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 너머 ‘오랑캐’로 살핀 중국문명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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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호 21면

오랑캐의 역사

오랑캐의 역사

오랑캐의 역사
김기협 지음
돌베개

오랑캐라는 말은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본디 중국 중원을 에워싼 이민족을 얕잡아보는 말이기 때문. 하지만 역사학자인 지은이는 ‘중화와 구분되는 주변 민족을 가리키는 좁은 의미’로 사용한다. 부제 ‘만리장성 밖에서 본 중국사’에서 보듯 이 책은 오랑캐의 역사가 아니라, 이민족과 끊임없이 부딪히고 교류하며 이뤄온 중국문명의 발자취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핀다.

지은이는 중국이 하나의 통일체란 사실이 그 역사와 정체성을 이해하는 열쇠의 하나라고 지적한다. 진시황과 한 무제 이래로 중국에서 제국의 통일성은 당위적 관념으로 지켜졌다.

지은이는 흉노가 그런 한나라를 위협할 정도가 된 이유로 자신만의 정체성과 공급망을 유지하면서 중원에서 오는 고급인력인 망명객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흉노제국을 지은이는 중원이 강할 때 짧아지고, 황혼 녘에 길어지는 그림자 같은 제국이라고 표현했다. 오랑캐가 이처럼 중원과 상호작용하며 명멸하듯, 중원도 주변 이민족과 교류·충돌하며 문명 발전을 이뤘다.

라시드 알 딘의 『집사(集史)』에 나오는 삽화 ‘몽골과 중국의 전투’(1211). [사진 돌베개]

라시드 알 딘의 『집사(集史)』에 나오는 삽화 ‘몽골과 중국의 전투’(1211). [사진 돌베개]

농경제국 중원을 감싼 오랑캐는 그 외부에 존재하며 부차적 이익을 취하는 ‘외경 전략’을 추구했다. 5호 16국은 외부 오랑캐가 아니라 내부에 들어와 지역 군벌로 자리 잡은 세력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조의 문을 연 북위, 선비족의 요, 여진족의 금·청은 농경·유목·수렵을 병행한 혼합형 오랑캐였다. 순수 유목민에서 출발한 정복왕조는 원이 유일했다는 게 지은이의 지적이다.

원은 세계제국을 지향했다. 몽골 4칸국 중 중원에 들어선 원과 이슬람 세계에 자리 잡은 일칸국의 연결이 끊어지자 남중국해-인도양을 통한 해로가 발달했고, 이는 이슬람 문명이 중국과 더 적극적으로 만나는 통로가 됐다. 지은이는 유럽 중심주의가 이슬람 문명을 애써 무시하고 적대시해왔다고 비판하며, 중국사도 이슬람 문명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문제는 서양 세력. 중국 문명은 인력집약적 농업이 핵심이어서 밖으로 나갈 유인 요인이 많지 않았다. 반면 유럽은 외부에서 자원을 추구해야 했기에 죽기 살기로 원양에 나서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중국에서도 양이, 즉 바다 오랑캐의 역할과 영향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은이는 15세기 초 명나라 정화의 대함대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였고, 서양은 19세기 들어 비로소 그 수준을 따라왔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명은 함대를 없애고 해상활동을 줄였다. 중국은 ‘닫힌 제국’으로 돌아갔다. 청나라도 대외관계의 무게는 경제가 아니라 군사안보에 쏠렸다.

지은이는 그런데도 명·청대 대외교역이 꾸준히 늘어난 데 주목한다. 중국은 고액 결제수단이 된 은 확보를 위해서, 남미에서 은을 채굴한 서양 세력 및 다량의 은 광산을 운영한 일본과 통상했다. 문제는 재력이 무력과 함께 국가 통합성에 위협이 됐고, 은을 들여오는 서양 세력은 보이지 않는 우환이 됐다는 점이다.

18세기 후반 ‘서세동점’이 진행되고, 개혁에 실패한 청나라는 1912년 해체됐다. 20세기 중국의 새 과제는 국가가 국민을 고르게 통제하는 국민국가의 건설이었다. 서양에선 민족을 국민의 기초로 삼았지만, 문명 수준이 다른 종족들의 유기적 결합으로 이뤄진 중국은 달랐다. 오스만·무굴 등은 서양서 불어온 국민국가의 바람 앞에 무너졌지만, 중국은 통일·다민족국가란 개념으로 이를 풀어가고 있다.

없는 게 없는 자급자족의 ‘닫힌 세계관’에 묻혔던 중국은 기술발전으로 자원을 무한히 확보할 수 있다는 ‘열린 세계관’의 서양에 침탈됐다. 하지만 현대는 ‘열린 세계관’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중국에서 최근 천하체제의 부활을 추구하는 ‘신천하주의’가 제기되는 이유다. 책을 읽다 보면 중국을 볼 때 중원만 보지 말고 눈을 크게 떠야 한다는 웅변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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