎞)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인도양(7344만㎢, 1만㎞)이 안경 교류 네트워크의 배경 무대다. 이 거대한 공간에는 저자가 매듭, 접합부라고 표현한 도시들이 골고루 흩어져 있다.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자바·예멘·잔지바르·사마르칸트·호르무즈, 그리고 송·원대의 중국 동남 연해 도시들이다. 일일이 위치를 확인해보지 않아도 서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들인지 짐작이 된다. 이 도시들을 연결하는 최단 경로는 존재했겠지만 저자는 그보다는 이 도시들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교역 양상에 주목했다. 각 도시가 소속 “국가 밖에서 작동하는 법적 기제를 창출할 수 있는 자율 경쟁 상태” 아래 놓여 “수평적 확장성과 개방성”을 갖춘 공간을 형성했다는 거다. 프랑스의 중국 경제 전문가 프랑수아 지푸루의 네트워크 개념을 참조했다. 어쨌든 이런 수백 년 전 네트워크 공간을 자유롭게 오간 당대 세계화의 첨단 상품이 안경이었다는 거다.   이런 뼈대 안에 저자는 장기를 채우고 살을 입힌다. 빼어난 유리 제작 기술이 어떻게 아랍에서 싹틀 수 있었는지, 중국과 조선·일본에는 안경이 언제 처음 전파됐는지, 당시 동아시아인들의 눈에 안경이 얼마나 신기한 물건으로 비쳤는지, 근대를 바라볼 때 우리가 느끼는 아련한 심정까지 자극하는 흥미로운 장면들을 치밀한 고증을 거쳐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박물지(博物誌)나 미시사의 성격을 뛰어넘는 넓은 시야도 펼쳐 보인다. 13세기 세계화는 지금보다는 느릿한 것이었을 텐데, 당대의 패권국가는 어떤 나라였는지, 국경과 바닷길을 틀어막는 쇄국정책을 폈던 명·청의 중국은 어떻게 세계화의 흐름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었는지도 살폈다. 그런 작업 끝에 저자는 16세기 이후 대항해시대를 열어젖힌 유럽 국가들의 본격적인 세계 경영조차 유라시아 교역 네트워크에는 부분적인 영향력만을 끼칠 수 있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서구 일변도의 근대화 가설에 대한 반론으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은 학술서적의 흔적을 완전히 벗지 못한 듯하다. 일반인이 읽기에는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인내 한도를 넘나드는 오자(誤字)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작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역작에는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이름 없는 지방대 연구자에게 출판 제안을 해준 출판사가 고마웠던 게 집필 이유의 하나라고 밝혔다. 5년 넘게 200권이 넘는 관련 서적을 파헤친 결과물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2022.01.01 0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