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원 너머 ‘오랑캐’로 살핀 중국문명사

    중원 너머 ‘오랑캐’로 살핀 중국문명사

    오랑캐의 역사 오랑캐의 역사 김기협 지음 돌베개   오랑캐라는 말은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본디 중국 중원을 에워싼 이민족을 얕잡아보는 말이기 때문. 하지만 역사학자인 지은이는 ‘중화와 구분되는 주변 민족을 가리키는 좁은 의미’로 사용한다. 부제 ‘만리장성 밖에서 본 중국사’에서 보듯 이 책은 오랑캐의 역사가 아니라, 이민족과 끊임없이 부딪히고 교류하며 이뤄온 중국문명의 발자취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핀다.   지은이는 중국이 하나의 통일체란 사실이 그 역사와 정체성을 이해하는 열쇠의 하나라고 지적한다. 진시황과 한 무제 이래로 중국에서 제국의 통일성은 당위적 관념으로 지켜졌다.   지은이는 흉노가 그런 한나라를 위협할 정도가 된 이유로 자신만의 정체성과 공급망을 유지하면서 중원에서 오는 고급인력인 망명객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흉노제국을 지은이는 중원이 강할 때 짧아지고, 황혼 녘에 길어지는 그림자 같은 제국이라고 표현했다. 오랑캐가 이처럼 중원과 상호작용하며 명멸하듯, 중원도 주변 이민족과 교류·충돌하며 문명 발전을 이뤘다.   라시드 알 딘의 『집사(集史)』에 나오는 삽화 ‘몽골과 중국의 전투’(1211). [사진 돌베개] 농경제국 중원을 감싼 오랑캐는 그 외부에 존재하며 부차적 이익을 취하는 ‘외경 전략’을 추구했다. 5호 16국은 외부 오랑캐가 아니라 내부에 들어와 지역 군벌로 자리 잡은 세력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조의 문을 연 북위, 선비족의 요, 여진족의 금·청은 농경·유목·수렵을 병행한 혼합형 오랑캐였다. 순수 유목민에서 출발한 정복왕조는 원이 유일했다는 게 지은이의 지적이다.   원은 세계제국을 지향했다. 몽골 4칸국 중 중원에 들어선 원과 이슬람 세계에 자리 잡은 일칸국의 연결이 끊어지자 남중국해-인도양을 통한 해로가 발달했고, 이는 이슬람 문명이 중국과 더 적극적으로 만나는 통로가 됐다. 지은이는 유럽 중심주의가 이슬람 문명을 애써 무시하고 적대시해왔다고 비판하며, 중국사도 이슬람 문명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문제는 서양 세력. 중국 문명은 인력집약적 농업이 핵심이어서 밖으로 나갈 유인 요인이 많지 않았다. 반면 유럽은 외부에서 자원을 추구해야 했기에 죽기 살기로 원양에 나서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중국에서도 양이, 즉 바다 오랑캐의 역할과 영향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은이는 15세기 초 명나라 정화의 대함대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였고, 서양은 19세기 들어 비로소 그 수준을 따라왔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명은 함대를 없애고 해상활동을 줄였다. 중국은 ‘닫힌 제국’으로 돌아갔다. 청나라도 대외관계의 무게는 경제가 아니라 군사안보에 쏠렸다.   지은이는 그런데도 명·청대 대외교역이 꾸준히 늘어난 데 주목한다. 중국은 고액 결제수단이 된 은 확보를 위해서, 남미에서 은을 채굴한 서양 세력 및 다량의 은 광산을 운영한 일본과 통상했다. 문제는 재력이 무력과 함께 국가 통합성에 위협이 됐고, 은을 들여오는 서양 세력은 보이지 않는 우환이 됐다는 점이다.   18세기 후반 ‘서세동점’이 진행되고, 개혁에 실패한 청나라는 1912년 해체됐다. 20세기 중국의 새 과제는 국가가 국민을 고르게 통제하는 국민국가의 건설이었다. 서양에선 민족을 국민의 기초로 삼았지만, 문명 수준이 다른 종족들의 유기적 결합으로 이뤄진 중국은 달랐다. 오스만·무굴 등은 서양서 불어온 국민국가의 바람 앞에 무너졌지만, 중국은 통일·다민족국가란 개념으로 이를 풀어가고 있다.   없는 게 없는 자급자족의 ‘닫힌 세계관’에 묻혔던 중국은 기술발전으로 자원을 무한히 확보할 수 있다는 ‘열린 세계관’의 서양에 침탈됐다. 하지만 현대는 ‘열린 세계관’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중국에서 최근 천하체제의 부활을 추구하는 ‘신천하주의’가 제기되는 이유다. 책을 읽다 보면 중국을 볼 때 중원만 보지 말고 눈을 크게 떠야 한다는 웅변이 들린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022.09.03 00:41

  • 고급인력인 망명객들 잘 활용한 흉노, 한나라도 위협했다[BOOK]

    고급인력인 망명객들 잘 활용한 흉노, 한나라도 위협했다[BOOK]

      책표지 오랑캐의 역사  김기협 지음 돌베개      오랑캐라는 말은 부정적 느낌이 강하다. 본디 중국 중원을 에워싼 동이‧남만‧서융‧북적의 이민족을 얕잡아보는 말이기 때문. 하지만 역사학자인 지은이는 ‘중화와 구분되는 주변 민족을 가리키는 좁은 의미'로 사용한다. 부제 ‘만리장성 밖에서 본 중국사’에서 보듯 이 책은 오랑캐의 역사가 아니라, 이민족과 끊임없이 부딪히고 교류하며 이뤄온 중국문명의 발자취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핀다.      지은이는 중국이 하나의 통일체란 사실이 그 역사와 정체성을 이해하는 열쇠의 하나라고 지적한다. 기원전 3세기 진시황이 통일하고 기원전 2세기 한 무제가 중화제국의 토대를 다진 이래 중국에서 제국의 통일성은 하나의 당위적 관념으로 지켜졌다.    돈황에 있는 한나라 망루 유적. 기원전 117년 한 무제가 건설한 돈황은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사진 돌베개]  지은이는 흉노가 그런 한나라를 위협할 정도가 된 이유로 자신만의 정체성과 공급망을 유지하면서 중원에서 오는 고급인력인 망명객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흉노제국을 지은이는 중원이 강할 때 짧아지고, 황혼 녘에 길어지는 그림자 같은 제국이라고 표현했다. 오랑캐가 이처럼 중원과 상호 작용하며 명멸하듯, 중원도 주변 이민족과 교류하고 부딪히며 문명 발전을 이뤘다.     농경제국 중원을 감싼 오랑캐는 그 외부에 존재하면서 부차적 이익을 취하는 ’외경 전략‘을 추구했다. 5호 16국은 외부 오랑캐가 아니라 제국 내부에 들어와 지역 군벌로 자리 잡은 세력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조의 문을 연 북위, 선비족의 요, 여진족의 금‧청은 농경‧유목‧수렵을 병행한 혼합형 오랑캐였다. 순수 유목민에서 출발한 정복왕조는 원이 유일했다는 게 지은이의 지적이다.   '몽골과 중국의 전투'(1211). 역사라 라시드 알-딘이 쓴 '집사'에 나오는 삽화. 프랑스국립도서관.[사진 돌베개]    원은 세계제국을 지향했다. 야율초재를 비롯한 요‧금 지배층 후예들의 조력을 받아들이고 문명통합을 이뤄 제국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몽골 4칸국 중 문명 선진지역인 중원에 들어선 원과 이슬람 세계에 자리 잡은 일칸국의 연결이 끊어지자 남중국해-인도양을 통한 해로가 발달했고, 이는 이슬람 문명이 중국과 더 적극적으로 만나는 통로가 됐다.      지은이는 유럽 중심주의가 유라시아대륙 서부 중요한 문화와 전통을 통합한 이슬람 문명을 애써 무시해온 것은 물론 적대시해왔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중국사도 이슬람 문명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문제는 서양 세력. 중국 문명은 인력집약적 농업이 핵심이어서 밖으로 나갈 유인 요인이 많지 않았다. 반면 유럽은 외부에서 자원을 추구해야 했기에 15세기 포르투갈인을 시작으로 죽기 살기로 원양에 나서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중국에서도 양이, 즉 바다 오랑캐의 역할과 영향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은이는 15세기 초 명나라 정화의 대함대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였으며, 서양은 19세기 들어 비로소 그 수준을 따라왔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명나라는 함대를 없애고 해상활동을 줄였다. 정화의 원정을 지시한 영락제는 원을 본떠 세계제국을 추구했지만, 그 뒤 중국은 '닫힌 제국'으로 돌아갔다. 중국 서부지역을 확보한 청나라도 대외관계의 무게는 경제가 아니라 군사안보에 쏠렸다.   왜구와의 해전을 그린 18세기 중국 그림. [사진 돌베개]    그런데도 명·청대 대외교역이 꾸준히 늘었다는 데 지은이는 주목한다. 14세기 해적에 불과했던 왜구는 16세기엔 무역조직으로 변화했다. 이들은 중국 동남부 연안의 토착세력과 이 지역에 진출한 유럽세력과도 얽혔다. 중국은 명나라 이래 고액 결제수단이 된 은을 확보하기 위해 남미에서 은을 채굴한 서양 세력 및 다량의 은 광산을 운영한 일본과 통상했다. 문제는 재력이 무력과 함께 국가 통합성에 위협이 됐고, 은을 들여오는 서양 세력은 보이지 않는 우환이 됐다는 점이다.       18세기 후반부터 ’서세동점‘이 진행되고, 개혁에 실패한 청나라는 1912년 해체됐다. 20세기 들어 중국의 새 과제는 국가가 국민을 고르게 통제하는 국민국가의 건설이었다. 서양에선 민족을 국민의 기초로 삼았지만, 문명 수준이 다른 종족들의 유기적 결합으로 이뤄진 중국은 달랐다. 오스만‧무굴 등은 서양에서 불어온 국민국가의 바람 앞에 무너졌지만, 중국은 통일‧다민족국가라는 개념으로 이를 풀어가고 있다.     없는 게 없는 자급자족의 ‘닫힌 세계관’에 묻혔던 중국은 기술발전으로 자원을 무한히 확보할 수 있다는 '열린 세계관’의 서양에 침탈됐다. 하지만 현대세계는 이런 ‘열린 세계관’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중국에서 최근 천하체제의 부활을 추구하는 ’신천하주의‘가 제기되는 이유다. 책을 읽다 보면 중국을 볼 때 중원만 보지 말고 눈을 크게 떠야 한다는 웅변이 들린다. 

    2022.09.02 14:00

  • '관광'을 넘어..도시와 문화와 역사로 다시 보는 아시아[BOOK]

    '관광'을 넘어..도시와 문화와 역사로 다시 보는 아시아[BOOK]

    책표지 동아시아 도시 이야기 도시사학회·연구모임 공간담화 지음 서해문집   키워드 동남아 강희정·김종호 외 지음 한겨레출판     책표지     타이난은 타이완에서 수도 타이베이보다 역사가 오래 된 도시다.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무력으로 점령해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등 유럽의 대항해시대가 일찌감치 영향을 미친 곳이다. 이후 중국의 명·청 교체기 정성공은 네덜란드 세력을 몰아내고 타이난을 반청운동의 새로운 거점으로 삼았다. 타이완의 중심이 타이난에서 타이베이로 옮겨간 것은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타이완을 할양받으면서. 19세기 후반 쌓은 성벽, 이를 헐고 20세기 초 만든 순환도로 등 타이베이의 도시구조에는 청과 일본의 영향이 중층적으로 남아있다.    이처럼 『동아시아 도시 이야기』는 도시를 통해 아시아의 역사, 특히 근대사와 문화를 풀어낸 책이다. 타이난과 타이베이를 포함해 책이 다루는 도시는 20여곳. 대전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동북아시아만 아니라 일부 동남아시아 지역도 포함했다.    베트남 호이안의 강변풍경. '동아시아 도시 이야기'의 '호이안'편에 실려 있다. [사진 서해문집] 이를 '식민도시' '문화유산도시' '산업군사도시' 등 3부로 나눠 실었는데, 이는 각 도시의 정체성에 대한 단정이라기보다는 도시를 바라보는 초점으로 이해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예컨대 '식민'도시로 분류된 군산에서 새로이 관광지로 떠오른 일제강점기 건축물은 '문화유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각 범주는 종종 겹쳐진다. '산업군사' 도시로 분류된 부평에 남아있는 미쓰비시 줄사택 역시 '문화유산'을 어떻게 규정하고 활용할지의 문제와 연관된다.    이런 일제강점기 흔적만 아니라 도시의 오래된 지역이 새롭게 관광 자원화되고 있는 현상도 양면성이 있다. '부산'편의 글쓴이는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진 감천마을과 수정동 일대 산복도로를 주목한다. 가난(poor)이 관광(tourism) 상품이 되는 푸어리즘, 관광객들이 도시를 변화시키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 등 여러 생각 거리를 던져준다.     부산 감천마을. '동아시아 도시 이야기'의 '부산' 편에 실려 있다. [사진 서해문집] 역사학자를 비롯해 모두 15명의 연구자가 도시별로 쓴 글들은 초점도, 깊이도, 형식도 조금씩 다르다. '하얼빈'편은 격동기 다양한 인종과 국적이 모여들었던 이 도시의 역사와 흔적을 이효석의 『벽공무한』을 인용해 가까이 느끼게 한다. 하얼빈교향악단의 서울 공연 이후 1940년 발표된 이 소설은 하얼빈에서 만난 백계 러시아 여성과 사랑에 빠진 주인공을 통해 당시의 시각과 문물을 보여준다.    형식적으로 가장 색다른 시도라면 '흥남'편. 구술사를 포함한 사료를 바탕으로, 1930년부터 흥남의 일본기업 공장에서 일하다 패전 직후 돌아간 일본인들의 모습을 마치 한 가족의 삶을 다룬 한 편의 소설처럼 전개한다.    다루는 지역은 좀 다르지만 『키워드 동남아』 역시 인문학적인 랜선 여행, 아니 책을 통한 방구석 여행 욕망을 부추기는 책이다. 베트남 커피, 싱가포르의 호커센터, 인도네시아의 른당 같은 식문화를 비롯해 30개의 키워드를 내세워 동남아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낸다.    일본이 패전 직전까지 발행했던 '바나나머니', 영국의 식민 지배와 함께 계층별로 이주한 '인도인' 등 역사적 이해에 초점 맞춘 항목도 여럿이지만, 다른 항목도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충분히 드러나도록 입체적인 서술을 하는 점이 두드러진다. 저자 6명은 모두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들이다. 로힝아족 비극의 기원이나, 식민 지배를 겪지 않고 입헌군주제를 거쳐 지금에 이른 태국식 민주주의의 특징 등은 현재진행형  이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저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동남아'는 그리 오래된 개념이 아니다. 1943년 미국이 일본군에 대항하기 위해 스리랑카에 설치한 연합군 사령부를 '동남아시아 사령부'로 부르면서 일반화된 용어다. 그저 '동남아'로 여기기에는 11개 나라와 지역마다 문화와 역사가 다르고 다양하다는 얘기다. 한편으로 우리네와 닮은 듯 다른 식민 경험은 그 문화와 역사에 대한 저자들의 설명을 이해하는 데도 요긴하게 작용한다. 

    2022.08.26 14:03

  • 경쟁과 협력 엮은 ‘코피티션’으로 상대하라

    경쟁과 협력 엮은 ‘코피티션’으로 상대하라

    서른 즈음의 한중, 어떻게 설 것인가 서른 즈음의 한중, 어떻게 설 것인가 한중비전포럼 편 늘품플러스   경쟁(competition)과 협력(cooperation)을 결합한 코피티션(coopetition) 전략이 뜬다. 시장의 파이를 키워 이익을 공유한다는, 주류 경영학에서 요즘 떠오르는 주제다. 해외시장에서 경쟁 관계인 한국과 중국 기업도 중국 내수시장에서는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논리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인 UBS는 지난 3월 중국 합작사 지분을 67%로 높였다. 홍콩상하이은행(HSBC)도 올 4월 지분을 90%로 늘였다. 성장하는 중국 금융 시장에서 코피티션 전략으로 파이부터 키우겠다는 ‘적과의 동침’ 경영이다.   스마트폰 시장도 마찬가지다. 한국 대형 IT 기업 역시 최종 제품은 경쟁하지만 부품 공급망은 협력 관계를 맺어 이익을 최대화한다. 샤오미폰의 카메라 모듈·메모리 등을 한국이 공급하는 식이다. 박한진 KOTRA 중국경제관측연구소 소장은 미래 30년 한중 경제 패러다임으로 코피티션을 제시한다. 미개척 시장이 여전한 중국에서는 제3국 기업과도 경쟁 아닌 협력을 우선하라고 조언한다. 중국 시장 척후로 30년을 활약한 박한진 소장은 중국을 상대할 때는 제로섬 아닌 포지티브 방식으로 게임을 주도하라고 권한다.   1992년 중국 베이징에서 무역·투자보장 등 한중 4개 협정 체결 직후 노태우 대통령과 양상쿤 국가주석이 건배하는 모습. [중앙포토] 코로나19가 막 창궐하던 2020년 봄 한중 관계의 미래 좌표와 비전을 찾기 위해 한중비전포럼이 출범했다.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로 바닥을 치던 양국 관계 해법을 민간에서 모으자는 취지로 각계 중국 전문가들이 모였다. 15차례 만났다. 코피티션 전략을 비롯한 포럼의 집단 지성이 새로 출간된 이 책 『서른 즈음의 한중, 어떻게 설 것인가』에 담겨 독자를 찾는다. 서른이 되면 스스로 발 딛고 서라던 공자의 삼십이립(三十而立)에 대한 한국의 대답이다.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은 서문에서 “한중 수교가 탈냉전이라는 순풍을 타고 돛을 올렸다면, 30년이 지난 지금은 냉전의 부활을 걱정하게 됐다”며 “위기보다 기회를 모색할 때 한중 간 어려운 문제도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대에 동의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조화를 추구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과 “과거를 기억하고 참고하되 미래를 향해 그 길을 터주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를 강조했다. 한중은 어떻게 설 것인가라는 화두의 답이다.   이 책에는 각계 한·중 관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이 좌담회로 혜안을 보탰다. 포럼 위원장을 맡은 신정승 전 주중대사를 비롯해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박한진 소장, 조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 김현수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추장민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흥규 아주대 정외과 교수, 김진호 단국대 정외과 교수가 필자로 참여했다.   총론을 집필한 신정승 전 대사는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며, 한국으로서는 앞으로 불가피하게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사안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선택은 한국의 정체성과 국익에 바탕을 두되 사안별로 결정하며, 국내적으로 충분한 토론을 거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일단 결정된 사안은 일관성을 갖고 의연하게 밀고 나갈 것”을 강조했다. 분열은 안 된다는 고언이다.   북핵, 경협, 미래산업, 국민감정, 해상 경계선, 환경협력, 대중외교까지 이 책의 각론에는 정책이 풍성하다. 북핵을 살핀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조급함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그는 “중국은 전술핵 등 비대칭 전력을 강화하려는 북한을 저지하기보다 북한과 전략적 협력관계의 범위 설정 및 활용을 놓고 고민할 것”이라 전망하고 “한국은 북핵 문제에서 중국에 과도한 기대를 접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어 “한반도 현안에서 중국과 협력이 가능한 부분과 가능하지 않은 부분을 냉정하게 가려내고 가능한 부분에서 성과를 이루기 위해 정책을 집중하라”고 주문했다. 다수의 한국 국민이 지지하는 가치·정체성·국익을 정의한 ‘원칙’을 바탕으로 한 중국 정책이 전제다.   이 책은 정반합의 결론을 도출했다.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갈등은 가급적 문제 삼지 말고 서로 이익을 찾아 발전시켜 나가자는 구동존이(求同存異)가 수명을 다했다”며 “중국에게는 ‘잘만 구슬리면 미국 품에서 나와 중국 쪽으로 올 수도 있겠다’는 잘못된 기대를, 한국에게는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고 한국에 올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고 지적했다. 해법은 홍 이사장이 제시한 ‘화이부동’이다. 체제와 이념의 차이를 굳이 꺼내서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 필요가 있냐고 과거 생각한 게 구동존이적 사고였다면, 그 차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하는 게 화이부동이라는 것이 원로의 조언이다. 탈냉전 시대엔 체제와 이념이 달라도 공존과 공영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 책이 풀어낸 수교 30년은 찰나(刹那)다. 위기를 헤쳐온 수 천 년 두 나라 선조의 지혜가 있어서다. 서른에 티격태격하면 어때, 한국 시청자도 즐겼던 2020년작 중국 드라마가 공자를 살짝 비틀었듯 “겨우 서른(三十而已·삼십이이)”인데.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2022.08.20 00:56

  • 경쟁과 협력의 '코피티션(Coopetition)' 전략으로 중국 상대하라”[BOOK]

    경쟁과 협력의 '코피티션(Coopetition)' 전략으로 중국 상대하라”[BOOK]

      『서른 즈음의 한중, 어떻게 설 것인가』 표지 서른 즈음의 한중, 어떻게 설 것인가   한중비전포럼 편 늘품플러스       경쟁(competition)과 협력(cooperation)을 결합한 코피티션(coopetition) 전략이 뜬다. 시장의 파이를 키워 이익을 공유한다는, 주류 경영학에서 요즘 떠오르는 주제다. 해외시장에서 경쟁 관계인 한국과 중국 기업도 중국 내수시장에서는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논리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인 UBS는 지난 3월 중국 합작사 지분을 67%로 높였다. 홍콩상하이은행(HSBC)도 올 4월 지분을 90%로 늘였다. 성장하는 중국 금융 시장에서 코피티션 전략으로 파이부터 키우겠다는 ‘적과의 동침’ 경영이다.   스마트폰 시장도 마찬가지다. 한국 대형 IT 기업 역시 최종 제품은 경쟁하지만 부품 공급망은 협력 관계를 맺어 이익을 최대화한다. 샤오미폰의 카메라 모듈·메모리 등을 한국이 공급하는 식이다. 박한진 KOTRA 중국경제관측연구소 소장은 미래 30년 한중 경제 패러다임으로 코피티션을 제시한다. 미개척 시장이 여전한 중국에서는 제3국 기업과도 경쟁 아닌 협력을 우선하라고 조언한다. 중국 시장 척후로 30년을 활약한 박한진 소장은 중국을 상대할 때는 제로섬 아닌 포지티브 방식으로 게임을 주도하라고 권한다.   1992년 8월 한국과 중국의 수교 이후 9월 중국을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이 공식만찬에서 양상쿤 중국 국가주석과 건배를 하는 모습[중앙포토] 코로나19가 막 창궐하던 2020년 봄 한중 관계의 미래 좌표와 비전을 찾기 위해 한중비전포럼이 출범했다.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로 바닥을 치던 양국 관계 해법을 민간에서 모으자는 취지로 각계 중국 전문가들이 모였다. 15차례 만났다. 코피티션 전략을 비롯한 포럼의 집단 지성이 새로 출간된 이 책 『서른 즈음의 한중, 어떻게 설 것인가』에 담겨 독자를 찾는다. 서른이 되면 스스로 발 딛고 서라던 공자의 삼십이립(三十而立)에 대한 한국의 대답이다.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은 서문에서 “한중 수교가 탈냉전이라는 순풍을 타고 돛을 올렸다면, 30년이 지난 지금은 냉전의 부활을 걱정하게 됐다”며 “위기보다 기회를 모색할 때 한중 간 어려운 문제도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대에 동의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조화를 추구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과 “과거를 기억하고 참고하되 미래를 향해 그 길을 터주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를 강조했다. 한중은 어떻게 설 것인가라는 화두의 답이다.   이 책에는 각계 한·중 관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이 좌담회로 혜안을 보탰다. 포럼 위원장을 맡은 신정승 전 주중대사를 비롯해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박한진 소장, 조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 김현수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추장민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흥규 아주대 정외과 교수, 김진호 단국대 정외과 교수가 필자로 참여했다.   1992년 8월 24일 이상옥 외무장관과 첸지첸 중국외교부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역사적인 한중수교 공동성명서에 서명한 뒤 악수를 나누는 모습. [중앙포토] 총론을 집필한 신정승 전 대사는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며, 한국으로서는 앞으로 불가피하게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사안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선택은 한국의 정체성과 국익에 바탕을 두되 사안별로 결정하며, 국내적으로 충분한 토론을 거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일단 결정된 사안은 일관성을 갖고 의연하게 밀고 나갈 것”을 강조했다. 분열은 안 된다는 고언이다.   북핵, 경협, 미래산업, 국민감정, 해상 경계선, 환경협력, 대중외교까지 이 책의 각론에는 정책이 풍성하다. 북핵을 살핀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조급함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그는 “중국은 전술핵 등 비대칭 전력을 강화하려는 북한을 저지하기보다 북한과 전략적 협력관계의 범위 설정 및 활용을 놓고 고민할 것”이라 전망하고 “한국은 북핵 문제에서 중국에 과도한 기대를 접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어 “한반도 현안에서 중국과 협력이 가능한 부분과 가능하지 않은 부분을 냉정하게 가려내고 가능한 부분에서 성과를 이루기 위해 정책을 집중하라”고 주문했다. 다수의 한국 국민이 지지하는 가치·정체성·국익을 정의한 ‘원칙’을 바탕으로 한 중국 정책이 전제다.   1992년 9월 중국을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이 장쩌민 중국 공산당총서기와 요담하는 모습. [중앙포토] 이 책은 정반합의 결론을 도출했다.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갈등은 가급적 문제 삼지 말고 서로 이익을 찾아 발전시켜 나가자는 구동존이(求同存異)가 수명을 다했다”며 “중국에게는 ‘잘만 구슬리면 미국 품에서 나와 중국 쪽으로 올 수도 있겠다’는 잘못된 기대를, 한국에게는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고 한국에 올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고 지적했다. 해법은 홍 이사장이 제시한 ‘화이부동’이다. 체제와 이념의 차이를 굳이 꺼내서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 필요가 있냐고 과거 생각한 게 구동존이적 사고였다면, 그 차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하는 게 화이부동이라는 것이 원로의 조언이다. 탈냉전 시대엔 체제와 이념이 달라도 공존과 공영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 책이 풀어낸 수교 30년은 찰나(刹那)다. 위기를 헤쳐온 수 천 년 두 나라 선조의 지혜가 있어서다. 서른에 티격태격하면 어때, 한국 시청자도 즐겼던 2020년작 중국 드라마가 공자를 살짝 비틀었듯 “겨우 서른(三十而已·삼십이이)”인데.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2022.08.19 14:00

  • 대외 공격적 에너지…배경엔 중국내 긴장

    대외 공격적 에너지…배경엔 중국내 긴장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 한청훤 지음 사이드웨이   오는 24일은 한·중 수교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은 대한민국에 싫든 좋든 큰 영향을 끼치는 중국에 대해 한 번쯤 깊이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하는 책이다. 중국에서 5년간 거주하고 15년간 중국 관련 비즈니스를 해온 저자는 현장 경험을 통해 ‘중국이 왜 문제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나름의 답을 모색했다.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만큼 급성장한 중국의 움직임을 ‘차이나 쇼크’로 규정한 저자는 1부에서 한국이 직면한 중국 리스크를 역사·외교·경제·산업·문화·안보 분야까지 하나씩 거론한다. 2016년 사드 사태 직후 시작된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을 차이나 쇼크의 시작으로 설명하면서 근원을 탐구하자고 주문한다.   2부에서는 차이나 쇼크를 야기한 지정학적 대지진의 중심에서 지각 운동을 더 격렬하게 만드는 인물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라고 진단한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보시라이 사건이 터진 2008~2012년 형성된 시진핑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두 축은 신마오주의와 전통보수주의다. 마오주의는 마오쩌둥 시대의 긍정적 유산을 계승하고 덩샤오핑 시대의 부정적 영향을 극복하자는 정치 이념. 미국 등 서구의 몰락과 중국의 부상을 기정사실로 확신하는 반(反)서구적 생각이 전통보수주의다.   3부에서는 차이나 쇼크의 원인이 된 농촌·인구·부채·기술(반도체) 문제와 시진핑의 권력 유지 문제를 해부한다. 중국 체제 내부의 긴장과 시진핑의 조급함이 외부 세계를 향한 공격적 에너지로 전환됐다는 대목이 특히 눈길을 끈다.   4부에서는 그러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논한다. 중국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신냉전 시대’라는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응하자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한·중 관계가 더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한국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반도체 기술의 초격차를 유지하고, 미국의 공백에 대비해서 한·일 관계를 개선하자고 제안한다. 국익에 기초한 초당파적 컨센서스와 냉철한 실리주의를 강조한 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만하다.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2022.08.13 00:23

  • 사드·한한령...중국발 충격파 뒤엔 '조급함'과 체재내 긴장[BOOK]

    사드·한한령...중국발 충격파 뒤엔 '조급함'과 체재내 긴장[BOOK]

    책표지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 한청훤 지음 도서출판 사이드웨이   오는 24일은 한·중 수교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은 대한민국에 싫든 좋든 큰 영향을 끼치는 중국에 대해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하는 책이다. 중국에서 5년간 거주하고 15년간 중국 관련 비즈니스를 해온 저자는 현장 경험을 통해 '중국이 왜 문제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나름의 답을 모색했다.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만큼 급성장한 중국의 움직임을 '차이나 쇼크'로 규정한 저자는 1부에서 한국이 직면한 중국 리스크를 역사·외교·경제·산업·문화·안보 분야까지 하나씩 거론한다. 2016년 사드 사태 직후 시작된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을 차이나 쇼크의 시작으로 설명하면서 한국에 큰 영향을 주는 차이나 쇼크의 근원을 탐구하자고 주문한다.    2부에서는 '차이나 리스크의 기원과 축적'을 다룬다. 차이나 쇼크를 야기한 지정학적 대지진의 중심에서 지각 운동을 더 격렬하게 만드는 인물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라고 진단한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보시라이 사건이 터진 2008~2012년에 형성된 시진핑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두 축은 신마오주의와 전통보수주의다. 신마오주의는 마오쩌둥 시대의 긍정적 유산을 계승하고 덩샤오핑 시대의 부정적 영향을 극복하자는 정치 이념이다. 미국 등 서구의 몰락과 중국의 부상을 기정사실로 확신하는 반서구적 생각이 전통보수주의다.    3부 '쫓기는 제국, 잠 못 이루는 황제' 편에서는 차이나 쇼크의 원인이 된 농촌·인구·부채·기술(반도체) 문제와 시진핑의 권력 유지 문제를 해부한다. 중국 체제 내부의 긴장과 시진핑의 조급함이 외부 세계를 향한 공격적 에너지로 전환됐다는 대목이 특히 눈길을 끈다.    4부에서는 그러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논한다. 중국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신냉전 시대'라는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응하자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한·중 관계가 더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한국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반도체 기술의 초격차를 유지하고, 미국의 공백에 대비해서 한·일 관계를 개선하자고 제안한다. 국익에 기초한 초당파적 컨센서스와 냉철한 실리주의를 강조한 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 만하다.  

    2022.08.12 14:00

  • ‘도광양회’가 ‘돌돌핍인’으로, 중국의 대전략

    ‘도광양회’가 ‘돌돌핍인’으로, 중국의 대전략

    롱 게임 롱 게임 러쉬 도시 지음 박민희·황준범 옮김 생각의힘   『예정된 전쟁』(그레이엄 앨리슨),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마틴 자크),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존 미어샤이머), 『백 년의 마라톤』(마이클 필스베리) 등 중국의 야심 찬 패권 전략과 그에 맞선 미국의 대응을 분석한 명저들은 항간에 많이 나와 있다. 그런데도 『롱 게임(The Long Game):미국을 대체하려는 중국의 대전략』이 눈길을 확 끄는 대목은 저자가 조 바이든 행정부에 몸담은 러쉬 도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국 담당 국장이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의 대중 패권 견제 전략을 직접 기획·집행하는 당사자의 책이어서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패권 도전 대전략은 중국공산당이 짜놓은 거대한 목표, 즉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며, 1978년 개혁·개방 이후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에 이어 시진핑이 그 사명과 목표를 착착 수행하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중국몽(中國夢)’도 시진핑 개인의 독특한 성향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전략 목표이고 시진핑이 이를 충실히 이행할 뿐이란 것이다.   저자는 중국의 대전략이 3단계로 나눠 진행된다고 분석한다. 각 시기에 중국은 미·중 관계 변화에 정밀하게 초점을 맞추고 대전략을 전환 및 업그레이드해왔다고 저자는 풀이했다.   이달초 시진핑 주석의 방문 당시 홍콩 거리의 쇼핑몰 전광판에 관련 뉴스가 보인다. [AP=연합뉴스] 1단계는 1989~2008년으로, 이 시기에는 미국 세력과 영향력을 ‘약화시키기’에 집중한 단계다. 톈안먼 광장의 민주화 시위를 탱크로 유혈 진압한 이후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자 중국은 미국을 이념적·군사적으로 직접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야심을 감추고 실력을 기른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 기조를 유지하면서 미국과의 직접적인 경쟁을 피하는 비대칭 전략을 구사했다. 중국은 미국의 중국 포위 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미국이 주도해온 국제기구 가입에 적극적이었다.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과 북핵 6자회담에 참여한 것도 이 시기다.   2단계는 2009~2016년으로 아시아 지역 패권 기반 ‘구축’ 시기다. 2008년 말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자 중국은 미·중의 국력 격차가 축소됐다고 진단하고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도전을 시작했다. 후진타오는 2009년 힘의 균형에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며 중국이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의 시기라고 선언했다. 2010년에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처음 추월했다. 항공모함을 건조하고 남중국해에 군사 기지를 구축했다. 2013년에는 일대일로(一带一路) 구상도 출범했다.   3단계는 2017년 이후로 ‘확장’의 시기다. 중국은 이 무렵 서구사회가 명백하게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시진핑은 미국을 대체할 중국 주도의 ‘신시대’를 선언했다. ‘살기등등하게 상대를 핍박하는’ 돌돌핍인(咄咄逼人)의 단계다. 저자는 우리가 중국의 이런 신호를 놓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자유주의 가치가 훼손되는 권위주의적 질서로 바뀔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이 뇌리에 맴돌았다. 첫째, 서구 사회의 강력한 견제가 시작돼 중국 뜻대로 될 가능성은 작아 보이지만, 만에 하나 중국의 대전략이 성공하면 자유와 민주주의가 암울해진 홍콩 같은 세상이 도래할까 우려된다. 물론 중국이 국제사회에 자유·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담은 공공재를 제시하지 못하면 중국의 ‘긴(long) 게임’은 ‘빗나간(wrong) 게임’이 될 것이다.   둘째,  보수 정당에서 진보 정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호주는 중국을 상대로 당당한 외교 전략을 구사 중이다. 중국 코앞에 노출된 대한민국에는 100년은 고사하고 10년 앞을 준비한 대전략이 있는지 묻게 된다. 미국보다 대한민국이 위기다. 곧 여름 휴가를 떠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챙겨가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2022.07.30 00:21

  • 퍼펙트 스톰 속 한국, 난제의 해법은

    퍼펙트 스톰 속 한국, 난제의 해법은

    윤석열 정부의 국민통합 플랜 윤석열 정부의 국민통합 플랜 강찬수·신성식 외 지음 늘품플러스   한국은 지금 퍼펙트 스톰 한가운데에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경제 활력이 떨어진 가운데 코로나19 위기로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한다.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비정규직과 저소득층은 중산층 진입이 어렵다.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 없는 서민과 청년들은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해졌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은 한국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진영·세대·성별 갈등도 심각하다. 미·중 전략경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차질, 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식량 위기에 따른 세계적 인플레이션,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등은 한국의 생존을 위협한다.   한국 사회에 던져진 난제는 윤석열 정부에서 해결해야 한다. 여기서 지체하면 한국의 미래를 장담하지 못한다. 한국의 문제는 대통령 한 사람이나 특정 집단의 힘만으로는 풀 수 없다. 한국 사회 집단지성의 역할이 필요하다.   지난 5월 시정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연금·노동·교육 3대 개혁을 제안했다. 국회는 22일 연금개혁 특위 구성에 합의했다. [뉴스1] 중앙일보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가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정책 제언집 『윤석열 정부의 국민통합 플랜』을 펴냈다. 리셋 코리아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대선을 앞두고 어수선하던 2017년 1월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300여 차례의 논의를 통해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왔다. 국내 언론사 유일의 정책 제안 싱크탱크로서, 현재 38개 분과에 500여명의 전문가가 참여하고 있다.   리셋 코리아는 지난해 5월 대선 정책제안팀을 발족시켰다.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10개 분야로 연금 개혁, 부동산 안정, 감염병 대응, 혁신창업, 인구, 기후변화 대응, 교육 개혁, 불평등 해소, 노동 개혁, 개헌을 선정해 분과를 구성했다. 분과별로 5~10명의 위원이 참여해 각각 3~5회씩 논의를 거쳐 한국 사회가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어젠다를 도출했다. 이들 어젠다는 지난해 10~12월 중앙일보에 보도됐다. 신문 기사와 분과 위원들의 논의 결과를 정리해 책을 펴냈다.   책에서 제시된 어젠다는 우리 현실을 냉정히 진단한 뒤 나왔다. 연금 개혁의 경우 리셋 코리아 위원들은 윤 대통령이 집권 1년 안에 논의를 끝내고 임기 내에 반드시 완수하라고 강조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22일 교육·노동 개혁과 함께 연금 개혁이 핵심 국정과제라며 “원칙을 지키며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연금 개혁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2050년대 연금 기금 고갈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을 덜 받는 개혁은 필요하다. 그러나 인기 없는,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을 이루려면 대통령 등 정책 책임자들의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대통령 집권 초기에 강력한 의지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게 위원들의 진단이다. 위원들은 또 국민·공무원·사학·군인연금 등 4대 공적연금을 장기적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통합으로 가되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갈등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리셋 코리아 위원들은 저출산·고령화에 관련해 200조원을 쏟아부은 저출산 완화정책이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인구 감소는 정해진 미래라 할 수 있는데도 저출산 완화에 주력하다 보니, 저출산 사회 연착륙을 위한 준비는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위원들은 윤 정부가 정년 연장을 공론화하고 초고령화 사회에 필요한 기술 연구·개발(R&D) 투자로 고령친화경제(Silver Economy)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청년들이 집 문제로 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은 만큼 생애별 대출이나 임대주택 확대 등 청년들의 주거 비용을 낮추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R&D 성과가 혁신창업 같은 기술 사업화로 이어지지 않는 ‘R&D패러독스’에 빠져 있다. 위원들은 이를 극복하려면 대학 1학년 때부터 창업 교육을 도입하고, 대기업 취업보다 창업을 선호하는 진취적 사회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또 대학 캠퍼스 안에 기술 아이디어와 시제품을 자유롭게 실험·검증할 수 있는 기술 샌드박스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보편적인 아동 주거·건강권 보장으로 불평등을 줄이고, 공공의료와 민간의료 공조체제를 만들어 감염병에 대응하며, 대학 규제를 줄이고 대학을 4차 산업혁명 허브로 육성하고, 생애 첫 집 장만 땐 집값의 70%까지 대출해 주며, 대통령이 기후변화 문제를 직접 챙기고, 최저임금을 업종·지역별로 차등화하며, 사회 경제 변화에 발맞춰 1987년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위원들은 주문한다.   이들 어젠다는 한국의 바람직한 미래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사회 지도자, 정책 담당자뿐 아니라 한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모든 사람에게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성찰하게 하고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윤 정부에서 이들 어젠다가 실행돼 개인 잠재력이 꽃 피우고, 끊어진 계층 사다리가 다시 연결되며, 무너진 중산층이 복원되고, 경제 성과가 국민 행복으로 연결되는 나라가 되기를 기원한다.   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 hongj@joongang.co.kr

    2022.07.30 00:21

  • '도광양회'가 '돌돌핍인'으로, 미 전략가가 본 중국의 패권전략[BOOK]

    '도광양회'가 '돌돌핍인'으로, 미 전략가가 본 중국의 패권전략[BOOK]

    책표지 롱 게임 러쉬 도시 지음 박민희·황준범 옮김 생각의힘     『예정된 전쟁』(그레이엄 앨리슨),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마틴 자크),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존 미어샤이머), 『백 년의 마라톤』(마이클 필스베리) 등 중국의 야심 찬 패권 전략과 그에 맞선 미국의 대응을 분석한 명저들은 항간에 많이 나와 있다.     그런데도 『롱 게임(The Long Game):미국을 대체하려는 중국의 대전략』이 눈길을 확 끄는 대목은 저자가 조 바이든 행정부에 몸담은 러쉬 도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국 담당 국장이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의 대중 패권 견제 전략을 직접 기획·집행하는 당사자의 책이어서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패권 도전 대전략은 중국공산당이 짜놓은 거대한 목표, 즉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며, 1978년 개혁·개방 이후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에 이어 시진핑이 그 사명과 목표를 착착 수행하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중국몽(中國夢)'도 시진핑 개인의 독특한 성향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전략 목표이고 시진핑이 이를 충실히 이행할 뿐이란 것이다.     저자는 중국의 대전략이 3단계로 나눠 진행된다고 분석한다. 각 시기에 중국은 미·중 관계 변화에 정밀하게 초점을 맞추고 대전략을 전환 및 업그레이드해왔다고 저자는 풀이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회담을 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15일 화상 회담 당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1단계는 1989~2008년으로, 이 시기에는 미국 세력과 영향력을 '약화시키기'에 집중한 단계다. 톈안먼 광장의 민주화 시위를 탱크로 유혈 진압한 이후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자 중국은 미국을 이념적·군사적으로 직접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야심을 감추고 실력을 기른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 기조를 유지하면서 미국과의 직접적인 경쟁을 피하는 비대칭 전략을 구사했다. 중국은 미국의 중국 포위 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미국이 주도해온 국제기구 가입에 적극적이었다.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과 북핵 6자회담에 참여한 것도 이 시기다.    2단계는 2009~2016년으로 아시아 지역 패권 기반 '구축' 시기다. 2008년 말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자 중국은 미·중의 국력 격차가 축소됐다고 진단하고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도전을 시작했다. 후진타오는 2009년 힘의 균형에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며 중국이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의 시기라고 선언했다. 2010년에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처음 추월했다. 항공모함을 건조하고 남중국해에 군사 기지를 구축했다. 2013년에는 일대일로(一带一路) 구상도 출범했다.      3단계는 2017년 이후로 '확장'의 시기다. 중국은 이 무렵 서구사회가 명백하게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시진핑은 미국을 대체할 중국 주도의 '신시대'를 선언했다. '살기등등하게 상대를 핍박하는' 돌돌핍인(咄咄逼人)의 단계다. 저자는 우리가 중국의 이런 신호를 놓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자유주의 가치가 훼손되는 권위주의적 질서로 바뀔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시진핑 주석이 홍콩을 방문한 지난 5월 홍콩의 쇼핑몰 전광판에 시진핑 주석 관련 뉴스가 보인다. AP=연합뉴스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이 뇌리에 맴돌았다. 첫째, 서구 사회의 강력한 견제가 시작돼 중국 뜻대로 될 가능성은 작아 보이지만, 만에 하나 중국의 대전략이 성공하면 자유와 민주주의가 암울해진 홍콩 같은 세상이 도래할까 우려된다. 물론 중국이 국제사회에 자유·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담은 공공재를 제시하지 못하면 중국의 '긴(long) 게임'은 '빗나간(wrong) 게임'이 될 것이다.     둘째, 보수 정당에서 진보 정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호주는 중국을 상대로 당당한 외교 전략을 구사 중이다. 중국 코앞에 노출된 대한민국에는 100년은 고사하고 10년 앞을 준비한 대전략이 있는지 묻게 된다. 미국보다 대한민국이 위기다. 곧 여름 휴가를 떠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챙겨가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2022.07.29 14:00

  • [책꽂이] 플랫포노베이션하라 外

    [책꽂이] 플랫포노베이션하라 外

    플랫포노베이션하라 플랫포노베이션하라 (박희준 지음, 김영사)=최근 기술혁신은 주로 아마존·페이스북 등 플랫폼 기반으로 이뤄진다. 플랫포노베이션(platfornovation)이다. 왜 플랫폼인지, 개인과 기업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등 6개 질문 중심으로 이 현상의 의미와 앞으로의 전망, 구체적인 대처법 등을 살폈다. 넓고 깊게 아는 T자형 인재를 강조했다.   야생 숲의 노트 야생 숲의 노트(사이먼 피즈 체니 지음, 남궁서희 옮김, 프란츠)=페이지마다 악보가 조금씩 실려 있는 이 책은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새소리 모음집이다. 19세기 이 지역에 살았던 저자가 동부파랑지빠귀, 울새, 노래참새, 검은머리박새 등을 관찰한 내용과 함께 그 소리를 멜로디로 기록했다. 저자가 별세한 이후 1892년 출간됐던 책이다.   현대세계의 일상성 현대세계의 일상성 (앙리 르페브르 지음, 박정자 옮김, 기파랑)=일상은 지루한 반복, 충족되지 않는 궁핍의 연속이지만 온갖 창의성과 기쁨의 원천이기도 하다. 일상성의 실체가 무엇인지 소비사회, 언어현상, 공포정치 등을 통해 분석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르페브르는 소비사회 이론가 보드리야르, 소설가 조르주페렉 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개정판.   페미니즘하는 엄마 페미니즘하는 엄마(파라 알렉산더 지음, 최다인 옮김, 아고라)=자녀를 키우며 차별적인 행동을 바로잡고 엄마 스스로도 돌보면서 자존감을 회복하는 등의 양육법을 담았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여러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 방식도 이야기한다. 부제는 ‘불평등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를 행복한 인간으로 기르는 법’.   태국 태국(김홍구 지음, 눌민)=태국은 한국과 50년 이상 수교한 동남아 3개국 중 하나다. 한국인의 태국 이민사도 태평양전쟁 직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태국에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수십 년 동안 꾸준히 바뀌었다. 인색한 공장주, 몰지각한 관광객에서 세련된 한류의 주역으로 변해왔다. 태국 거주 한인들이 토해내는 생생한 정착기다.   고병권의 자본 강의 고병권의 자본 강의(고병권 지음, 천년의상상)=본문만 약 1200쪽 분량인데 문장은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합니다’ 체로 쓰여있다. 마르크스의 『자본』 1권에 대한 저자의 12차례 강연이 바탕이다. 각각 단행본으로, 12권으로 나온 내용을 한 권에 묶었다. 정치경제학은 어떤 학문인지, 임금노동자는 과연 프롤레타리아인지 등이 담겼다.   한중수교 30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한중수교 30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이강국 지음, 글마당 앤 아이디얼북스)=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수교 배경과 과정, 선린우호 협력관계에서 협력 동반자 관계 등을 거쳐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 이른 발전 과정, 동북공정과 사드 배치 등 주요 이슈를 13년간 주중 공관 근무 경험을 살려 정리했다. 정상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명화로 읽는 과학의 탄생 명화로 읽는 과학의 탄생(윤금현 지음, 파피에)=‘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수업’은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1년에 단 한번뿐인 공개 해부를 담은 렘브란트의 그림이다. 그림에 모습이 나오기 위해 따로 돈을 낸 의사들도 있었다고 한다. 서양 명화에 담긴 과학적 시연이나 과학자들의 모습 등을 통해 그 맥락과 관련 지식을 풀어냈다.

    2022.07.23 00:21

  • 동양과 서양, 산 그림의 뜻이 달랐다

    동양과 서양, 산 그림의 뜻이 달랐다

    산수와 풍경의 세계 산수와 풍경의 세계 윤철규 지음 미진사   어떻게 동양의 산수화와 서양 풍경화를 나란히 다룰 생각을 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미술전문기자로 활동하고 17~18세기 일본 미술사를 공부한 저자가 오랜 공부 끝에  ‘산수’와 ‘풍경’을 초점을 맞춰 서양과 중국 미술사를 정리했다.   산수화에서 자기만의 화풍을 이룬 동원과 이성, 이당, 황공망 등 중국화가 7인과 반 에이크, 니콜라 푸생, 존 컨스터블, J.M.W. 터너, 클로드 로랭, 카미유 코로 등 유럽 풍경화가 7명을 함께 다룬다. 산수화에서 산(山)이 이상향, 정신세계의 또 다른 표상이었다면, 서양의 풍경화에서 산은 인간의 시선에서 공포, 불안의 대상이었다가 아름답고 숭고하며, 위안을 주는 존재로 바뀌었다.   동서양에서 ‘산수’와 ‘풍경’은 그냥 오지 않았다. 시대를 지배한 철학(종교)과 신화, 과학기술, 미(美)에 대한 인식 등과 얽혀 끊임없이 ‘발견’돼 왔다. 책은 두 그림 세계가 무엇이 다르고, 같은가를 섣불리 논하지 않는다. 대신 ‘자연’ 그림에 도통했던 동서양 14인의 거장들이 각각 어떻게 새 시대를 열었는지 흥미진진하게 전해준다. 책에 다루지 않는 겸재의 산수화, 모네의 정원 그림도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책이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2022.07.16 00:21

  • 같은 산을 보면서…서양은 두려워했고, 동양은 위로받았다[BOOK]

    같은 산을 보면서…서양은 두려워했고, 동양은 위로받았다[BOOK]

    책표지 산수와 풍경의 세계 윤철규 지음 미진사       어떻게 동양의 산수화와 서양 풍경화를 나란히 다룰 생각을 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미술전문기자로 활동하고 17~18세기 일본 미술사를 공부한 저자가 오랜 공부 끝에  '산수'와 '풍경'을 초점을 맞춰 서양과 중국 미술사를 정리했다.    산수화에서 자기만의 화풍을 이룬 동원과 이성, 이당, 황공망 등 중국화가 7인과 반 에이크, 니콜라 푸생, 존 컨스터블, J.M.W. 터너, 클로드 로랭, 카미유 코로 등 유럽 풍경화가 7명을 함께 다룬다. 산수화에서 산(山)이 이상향, 정신세계의 또 다른 표상이었다면, 서양의 풍경화에서 산은 인간의 시선에서 공포, 불안의 대상이었다가 아름답고 숭고하며, 위안을 주는 존재로 바뀌었다.     동서양에서 '산수'와 '풍경'은 그냥 오지 않았다. 시대를 지배한 철학(종교)과 신화, 과학기술, 미(美)에 대한 인식 등과 얽혀 끊임없이 '발견'돼 왔다. 책은 두 그림 세계가 무엇이 다르고, 같은가를 섣불리 논하지 않는다. 대신 '자연' 그림에 도통했던 동서양 14인의 거장들이 각각 어떻게 새 시대를 열었는지 흥미진진하게 전해준다. 책이 다루지 않는 겸재의 산수화, 모네의 정원 그림도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책이다.             

    2022.07.15 14:30

  • 인생 후반전, 지천명의 길잡이

    인생 후반전, 지천명의 길잡이

     ━  이번 여름 이 책들과 독서피서   장마와 폭염이 여름을 실감하게 한다. 몸과 마음을 식히는 휴가 생각이 간절해진다. 집이든 피서지든 쉬면서, 재충전하면서 읽기 좋은 책 8권을 본지 출판팀과 교보문고 마케터들이 선정해 소개한다. 의미는 뚜렷하고 부담은 많지 않은 책들이다. 15일부터 8월 14일까지 교보문고 매장에서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오십에 읽는 논어 오십에 읽는 논어 최종엽 지음 유노북스   나이 50세를 두고 공자는 ‘지천명’이라고 했다.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앞으로 나아갈 길을 알게 됐다는 의미다. 우리 시대의 50대는 어떨까. 자신 있게 지천명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방황하고 흔들리면서 불안해하는 사람이 더 많을지 모른다. 50대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던 직장 생활에서 종착점이 보이기 시작하는 때다. 그런데 은퇴 이후, 인생의 후반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는 막막하기만 하다.   이 책은 『논어』의 연구서와는 거리가 있다. 고전의 세부 내용보다는 ‘오십’을 맞은 인생 얘기를 강조한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인생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함께 생각해보자는 차원이다. 저자가 다시 읽어보자고 권하는 책이 바로 『논어』다. 젊은 시절에 읽었던 느낌과는 확실히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저자는 “우연히 접한 낡은 『논어』에서 예상치 못한 통찰력을 얻었다”고 말한다.   공자의 어록을 정리한 『논어』는 때로는 중구난방처럼 말이 왔다 갔다 한다. 오히려 그런 점이 『논어』의 매력이다. 독자가 마음에 드는 구절은 깊이 새기고,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은 슬쩍 넘기면 된다.   예컨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구절이 있다. 나이가 들어도 변함이 없는 공자의 열정이 느껴진다. 여기서 저자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를 떠올린다. 그러면서 “오십이 되어 반문해 본다. 아직 연탄재처럼 식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지금껏 단 한 번이라도 누구를 위해 그토록 뜨겁게 인생을 불사른 적이 있었던가”라고 묻는다. 이처럼 저자는 『논어』에 나오는 구절을 골라 소개하며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을 다양하게 풀어간다.   2500년 전 중국 춘추시대 사람인 공자는 실패한 정치가인 동시에 성공한 교육자였다. 생전에는 자기 뜻을 정치적으로 충분히 펼치지 못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 제자들은 공자의 가르침을 정리해 대대손손 물려줬다. 시쳇말로 ‘공자님 말씀’이라고 하면 맞는 말이긴 한데 고리타분한 얘기를 한다는 뜻으로 많이 쓴다. 한때는 구시대적이고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로 사회 발전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과거의 부정적 유산은 청산해야겠지만 옛사람이 전하는 인생의 지혜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겠다. 주정완 논설위원 jwjoo@joongang.co.kr

    2022.07.09 00:21

  • 불안한 지천명, 고전에서 재발견한 인생 길잡이[BOOK 휴가철 추천도서]

    불안한 지천명, 고전에서 재발견한 인생 길잡이[BOOK 휴가철 추천도서]

    책표지 오십에 읽는 논어 최종엽 지음 유노북스        나이 50세를 두고 공자는 ‘지천명’이라고 했다.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앞으로 나아갈 길을 알게 됐다는 의미다. 우리 시대의 50대는 어떨까. 자신 있게 지천명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방황하고 흔들리면서 불안해하는 사람이 더 많을지 모른다. 50대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던 직장 생활에서 종착점이 보이기 시작하는 때다. 그런데 은퇴 이후, 인생의 후반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는 막막하기만 하다.   이 책은 『논어』의 연구서와는 거리가 있다. 고전의 세부 내용보다는 ‘오십’을 맞은 인생 얘기를 강조한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인생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함께 생각해보자는 차원이다. 저자가 다시 읽어보자고 권하는 책이 바로 『논어』다. 젊은 시절에 읽었던 느낌과는 확실히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저자는 "우연히 접한 낡은 『논어』에서 예상치 못한 통찰력을 얻었다"고 말한다.   공자의 어록을 정리한 『논어』는 때로는 중구난방처럼 말이 왔다 갔다 한다. 오히려 그런 점이 『논어』의 매력이다. 독자가 마음에 드는 구절은 깊이 새기고,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은 슬쩍 넘기면 된다.   예컨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구절이 있다. 나이가 들어도 변함이 없는 공자의 열정이 느껴진다. 여기서 저자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를 떠올린다. 그러면서 “오십이 되어 반문해 본다. 아직 연탄재처럼 식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지금껏 단 한 번이라도 누구를 위해 그토록 뜨겁게 인생을 불사른 적이 있었던가”라고 묻는다. 이처럼 저자는 『논어』에 나오는 구절을 골라 소개하며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을 다양하게 풀어간다.   2500년 전 중국 춘추시대 사람인 공자는 실패한 정치가인 동시에 성공한 교육자였다. 생전에는 자기 뜻을 정치적으로 충분히 펼치지 못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 제자들은 공자의 가르침을 정리해 대대손손 물려줬다. 시쳇말로 '공자님 말씀'이라고 하면 맞는 말이긴 한데 고리타분한 얘기를 한다는 뜻으로 많이 쓴다. 한때는 구시대적이고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로 사회 발전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과거의 부정적 유산은 청산해야겠지만 옛사람이 전하는 인생의 지혜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겠다.    

    2022.07.08 14:30

  • 최고 지식인 부부의 최고 피난처

    최고 지식인 부부의 최고 피난처

    우리 셋 우리 셋 양장 지음 윤지영 옮김 슈몽   『우리 셋』은 중국의 작가 겸 번역가 양장(楊絳·1911~2016)의 대표적 산문이다. 그의 남편은 장편 소설 『위성(圍城·포위된 성)』으로 유명한 중국의 대표적 현대 문학가 첸중수(錢鍾書·1910~1998) 전 칭화대 교수다.   ‘중국 최고 지식인 부부’가 영국 옥스퍼드대 유학 시절이던 1937년에 얻은 무남독녀 첸위안(錢瑗) 전 베이징사범대 영문과 교수는 1996년 척추암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다. 이듬해 첸중수 교수도 별세했다. 『우리 셋』은 하나뿐인 딸을 잃고 남편마저 떠난 보내고 쓴 글이라 그 사연이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저자에게 남편과 딸은 험난한 세상을 함께 살아내는 과정에서 든든한 버팀목이자 피난처였다. 딸과 남편을 먼저 보낸 비통한 이야기를 앞쪽에 서술하고, 영국·프랑스 유학 시절과 귀국 이후의 가족이 함께 나눈 추억을 뒤에 배치함으로써 이를 읽는 독자의 힐링 효과가 극대화된다.   『우리 셋』은 2003년에 초판이 나오자 중국을 감동으로 적셨고, 영어판·독일어판으로도 소개됐다. 한국어판이 늦은 감은 있지만,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로 가족 해체를 우려하는 한국사회에 주는 울림이 작지 않을 것 같다.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2022.07.02 00:21

  • 처음엔 딸, 그다음엔 남편...가족 셋 중 둘을 차례로 잃었다[BOOK]

    처음엔 딸, 그다음엔 남편...가족 셋 중 둘을 차례로 잃었다[BOOK]

    책표지 우리 셋 양장 지음 윤지영 옮김 슈몽       『우리 셋』은 중국의 작가 겸 번역가 양장(楊絳·1911~2016)의 대표적 산문이다. 그의 남편은 장편 소설 『위성(圍城·포위된 성)』으로 유명한 중국의 대표적 현대 문학가 첸중수(錢鍾書·1910~1998) 전 칭화대 교수다.     '중국 최고 지식인 부부'가 영국 옥스퍼드대 유학 시절이던 1937년에 얻은 무남독녀 첸위안(錢瑗) 전 베이징사범대 영문과 교수는 1996년 척추암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다. 이듬해 첸중수 교수도 별세했다. 『우리 셋』은 하나뿐인 딸을 잃고 남편마저 떠나 보내고 쓴 글이라 그 사연이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저자에게 남편과 딸은 험난한 세상을 함께 살아내는 과정에서 든든한 버팀목이자 피난처였다. 딸과 남편을 먼저 보낸 비통한 이야기를 앞쪽에 서술하고, 영국·프랑스 유학 시절과 귀국 이후의 가족이 함께 나눈 추억을 뒤에 배치함으로써 이를 읽는 독자의 힐링 효과가 극대화된다.   『우리 셋』은 2003년에 초판이 나오자 중국을 감동으로 적셨고, 영어판·독일어판으로도 소개됐다. 한국어판이 늦은 감은 있지만,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로 가족 해체를 우려하는 한국사회에 주는 울림이 작지 않을 것 같다.      

    2022.07.01 14:00

  • 장자 연구 20년, 뒤통수 맞듯 깨달은 장자 핵심…'遊'였다 [BOOK]

    장자 연구 20년, 뒤통수 맞듯 깨달은 장자 핵심…'遊'였다 [BOOK]

    책표지 장자 역주편(譯註篇) 김정탁 지음 성균관대 출판부       ‘기름은 땔감이 되어 한 번으로 타고 끝나도/ 불은 다음 땔감으로 전해져 끝날 줄 모른다.’ 중국 고전 『장자(莊子)』의 한 구절이다. 승려시인 한용운의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됩니다’(‘알 수 없어요’)도 생각난다. 자연과 생명의 연속성을 깨우쳐준다.     일상에서 벗어난 대자유를 설파했던 『장자』의 이 구절 원문은 이렇다. ‘지궁어위신(脂窮於爲薪), 화전야(火傳也), 부지기진야(不知其盡也).’ 여기서 첫 글자 ‘기름 지(脂)는 여태껏 ‘손가락 지(指)’로 알려졌다. 20년 가까이 『장자』를 공부해온 저자가 최근 중국에서 나온 『국학십전(國學十典)』을 참고해 ‘指’를 ‘脂’로 바꾸니 뜻이 훨씬 잘 통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기존  『장자』 텍스트에서 오자 60여 자를 찾아내고, 원문에 상세한 주석을 붙인 이 책을 내놓았다. 2019년 초판의 오식을 바로잡은 개정판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저자는 고전과 현대의 소통에 주력한다. 그가 한 글자로 요약한 『장자』의 핵심은 ‘놀 유(遊)’다. 유유자적함이다. 1000여 쪽의 이 책을 통독하는 건 쉽지 않지만 한 구절 한 구절 속에 담긴 ‘유의 가치’는 급변하는 오늘날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2022.06.17 14:00

  • 미사일에 앞선 우크라이나 디도스 공격

    미사일에 앞선 우크라이나 디도스 공격

    사이버전의 모든 것 사이버전의 모든 것 박동휘 지음 플래닛미디어   “우크라인이여, 컴퓨터에 있는 모든 데이터는 파괴되었고 그것을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려워하고 최악을 기대하라.”   지난 1월 14일, 대규모 디도스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정부기관 웹사이트에 무시무시한 경고 문구가 떴다. 배후로 지목된 건 러시아. 이어 우크라이나 군과 은행들의 웹사이트가 한꺼번에 마비됐다.   러시아가 미사일을 날리며 우크라이나를 물리적으로 침공한 건 2월 24일. 하지만 전쟁은 한 달 여 전 사이버 선제타격과 함께 이미 시작됐다고 이 책은 소개한다.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초연결시대, 전쟁의 시작과 끝은 사이버전이다. 육군3사관학교 교수인 저자는 손꼽히는 사이버전 전문가. 1999년 코소보 전쟁부터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제목 그대로 사이버전의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책에 담았다.   ‘사이버전 강국’인 러시아·이란·북한·중국·미국 사례를 소개하는데, 북한이 강국 중 하나라서 더욱 눈길을 끈다. 전쟁이라면 일상에선 낯선 주제 같지만 평범한 개인도 사이버전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으니 안보의식을 키워야 한다는 저자의 결론이 상당히 설득력 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2022.05.28 00:21

  • 통화 가치 변동으로 역사의 사이클 읽기

    통화 가치 변동으로 역사의 사이클 읽기

    변화하는 세계 질서 변화하는 세계 질서 레이 달리오 지음 송이루·조용빈 옮김 한빛비즈   “모든 제국은 쇠퇴하고 오래된 제국을 대체할 새로운 제국이 부상한다.” 미국 뉴욕의 월가에서 활동하는 억만장자 투자자 레이 달리오(73)의 말이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운용사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창업자인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모든 강대국은 흥망성쇠의 ‘빅 사이클’을 겪어왔다. 한때 전 세계 해상 무역을 장악했던 네덜란드나 영국은 물론 현대의 미국이나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마치 인간이 태어나서 청년기와 중년기를 거쳐 노년기에 접어드는 것과 닮았다. 월가의 거물답게 저자는 통화, 즉 돈 가치의 변동으로 역사적 사이클을 파악하려 한다.   저자의 세계관과 역사관을 바꾼 결정적 사건은 1971년 8월의 어느 일요일 밤에 일어났다.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TV에 나와 미국 달러화를 더는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종이돈의 가치를 실물 자산인 금에 고정하는 제도(금본위제)를 궁극적으로 폐기한 대사건으로 ‘닉슨 쇼크’라고 불린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저자는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면서 주가 폭락을 예상했다고 한다. 그런데 주가는 오히려 상승했지만 달러화 가치는 폭락했다. 이때 생전 처음으로 통화 가치 하락을 목격한 저자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은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해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을 다루고 있다. 특히 과거 냉전 시절의 소련과 현재의 중국은 차원이 다르다고 본다. 1984년부터 수없이 중국을 오가며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중국의 역사와 경제를 들여다본 저자의 결론이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실제 군사력을 동원한 전쟁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고 본다. 심지어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약 35%라는 숫자까지 제시한다. 다만 계산의 근거는 개인적 추측이다.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가장 위험한 지역은 대만이라고 본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란 신념을 절대 양보하지 않겠지만 미국으로선 피를 흘려 가며 지켜야 할 만큼 가치가 있다고 여길지는 의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승패에 상관없이 전쟁을 겪은 국가는 모두 가혹한 대가를 치르고 많은 빚을 지게 된다”고 경고한다. 주정완 논설위원 jwjoo@joongang.co.kr

    2022.05.28 00:21

  • [책꽂이] 곤충견문락1~4 外

    [책꽂이] 곤충견문락1~4 外

    곤충견문락1~4 곤충견문락1~4(손윤한 지음, 지성사)=생태작가인 저자가 직접 찍은 1만여장의 방대한 사진과 함께 잠자리·딱정벌레·메뚜기·나비 등 곤충 2720여 개체의 이야기를 총 네 권의 책에 담았다. 제목의 ‘견문락’은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쓴, 즐거운’ 곤충 이야기라는 뜻. 연구서가 아니라 즐겁고 행복하게 이어온 관찰 작업의 결과물이다.   우리 곁에 왔던 성자 우리 곁에 왔던 성자(김성호 외 지음, 서교)=고(故) 김수환(1922~2009) 추기경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를 기억하는 언론인 19명의 글을 모았다. 개인적인 에피소드와 더불어 선종 직후 명동성당 주변에 추모객이 긴 줄을 이루는 등 그가 세상에 남긴 면면을 조명한다. 책머리에는 이해인 수녀의 시 ‘사계절의 추기경님께’를 실었다.   뉘른베르크 연대기 뉘른베르크 연대기(하르트만 셰델 지음, 정태남 해설, 그림씨)=1493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출판돼 후세에 ‘뉘른베르크 연대기’라는 이름이 붙은 책은 성경적 관점에서 세계사를 담은 백과사전이자 수록된 1809개의 목판화를 통해 당대 인쇄술의 수준을 보여준다. 이 중 204개를 골라 우리말 해설과 함께 책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게 펴냈다.   새 힌디-한국어사전 새 힌디-한국어사전(이정호 지음, 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출판콘텐츠원)=한국외대 이정호 명예교수가 5년에 걸쳐 5만 2000개 힌디 표제어를 정확한 뜻풀이, 다양한 예문과 숙어, 관용구, 동의어와 반의어까지 2700쪽 사전에 집대성했다. 힌디는 인도 중앙정부의 공용어. 인도 인구의 80%가 쓴다. 지구상에서 세 번째로 사용인구가 많은 언어다.   중국인 이야기 9 중국인 이야기 9(김명호 지음, 한길사)=40년간 중국이 연구 대상이 아니라 놀이터였다고 말하는 김명호 교수의 중국인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 9권은 청나라의 멸망과 위안스카이의 북양정부 출범 시기부터 1970년대 냉전에 이르기까지 중·미 관계 200년 역사를 들여다봤다. 다른 데서 접할 길 없는 중국 현대사의 뒷얘기, 귀한 사진들이다.   푸틴의 러시아 푸틴의 러시아(대릴 커닝엄 지음, 장선하 옮김, 어크로스)=부제는 ‘러시아의 굴곡진 현대사와 독재자의 탄생’.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지탄을 받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누구이고, 어떻게 권력을 잡아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영국의 그래픽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만화로 그려냈다. 리트비넨코 독살사건,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 등의 이슈도 담겼다.   음식과 문장 음식과 문장(나카가와 히데코 지음, 마음산책)=‘복숭아와 밤은 3년, 감은 8년.’ 열매를 맺기까지 적당한 세월이 필요하다는 뜻의 일본 속담이다. 일본 태생의 귀화 한국인인 저자가 서울 연희동에서 요리를 연구하고 가르쳐온 것도 벌써 14년. 세월과 함께 찾아온 몸의 변화, 팬데믹으로 인한 변화를 비롯해 일상과 생각을 20편 산문에 담았다.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제러미 블랙 지음, 유나영 옮김, 서해문집)=영국의 역사학자인 저자가 고대부터 현대까지, 전쟁의 기원부터 군사사 이론들까지 세계사에 점철된 전쟁의 면면과 특징을 총 40개 장에 걸쳐, 각각 길지 않은 글로 조명한다. 임진왜란을 다룬 장은 이순신 장군 얘기도 나온다. 원제 ‘A Short History of War’.

    2022.05.28 00:20

  •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시작과 끝은 사이버전[BOOK ]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시작과 끝은 사이버전[BOOK ]

    책표지 사이버전의 모든 것 박동휘 지음 플래닛미디어    “우크라인이여, 컴퓨터에 있는 모든 데이터는 파괴되었고 그것을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려워하고 최악을 기대하라.”   지난 1월 14일, 대규모 디도스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정부기관 웹사이트에 무시무시한 경고 문구가 떴다. 배후로 지목된 건 러시아. 이어 우크라이나 군과 은행들의 웹사이트가 한꺼번에 마비됐다.     러시아가 미사일을 날리며 우크라이나를 물리적으로 침공한 건 2월 24일. 하지만 전쟁은 한 달 여 전 사이버 선제타격과 함께 이미 시작됐다고 이 책은 소개한다.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초연결시대, 전쟁의 시작과 끝은 사이버전이다. 육군3사관학교 교수인 저자는 손꼽히는 사이버전 전문가. 1999년 코소보 전쟁부터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제목 그대로 사이버전의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책에 담았다.     ‘사이버전 강국’인 러시아·이란·북한·중국·미국 사례를 소개하는데, 북한이 강국 중 하나라서 더욱 눈길을 끈다. 전쟁이라면 일상에선 낯선 주제 같지만 평범한 개인도 사이버전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으니 안보의식을 키워야 한다는 저자의 결론이 상당히 설득력 있다.    

    2022.05.27 14:00

  • 모범적 소수민족? 차별과 혐오의 역사

    모범적 소수민족? 차별과 혐오의 역사

    아시아인이라는 이유 아시아인이라는 이유 정회옥 지음 후마니타스   한인교포를 비롯해 미국에 사는 아시아인이 느닷없이 폭력적 공격을 받았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는 과연 중국발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흔든 최근의 일일까.   정치학을 전공한 저자는 그 시원을 다양하게 짚는다. 서구 문명을 인류 문명의 정점으로 여기는 서구 중심주의, 동양을 타자화하는 오리엔탈리즘, 종교·과학·법을 동원하며 확산한 인종주의는 그 주요한 사상. 이어 19세기 중국인 노동자들로 시작된 아시아인의 미국 이주사를 되짚으며 구체적인 차별의 역사를 드러낸다. 미국은 필요에 따라 중국인의 이주를 법으로 금지한 대신 일본인, 한국인, 필리핀인 등의 노동 이주를 장려했다. 정작 시민권은 백인이 아니란 이유로 허용하지 않았다. 중국인은 1940년대, 다른 아시아인은 50년대에야 가능해졌다.   한데 60년대부터 아시아인의 성공 스토리가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근면 성실하고 수학과 과학에 뛰어나다는 칭송과 함께다. 아시아인, 특히 세계대전 때 미국의 적국 출신이란 이유로 강제 수용당했던 일본인들의 사회경제적 성공을 두고 사회학자 윌리엄 피터슨은 ‘모범 소수민족’이란 용어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결코 반가운 칭찬만은 아니라는 게 저자의 설명. 모범 소수민족과 달리 흑인을 문제가 있는 소수민족으로 치부하면서 대립 구도를 조장했기 때문이다. ‘중간 소수민족’이란 표현도 있다. 아시아계가 다른 소수 인종보다 위에 있지만 백인을 앞지르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의미란다.   저자는 모범 소수민족 신화가 미국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이 없다고 여기게 하고, 오히려 혐오를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아시아인은 단일하지 않다. 2018년, 2016년 등의 조사에서 아시아계는 미국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양극화된 집단, 소득 불평등 격차가 가장 큰 집단으로 나타났다.   책의 마지막 장은 중국교포를 비롯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시아인 혐오를 다룬다. 저자는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이 차별받은 역사에 대한 교육이 한국에서도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후남기자hoonam@joongang.co.kr

    2022.05.14 00:21

  • 성공한 아시아인, '모범적' 소수민족? 차별 뚜렷한 미국 이민사 [BOOK]

    성공한 아시아인, '모범적' 소수민족? 차별 뚜렷한 미국 이민사 [BOOK]

    책표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 정회옥 지음 후마니타스        한인교포를 비롯해 미국에 사는 아시아인이 느닷없이 폭력적 공격을 받았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는 과연 중국발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흔든 최근의 일일까.    미국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국내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그 시원을 다양하게 짚는다. 서구 문명의 보편성을 강조하며 인류 문명의 정점으로 여기는 서구 중심주의, 동양을 타자화하는 오리엔탈리즘, 종교·과학·법을 동원하며 확산한 인종주의는 그 주요한 사상.    이어 19세기 중국인 노동자들로 시작된 아시아인의 미국 이주사를 되짚으며 구체적인 차별의 역사를 드러낸다. 미국은 필요에 따라 중국인의 이주를 법으로 금지한 대신 일본인, 한국인, 필리핀인 등의 노동 이주를 장려했다. 정작 시민권은 백인이 아니란 이유로 허용하지 않았다. 중국인은 1940년대, 다른 아시아인은 50년대에야 시민권 획득이 가능해졌다.    지난 4월 29일 LA 폭동 30주년을 기념해 LA 코리아타운 주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 1992년 흑인 로드니 킹에 대한 경찰의 구타로 촉발된 폭동은 코리아타운 주변 한인교포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안겼다. [AFP=연합뉴스] 한데 60년대부터 아시아인의 성공 스토리가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근면 성실하고 수학과 과학에 뛰어나다는 칭송과 함께다. 아시아인, 특히 세계대전 때 미국의 적국 출신이란 이유로 강제 수용당했던 일본인들의 사회경제적 성공을 두고 사회학자 윌리엄 피터슨은 '모범 소수민족'이란 용어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결코 반가운 칭찬만은 아니라는 게 저자의 설명. 모범 소수민족과 달리 흑인을 문제가 있는 소수민족으로 치부하면서 대립 구도를 조장했기 때문이다. '중간 소수민족'이란 표현도 있다. 아시아계가 다른 소수 인종보다 위에 있지만 백인을 앞지르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의미란다.    저자는 모범 소수민족 신화가 미국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이 없다고 여기게 하고, 오히려 혐오를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아시아인은 단일하지 않다. 2018년, 2016년 등의 조사에서 아시아계는 미국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양극화된 집단, 소득 불평등 격차가 가장 큰 집단으로 나타났다.    책의 마지막 장은 중국교포를 비롯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시아인 혐오를 다룬다. 저자는 아시아인의 이주사,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이 차별받은 역사에 대한 교육이 미국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2022.05.13 1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