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값 2년간 30% 이상 하락 후 장기 불황, 영끌족 대책 절실”

    “집값 2년간 30% 이상 하락 후 장기 불황, 영끌족 대책 절실”

     ━  자산 하락 ‘족집게 경고’ 박승 전 한은 총재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새해 본격화하는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부동산 불패 신화’가 막을 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종근 기자 “벼락거지 면하려다 영끌거지 됐다”는 통곡이 흘러넘치는 연말이다. 지난해만 해도 아무런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가 상대적으로 가난해졌다는 박탈감 호소가 끊이지 않았는데, 올해는 영혼까지 긁어모은 대출(영끌)로 집을 샀다 고점에 물린 ‘영끌거지’의 눈물이 시장에 흥건하다. 몇 달 새 금리가 이토록 뛰고, 집값이 곤두박질칠 지 누가 예측할 수 있었으랴.   그래서일까. 현재 흔들리는 부동산시장을 미리 들여다본 듯 한 한 경제학자의 과거 발언이 새삼 화제로 떠올랐다. 요약하면 이렇다.   “2021년 서울 집값은 역사상 제일 비싼 상태다. 2022년부터 꺾인다. 대세가 금리 상승이다. 깡통전세가 속출하고 지방에 막 지은 건 분양이 안 돼 애물단지가 될 것이다.”   재테크 사이트서 어록 떠 인기 역주행   그는 투자 광풍이 일던 2020년 하반기부터 “지금 빚을 내서 집 사면 낭패” “금리가 오르고 유동성이 회수되면 주가는 크게 떨어질 것”이라며 영끌·빚투(빚내서 투자)를 멀리 하라고 경고해왔다. 그의 주장은 최근 집값 폭락이 현실화화자, 재테크 커뮤니티에서 새삼 재조명되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화제의 주인공은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다. 그는 청와대 경제수석과 건설부 장관(1988~1989년)으로 분당과 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건설을 기획·추진했고, 한국은행 총재(2002년~2006년)로 통화정책을 이끌었던 국내 대표적 경제 원로다.   길을 찾기 어려운 때일수록 이정표가 중요하다. 과연 경기 침체의 공포가 짓누르는 2023년은 어떻게 흘러갈까. 박 전 총재는 “안타깝지만 영끌족이 버티는 건 능사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부동산 거품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빠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새해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는 부동산 침체”라며 “2023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1%대 후반이지만, 실제 체감 수치는 더 싸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해 전망이 밝지 않다.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해가 될 것이다. 수출이 줄고, 투자가 줄고, 집값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1%대 후반이다. 미국, 일본 상황도 비슷하다. 세계적인 저성장 국면이다. 체감 경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부동산 거품이 새해 본격적으로 꺼지기 시작할 텐데,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저 성장이 1, 2년이 아니라 앞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장기화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박승 전 한은 총재가 28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장기 불황이 온다는 뜻인가. “골드만삭스의 50개국 장기 성장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40년대에는 0.8%, 2060년대에는 -0.1% 수준으로 예상되며, 국내 총생산순위(GDP) 순위도 현재 12위에서 점점 뒤로 미끄러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 경제는 일본에 비해서 침체의 골이 깊지는 않겠지만, 이대로 간다면 방향에 있어서는 유사한 길을 가게 될 수 있다. 1970~1980년대 고성장하던 일본이 성장 정체국이 된 데에는 부동산 충격 외에도 고령화와 인구 감소 등에 원인이 있다. 문제는 한국의 출산율이 일본보다 더 낮아졌고, 고령화 속도도 빠르다는 점이다. 다만 일본은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있지만, 한국은 디지털시대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이 있다. 인구 감소를 막고,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경제성장으로 4차 산업에서 우위를 확보해야한다. 노동·규제 개혁을 통해 기업 친화적 사회로 성장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고금리의 고통, 언제까지 지속될까. “미국의 기준금리는 현재 4.5%, 한국은 3.25%다. 새해 미국은 5%까지, 우리나라는 3.5~3.75%까지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가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2023년 미국의 물가는 5%, 한국은 3.5% 수준으로 예상된다. 새해 금리 인하를 시작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고금리는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다.”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부동산은 연착륙할 수 있을까. “앞으로 2년간 30% 이상 빠진 후 장기적으로 하향 안정화할 것으로 보인다. 영끌족이 지금 고통 받는 게 대출 이자는 늘어나는데, 집값은 떨어지고 있어서 아닌가. 이는 견딘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한국 부동산 가액이 GDP의 5배에 이르렀는데, 이것은 일본의 부동산 거품 정점(5.4배) 때와 유사할 정도로 매우 위험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집값은 지난 6월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현재 2021년 말 수준에 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동안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같은 대출 규제가 잘 작동해왔다는 점이다. 이 덕에 하락폭이 제한된 상태에서 장기 하락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 장기 저성장으로 소득이 정체될 것이고, 가계부채도 GDP 대비 105% 수준으로 더 빚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인구 감소에 따라 연 4만 가구 정도 주택 수요가 줄어들고, 전체 인구 대비 1인 가구 비율도 30%를 넘어 포화 단계에 이르렀다. 여기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가 개통되면 수도권 주택수요가 분산되는 효과도 나타날 것이다. 과거와 같이 추세적인 부동산 폭등은 다시 나타나기 어렵다.”   3기 신도시 등 주택공급 정책은 어떻게 보나. “3기 신도시는 미분양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지금 관심을 가질 대상은 서울 도심의 재정비사업이다. 도심 내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면서 질 좋은 주택 공급이 가능해서다. 다만 초고층 개발은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최근 서울시는 ‘35층 룰’을 폐지해 60층 재건축도 가능토록 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장래 서울은 개발이익 극대화때문에 60층 초고층 아파트숲을 이룰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교통·채광·안전 등 생활환경을 악화시켜 서울을 슬럼화할 위험이 크다.”   보유세, 선진국 수준 1~3%로 상향을   정부는 규제지역 추가 해제 등 주택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했다. “불합리한 규제는 해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과거처럼 ‘빚내서 집 사라’ 식으로 거품을 다시 일으켜서는 안된다. 한국사회의 자산격차가 커지는 불평등의 주원인이 부동산에 있다. 소득이 올라도 집값 상승이 더 가팔라 내 집 마련이 어렵고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다. 이른바 고소득·저생활국의 함정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이례적인 ‘부동산 중심국’이다. 선진국의 경우 전체 자산에서 금융자산의 비중이 높은데, 우리나라는 부동산에 과도하게 쏠려있다. 집값이 장기 하락하면 국민들의 투자 대상에서 부동산은 기피될 것이고, 주택 임대 수요가 늘 것이다. 장기적으로 주택이 투자 대상이 되지 않도록 현재 0.4%에 불과한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인 1~3%로 상향 조정해야한다.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 깡통주택이나 미분양 문제, 일부 건설사의 도산 등 고통도 수반될 수 있지만, 이러한 충격은 필요한 과정이고 멀리 보면 약(교훈)이 될 수 있다.”   박승 전 한은 총재는 중앙선데이와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고 계층 상승을 포기하는 것이 진짜 위기"라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박 전 총재는 평소 “집값을 잡지 못하면 모든 경제정책은 실패한다”고 주장해왔다. 다만 자산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패자부활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는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적 사고를 벗어나 공동체적 자본주의를 꿈꾼다. 부동산·주식 등 자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세금도 더 내고 기부도 실천하는 사회를 희망한다. 실제 그는 2020년 모교인 김제시 백석초등학교에 10억원을 기부했고, 2019년에는 익산시 이리공고에 7억원을 기부하는 등 사회 환원 약속을 실천해왔다. 그는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고 계층 상승을 포기하는 것이 진짜 위기”라고 믿는다.   2030 빚투·영끌족의 문제는 어떻게 보나. “영끌·빚투의 비극은 비단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기성세대가 만든 부동산 중심국, 투자 광풍의 피해자이다. 끊겨버린 계층 이동 사다리도 주요 원인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구제를 위해 영끌 파산의 대책 등 특별 조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계층 이동 사다리를 복원할 수 있을까. “양극화한 시대, 재분배정책의 효과적 구현이 중요해졌다. 그간 자산 가치의 상승이 집중됐던 부동산은 부유층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명문대 입학생 중 강남지역의 비율이 점점 올라가고 있다. 부동산·주식 세금을 재원으로 교육의 사다리를 튼튼하게 연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국 텍사스주는 교육세를 부동산에 부과해서, 그 세금으로 사회 전 계층의 학비를 지원한다. 대신 노등소득에 대한 과세는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불로소득보다 근로소득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었으면 한다.”   기부를 실천하며 ‘나만 잘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개인적인 성취도 중요하지만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더 큰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 소외계층을 끌어안는 포용적 자본주의를 실천하면 좋겠다. 도서관 건립 기금 등을 기부했던 모교인 백석초는 지난해 6개 학급을 증설해 신축했다. 농촌에서 학교를 신축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기부를 통해 농촌학교도 학생들이 모여드는 명문학교로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더없이 값진 나의 행복이다.”   박승 교육자, 공직자, 금융인으로 한국 경제발전에 기여해왔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뉴욕주립대 올버니캠퍼스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1년 한국은행에 입행 후 15년을 근무했고, 이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1988년 노태우 정부 때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발탁된 후 여러 정부에서 건설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등을 역임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2022.12.31 00:01

  • “한반도 유사시 한·미·일 군사작전 역할 분담 논의 시급”

    “한반도 유사시 한·미·일 군사작전 역할 분담 논의 시급”

     ━  권태환 한국국방외교협회장    권태환 한국국방외교협회장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의 ‘반격 능력’ 보유 선언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일본이 북한과 중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을 확보하면서 한국은 딜레마에 빠졌다. 더 나아가 일본은 국내총생산(GDP)의 ‘1%’에 묶여 있던 방위비도 두 배로 늘리기로 했다. 패전국 일본의 군사력 증강이 달가울 리 없지만 날로 과격해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앞에 두고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는 현실이 됐다. 미국이 환영 일색의 지지를 밝힌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문제는 한국의 사전 동의 없이 일본이 북한을 겨냥해 한반도에 미사일을 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대해 주일 국방무관을 지낸 권태환 한국국방외교협회장(예비역 육군 준장)은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긴 어렵다”며 “사전 동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한·일 양국이 지금이라도 한반도 유사시 군사작전에 대한 역할 분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왜 반격 능력을 갖추려 하나. “무엇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현실화됐다. 북한은 50~70발의 핵탄두와 이를 일본에 쏠 수 있는 600여 발의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이동식 발사대(TEL)뿐 아니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수단도 다양해져 미국의 확장억제만 믿고 있을 여건이 아니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거다. 또 다른 위협 요소는 중국과 러시아의 연계 가능성 증대다. 일본은 핵전쟁 개념 변화에 주목한다. 그동안 핵은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처음으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핵 선제공격’ 가능성을 열어뒀다. 미·중 전략 경쟁 격화로 역내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커졌다. 일본 입장에선 굉장히 위협이 커진 상황이다.”   한국의 동의 없이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을 공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런 우려는 예전부터 있었다. 실제로 2015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법제가 논란이 됐을 때 양국 국방장관 회담에서도 관련 논의가 오갔다. 당시 한국은 ‘헌법상 북한도 우리 영토인 만큼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가 북한을 공격할 때는 반드시 한국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일본은 ‘한국의 시정권(입법·사법·행정 등 3권의 행사 권한)은 휴전선 이남 지역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한·미·일 안보 협력 차원에서 유사시 당연히 사전 논의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완곡히 답했다. 결국 양국 협력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한다는 수준에서 공식 입장이 정리됐다.”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어떤가.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7분30초 만에 일본 전역에 닿는데 사전 동의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일본이나 미국이 북한의 공격을 받는 상황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상황을 전제하기 때문에 이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사전 대처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 한·미·일의 긴밀한 정보 공유는 물론 유사시 상호 역할 분담과 대처를 위한 훈련도 진행해야 한다. 그동안 한·일 간에는 유사시 군사작전에 대한 역할 분담 논의가 없었던 만큼 관련 논의가 시급하다.”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대담하고 역사적인 조치’라며 반겼다. “미국은 옛 소련과 맺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 때문에 역내 배치한 중거리 미사일(사거리 500~5500㎞)이 전무하다. 반면 중국은 탄도미사일 1900발과 순항미사일 300발을 배치했다. 이 때문에 한반도와 대만해협 유사시 중국이 이길 거란 우려가 크다. 일본이 최대 500발의 미국산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구매와 독자적인 장사정 미사일 개발·배치에 향후 5년간 5조 엔(약 48조원)을 쏟기로 한 배경이다.”   일본은 방위비도 두 배로 늘리기로 했다. “방위비 증액은 3대 안보 문서 개정의 핵심 중 하나다. 한편으론 미국의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미국은 동맹국들이 GDP의 2% 정도를 국방비로 편성해 안보 비용을 공동 분담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일본의 구체적인 전력 증강 방향은. “적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은 물론 미사일 위협을 조기에 탐지하기 위한 정찰위성과 경계 감시 체계를 확충할 것이다. 우주전·전자전 등 미래전에 대비한 예산도 늘린다. 방위산업 활성화도 명시했다. 경항공모함 등 전 세계 전력 투사 능력 확대에도 적잖은 방위비를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국방비 증대가 일본을 자극했다는 분석도 나오는데. “1990년대 초만 해도 한국의 국방예산은 일본의 절반 수준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일본 방위비 규모를 넘어섰다. 평소 같으면 일본 내에서 반발이 심할 법한데 다른 목소리도 나온다. 한반도 안보전문가인 미치시다 나루시게 일본 정책연구대학원 교수도 ‘북·중·러 연대와 대만 문제 등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군이 미군의 전략적 분산을 막아주는 게 일본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윤석열 정부는 한·일 군사 협력을 심화할 것으로 보나. “현 정부는 비정상적으로 가동되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정상화하고 있다. 양국 간 정보 공유는 군사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지소미아 개념이 필요하다. 한·미·일이 분리된 형태가 아니라 하나가 되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북한의 다양한 위협을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대처하기 위해선 정보 공유 대상을 북한의 핵·미사일로 한정할 게 아니라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2022.12.24 02:00

  • “타워팰리스 같은 임대주택 짓겠다, 약자와 동행 최우선”

    “타워팰리스 같은 임대주택 짓겠다, 약자와 동행 최우선”

     ━  오세훈 서울시장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2일 서울시청 시장 집무실에서 진행된 중앙SUNDAY·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재임 기간 약자와의 동행을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종근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적 입지는 독특하다. 지난 6·1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 선거에서 서울 25개 자치구와 426개 동에서 전부 승리할 정도로 확장성이 강한 반면 일부 보수층 사이에선 여전히 ‘선명성’을 의심받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 같은 평가에 대해 오 시장은 중앙SUNDAY·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내게 친윤·비윤이라고 하는 여의도식 정파 구분을 대입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서울의 성공이 곧 윤석열 정부의 성공이란 게 나의 신념”이라고 답했다.   이런 기조 속에서 오 시장은 정치 현안에 관한 발언을 삼가는 대신 복지·안전 등 민생 정책 현안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 서울의 매력을 키우는 개발 플랜 등 가시적 실적을 통해 행정가이자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이후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한 오 시장은 “10년 전과 달리 지금은 ‘약자와의 동행’이 도시 경쟁력보다 더 앞서는 가치”라고 강조했다.   양극화 최소화하는 게 서울시 비전   역대 최대 규모인 47조2052억원(총계 기준)의 내년도 서울시 예산안이 편성됐다. “예산 투자의 최우선 순위는 무엇보다 약자와의 동행이다. 약 13조원을 생계·교육과 의료 보호망 강화 등에 투입해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더욱 고통받는 약자를 최대한 보호할 방침이다. 특히 내년 1조7000억원을 비롯해 4년간 7조5000억원을 들여 반지하·옥탑방·고시원 등에 거주하는 취약 계층의 주거 안전망을 확충해 나갈 생각이다.”   박원순 전 시장 때의 슬로건인 ‘I· SEOUL·YOU’가 사라진 자리를 ‘동행·매력특별시 서울’이 대체하고 있다. “매력이 서울에 투자와 관광을 하러 오고 싶게 만드는 경쟁력이라면 동행은 경제 발전 과정에서 뒤처진 분들을 보듬는 것이다. 빈부 격차의 고착화와 양극화의 심화 등 국민 통합에 저해되는 측면을 최소화하는 게 서울시의 비전이다.”   주거 복지 측면에서 싱가포르를 롤모델로 삼는 ‘서울형 고품질 공공임대주택’이 현실적 방안이 될 수 있을까. “임대주택은 ‘비좁고 질이 떨어진다’는 차별적 인식을 지우는 데서 출발한다. 타워팰리스 같은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게 목표다. 임대주택이 신혼살림을 시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상향’되도록 평수를 확대하고 고급 자재를 활용하며 커뮤니티 시설도 갖출 것이다. 임대주택으로 옮기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는 바우처나 월세 지원 등의 대책을 마련하겠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30일 폭우 피해를 입은 반지하 주택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서민과 중산층 입장에선 부동산 정책이 곧 민생 정책이다. 서울 집값은 아직도 더 떨어져야 한다고 보나. “그렇다. 높아서 좋을 게 없다. 도시 경쟁력 측면에서 주거비가 비싼 곳엔 자본이 들어오지 않는다. 서울시민의 관점에서도 10년 벌어 집 살 때와 50년 벌어도 집 사기 어려운 때를 비교하면 대답은 자명하다. 부동산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코로나19 이전 가격으로 가야 한다’고 하더라. 지금보다는 조금 더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때의 초강도 규제책과 미국 금리 인상 등이 맞물린 상황에서 집값이 경착륙해도 문제다. “집값이 너무 빠른 속도로 떨어져도 경제 운영에 부담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소프트랜딩이 필요한 것도 맞다. 다만 ‘더 떨어지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경기 침체에 인플레이션이 겹치면서 주택 공급 차질이 우려된다. “고금리·고물가 영향으로 부동산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 복합 위기가 덮쳤다. 원자재 수급 불안으로 건설비와 분양가도 상승했다. 하지만 당장 여건이 어렵다고 해서 도시 개발과 주택 공급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경제가 좋아졌을 때 (공급 부족 현상으로 인해) 또다시 집값이 급등하고 부동산 과열이 반복될 수 있다.”   지난 3월 발표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이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핵심은 재정 투입이 아니라 도시 계획과 관련된 제도를 개선하는 데 있다. 향후 20년을 바라보는 장기 계획으로 글로벌 경제는 물론 부동산 경기 등을 종합적으로 봐가며 추진할 것이다.”   재건축과 재개발이 가시화하면 서울의 스카이라인도 크게 바뀔 것 같다. “인허가를 고려하면 5~10년 뒤에야 가시적 변화가 생길 것이다. ‘35층 층수 제한 폐지’와 관련해 기존의 20층을 전부 40~50층으로 올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주된 동은 30~50층으로 짓되 나머지 동을 10층대로 지으면 공급 물량은 유지하면서 바람길도 생기고 도시 경관 자체도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싱가포르의 스카이라인처럼 서울도 얼마든지 세계적인 관광 명소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도시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란 관점의 반대편엔 ‘한국은 지나치게 서울 중심적’이란 비판도 공존하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오 시장은 “런던 같은 대도시는 수도권을 옥죄는 것으로 국내적 균형을 달성하는 계획을 포기한 지 오래”라며 “서울은 상하이·홍콩·싱가포르·뉴욕·런던·파리 등을 경쟁 도시로 삼고 어떻게 하면 도시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에 정책적 에너지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도시 재생과 보존에 치중한 전임 시장과 달리 오 시장은 도심 기능 효율화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특히 최근엔 광화문~용산~여의도 개발 프로젝트가 주목받고 있다. 오 시장도 이 계획에 특히 의욕을 보였다. “서울의 도심은 극단적 보존 정책과 시대착오적 규제에 갇혀 낙후하고 쇠퇴한 상태다. 우선 10년간 방치된 용산정비창은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글로벌 하이테크 기업이 모이는 곳으로 만들고 상업과 비즈니스, 주거와 여가 문화를 아우르는 미래지향적 공간으로 조성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국제업무지구 용산을 서울시 최초의 ‘규제 최소 지역’으로 지정해 용적률 1500% 초고층을 허용할 계획이다. 여의도의 경우 금융 허브로 기능할 수 있게 하면서 용산~여의도~노들섬으로 연결되는 트라이앵글존을 서울시 경쟁력의 전략적 요충지로 삼겠다.”   ‘한국판 샹젤리제 거리’ 적극 추진   직주혼합과 보행 일상권에 유독 애착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직주근접을 넘어 직주혼합이 구현되면 교통과 환경 오염 문제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토지 용도를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개발 가능한 ‘비욘드 조닝(Beyond Zoning)’ 개념을 제도적으로 도입해 나갈 것이다. 또 높이 제한을 풀면서 더 부여하는 용적률에 대한 반대급부로 녹지 생태 면적을 늘리겠다. 광화문~퇴계로의 도심 녹지율도 고궁을 포함해 20% 이상(현재 8.5%)으로 높일 계획이다.”   오 시장은 지난 10월 유럽을 다녀온 뒤 광화문~서울역~용산정비창~노들섬으로 이어지는 ‘한국판 샹젤리제 거리(국가상징거리)’ 조성 계획과 강변북로·경부고속도로 지하화 플랜 등을 발표해 주목을 모았다. 이에 대해 오 시장은 “최근 광화문광장 재개장과 청와대 개방,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세종대로 숲길 조성 등으로 국가상징거리를 위한 여건이 갖춰졌다”며 적극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광화문광장의 녹지를 늘리고 차도를 줄인 결과 우려했던 차량 혼잡은 발생하지 않았다. 경부고속도로 지하화와 일부 지상 공간 녹지화는 토지 효율화 개념에서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강변북로는 전 구간이 터널화되면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적잖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만큼 필요한 구간을 선택하고 지상 공간은 녹지화할 계획이다.”   서울의 ‘감성 자산’으로 꼽히는 한강변은 어떻게 꾸밀 계획인가.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비롯해 한강변의 대단지 재건축은 ‘신속통합기획’으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로 유보돼 온 ‘관광의 시간’도 재개됐다. ‘3000만 서울 관광 플랜’ 차원에서 한강의 숨겨진 매력인 석양을 전략적 콘텐트화하는 ‘서울 아이(Seoul Eye)’의 최종 입지도 상암동과 여의도 한강공원 등을 검토해 곧 공개하겠다.”   개발과 교통 인프라가 함께 갈 수 있을까. “자율주행 시스템이 10년 뒤엔 상용화될 것으로 본다. 도심항공교통(UAM)도 마찬가지다. 미래는 생각한 것보다 쉽고 빠르게 다가온다. 서울시는 전 세계 메트로폴리탄 중에서 가장 선도적으로 ‘스마트 입체교통도시’를 구현할 것이다. 이미 상암이나 강남에서 자율주행과 로봇 택시가 시범운행 중이다.”   오 시장의 ‘서울 플랜’엔 보기 좋은 시설만 있는 건 아니다. 상암동 소각장 건립에 관한 입장엔 변함이 없나. “그렇다. 시민들의 반발이 있다고 해서 후퇴할 순 없다. 필요하니 계획된 것이고 최적지를 찾았으니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이다. 2010년 화장 시설인 서초구 원지추모공원을 100% 지하화한 것처럼 상암동 자원 회수 시설도 최첨단 장비와 디자인 기술을 도입해 최대한 친환경 시설로 지을 계획이다.”   방송인 김어준씨가 TBS 하차를 선언했다. TBS에 대한 서울시의 입장은 뭔가. “서울시는 TBS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인 만큼 공영방송의 본분을 회복할 수 있도록 1년 넘는 시간과 기회를 줬다. 하지만 이 상태로는 공영방송으로서 정상적 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서울시의회가 지난달 ‘2024년 1월부터 TBS 지원 중단’이라는 강력한 처방을 내렸다. 새 대표 체제에서 TBS가 개혁의 길을 찾길 바란다.”   여권 내에서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내 페이스북을 보면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말보다 행보를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 유능한 시정으로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와 기대감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서울시장이 당에 기여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  「 ※인터뷰 전문은 20일 발간되는 월간중앙 신년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 김영준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

    2022.12.17 01:11

  • 공주병? 조수미 드레스는 자신감, 늙지 않는 징표죠

    공주병? 조수미 드레스는 자신감, 늙지 않는 징표죠

     ━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소프라노 조수미와 디자이너 서승연   소프라노 조수미가 3년 만에 앨범을 냈다. 김효근의 ‘첫사랑’, 윤학준의 ‘마중’ 등 우리말 사랑노래로만 엮은 앨범 ‘사랑할 때(In Love)’다. 팬데믹을 겪고 난 지금이 가장 절실하게 ‘사랑할 때’인 것 같아 정성을 쏟았다고.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리며 녹음했다는 11곡을 들어보면 끓어 넘치는 사랑에 고막이 화상을 입을 지경이다.   조수미가 말하는 ‘사랑’이 꼭 연애감정만은 아니다. 일에 대한 열정, 동료에 대한 우정, 이웃에 대한 연민, 삶에 대한 애착일 수도 있다. 지난 10월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테이크 원’의 첫 에피소드를 장식한 그가 ‘단 한 번의 공연’을 위해 올인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삶 자체를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우리말 사랑노래 엮은 새 앨범 내놔   소프라노 조수미(오른쪽)는 13년째 디자이너 서승연의 드레스만 입는다. 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 오프닝을 장식할 ‘첫사랑’ 드레스. 김경빈 기자 드레스에 대한 사랑도 만만찮다. 20여 년간 앙드레 김의 드레스만 사랑하다 ‘앙 선생’ 작고 후 13년째 서승연의 드레스에 일편단심이다. 2010년 독일 가곡 ‘너를 사랑해(Ich Liebe Dich)’ 앨범 재킷 촬영이 맺어준 두 사람은 지금도 열렬한 ‘In Love’ 상태다.   “제가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 자랑하고 싶어요. 앙 선생님이 편찮으실 때 운명처럼 만났죠. 호텔 스위트룸에 30여벌의 세계 명품 드레스를 깔아놓고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가 유독 눈에 띤 한 벌이 있었어요. 디올이냐, 구찌냐 물었더니 ‘서승연’이라길래 기가 막혔죠. 옷이 너무 아방가르드 쪽이라 한국인이 만들었다고는 생각 못했거든요.”(조) “그 앨범이 아카데믹한 독일 가곡을 화려하게 해석한 독특한 컨셉트라서 선택받은 것 같아요. 타이밍이 절묘했죠.”(서)   운명의 불꽃이 튄 건 두 사람의 코드가 딱 만났기 때문이다. 클래식 그 자체면서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드레스는 앙드레 김 시절부터 조수미의 시그니처였다. “동양인이 오페라 무대에 서는 게 거의 최초였으니 처음엔 저도 서양인 흉내를 냈어요. 그러다 앙 선생님을 만났고, 동양의 신비함과 고급스러움을 살린 옷이 어딜 가나 화제가 됐죠. 선생님은 공연 때마다 제일 앞줄에 앉으셔서 박수받는 걸 즐기셨는데 하루는 제가 깜빡하고 인사를 못 시켜드렸어요. 단단히 삐지셔서 1주일간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서 간신히 용서받았던 기억이 나네요.(웃음)”(조) “저도 앙 선생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매장 오픈할 때 직접 찾아가서 초대장을 드릴 정도로 존경했던 분이죠. ‘공주 드레스’지만 단순히 복식사의 재현이 아니라 한국적 요소를 살려 창조하는 게 제 스타일인데 알아봐 주셔서 정말 기뻤습니다.”(서)   서승연 드레스에 첫눈에 반한 조수미는 직접 꽃다발을 들고 찾아갔고, 이후 그 사랑은 변할 줄 몰랐다. 대통령 취임식, 올림픽 개막식 등 대형 행사에서 다른 디자이너도 숱하게 추천받았지만 결코 한눈을 팔지 않았다. “저는 꼬맹이 때부터 남들과 전혀 다른 드레스를 만들고 싶었어요. 내 옷을 입은 사람은 그 순간 최고로 빛나는 옷을 만들고 싶은 게 꿈이었죠. 선생님은 그 꿈을 이뤄주셨고, 다소 과해 보이는 제 옷을 200% 소화하는 유일한 분이에요.”(서)   ‘조수미의 그녀’란 타이틀은 날개가 됐다. 걸그룹 소녀시대부터 에스파, 아이유, BTS 등 아이돌까지 몰려들었다. 성악가의 무대의상에서  K팝 무대의상이 파생됐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선생님 덕에 ‘앙드레 김 다음 서승연’이 됐어요. K팝 스타일리스트들도 ‘최고를 입히겠다’며 찾아왔죠. BTS도 남성 아티스트로선 선구적으로 화려하고 고급스런 의상을 찾아 제게 왔고요. K팝 의상은 하루만에 만들어내야 할 때도 있는데, 다 조수미 드레스 만들면서 쌓인 노하우와 시스템이 있어 가능한 일이죠.”(서)   넷플릭스 ‘테이크 원’ 에서 오펜바흐의 ‘인형의 노래’를 국악 콜라보로 부르는 조수미. [사진 넷플릭스] 평범한 여성이라면 평생 한두 번 입는 드레스를 조수미는 족히 500벌은 넘게 입었다. 드레스 차림으로 슈퍼마켓도 갈수 있을 정도란다. “언젠가 미장원에 갔더니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게 아니었냐며 실망하더군요. 사실 그러고 싶어요. 서승연 드레스를 입었을 때 가장 나답고 행복하고, 벗는 순간 신데렐라가 호박마차에서 내렸을 때처럼 싫은 기분이 들죠. 전 계속 이렇게 살고 싶어요. 공주병이라고요? 인정합니다.(웃음)”(조) “감사하게도 선생님은 처음 뵙던 십여 년 전과 지금 치수가 똑같아요. 그때 만든 마네킹에 맞추면 안 입어 봐도 될 정도죠.”(서) “솔직히 노래하려면 폭식하고 싶을 때도 있거든요. 하지만 서승연 드레스를 입으려면 손 떨면서 먹어야 해요. 선생님 생각하며 포크를 놓을 때가 많습니다.”(조)   조수미에게 드레스란 노래만큼이나 중요한 예술의 일부다. 매번 컨셉트를 직접 정해서 제작을 의뢰하는 이유다. “요즘 성악가들은 의상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나처럼 한 번 공연에 드레스를 4~5벌 입는 사람은 세상에 없죠. 숍에서 200달러짜리를 사 입곤 하던데, 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렇게 못해요. 내 공연은 늘 컨셉트가 있고, 드레스는 내 트레이드 마크니까요. 그래서 선생님도 굉장히 신경을 쓰세요. 바로크 콘서트라면 비발디, 헨델부터 공부해야 하니 고생이 많으실 거예요.”(조)   실제로 서승연은 조수미 드레스를 작업할 때 기도로 시작한다고. 자신의 컬렉션과는 전혀 다르게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번 새로운 컨셉트를 주시니까요. 사실 제일 어려운 게 컨셉트인데, 첫 숙제를 늘 해결해 주시는 셈이긴 해요. 하지만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선생님 생각이 잘 맞고, 중간에 아무 사고 없이 잘 완성되기를 기도하는 거죠.”(서)   넷플릭스 시리즈 ‘테이크 원’에서 그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조수미가 오펜바흐의 ‘인형의 노래’를 국악과 결합시키는 과정이 드라마틱한데, ‘씬스틸러’는 단연 드레스다. 얼핏 화려한 서양 인형옷 같지만, 잘 보면 핑크와 초록으로 색동을 재해석하고, 자수 골무를 주렁주렁 매달아 만든 노리개로 포인트를 준 ‘K드레스’다. “아마 제일 힘든 작업이었을 걸요. 전 세계에서 공연되는 오펜바흐의 가장 유명한 노래를 한국적으로 풀어달라 해놓고 나도 잠이 안 오더군요. 딱 보는 순간 정말 천재다 싶었죠.”(조) “소매의 색동은 ‘조수미 색동’이라고 이름지었어요. 색동이란 게 어린아이들을 귀하게 지키는 의미라서 꼭 쓰고 싶은데 예쁜 한국인형이면서도 유러피안 실루엣과 어울리는 컬러를 찾느라 고생 좀 했죠.”(서)   베이스바리톤 길병민과 ‘첫사랑’ 듀엣   조수미는 우리 노래만 수록한 이번 앨범에 “왜 그런지 가장 정성을 쏟게 됐다”고 했다. 1994년 처음 워너뮤직에서 음반을 낼 때, 우리 가곡 ‘보리밭’을 넣지 않으면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했을 만큼 조수미는 우리 노래를 사랑한다. “우리가 이렇게 잘 살게 된 게 얼마 안 돼요. 83년에 유럽에 가니 아무도 한국을 몰라요. 공항에서 내 여권을 보면서 남한이냐 북한이냐 격리시켜서 조사하느라 비행기가 못 뜨는, 이런 경우를 계속 당하면 정말 손톱으로 할퀴면서라도 한국을 지켜야 된다는 마음이 들죠. 부모님이 무시당하는 느낌이랄까? 내가 정말 잘 돼야 한다 는 의지가 피에서 솟아나 파이오니어처럼 살았어요. 나뿐 아니라 우리 세대는 다 그렇게 투철했죠.”   통통 튈 듯 즐겁게 얘기하다가도 나이 얘기가 나오니 금세 새침해진다. 자칭 ‘영 앤 피어리스’ 정신으로 살아서인지 그는 여전히 소녀였다. 가곡 ‘첫사랑’을 녹음할 때도 첫사랑과 첫눈 올 때 만나자던 약속을 떠올렸단다. “녹음할 때 되게 짠했어요. 그때 멋졌던 그 모습만 기억하고 싶은데,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나더군요. 그분이 가끔 내 공연에 오시는 건 알고 있어요. 그런 멋진 사랑을 할 수 있고, 그때 느낀 사랑을 음악에 녹일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죠.”(조)   중앙SUNDAY 유튜브 채널 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그 사랑을 온전히 전한다. 음반에 참여한 첼리스트 홍진호,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 베이스바리톤 길병민 등도 모두 함께한다. 물론 서승연 드레스를 입는다. 오프닝인 ‘첫사랑’ 드레스에 특히 공을 들였다는데, 인터뷰를 위해 살짝 착장 모습을 공개했다. “지금 입고 계신 드레스에요. 가장 스위트하고 파릇파릇한 첫사랑의 설레임을 담았죠. 선생님은 이 무거운 걸 입고 팔짝팔짝 무대를 누비는 영원한 소녀거든요. ‘관객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는 애티튜드가 세계적 소프라노를 만든 것 같아요.”(서) “드레스는 내 자신감이자 관객에 대한 예의거든요. 무대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옷을 입고 노래하는 건 관객에게 꿈과 환상을 주기 위해서죠. 그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아서 조수미는 늙으면 안 돼요. 앞으로 10년 더 서승연 드레스를 입으려면 다이어트도 열심히 해야겠죠.(웃음)”(조)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2022.12.17 00:34

  • 종부세로 집값 못 잡아, 보편성 잃은 이중과세 없애야

    종부세로 집값 못 잡아, 보편성 잃은 이중과세 없애야

     ━  이재만 ‘종부세 위헌청구 시민연대’ 대표   이재만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은 종부세의 위헌 요소를 지적하며 완전 폐지를 주장했다. 최영재 기자 오는 15일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납부 시한이 다가오면서 종부세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올해 종부세 부과 대상자는 사상 최대 규모인 12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고, 그 실거래가를 과세기준인 공시가격에 반영하는 비율이 높아진 때문이다. 이에 일선 세무서에선 종부세 관련 민원이 속출하고 있다. 이들은 “소수 부자를 대상으로 한 세금이라는 종부세가 당초 취지와 달리 중산층까지 겨냥한 징벌적 세금으로 변질됐다”며 반발 중이다.   정치권도 고민이 깊다. 최근 국회에서 여·야는 잠정 합의안을 도출, 3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종부세 중과는 유지하되 2주택자 세율을 일부 조정하기로 했다. 종부세 기본공제액은 현행 6억원에서 7억~8억원으로 상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1가구 1주택자의 경우 야당이 정부와 여당 입장을 수용해 공제액을 12억원으로 상향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하지만 8일 만난 이재만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은 “세법상 종부세 부과는 상당한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며 종부세 완전 폐지를 거듭 주장했다. 1951년생인 그는 세무 전문가(세무사)이자 ‘종부세 위헌청구 시민연대’ 공동대표로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국회에서 잠정 합의안을 냈다. “여전히 위헌 요소가 많다.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의안을) 내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놔두는 게 낫다.”   뭐가 문제인가. “대표적인 게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도 규정하는 국민의 기본권인 재산권 침해다. 세법에서 주택은 침해돼선 안 되는 사유재산권의 대상이며, 사적유용성(개인적으로 이용 가능한 상태에 있어야 하는 성질)도 당연히 인정된다. 그런데 혹자가 주택 한 채를 임대해서 1년에 2000만원을 번다고 할 때, 종부세로 5000만원을 낸다고 하면 재산세를 빼고도 매년 3000만원을 잃게 된다. 재산세를 따로 내는 걸 고려하면 명백한 이중과세이자, 재산권을 무상 몰수하는 세금인 셈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너무 극단적인 예시 아닌가. “지금 다주택자 대상 종부세 최고세율이 농어촌특별세 포함 7.2%까지 올랐는데, 이 수치로 계산하면 종부세로 재산의 80~85%는 몰수된다는 결과가 나온다. 이는 세금을 납세자의 부담 능력을 고려해 책정해야 한다는 ‘응능(應能) 부담’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지금 다주택자의 경우 고령의 은퇴자들이 많은데 이들이 주택을 마음대로 팔지도 못하고 세금 폭탄을 맞고 있다.”   해외에선 어떻게 하고 있나. “미국과 일본, 독일 등의 주택 보유세율은 높아봤자 1% 수준이고, 종부세를 매기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뿐이다. 비슷한 세금도 없다. 일본은 1991년 부동산 투기로 인한 집값 폭등을 막는다며 종부세와 비슷한 ‘지가세’를 도입했지만 위헌임을 이유로 8년 만에 폐지했다. 독일도 1995년 ‘반액과세의 원칙’ 판례를 통해 국민 재산에 부과되는 조세 부담 총액이 기대수익의 절반을 넘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현재 독일의 재산세율은 0.35%로 한국(0.4%)보다 낮다.”   종부세 문제로 이혼 늘어 가정 파괴도   종부세가 혼인 및 가족생활 보장의 헌법 규정을 위반한다는 지적도 있다. “종부세 때문에 이혼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실제로 지인 중에 두 명이 이 문제로 이혼했다. 대부분의 다주택자는 주택 두 채를 보유했는데, 자기 명의로 된 게 한 채냐 두 채냐 등에 따라 부과되는 종부세도 크게 차이가 난다. 원래 2019년까지는 종부세를 재산가액에 따라 매겼는데 2020년부터 소유형태까지 보도록 법을 바꾼 때문이다. 그래서 부부가 두 채의 집을 가졌는데 누가 어떻게 가졌느냐에 따라 종부세도 최대 4배 차이가 난다. 이때 법적으로 이혼을 하면 세금이 5분의 1에서 10분의 1까지 줄어든다. 1년에 4000만원 종부세 내는 부부가 이혼하면 둘이 합쳐 500만원만 내면 된다. 고령의 은퇴자들에게는 큰 액수인 3500만원을 연간 절약할 수 있으니 이혼을 안 할 수 없다. 종부세 때문에 법률적으로 가정이 파괴되는 거다.”   주택 공시가격이 급격히 올라 종부세 부담이 전반적으로 커진 면도 있는데. “문재인 정부 5년간 집값이 37% 올랐는데 공시가격은 전국 평균 100%가량 올랐다. 서울은 많이 오른 곳은 140% 정도 된다. 실거래가 대비 공시가격을 너무 올렸다. 세금을 최대한 많이 걷으려는 목적에서다. 공시가격은 과세기준이기 때문에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급격히 올리면 안 된다. 과세기준은 공정하게 잡되, 더 많이 버는 사람한테 세금을 더 걷으려면 세율을 높이면 된다. 문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율’이라는 법에 없는 걸 만들어서 국민들 세금만 배로 올린 셈이 됐다. 굳이 공시가격으로 종부세를 걷겠다면 (공시가격 현실화를 통해) 장난치기 전인 2018년 수준으로 되돌려야 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국민 정서상 종부세 폐지는 부자 감세로 해석될 수도 있지 않나. “정치적인 해석일 뿐이다. 세금은 모든 국민이 국가에 납부하는 거라 보편성이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선 국민의 4대 의무 중 국방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가 궤를 같이한다. 전쟁이 났을 때 빈자 또는 부자라는 이유로 징집에서 면제돼선 안 되듯, 조세평등주의에 의거해 모든 국민이 조세 부담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세금을 배분받아야 한다. 종부세는 이런 보편성과 조세평등 원칙에도 위배되는 세금이다.”   부자가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건 당연하지 않나. “물론이다. 다만 어느 정도 합리적인 선에서 (부자 과세가) 유지가 되고, 형편이 어려운 국민 역시 작은 액수라도 세금을 내야 조세평등주의에 부합한다. 그래야 형편이 어려운 분들도 내 나라라는 주인의식을 갖게 된다. 그런데 한국은 근로자의 57%만 소득세를 내고 나머지 43%는 면제다. 해외 주요국의 소득세 면제 비중이 15%인 걸 고려하면 보편적이지가 못하다. 다른 나라에선 1%의 부자가 전체 소득세의 11%를 낼 때 한국은 40%를 낸다.”   2005년 종부세 도입 당시 관가의 분위기는 어땠나.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소신을 갖고 (종부세 도입은 안 된다며) 거의 1년간을 싸웠다. 그때 고 노무현 대통령이 회유를 했다. 그런 세금이 있는 형태로만 법을 만들어보자, 세금을 조금만 부과하는 식으로 해보자, 그렇게 서로 타협을 해서 문제가 안 되는 선에서 법을 만들었다. 이후 2005년 3월 이 전 부총리가 퇴임하고 그해 6월 종부세가 도입됐는데 불과 반년만인 그해 12월에 세금이 많이 나오도록 법이 개정되면서 일이 꼬였다.”   집값의 과도한 인상과 부동산 투기 억제라는 종부세의 입법 취지는 어떻게 보나. “세금으로 부동산 투기를 억제한다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부동산 투기를 정말 억제하고자 한다면 주택 공급을 늘리든지, 이자율(금리)을 높이면 된다. 올해 금리를 크게 올렸더니 집값도 크게 떨어지고 있지 않나. 세금을 올려 집값을 잡는다는 건 지난 정부의 거짓말이다. 문재인 정부 때 그렇게나 세금을 올렸는데 단 한 번도 집값은 떨어지지 않았다. 문 정부는 투기 억제를 위해서라며 종부세를 5년간 일반 개인 대상 11배, 다주택자 대상 17배, 다주택법인 대상 64배 올렸다.”   이 전 청장은 종부세는 없애되, 부적절한 부동산 투기에 대한 벌금 수준을 대폭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남 목포 부동산 투기 혐의로 기소됐던 손혜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대법원에서 1000만원 벌금형을 받았는데, 종부세 부과 대상자는 투기 여부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도 이보다 많은 세금을 내는 경우가 많다며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 폐지 공약했는데 논의 안해   윤석열 대통령은 종부세 폐지를 약속했는데. “윤 대통령은 지난 정부 때의 집값 폭등 때문에 당선된 거나 다름없다. 그런데 종부세 문제에선 아직까지 지지부진하다.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알기 힘들 테고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방향을 잡아줘야 하는데, 둘 다 아직 종부세를 폐지할 생각이 없는 듯싶다. 문재인 정부 때의 종부세 수준이 심했다는 데는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종부세를 정부의 ‘칼자루’로 봐서 일단 놔뒀다가 필요할 때 표심 확보 등을 위해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여당도 문제다. 세법 등에 대한 많은 공부가 필요한데 공부를 안 하려 한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2022.12.10 01:33

  • 나눔과 소통 이루는 3억 몸값 명품 ‘착한 피아노’

    나눔과 소통 이루는 3억 몸값 명품 ‘착한 피아노’

     ━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기부하는 피아노’ 첫 탄생   지난달 29일,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북한강을 바라보는 산자락 끝에 새로 지어진 아담한 공연장 ‘명선아트홀’에서 독특한 행사가 열렸다. 요즘 몸값이 3억원이 넘는 최고급 그랜드피아노 ‘스타인웨이’ 함부르크 D-274 모델의 언박싱 행사였다.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같은 대형 공연장에서 멀찍이 구경할 수 있는 피아노가 시골의 작은 홀에 터를 잡은 건 드문 경우다. 더욱 특별한 건 최초의 ‘기부하는 피아노’가 탄생한 날이기 때문이다.   일련번호 ‘618018’이라는 명찰이 붙은 이 피아노는 이날 ‘명선 1호’라는 이름을 갖고 세상에 나왔다. 피아노에 이름을 지어주고 ‘착한 피아노’로 인격화해 ‘아버지’를 자처하고 나선 건 (주)태인의 이상현 대표다. LS그룹 3세 경영인으로,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다. 2년 전 『대한민국 기부 가이드북』이라는 책을 내고 주변에 기부를 권하는 사람인데, 이제 피아노에게까지 기부를 시키겠다고 나선 것이다.   나눔 실천 어머니 호 따와 ‘명선’   이진상 한예종 교수가 함부르크에서 직접 골라온 ‘명선 1호’를 연주하고 있다. 뒷쪽은 ‘명선 2호’. [사진 명선아트홀] “‘명선(明善)’이란 이름은 어머니께 제가 지어드린 호인데 ‘밝은 마음으로 베푼다’는 뜻이에요. 음악을 사랑하시는 어머니는 지금도 매일 경비 아저씨께 간식 도시락을 손수 싸드릴 정도로 평생 베풂을 실천해 오신 분이거든요. 그 태도를 이어가고 싶어 공연장과 피아노에 어머니의 호를 딴 이름을 지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설계한 민현준 홍익대 교수의 설계로 최근 완공된 명선아트홀은 자연과 호흡하는 공연장이다. 북한강변을 따라 차를 달려, 고요한 산사를 찾아가듯 낙엽을 밟으며 잉어떼 노니는 연못을 지나면 아담한 2층 건물이 드러난다. 외벽은 노출 콘크리트에 삼나무를 덧대어 마치 목조건물처럼 자연의 느낌을 살렸고, 내부는 마룻바닥을 깔아 따뜻하고 편안한 가정집 분위기다. 특이하게 바닥에 면한 부분에 낮고 긴 유리창을 뚫어 외부 풍경을 끌어들였는데, 연주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관객의 시선에 숨통을 틔워주는 배려의 창문이란다. 이런 공연장을 본 적 있었나 싶게, 위치부터 구조까지 예사롭지 않다.   명선아트홀을 지은 이상현 (주)태인 대표 [사진 명선아트홀] “대형 공연장에서 세계적인 공연도 많이 봤지만, 관객이 주인공이라기보다 연주회를 위한 구성품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어요. 자연과 어우러지는 공연장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연주회를 꿈꾸게 된 이유죠. 보통 공연장에서 연주에 집중하다가도 순간적으로 지루해지곤 하잖아요. 그럴 때 천장만 쳐다볼 게 아니라 잠시 잔디와 낙엽을 바라보며 한숨 돌릴 수 있도록 창밖 공간까지 연주장의 일부로 이용했습니다.”   명선아트홀은 이름처럼 ‘나눔의 공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대관 등으로 생기는 수익 일부를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사용하고,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연주홀에서의 연습기회와 실전무대 경험도 제공할 계획이란다. 내년 봄 예정인 개관 공연 때는 ‘명선 1호’가 ‘착한 물건 1호’ 겸 ‘착한 악기 1호’로 데뷔한다. ‘착한 물건’ ‘착한 악기’란 이상현 대표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로 물건을 인격화시켜 기부의 주체로 삼는 개념이다. 자동차, 악기, 셰프의 칼 등 물건이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기부를 한다는 새로운 컨셉트다. ‘명선 1호’는 명선아트홀 대관 또는 외부 대여사업 등을 통한 수익 일부를 기부하게 된다.   자연 풍광을 즐기며 연주할 수 있는 ‘명선 1호’. [사진 명선아트홀] 이 대표는 이 피아노 언박싱 데이를 “명선 1호가 태어난 날로 기념하겠다”면서 진짜 딸을 낳은 아버지처럼 한껏 들떠 있었다. 독일에서 피아노를 직접 골라온 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피아노 전공생들을 초대해 기록용으로 첫 연주 영상을 촬영하기도 했다.   사실 이날 ‘출산’까지 산고가 길었다. 공급망 위기 탓에 명선아트홀 완공이 지연됐고, 명선 1호는 1년간 한국 총판인 코스모스악기 천안 창고 안에서 웅크린채 시간을 보냈다. 명선아트홀까지 이동을 위해 4톤 트럭이 동원됐고, 충격 방지 센서가 부착된 거대한 나무 박스에 3명의 운반 장인들이 산파처럼 달라붙어 조심조심 출산을 도왔다. 총중량 770㎏의 나무 박스에서 폭 156㎝, 높이 110㎝, 길이 274㎝의 480kg짜리 우량아가 마침내 위용을 드러냈다. 스타인웨이 피아노 운반에 도가 튼 사람들이었지만, 본체를 똑바로 세운 상태에서 다리를 조립하는 데만 30분쯤 걸렸다.   피아노 울림통 커 좋은 소리 내   총중량 770㎏의 ‘명선 1호’ 박스가 명선아트홀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명선아트홀] 피아노가 홀로 서자 이 대표는 감격한 눈치다. 지금도 레슨을 받고 있다면서 잠시 현란한 건반 테크닉을 구사하더니 “역시 손맛이 다르다. 터치가 좋으니 집에 있는 피아노로는 잘 안되던 테크닉이 잘 되는 느낌”이라며 흐뭇해했다. 그는 요즘 모차르트 협주곡을 치고 있을 정도의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인데 “클래식 애호가일 뿐이지만, 직접 연주할 때 복잡한 세상사를 잠시 잊고 집중하게 되는 것이 좋아서 꾸준히 레슨을 받고 있다”고 했다.   조율사인 코스모스악기 김종태 과장에 따르면 새 피아노는 3일 정도 출퇴근을 하며 손을 봐야 한단다. 첫날은 음의 높낮이를 맞추고, 둘째 날은 건반 터치, 셋째 날은 음색을 손보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제맛을 낼 거란다. “아직은 대기업에서 찍어낸 설렁탕일 뿐, 40년 노포의 구수한 맛을 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스타인웨이 공장까지 가서 ‘명선 1호’를 점지한 이진상 교수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황제’의 감미로운 솔로 파트를 연주하며 상태를 점검했다. 그는 “아직 조율 전이지만 홀의 층고가 높고 잘 울리게 설계돼 있어 좋은 소리가 날 것 같다”면서 “연주자들이 선호하는 공간과 피아노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아무나 함부르크에서 고를 수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상현 대표는 본인 취향보다 전문가 관점에서 최상의 피아노를 고르기 위해 지인인 이 교수에게 특별한 부탁을 했다. 이 교수는 10여년 전 독일 활동 시절 3년간 스타인웨이 공장에 취직해 조율사를 겸직했던 인연으로 직접 공장에 방문해 피아노를 골라올 수 있었다.   “마침 함부르크 연주 일정이 있어서 겸사겸사 갔죠. 똑같은 모델 7대 중에서 고를 수 있었는데, 사실 이건 준비된 게 아니었어요. 그 중에는 마음에 드는 게 없어 못 고르겠다 싶은 찰나, 구석에 마무리 세팅이 덜 된 피아노가 눈에 띄더군요. 그냥 한번 쳐봤는데 마치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었죠. 제가 스타인웨이에 있을 때 제작과정을 전수해 주셨던 스승을 모셔와서 뭘 골랐을지 맞춰 보라고 했더니 다행히 저와 마음이 딱 통했어요. 그래서 더 자신있게 고를 수 있었습니다.”   ‘명선 1호’가 보물인 이유는 ‘목소리가 좋아서’다. 피아니스트에게 피아노의 상태란 성악가의 목소리와 같고, 목소리에 중요한 건 ‘파워’라는 게 이 교수의 말이다. “파워라는 게 소리가 크다는 뜻이 아니예요. 울림통이 크고 열려있어야 하죠. 그릇이 커야 소리가 은은하게 더 길고 멀리 가면서 몸 전체를 감싸는 느낌이 들거든요. 울림통이 큰 피아노는 오늘 소리가 거칠더라도 조율을 통해 맞출 수 있지만, 울림통이 작으면 아무리 쉽게 잘 쳐지더라도 좋은 소리를 낼 수 없죠.”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쌍둥이의 존재다. ‘명선 1호’보다 며칠 먼저 이 홀에 도착한 ‘명선 2호’ 얘기다. 같은 함부르크 D-274모델이지만 4년 정도 독일 공연장에서 사용됐던 중고 피아노다. 이상현 대표는 “친자식인 명선 1호가 ‘기부하는 착한 피아노’가 되기 위해 대여 사업을 할 예정이라, 대여 기간 동안 홀을 지키기 위해 명선 2호를 입양했다”고 표현했다.   “좋은 피아노가 없는 지역의 작은 홀에서 악기 컨디션 때문에 연주자가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아쉽지 않나요. ‘착한 피아노’라는 이름에 걸맞게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입시나 콩쿠르를 앞두고 좋은 피아노를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일단 두 대의 피아노를 확보했으니 아마추어 투피아노 콩쿠르를 열고 싶은 것도 소박한 꿈입니다. 아빠와 딸이 투피아노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소통하며 음악을 만들어간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명선아트홀과 명선 1·2호를 통해 그런 나눔과 소통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중앙SUNDAY 유튜브 채널 「 - QR코드를 찍으면 언박싱 데이 현장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2022.12.10 00:57

  •  공고 나온 흙수저 성악가…“시골 길 무서움 떨치려고 새마을노래 열창 목 트여”

    공고 나온 흙수저 성악가…“시골 길 무서움 떨치려고 새마을노래 열창 목 트여”

     ━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원조 K클래식 스타’ 연광철     12월 9일 고양 아람누리에서 올해 마지막 공연인 리사이틀을 여는 베이스 연광철. 정준희 기자 이번주 참가자 모집이 마감된 JTBC 음악예능 ‘팬텀싱어’ 시즌4에 글로벌 지원자가 폭주했다고 한다. 청운의 꿈을 품고 유학을 떠났거나, 이미 유수의 오페라극장에 진출한 ‘월드클래스’들까지 국내 크로스오버 시장으로 유턴을 노리는 현상이 흥미로운데, 그만큼 세계 오페라 시장에서 승부하기가 녹록치 않다는 방증이다.   클래식 본고장인 독일에서 ‘캄머쟁어(궁정가수)’ 반열에 오른 ‘세계 최고의 베이스’ 연광철이 새삼 궁금해지는 이유다.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10년간 전속가수로 활동했고,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100회 이상 공연했을 정도로 바그너 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그는 ‘원조 K클래식 스타’다. 올해도 파리 오페라, 함부르크 슈타츠오퍼 등 최고의 오페라 무대를 섭렵하고 연말 마지막 무대로 고양 아람누리에서 독창회를 준비중이다.   “자기 이름 알리려고 음악하면 안 돼”   연광철의 성공은 어떤 상식적인 인과관계와도 무관한 독보적 케이스다. 충주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공업고등학교를 나왔지만, 건축설계기능사 자격증 시험에 떨어져 소를 판 돈으로 청주대 음악교육학과에 들어간 것은 유명한 스토리다. K클래식 성공 방정식이 아니라 자연이 길러낸 성악가랄까. “시골에서 산 3개를 넘어가야 국민학교가 있었죠. 하교 때 지나던 마지막 고개에는 산소도 아닌데 구멍이 뚫려있고 사기그릇이 굴러다니는 고려장 흔적이 있었어요. 낮에 출발해도 그곳을 지날 땐 깜깜해지니 무서움을 떨치려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다녔는데, 그러다보니 목청이 트인 걸지도 모르죠.”   전기도 안 들어오는 깊은 산골에 살았으니, 아는 노래도 없었다. 아버지를 따라 높은 산에 나무하러 가야 라디오 주파수가 잡히고 간혹 클래식 음악이 들렸다. 하지만 부를 수 있는 건 오로지 학교에서 배운 건전가요들이었다. “그 시절 학교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작사작곡한 ‘새마을노래’와 ‘나의 조국’만 열심히 가르쳤거든요. 몇 년 동안 고려장을 지나다니며 그 두 곡을 수천번 불렀을 거예요. 그러다 중학교 때 처음 슈베르트의 ‘마왕’ 같은 가곡을 알게 되고, 제 목소리가 어울린다는 걸 깨달았죠. 독일 관객 앞에서 처음 ‘마왕’을 불렀을 땐 옛날 생각도 나더군요.”   기능사 대신 교원 자격증이라도 따려고 성악 선생님 대신 피아노 선생님에게 노래를 배워 대학에 간 자칭 ‘촌놈’의 ‘고려장 셀프 트레이닝’은 메인 스트림에서도 통했다. 1987년 중앙·동아·음악협회 콩쿠르에서 모두 2등을 휩쓴 것이다. “서울 교수들이 지방대생에게 1등을 주겠어요. 가능성을 인정해 2등을 준거라 생각했고, 본고장에서는 어떨까 싶어 군 제대 후 곧바로 유학을 갔어요.”     1993년 도밍고 콩쿠르 우승 후 지휘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의 신임을 얻어 베를린 슈타츠오퍼 전속 가수가 됐지만, 단박에 명성을 얻은 건 아니다. ‘토스카’의 단역부터 시작해 주역을 맡기까지 7~8년이 걸렸다. 하지만 스타를 꿈꾼 적 없으니 조바심 내지 않았고, 묵묵히 일하다보니 스타가 됐다. “성악가는 몸을 통해 음악이 이뤄지니 사람이 성숙해야 되거든요. 기악과 달리 반드시 텍스트와 언어로 전해야 하니 문화에 더 깊이 들어가야 하죠. 저도 제대로 대우받기까지 10년 이상 무대에서 먼지 마시고 뒹굴어야 했어요. 단순히 좋은 학교 나와 콩쿠르 입상한다고 가능한 게 아니죠.”   지금은 바그너 팬들의 열띤 지지를 받는 스타지만, “인종차별에 관해선 따로 기사를 써야 할 것”이란다. “10년 전쯤 ‘돈 조반니’를 할 때 안나 네트렙코의 아빠 역할을 맡았어요. 연출자가 ‘이렇게 예쁜 러시아 소프라노가 어떻게 한국인 아버지를 가질 수 있냐’ 더군요. 지휘자가 ‘한국 남자가 러시아 여자와 결혼해서 낳을 수도 있지’라고 응수해줬죠.(웃음) ‘요한수난곡’의 예수는 아직도 큰 공연장에선 못해 봤어요. 연출자들은 지금도 예수가 금발의 백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다니엘 바렌보임, 크리스티안 틸레만 같은 거장들이 제 역량을 높게 사 줘서 커리어가 성장할 수 있었어요. 그런 분들과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큰 성취감을 줬습니다.”   그는 2010년 일찌감치 서울대 교수로 임용됐다. 학연으로 똘똘 뭉친 음대 교수직을 어렵사리 쟁취해 놓고 6년 만에 단호히 털고 나온 것도 상식 밖이다. “그땐 정착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죠. 가보고 싶은 곳에 다 가봤고, 해보고 싶은 노래도 다 해봤으니까요. 그런데 학교라는 게 쉽지 않더군요. 동료 교수들이 각종 문제에 휘말려 차례로 그만두게 되는 걸 목격하면서, 자리 때문에 내 노래가 망가지면 안되겠다 싶었어요. 직업이란 게 업을 잘해서 직을 얻은 건데, 직을 얻어서 업이 망하면 안되지 않나요. 미련없이 떠났죠.”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사진 연광철] 연광철은 다정하고도 까칠한 사람이었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따뜻한 벨칸토 발성으로 음악보다 인기에 취한 음악가들의 행보를 차갑게 비판하니 묘한 인지부조화가 발생했다. “명예롭기 위해 직업을 도구 삼을 수 없다”는 그의 신조는 ‘오직 음악’이었다. “음악인이란 좋은 음악을 드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지 자기 이름을 알리는 게 먼저가 되면 안 된다”면서도 거듭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라고 고개를 젓는 모습엔 웃음이 터졌다.   “클래식의 대중화라는 명분으로 많은 작업이 이뤄지지만 조기축구 멤버와 국가대표를 섞을 순 없잖아요. 요즘 성악가들을 대중문화로 끌어들이는 작업들이 얕은 감성 자극에 그치고 있어 안타까워요. 커피믹스로 커피를 시작했다가 점점 좋은 원두로 옮겨가는 게 아니라, 커피믹스와 원두커피를 섞어 먹고 만달까요.”   지금 유럽시장은 뛰어난 재질을 가진 한국 젊은 성악가들에게 좋은 기회다. 무대는 많은데 유럽인 성악 전공자가 줄고 있어 외국인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단다. 실제로 유수 오페라극장 합창단에는 한국인이 15~20명에 이른다고. “유럽 젊은이들은 연습실에 틀어박혀 힘들게 갈고 닦아야 하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으려 해요. 그런데 실력있는 한국인이 많으니 절호의 타이밍이죠. 극장에서 두 명을 뽑는다면 한국인만 뽑힐 것을 우려해 오디션을 따로 볼 정도로 우리 성악가들이 유럽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미디어에선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 주더군요. 후배들이 너무 단기 목표를 정해놓고 금세 유명해지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떠나지 않으면 좋겠어요.”   반면 한국에서 오페라 무대가 많아지길 바라는 건 비현실적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오페라를 보면서 자라지 않은 한국인들에게 수요가 없다는 얘기다. “저녁에 긴 시간을 할애하는 오페라를 보러 가는 게 쉽지 않은 사회잖아요. 퇴근시간부터 빨라져야죠. 독일의 경우 모든 관공서가 오전 7시에 시작하니 오후 3시에 퇴근하는 사람들은 오페라를 볼 여유가 있죠. 교육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부분이 너무 작은 것도 문제고요. 학교는 음악을 감상할 시간을 주고 가치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암기만 시키잖아요. 극장에서 어린이를 위한 음악회를 많이 만들어서 음악으로 즐기고 성장할 계기를 마련해 줘야 조금씩 관객이 생길 겁니다.”   가곡 매력은 ‘시 자체’이자 ‘육성의 힘’   9일 리사이틀은 가곡 종합선물세트같은 무대다. 독일 예술가곡은 물론, 탄생 120주년을 맞은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우리 가곡도 있고, 반주를 맡은 피아니스트 피터 오브차로프의 세계 초연곡 2곡은 연광철을 뮤즈로 작곡된 노래들이다.   “올해 초 유럽 유명 지휘자에게 독창회 반주자로 그를 추천받았죠. 연세대 교수인데, 러시아인이지만 독일어권인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해서 대화도 잘 통하고 공감대가 넓더군요. 독일 시인 테오도르 폰테나의 시를 보여주면서 의견을 구하길래 같이 시를 고르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맞춤형으로 노래를 완성했어요. 재밌는 건 200년 전 살았던 사람의 시가 마치 엊그제 쓴 시처럼 와닿는다는 거죠. 베를린 외곽에 살면서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소외감을 표현한 시들인데, 하루이틀만 SNS에 접속 안해도 뒤처진 느낌을 받는 요즘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에요.”   한국가곡 100주년 전후로 가곡 부흥 운동이 일고 있지만, 그는 한국 가곡이 발전하려면 시를 대하는 마음이 먼저라고 했다. 작곡에 있어 선율이 우선되다 보니 다양성이 부족하고 시어의 감동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선곡한 이건우의 ‘산’, 김순남의 ‘진달래꽃’은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던 곡들이란다.   “작곡자가 음성학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선율부터 만들면 아무 의미없는 음절을 강조하게 되곤 해요. 정작 감동은 시에서 오거든요. 예를 들어 애국가도 ‘동해물과’로 시작하는데 ‘동’을 낮게 시작하니 ‘동해’가 아니라 ‘해물’을 강조하게 되잖아요. 그런 걸 보완하려면 가수가 보통 잘하지 않으면 안 되죠. 강조할 음절에 제대로 액센트를 찍은 조용필의 ‘단발머리’가 잘 작곡된 사례죠. 히트한 이유가 다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발라드 가요와 다른 가곡의 매력은 뭘까. 바로 ‘시 자체’이자 ‘육성의 힘’이란다. “음악적 과장이나 기계의 힘을 떠나 시를 인간의 육성으로 표현한 곡들을 성악가들이 불러야 해요. 급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런 걸 지긋이 감상할 여유가 없으니 기계 사운드와 하모니로 빠르게 감동을 추구하는 게 대중가요죠. 순수하게 육성의 아름다움으로 시를 노래하는 가곡과 마이크로 노래하는 가요를 비교하긴 적당치 않아요.”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2022.12.03 00:01

  • “분초 다투는 외상 환자 응급치료에 민·군이 따로 있나요”

    “분초 다투는 외상 환자 응급치료에 민·군이 따로 있나요”

     ━  김남렬 국군외상센터장   김남렬 국군외상센터장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외상센터 내 응급소생실에서 외상 응급 환자 치료 절차 등을 설명하고 있다. 최영재 기자 158명의 소중한 인명이 희생된 운명의 그날 밤, 단 한 명의 젊은 목숨이라도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 의료인들이 적잖았다. 평소 군인 환자들을 주로 치료하는 군 병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10월 30일 0시25분쯤 국군수도병원 국군외상센터 당직 전화기가 울렸다. ‘이태원 참사’로 심하게 다친 응급 외상환자를 치료해줄 수 있느냐는 현장 구급대원의 다급한 전화였다. 의료진은 즉각 후송하라고 답한 뒤 준비에 착수했고, 조금 뒤 센터로 후송된 부상자 세 명은 곧바로 응급치료를 받으며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중상자 한 명은 압사에 따른 괴사 현상이 심해 조금만 늦었으면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은 덕에 3주 뒤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통상 군 병원은 부상당한 군인만 치료하는 곳인 만큼 민간인 환자의 이용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국군외상센터만은 예외다. 지난 4월 개소하면서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 응급 환자 치료에도 적극 나서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남렬 초대 국군외상센터장은 “교통사고 등으로 치명적 부상을 입은 외상 환자는 무엇보다 시간과의 싸움이 최대 관건”이라며 “민간 분야의 외상 응급치료 인프라가 포화 상태에 달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군이 치료에 동참하는 게 공공의료기관의 당연한 책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고대구로병원 등에서 20년 넘게 외상 치료 외길을 걸어온 김 센터장을 중앙SUNDAY가 만나 국내 외상 의료 체계의 현실과 개선 방안 등을 들어봤다.   어떤 계기로 민간인 치료에 나서게 됐나. “사실 10년 전 국군외상센터 설립을 준비할 때부터 민간인도 적극 치료하는 걸 염두에 뒀다. 외상 응급 환자의 경우 군인보다 민간인이 절대적으로 많지만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당시 ‘아덴만 여명작전’ 때 석해균 선장의 극적인 생환으로 외상 응급치료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군도 자연스레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자칫 군 환자 치료가 소홀해지진 않을까. “군을 위한 의료기관인 만큼 군 환자용 의료 자원은 당연히 확보해 두고 있다. 언제 발생할지 모를 군 외상 환자를 위해 전체 중환자실 중 절반은 항상 비워두고 있다. 다만 군 외상 환자를 모두 수용하고도 여력이 있으니 민간인 응급 환자 치료도 최대한 돕겠다는 취지다. 일반 환자와 달리 외상 응급 환자는 사고 지역부터 병원까지 얼마나 빨리 이송되는지가 가장 관건이다. 이처럼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데 군 병원과 민간 병원이 따로일 수 없다.”   국군외상센터 의료진이 응급 외상 환자를 헬기로 후송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센터장은 그러면서 “무엇보다 군 의무팀은 야전 후송 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24시간 가동할 수 있는 전용 헬기도 8대나 확보하고 있어 소방 헬기와 달리 기상이 안 좋은 상황에도 환자를 이송할 수 있다. 경기도 이천에서 환자가 발생할 경우 인근 부대에서 곧바로 헬기가 출동해 10분 내에 후송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또 전체 의료진 중 절반은 민간 병원 외상외과 출신 의사들로 충원했다. 외상 환자 치료 경험이 풍부할수록 민간인 환자를 보다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아덴만 작전 이후 이국종 교수와 외상 치료팀이 주목을 받으면서 국내 응급 외상 치료 시스템도 사회적 관심 속에 조금씩 개선돼 왔다. 권역외상센터도 전국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17곳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게 김 센터장의 진단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외상센터의 역할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할 때라는 점에서다.   권역외상센터가 도입된 지 10년이 됐다. “강산이 변한 만큼 의료기관과 관계 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향후 운용 및 개선 방향에 대해 냉철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지금은 권역외상센터가 17개 시·도별로 배치돼 있다 보니 수도권 등 환자가 몰리는 지역에선 여전히 치료받을 병원을 찾아 떠돌다가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는 경우가 적잖다. 외상센터 체계를 좀 더 세분화해 수요에 맞게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   비외상 응급 환자도 외상센터를 이용할 수 있게 문턱을 낮추자는 주장도 있는데. “지난 8월 근무 중 뇌출혈로 사망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대표적 사례 아니겠나. 치명적 부상을 입은 환자만 응급 환자가 아니다. 뇌·심장 질환으로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도 매우 많다. 하지만 규정상 물리적 외상 환자가 아닌 경우 수술과 입원 치료가 불가능하다. 응급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게 최우선이란 점에서 권역외상센터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외상 의료 체계가 한 단계 나아가려면. “지금까진 최대한 신속하게 환자를 이송해 수술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 왔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선 피가 멈췄다고 끝이 아니다. 응급치료 못지않게 재활과 트라우마 치료 등 사후 조치가 꾸준히 병행돼야 온전히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이를 감안해 국내 외상 의료기관들도 응급처치 이후 단계에 관심을 갖고 관련 인력과 시설을 충원해 나갈 때 응급 외상 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평가도 함께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2022.12.03 00:01

  • 잉글랜드 골 넣을 때마다 현대차와 함께 나무 500그루 심을 것

    잉글랜드 골 넣을 때마다 현대차와 함께 나무 500그루 심을 것

     ━  카타르 월드컵 ‘세기의 골’ 홍보대사 스티븐 제라드   ‘세기의 골’ 캠페인 저지를 입은 스티븐 제라드 모습. [사진 현대차]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의 영원한 캡틴, 영국 프리미어리그(PL) 역대 최고 미드필더 중 한 명, 세계적 축구 클럽인 리버풀 FC의 심장…. 축구선수 시절의 스티븐 제라드(42)를 가리키는 화려한 수식어다. 1980년 잉글랜드 리버풀에서 태어난 제라드는 98년 리버풀 FC에 입단해 2015년까지 이 팀에서만 504경기에 출전, 120골을 넣었다. ‘2004-05 시즌’에는 리버풀 FC가 모든 축구인들의 꿈의 무대인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는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A매치 114경기에서 21골을 넣었다. 2016년 은퇴해 축구지도자로 변신한 그의 커리어는 현재진행형이다. 중앙SUNDAY는 한국시간으로 21일 개막하는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을 맞아 현대자동차의 ‘세기의 골 캠페인’ 앰버서더로도 활약 중인 제라드를 단독으로 서면 인터뷰했다.   아동빈곤 문제 해결 등 다양한 사회활동   현역 시절 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골은. “단연 AC 밀란을 상대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넣은 골이다. 가장 멋있는 골은 아니었을지라도 가장 중요한 골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전반전까지 0대 3으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후반 9분 내가 헤딩한 공이 상대편 골망을 흔들며 분위기가 완전히 살아났다. 이후 우리 팀은 두 골을 더 넣어 동점을 만들었고,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제라드가 말한 경기는 챔피언스리그 사상 최고 명승부 중 하나로 회자되는 ‘2004-05 시즌’ 결승전 경기로,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치러진 이 경기에서 리버풀 FC는 경기력에서 우위를 보인 AC 밀란을 상대로 극적으로 승리해 ‘이스탄불의 기적’이라 불린다.   축구지도자로 변신하면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도 하고 있다. “인생 대부분을 리버풀에서 살며 주변의 청년과 아동들이 겪는 사회적 문제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2011년 ‘스티븐 제라드 재단’을 설립해 가정파괴나 경제적 불평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 및 아동을 돕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다. 아동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풋볼 포 체인지’(Football For Change), 사이버불링(온라인 집단괴롭힘) 문제 해결을 위한 ‘호프 유나이티드’(Hope United), 인종차별에 맞서는 ‘이너프 바이 PFA’(Enough by PFA)와 같은 프로젝트를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픽=양유정 yang.yujeong@joongang.co.kr 현대차 ‘세기의 골’ 캠페인 앰버서더(홍보대사)로 활약하고 있다.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나. “축구선수로서 항상 다음 골을 꿈꿔왔다. 팀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 이상으로 우리 삶에 있어 중요한 골이 있다면 바로 지구를 지키는 것이다. 이는 한 사람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힘을 합쳐야만 가능하다. 특히 월드컵은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벤트로, 월드컵을 통해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든다’는 골(목표) 달성을 위해 동참을 독려하고자 참여했다. 개인적으로 네 자녀의 아버지로서 미래 세대를 위해 세상을 보호하는 것이 인생 목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여정에 참여해 기쁘다.”   캠페인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가. “세기의 골 캠페인의 앰버서더인 ‘팀 센츄리’(Team Century)의 주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 박지성, 로렌초 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한 영향력을 전달하는 11멤버로 구성된 앰버서더의 주장으로서 사람들이 매일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고 싶다. 나의 팬 중 한 명이라도 나로 인해 이 캠페인에 관심을 갖고 동참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할 것 같다.”   이번 캠페인에는 ‘공약 이벤트’가 있다. 잉글랜드 대표팀 관련 공약도 있나. “공약 이벤트는 월드컵 본선 진출 32개국 중 응원하는 국가가 득점할 경우 실천할 ‘친환경 공약’을 내고 이를 이행하는 것이다. 이에 맞춰 나는 잉글랜드 대표팀이 골을 넣을 때마다 현대차와 함께 500그루의 나무를 심기로 했다. 더 많은 나무를 심어 지구를 지킬 수 있도록 잉글랜드 대표팀이 힘을 내줬으면 좋겠다.”   전 세계, 모든 분야가 환경 보호를 위해 나섰다. 축구계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나. “리버풀 FC의 경우 유엔의 스포츠 기후 행동 협정(Sports for Climate Action)에 서명했다. 장기적으로는 영국 정부 입법과 맞물려 탄소배출량 제로(absolute zero carbon emissions)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클럽 운영에 있어 탄소중립을 이미 달성했다. 전기·가스 공급에 100%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영국 북서부 지역 나무 심기를 통해서 탄소배출량을 상쇄했다. 이뿐 아니라 유니폼도 100% 재활용 폴리에스터 원단으로 제작한다.”   작은 실천 더할 때 최고의 골 기록할 것   제라드는 아동빈곤 문제 해결 등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사진 스티븐 제라드] 이번 월드컵에는 친환경 유니폼과 태양열 조명 등이 도입된다. 잉글랜드에도 도입하면 좋을 만한 사례가 있나. “카타르 월드컵이 첫 번째 탄소중립 월드컵인 만큼 잉글랜드 클럽들이 참고할 만한 요소가 많다. 친환경 공공 교통수단, 에너지 및 용수 효율을 강조한 경기장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태양열 조명, 재활용 소재 사용 등은 충분히 검토할 만한 요소라고 본다. 특히 친환경 차량 도입은 여러 클럽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하면 좋을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현대차의 후원으로 전체 승용·레저용 운영 차량 중 약 50%가 친환경차로 구성된다. 전기버스 10대도 제공된다. 매 시즌 PL의 원정경기를 모두 소화하려면 비행기나 차량 이동이 잦을 수밖에 없다. 이동에 따른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친환경 차량 도입을 고려해볼 만하다.”   축구계가 친환경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BBC 스포츠 설문조사 결과 ‘본인이 응원하는 축구 클럽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있다’라는 질문에 58%가 강력하게 동의했다. 전 세계 클럽이 앞장서서 축구로 하나 된 사람들에게 친환경을 위한 행동에 동참할 것을 알리고, 실제 모범을 보여야 한다. 물론 이러한 몇 가지 작은 행동들로 미래를 바꿀 수 있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난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의 수많은 작은 실천이 더해졌을 때 최고의 골(목표)을 기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제2의 제라드가 되기를 꿈꾸는 한국 청소년들에게 조언한다면.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선 큰 희생이 필요하다. 때로는 듣기 싫더라도 사람들의 말을 수용해야 하고, 친구들도 포기해야 한다. 자신이 정한 목표를 위해 집중해야만 한다. 다만 불행하게도 누구나 운이 좋은 건 아니다.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 축구에 대한 열정을 끊임없이 쏟아 붓는 한편 다른 교육도 꾸준히 받았으면 좋겠다.”     ■ 월드컵 공식 후원사 현대차, 승용·레저차 중 50% 이상 친환경차로 제공 「  ‘세기의 골(Goal of the Century)’은 카타르 월드컵의 공식 후원사인 현대자동차가 지난 4월부터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연대’를 목표로 진행해 온 캠페인이다. 선수들이 경기에서 힘을 모아 ‘역사적 골(Goal)’을 탄생시켰듯, 이번 캠페인은 ‘지속가능한 세상’이라는 ‘골’(목표)을 축구로 하나 된 전 세계인들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친환경 미래를 넘어, 건강한 세상과 지구가 지속되는 걸 목표로 한다. 이 같은 여정은 현대차의 ‘휴머니티를 향한 진보’ 비전을 현실화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그간 현대차는 2045년 탄소중립(사실상 탄소 배출 제로)을 목표로 탄소 저감에 힘써왔다.   캠페인은 축구·음악·예술·사진·패션 분야의 영향력 있는 11멤버로 구성된 ‘팀 센츄리(Team Century)’의 활동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팀 센츄리 주장이 영국의 전설적 축구선수 스티븐 제라드다. 제라드와 함께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켜 온 글로벌 아티스트 방탄소년단(BTS), 기후변화의 영향력을 외쳐 온 탐사보도 전문 사진작가 니키 우, 춤추는 로봇이자 사람을 돕는 로봇 스팟이 활동 중이다. 이들은 국제축구연맹(FIFA) 박물관 특별전시회, ‘더 그레이티스트 골’ 조형물 등을 통해 친환경, 탄소중립을 알리고 있다.   23년간 FIFA의 공식 자동차 파트너로 활동해 온 현대차는 카타르 월드컵 기간 동안 제공할 승용차 중 50% 이상을 친환경차로 제공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자선단체 커먼골과 파트너십도 맺었다. 취약계층 아동을 위한 축구 교육 등 ‘지속가능성을 위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카타르 월드컵 후원금과 팀 센츄리 멤버 계약금의 1%를 커먼골에 기부할 예정이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2022.11.19 00:20

  • 아이가 아니라 부모 욕심이 문제…불안 내려놓고 스킨십 하라

    아이가 아니라 부모 욕심이 문제…불안 내려놓고 스킨십 하라

     ━  천근아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천근아 세브란스 병원 소아정신과 교수가 두려움, 불안이 밀려올 때 쉽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버터플라이 허그’를 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저출산 시대, 아이가 너무 귀해졌다. 부모들은 하나밖에 없는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뒤처질까 노심초사하며 전전긍긍한다. 그런데 마음이 아픈 아이도 점점 많아진다. 주변에 자녀가 ADHD라는 사람도 꽤 있고, 올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때문에 주목받은 자폐스펙트럼장애는 무려 50명 중 1명이 앓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귀한 아이 마음을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까.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마음이 아픈 자녀를 둔 부모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명의로 꼽힌다. 진료 예약 대기가 무려 5년에 달할 정도다. 최근 본지 연재 칼럼 ‘아이마음 다이어리’를 묶어 신간 『아이 마음을 다 안다는 착각』을 낸 천 교수를 만나 아이의 마음 다스리는 법에 대해 물었다. 해답은 아이 마음이 아니라 부모 마음에 있었다.   최근 부쩍 소아청소년의 정신 건강이 주목받고 있다. “하나뿐인 아이를 오점 없이 키워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조금만 이상해 보여도 병원을 찾곤 한다. 온라인에 잘못된 정보가 많은 탓도 있다. 젊은 부모들이 모든 육아 정보를 온라인에서 얻으려다 보니 조금만 뒤처져도 과도한 불안을 느낀다. 사례 중심으로 정확한 정보와 전문적인 대처법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글을 쓴다.”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이 잘못된 건가. “가위질을 못한다고 소근육 치료를 받게 하는 건 양육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거다. 아이발달에 있어 눈 맞추고 정서적 교감을 하는 게 기초공사인데 인테리어부터 하면 어떡하나. 그럴바엔 차라리 아이를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이 집착이 되고, 집착이 욕심과 불안을 낳고, 고스란히 아이에게 푸시가 되어 사랑이 아니라 노여움의 제스처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건 자기 불안을 애한테 뒤집어씌우는 꼴이다. 엄마가 내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달라질 수 있다.”   무한경쟁 한국사회에 살면서 애들이 제정신이기 힘든 건 아닌지. “부모의 불안 때문이다. 무한경쟁이 애들이 아니라 부모 경쟁이다. 진료 때 주방놀이 세트를 주고 ‘같이 놀아보세요’ 하면 아이한테 ‘이게 뭐야?’ 묻기만 하는 부모들이 많다. 놀이를 하려면 감정교류를 해야되는데, 모든 게 테스트더라. 시간 남으면 줄넘기 학원까지 보내던데, 옆집 아이와 비교하는 엄마 욕심이 부족한 아이를 만든다. 다른 과목을 다 잘하고 수학만 못하는 아이에게 잘하는 것은 칭찬하지 않고 수학 못하는 것만 나무라면 자신감이 없어져 나중엔 다 못하게 된다. 존재 자체로 인정해주는 환경이라면 가난한 집에서도 밝고 낙천적인 아이가 나오고, 부모 배경이 훌륭한 집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아이는 부모의 반응을 보고 행동을 결정한다. 엄마가 내 존재가 아닌 내 능력에 따라 사랑할지 말지 결정한다면, 아이는 행복의 가치를 외적인 데서 찾게 된다.”   반항하는 사춘기 아이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사춘기에 정체성을 확립해야 되는데, 엄마가 짜놓은 스케줄대로 움직이던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해본 경험이 부족하다. 사춘기에 비로소 내맘대로 한번 살아보겠다고 반항을 하는 것이니 그런 부분을 존중해주고 믿어줘야 한다. 조금이라도 일탈하면 엄마가 불안해져서 몰래 아이를 감시하는데, 놔둬야 한다. 청소년기 뇌는 미완성 상태다. 자동차의 엔진과 같은 감정뇌는 끓어오르고 성호르몬은 폭발하는데, 브레이크 역할인 전두엽은 17, 8세가 돼야 공사가 끝나니 앞뒤가 안맞는 행동을 하는 게 당연하다. TV를 보며 사회부조리에 분노하며 어른스러운 척 하다가도 엄마가 분리수거하러 가자고 하면 발끈한다. 그러다 고2때 쯤 철이 드는 건 전두엽이 완공됐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지킬과 하이드처럼 앞뒤가 안맞는 게 정상이다.”   아이 행동 교정, 가족 전체가 노력해야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시킨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 ENA] 천 교수는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 영역은 한 아이를 중심에 두고 온 가족과 온 마을에 걸쳐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마음 다이어리’에서 ‘세상 속 아이들’로 칼럼 주제를 바꾼 이유기도 하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아이는 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가족 전체와 학교, 사회가 달라져야 아이가 비로소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빨리 변하니 어른들도 가치관 혼란에 빠진다. 중장년층은 어린 시절 ‘TV는 바보상자’라는 엄마 잔소리를 들으며 자랐는데, TV를 넘어 동영상 스트리밍에 점령되어 버린 요즘 세상에선 유튜브가 ‘정보의 보물상자’로 통하게 됐다. 이러니 부모들이 어린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고 편하게 볼일을 보면서도 죄의식이 없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영상의 바다에서 알고리즘의 파도에 출렁이며 자칫 정제되지 않은 콘텐트에 속절없이 노출되기 쉽다. 영상에 과다 노출된 아이들이 독서와 멀어지고 문해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도 당연한 결과다. 이런 모습을 묵과하는 사회가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세상이 급변하니 아이들 정신 건강에도 변수가 자꾸 생긴다. “요즘 디지털 만능은 경계해야 한다. 젊은 엄마들이 유튜브를 한없이 보여주면서 문제의식이 없는데, 영유아기는 주양육자와의 1대 1 관계에 따라 뇌발달이 좌우되는 시기다. 스마트폰 사용은 최대한 늦출수록 좋다. 어쩔 수 없이 사줘야 한다면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내 경우도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사주면서 절제가 안되는 스마트폰의 중독적인 속성에 대해 경고하고 시간제한을 스스로 체크해서 삼진아웃제로 반납하게 했다. 이후 줄곧 2G폰을 쓰다가 대학 입학 이후에야 스마트폰을 사줬다.”   부모 노릇도 우울하고 가끔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다. “요령껏 도망가야 되고, 배우자와 역할분담이 필수다. 요즘엔 진료에 남편들이 많이 따라오는 편이지만 상담에 적극적이지 않고 엄마의 노력을 폄하하는 아빠도 있다. 아이의 문제를 동일한 관점에서 공유하지 않을 때 엄마가 지쳐 있을 확률이 높다. 소아정신과에서 아이치료 보다 부모상담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를 교육하고 아이 속마음을 통역해주고 아이행동에 대한 부모의 대처방식을 교정해주는, 결국 가족전체를 치료해야 하는 일이다.”   유사자폐, 환경 교정으로 회복 가능   코로나19를 제외하고 올해 세상이 가장 주목한 질병이 있다면 ‘자폐스펙트럼장애’일 터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배우 박은빈이 똑부러지게 연기한 자폐 변호사 우영우가 너무도 사랑스럽고 똘똘하게 그려진 덕에 그늘에 가려져 있던 자폐스펙트럼장애가 화두가 되고 사회적 인식 개선 문제도 공론화됐다. 하지만 소수 케이스인 고기능 자폐가 부각되면서 보편적 자폐 가족들이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50명 중 1명꼴로 갖고 태어난다는 자폐 스펙트럼의 정체는 대체 어떤 것일까. 천 교수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전문가이기도 하다.   드라마에 그려진 고기능 자폐와 보편적 자폐는 많이 다르다던데. “부모들이 당신 아이는 뭘 잘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미디어의 한계점도 있다. 하지만 아주 중증이 아닌 이상 부모들이 70% 정도는 드라마를 긍정적으로 봤더라. 정상인 큰 아이가 자폐아인 동생이 귀막고 소리지르는 걸 창피해 했는데 이해하고 배려하게 됐다면서, 형제자매에게 이해도를 높여줬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한다.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져서 공공장소에도 못 데려갔었는데, 이제 귀엽게 바라봐주게 돼서 고맙다는 부모도 있었다.”   환경적 영향으로 자폐가 되기도 하는지. “자폐는 완전히 생물학적인 신경발달의 문제다. 자폐가 심하지 않았는데 부모의 정신건강과 결부돼서 자폐 합병증이 온다거나 심해질 수는 있다. 부모의 정신병리로 인해 아동학대 또는 방임이 일어날 경우 반응성 애착장애라는 자폐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아이도 있어서 그걸 가려내는 게 관건이다. 유사자폐는 환경 교정으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27년간 진료한 아이들 중 가장 인상적인 케이스를 꼽는다면. “초등 입학 전에 와서 20대 후반이 된 친구가 있다. ADHD와 자폐가 같이 있는데, 어릴 때는 걱정이 많았지만 미대를 나와 디자이너가 됐다. 20년 넘게 치료가 안 돼서 오는 게 아니라 인생을 관리받는 거다. 지금 잘 살고 있지만 삶은 스트레스의 연속이니까 어려울 때마다 코칭이 필요하고, 퍼포먼스를 더 잘하고 싶어서 소량의 약을 먹는 수준이다. 내가 병원을 몇 번 옮겼는데도 계속 따라와 준 그 엄마가 인상적이다. 한 사람에게 자녀를 계속 맡기고 상담받게 하는 것이 아이와 가족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실패 사례에서 배운 적도 있나. “사실 더 기억에 남는 건 초창기 실패 사례다. 지금은 냉담형 정서결여형이라고 정의된 품행장애를 가진 중학생이었는데, 부모가 조기유학을 보낸다면서 6개월간만 치료해 달라고 데려왔었다. 아주 잔인한 아이라 분명 부모와의 애착문제가 있었을텐데, 유학을 간다기에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고 흐지부지됐다. 유학을 말리고 입원 치료를 권했어야 했는데, 그 아이의 미래가 지금도 걱정된다.”   결국 부모의 태도가 관건인 것 같다. “아이에 대한 불안을 내려놓으시라고 당부하고 싶다. 아이들은 자기를 부모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다. 네 존재 자체로 보석 같은 존재라는 걸 낯간지럽더라도 끊임없이 표현해야 한다. 안아주고 뽀뽀해주는 스킨십도 멈추지 말라. 나는 군대 간 둘째 아들이 며칠 전 갑자기 휴가를 나왔길래 너무 반가워 뽀뽀해줬다. 지금도 싫지 않은 눈치다.(웃음)”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2022.11.19 00:01

  • 금융시장 발작 위기인데…‘하수구 정치’ 탓 경제 난제 쌓여

    금융시장 발작 위기인데…‘하수구 정치’ 탓 경제 난제 쌓여

     ━  ‘포퓰리즘 파이터’ 윤희숙 전 의원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1일 서울 중앙SUNDAY 인터뷰룸에서 위기상황 극복을 위한 정치권의 역할과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최영재 기자 “세계 경제의 판이 바뀌고 있는 엄중한 시기에 행정부와 입법부, 여·야는 초현실주의에 빠져있다.”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국민의 역량을 모을 수 있는 건 리더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리더십을 어떻게 보고 있나 생각하면 안타깝다”며 이렇게 말했다.   경제 위기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한국의 국가부도위험을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5년 만에 최고치(70bp)로 치솟았다. 미국이 네 번째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해 한·미 금리격차는 최대 1%포인트로 벌어졌다. 내년 대출금리 상단은 연 10%에 육박할 수 있다는 섬뜩한 예고까지 나온다. 윤 전 의원은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인 가계부채 문제가 채무불이행을 거쳐 금융권 부실로 연결될 수 있는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금 어디서 돌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   한국경제를 이끌어 온 무역에도 경고등이 커졌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누적 무역적자는 약 356억 달러로 7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수출 대들보인 반도체마저 3개월 연속 역성장 중이다. 이러한 때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한 이른바 ‘K-칩스법’은 국회에서 표류 중이고, 글로벌 유니콘 100대 사업 중 절반 이상이 국내에선 불법으로 싹을 틔우지 못하고 있다. 윤 전 의원은 이 같은 문제를 풀기 위해선 정치가 먼저 신뢰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기회를 품은 기업들이 발도 들여놓기 어려운 것은 우리 사회 갈등 구조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라며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지원해야 하는 정치권이 믿음을 얻지 못해 난제들이 쌓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 소신 발언으로 ‘포퓰리즘 파이터’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윤희숙 전 의원을 만나 한국경제의 위기 극복을 위해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이며, 연착륙 대책은 어떻게 세워야 할지 들어봤다.   정치인들이 초현실주의에 빠져 있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채권시장이 발작을 일으켰다. 긴급회의가 열리고, 급히 불을 끄기 위해 50조원이 넘는 돈을 투입하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정치는 전혀 딴 세상이다. 온통 청담동 술집이나 당 대표 얘기다. 굉장히 그로테스크한 느낌이다. 정치와 경제, 국민의 삶이 완전히 유리(遊離)돼 있다.”   정치는 왜 그렇게 현실과 동떨어졌나. “(정치인) 개개인이 얼빠진 사람들일 가능성도 있지만, 정치 문화가 그렇게 형성돼 있다. 지지층의 결집에 과도한 역량을 낭비하고 있다. 태평성대라면 정치인들이 좀 한심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불안이 덜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불안하고 예민한 시기가 아닌가. ‘하수구 정치’라는 말이 나왔는데 딱 그런 느낌이다. 문제는 지금 그 정치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는 거다. 이 위기 상황을 제대로 헤쳐 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국민들이 갖기가 어렵다.”   위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지금은 돌이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미국 금리 인상, 원자재 불안, 영국 트러스 총리 파문, 일본 환율 개입 등 수시로 돌이 날아들고 있다. 이 같은 돌이 밖에서 날아올 때 어느 정도의 충격을 받는가는 우리 체력에 달려있기도 하다. 충격이 증폭되고 있는 것은 가계 및 기업의 부실 등 우리 안의 허약함에 있다. 그간 좀비기업이라고 하는 수익성이 나쁜 기업들이 연명하도록 구조개혁에 소홀했다. 가계부채도 심각하다. 대출에 물려있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면 대외 충격에도 이렇게까지 불안하지는 않았을 거다.”   윤 전 의원은 최근 유튜브 채널 ‘윤희숙TV’에서 레고랜드 사태 관련 “삐끗하다 큰일 난다”며 정치인들의 헛발질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금융시장의 불안이 실물시장으로 옮겨 붙을 위험에 대한 엄중한 경고였다. 그는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전임자의 부실 사업으로 인한 덤터기를 피하려다 더 큰 덤터기를 쓰게 됐다. 세계 경제가 극도로 예민한 상황을 이해 못 하고 삐끗한 거다”고 말했다. 여기에 헛발질을 넘어, 일부러 돌덩어리를 얹는 행태도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양곡관리법, 노란봉투법 등 표만 얻으면 된다는 포퓰리즘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레고랜드 사태, 왜 이렇게 커졌나. “금융시장에 대한 정치권의 이해 부족과 지자체의 포퓰리즘이 겹쳐 사태가 커졌다. 전 강원도지사(최문순)는 부실사업을 잘 살펴보지도 않고 왜 덜컥 보증을 섰을까?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이어진 포퓰리즘이라고 본다. 지금처럼 금융시장이 예민한 때에 김진태 지사는 지급 거부로 비춰지는 언행을 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정치권의 이해 부족이 위험을 증폭시키는 기제가 된 셈이다. 전 지사 시절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강원도민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내 책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도, 도민들에 현 상황을 겸허히 알리고 책임을 지는 자세가 아쉬웠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급한 불은 끄고, 차후 근본 원인을 개선해가는 투트랙 전략이 중요하다.”   양곡관리법·노란봉투법은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는데. “양곡관리법은 단지 쌀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이슈다. 구조조정이 필요한 곳에 충격을 줄이면서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문제다. 쌀 수요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쌀을 다 사들여 더 생산량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이끌면 어떡하나? 농민 보호를 명분으로 한 포퓰리즘에 지나지 않는다. 쌀 재배 면적을 줄여가면서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쌀에서 다른 작물로 옮겨갈 때 더 안정적인 수익이 나도록 지원하면 된다. 노란봉투법은 불법 파업이라도 책임을 지우지 않겠다는 것인데 그런 법이 어느 나라에 있나? 지금까지 제대로 된 원칙이 있지도 않았지만, 굉장히 큰 돌덩어리를 계속 얹어 가면 안 된다. 만일 이번에 그릇된 법이 통과되더라도, 잘못된 것을 국민에게 계속 알리고 소통하는 노력은 지속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이런 비슷한 일이 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찾을 것이다.”   반도체 경고등이 커졌다. “우리 경제가 반도체에 편중돼 있다는 것은 다른 부분들이 약하다는 것이다. 반도체 규제도 풀고, 다른 산업도 풀어야 한다. 편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잘하는 쪽을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떨어지는 쪽을 끌어올려야 한다. 글로벌 유니콘 100대 사업 중 절반 이상이 국내에선 허용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설득과 이해조정을 통해서 새로운 시도를 열어주는 메커니즘이 약한 것이다. 신산업의 등장으로 피해가 우려되면 보상시스템을 만들고,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지원체계를 만드는 것이 정치권의 과제다. 그런데 정치권이 그런 믿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 지금 이런 많은 이해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큰 이유 중의 하나다.”   부동산 경기도 급락하고 있는데. “최근 1주택자·무주택자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50%까지 확대했다. 그런데 대통령 인수위 보고서를 보면, 지역 상관없이 70%를 공약했다. 경제 위기의 우려가 크지 않았을 때도 부동산은 너무 규제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풀어야 한다고 발표했었다. 규제 완화가 너무 천천히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재건축 규제 완화도 필요하다. 거래절벽이라는 게 수요자만 위축시키는 게 아니다. 공급자들도 위축돼 있다. 청년 주택이나 공공임대 공급 등 정부가 할 일을 꾸준히 하고, 약속했던 재건축 규제는 풀어줘야 한다. 현재 시장은 그러한 규제를 푼다고 해도 금융비용이나 시장 위축으로 크게 반응하기 어렵다. 급한 불이 꺼진 다음에 다시 부동산이 폭등하는 상황으로 가지 않게 하려면 변동성을 줄이는 노력을 지금 해야 한다.”   정치권, 위기 헤쳐 나갈 거란 믿음 못 줘   원희룡 장관의 “집값이 40%까지 떨어져야 한다”는 발언이 논란이 됐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토론이 많았다. 집값은 몇 년 새 급등했기에 떨어지는 게 자연스럽다는 얘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미 거래 절벽을 걱정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국토부 장관으로부터 그런 메시지가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당황했다. 거래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가 나와야 하는 타이밍이었다고 본다.”   가계부채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하나.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금리를 올려야 한다. 한동안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 국민도 이를 각오하고 대비해야 한다. 이미 많은 빚이 생긴 상황에선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바꾸고(안심전환) 서민금융을 지원하고, 채무 감당이 어렵다면 채무조정으로 가는 ‘3단계 매뉴얼’이 실질적인 방안이다. 안심전환 대출 등의 한도와 대상 등은 상황에 따라 시장 수요에 맞게 당국이 살피면서 조정해야 한다.”   정치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다. 국민의 신뢰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을 했다. 경제위기를 초래한 것은 정치권의 잘못인데, 국민들은 그래도 정부와 정치권을 믿고 잘 따라줬다. 국민들이 정치에 갖는 신뢰는, 매우 중요한 무형자산이다. 위기의식이 높아질수록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정제해서 믿음을 쌓아가야 한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지속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각종 발표와 공청회, 청문회 등을 통해 전문가그룹과 활발하게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 지금은 너무 조용하다. 사실 지금 국민들이 금리와 물가가 이렇게 올라가는데도 잘 참아주고 있다. 이제 정치가 보답을 해야 한다.”   윤희숙,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과 국민경제자문회 민간자문위원,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등을 지냈다. 2020년 ‘임대차 3법’ 추진 과정에서 “나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하는 국회 연설로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도 했다. 저서로는 『정치의 배신』 『정책의 배신』이 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2022.11.05 00:01

  • 엔화 폭락이 부를 아시아 외환위기 폭탄 언제든 터질 수 있다

    엔화 폭락이 부를 아시아 외환위기 폭탄 언제든 터질 수 있다

     ━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는 26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실개입으로도 엔화 가치 폭락을 막지 못하는 때가 오면 일본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준희 기자 엔화 폭락의 시대. 지난 20일 달러당 엔화 가치는 32년 만에 150엔이 무너졌다(엔·달러 환율 상승). 1990년 버블붕괴 이후 처음이다. 짐 오닐 전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엔화의 경우 ‘달러당 150엔’ 같은 심리적 저항선이 뚫리면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수준이 도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장 상황의 심각성은 일본 정부의 움직임에서도 알 수 있다. NHK는 21일 “일본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으로 투입한 자금만 5조엔(48조3000억원)에 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말부터 외환시장에 세 차례 실개입했다. 엔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달러를 내다팔아 엔화를 사들인 것이다. 투입한 자금은 총 9조3000억엔(약 90조원)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한·일경제 전문가인 박상준 와세다대 국제학술원(경제학) 교수는 “일본 정부는 달러당 150엔 선을 지키기 위해 계속 ‘복면 개입’(비공식적인 시장 개입)을 할 것”이라며 “엔화 가치 폭락으로 아시아 외환위기가 올 확률은 ‘북한이 핵을 쏠 만큼의 확률’이지만 그 확률은 최근 들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고 언제든 터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리먼 브러더스 사태)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일본경제의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경험했다. 엔·달러 환율이 150엔 선이 무너진 이때 엔화 가치 하락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26일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그를 만났다.   일 부채비율 259%로  OECD  1위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아시아 전체로 위기가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2008년 이후 가장 위험해 보인다. 지금은 일본 정부의 개입으로 150엔 선을 유지하고 있는데, 시장 개입으로도 더 이상 엔화 가치 하락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위험할 수 있다. 가령 엔화 약세로 자본이 대거 유출하고 국채가 안 팔리게 되면 일본 정부 입장에선 갚을 돈이 없으니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에 빠지게 되고, 이게 한국·중국 등 이웃 나라로까지 영향을 미치는 식이다.”   일본 정부가 계속 개입할까. “그렇게 본다. 일본 정부는 엔화 가치가 150엔 이하로 떨어지는 건 위험하다고 보기 때문에 150엔 선을 지키려고 할 것이다. 구두개입을 하거나, 직접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매각하고 엔화를 매입하는 식으로 실개입할 것이다. 실개입의 형태는 지금처럼 (복면 개입) 할 것 같다. 사실 현재 상황에서는 구두·실개입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실개입도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일본 정부의 주장처럼 외환시장에 단지 투기꾼만 있다면 방어가 되겠지만, 지금은 과거 엔화 가치가 내릴 때와는 상황이 좀 다르다. 일본의 무역 거래 결제에서 50% 이상은 달러로 이뤄지고 있는데, 일본은 무역적자가 심하다. 들어오는 달러보다 나가는 달러가 더 많다는 얘기다. 기업들이 공장을 해외에 두고 있다보니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로 들어오지 않는다. 달러가 더 비싸질 것에 대비해 기업들이 달러를 더 사 모으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달러를 사서 해외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이른바 ‘와타나베 부인’들의 움직임도 시작됐다(엔 캐리 트레이드). 엔화 가치가 내리면서 엔 캐리가 유행했던 2005~2007년보다는 거래 규모가 작지만 일단 시작은 됐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개입해 엔화 가치를 올리면 그때 달러를 대거 사들이고 이로 인해 다시 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엔화 가치 하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미·일 금리 차다. 금리를 올릴 수는 없나. “미국이 계속 금리를 올려 미·일 금리 차가 확대되면 일본 사람이나 해외 투자자 입장에선 일본에 돈을 놔둘 이유가 없다. 이게 엔화를 계속 약세로 만드는 요인이다. 이 상황을 막으려면 일본 정부는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자니 국채 상환 부담이 너무 크다. 그렇다고 엔화 가치 하락을 이대로 놔두자니 자본 유출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금으로서는 시장 개입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일본 통화정책이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채 규모가 너무 커져서 금리를 함부로 올리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제로금리를 고수하자니 엔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기준 일본 국채 잔액은 약 1225조엔(약 1경1908조원)에 달한다. 박 교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 정부부채 비율도 지난해 기준으로 25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서 가장 높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본은행은 지난 27~28일 진행한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초저금리 정책을 지속하기로 입장을 고수했다. 단기금리는 -0.1%로 동결하고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금리는 0% 정도로 유지하기로 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실개입으로도 엔화 가치 하락을 막지 못하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엔화 가치가 어디까지 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금리를 올리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 일본이 갚아야 할 기존 국채도 있지만, 신규로 발행하는 국채가 문제다. 신규 발행 국채는 금리가 오른 만큼 이자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갚아야 하는 기존 국채 규모보다 신규 발행 국채 규모가 더 크다는 것도 문제다. 만기가 도래하는 국채와 재정 적자분 만큼 신규 국채를 발행해야 하기 때문인데, 코로나19 이후 신규 발행 국채 규모는 계속 늘어 올해는 39조엔 수준이다. 가계·기업의 부채도 무시 못 한다. 부동산 대출도 꽤 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금리를 올리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올려야 하는 시점은 언제일까.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일본 국채 수요가 감소하기 시작할 때가 될 것이다. 이 방어선이 깨지면 정말 위험해진다. 일본 국채는 아시아 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일본 국채 기피현상은 ‘지진’이나 ‘핵미사일’급 파괴력을 가질 것이다. 지진이나 핵은 터질 확률은 낮지만 한 번 터지면 폭발력이 엄청나다.”   일 국채 기피는 ‘핵 미사일급’ 위력   그런 상황이 올까. “해외 투자자들의 일본 국채 매입 비중은 10% 정도다. 국채를 팔려는 사람이 늘면 국채 가격은 내려가고, 금리(채권 수익률)는 올라간다. 채권 금리가 오르면 일본 정부가 기준금리를 아무리 낮춘다고 해도 다른 금리까지 끌어 올리게 된다. 일본경제엔 타격이 생긴다. 신규 발행 국채 이자도 같이 오르니 일본 재정까지 압박이 가해지고, 결국엔 국채를 갚지 못하는 채무 불이행 사태가 될 수 있다.”   지금도 위험하다는 시각이 있다. “지금은 150엔 선에서 두 세력이 팽팽하게 공방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하나의 세력은 달러를 사들이는 엔 캐리 세력으로 미·일 금리 차가 커질수록 엔화 약세가 심화될 거란 심리를 가지고 있다. 다른 세력은 엔화가 싸니까 일본 자산에 투자하려는 해외 투자자다. 일본 경제는 아직 매력적인 투자 요인이 있고, 일본에 들어오지 않은 해외 소득이 많으니 엔화 강세 요인이 존재한다는 심리다. 엔 케리 세력과 해외 투자자들이 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한국은 1997년, 2009년 두 세력 간 힘의 균형이 깨지면서 원화 가치가 확 무너졌는데, 일본은 아직까지는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엔 캐리 세력으로 힘이 쏠리면, 외환·금융위기 정도의 충격이 오는 건가. “일본이 디폴트 상태가 되면 도미노처럼 아시아 전체, 신흥국 전체로 파장이 번져나갈 것이다. 디폴트까지 가지 않는다 해도, 엔화 가치가 지금보다 더 추락한다면 한국·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달러 유출이 일어날 수 있다. 예컨대 2016년 미국이 양적완화 출구정책(기준금리 인상)을 할 수 있다는 소문만으로 인도네시아·브라질 주식시장이 폭락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마찬가지로 일본 국채 가격이 하락하면 한국 국채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해외 투자자들이 일본 국채를 던지는 상황이라면, 한국 국채는 안전자산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과 일본, 중국은 특히 무역구조도 비슷해 통화 가치에 서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해도)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만큼 충격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외환·금융위기에 대한 내성을 가지고 있고, 한국이나 일본 기업의 기초체력(펀더멘털)도 1997년이나 2009년보다 강하다. 일시적인 충격은 오겠지만 기업 실적이 살아 있기 때문에 외환·금융위기 때만큼 혼란이 오래 가지는 않을 거란 얘기다.”   지금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정부-기업-은행 간 외환 수급 정도와 달러 수요를 면밀히 점검하고 모니터링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1년 미국 오바마 정부가 원유 사재기를 못 하게 한 것이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달러 사재기를 못 하도록 경고한 것이 그 예다. 한·중·일 간 역내 달러 사재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책 공조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미 또는 한·중, 한·일 통화스와프를 해 놓는 것도 좋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2022.10.29 00:43

  • “반히잡 시위에 남성도 대거 참여, 대중운동으로 증폭”

    “반히잡 시위에 남성도 대거 참여, 대중운동으로 증폭”

     ━  윤지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   지난 11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이란인들이 희생자 사진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란의 히잡 착용 반대 시위가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여성은 물론 남성들도 대거 동참하기 시작했고 기성세대와 대학생·청소년까지 가세하면서 시위가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이에 이란 정부가 강경 진압에 나서면서 정국은 더욱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국제인권단체인 이란휴먼라이츠(IHR)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첫 시위 후 4주간 최소 200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여성 인권을 둘러싼 논쟁은 지난달 14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을 계기로 최근 국내에서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여성 피해자 보호 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가운데 또다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공분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국내외 움직임에 대해 윤지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여성들이 더는 인내하거나 침묵하지 않고 자신의 보편적 인권을 위협하는 대상에게 단호히 책임을 묻겠다는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중앙SUNDAY가 지난 20여 년간 국제앰네스티와 유니세프·국경없는의사회 등에서 여성·아동·소수자 인권 보호 활동을 펼쳐온 윤 처장을 만나 국내외 여성 인권의 현실과 대책에 대해 들어봤다.   윤지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이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영재 기자 이란의 반히잡 시위가 예사롭지 않다. “그동안의 시위와는 분명 다른 점이 눈에 띈다. 2017년에도 이란 여성이 테헤란 거리에서 히잡 착용 반대 캠페인을 하다 체포됐고 2019년엔 여성 인권 변호사가 대중교통에서 히잡 강제 착용을 반대하는 법을 공개적으로 옹호했다가 징역 38년과 148번의 채찍질이란 중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이란 전역에서 반히잡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전례는 없었다. 이란 정부가 발포 명령까지 내리며 자국민의 생명권을 위협하고 나선 것도 극히 이례적이다.”   이란 남성들도 시위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의 잇단 사망이 트리거(방아쇠)로 작용하면서 남성과 중장년층의 참여를 대거 끌어냈고, 그러면서 당초 여성 인권 문제에 집중됐던 시위가 대중운동으로 순식간에 증폭됐다. 그만큼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당했다는 공감대가 여성은 물론 각계각층에 폭넓게 확산돼 있었던 거다. 현지 분위기로 볼 때 시위가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슬람 여성 인권 문제는 유럽에서도 끊임없이 논란이 됐다. 지난 6월엔 프랑스 법원이 이슬람 여성의 온몸을 가리는 수영복인 ‘부르키니’를 공공 수영장에서 착용할 수 없도록 판결하자 프랑스 내 이슬람 사회에서 “종교적 자유를 침해했다”는 반발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윤 처장은 “여성에게 특정 복장을 착용하도록 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특정 옷을 입지 말라고 규정하는 것 또한 여성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일을 쓸지 말지는 오롯이 개인의 자유 아닌가. 이는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와도 맞닿아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이란이든 프랑스든 여성의 히잡 착용 논의에서 정작 당사자인 여성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된 채 모든 결정이 내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반히잡 시위가 자칫 이슬람 혐오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히잡을 강제로 착용하도록 하는 이슬람 국가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아프가니스탄 등 몇 나라뿐이다. 그럼에도 히잡 착용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이슬람권 전체가 혐오의 표적이 되곤 했다. 히잡을 둘렀다는 이유만으로 무슬림 여성을 공격하는 사례가 늘거나 이슬람교에 대한 유언비어가 확산된 게 대표적이다. 여기에 최근엔 젠더 갈등까지 더해지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국내에서도 스토킹 등 여성에 대한 성범죄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한국 사회에서 젠더 폭력에 대한 논의는 여성들이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공포가 ‘실존’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하지만 2018년 미투 운동 이후에도 여성들이 느끼는 위협과 두려움은 그대로인 게 현실이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여성들이 무섭다고 해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너희들이 느끼는 공포는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 거야’라며 외면할 뿐이란 점이다.”   윤 처장은 물리적 폭력 못지않게 온라인 성범죄에 따른 여성 인권 침해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데 대해서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N번방 사건처럼 SNS의 발달과 범죄의 지능화로 사이버 성범죄 피해가 눈에 띄게 늘고 있지만 정부와 기업의 대응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인터넷상에서의 여성 인권 침해는 지속성과 폭발성·확산성 측면에서 오프라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만큼 하루빨리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인권 침해를 당한 여성이 가장 먼저 필요로 하는 응급 처방은 인터넷에 떠도는 자신의 사진과 글을 영구 삭제하는 거다. 하지만 이는 디지털 플랫폼 운영 기업의 도움 없인 불가능하다.”   유리천장 등 성차별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현실 세계에선 성별이란 한 가지 이유만으로 차별이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다. 성별이 같아도 처한 여건에 따라 차별 역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여성도 대졸과 고졸이 느끼는 사회적 대우가 너무 다르고, 대졸 여성도 결혼과 자식 유무에 따라 체감하는 차별 양상이 또 달라진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남자 대 여자, 이대남과 이대녀로 너무 쉽게 구분하다 보니 문제 해결은커녕 오히려 서로의 갈등만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 보다 섬세한 접근이 필요할 때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2022.10.15 01:00

  • 퇴직 후 고3처럼 공부, 기술·전문지식 익히면 40년 풍요롭다

    퇴직 후 고3처럼 공부, 기술·전문지식 익히면 40년 풍요롭다

     ━  은퇴한 은퇴전문가, 김경록 미래에셋 고문   ‘은퇴연구소장’에서 물러난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한 달 새 3㎏의 살이 빠질 정도로 충격이 왔지만, 다시 대학을 다니며 ‘제2의 일’을 통한 노후설계에 나섰다. 박종근 기자 몇 해 전 화제가 된 영화 ‘마션’에는 불의의 사고로 화성에 홀로 남겨진 한 남자의 재기발랄한 생존기가 나온다. 주인공 마크는 화성탐사 중 강력한 우주폭풍을 만나 대열에서 떨어져나간다. 구조팀은 4년 후에나 올 수 있는데, 화성에 남아있는 식량은 300일치뿐. 그는 구조를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식량을 아껴먹는 방법으로는 버티기 어려움을 깨닫고 전혀 다른 생존법에 도전한다. 화성에서 작물을 재배해 식량을 자체 확보하는 것이다. 김경록(60)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은 “이른 퇴직을 마주한 중장년은 ‘화성으로 가는 우주선’에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곳에는 이상한 미생물이 있을지, 먹을 것은 어떻게 구할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은퇴 후 세상과의 실전’이 당혹스러운 것은 은퇴전문가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은퇴연구소장이 은퇴했다. 지난 연말이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를 거쳐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소장으로 지난 9년간 은퇴를 연구하고 가르쳤던 그가 고문으로 물러났다. 그의 새 명함에는 ‘대표’ 대신 ‘경영자문역’이 새겨졌다. 은퇴 통보 직후 어떤 날은 90분짜리 외부 강의를 60분만 하고 내려왔고, 친구 딸 결혼식에서는 다른 가정에 축의금을 내는 실수도 했다. “한 달 새 3㎏이 넘게 몸무게가 빠져 체중계에 올라가기 겁이 났다”고 말했다.   퇴직 후 9개월. 실전 은퇴에서 느낀 가장 절실한 은퇴 준비는 어떤 것이었을까. 긴 노년생활의 길목에서, 그는 어떤 생존해법을 찾았을까. 김 고문은 “퇴직의 충격이 지나간 후 앞으로 40년의 소득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고 했다.   금융소득 줄어 근로소득 늘리려 고군분투   어떤 점이 가장 당혹스러웠나. “은퇴자산을 모았다고 해도, 매월 들어오던 월급이 0원이 된다면 충격은 상당하다. 다행히 당분간 고문으로 일할 수 있다. 바로 회사 문을 나선 사람들에 비해, 연착륙은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불어나던 잔고가 앞으로 줄어들게 된다고 하니 이를 운용하는 문제가 크게 다가왔다. 퇴직 전까진 노후자산을 축적하는데 목적을 뒀다면, 퇴직 후에는 그 자산을 효과적으로 운용 및 인출해서 일정한 소득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은퇴소득은 어떻게 만들고 있나. “퇴직 전에는 노후자산 축적을 위한 저축과 소비를 병행했지만, 이제 저축은 어려워졌다. 목표는 퇴직 전 모아둔 자산을 70세까지 유지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은퇴 자산을 헐어 쓰지 않으면서 강연 등의 일과 자산운용 수익으로 지출을 충당해보려고 한다. 초기부터 다소 어그러진 면은 있다. 주가가 폭락하지 않았나. 자산운용에서 나오는 금융소득이 줄어든 만큼, 근로소득을 늘리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70대까지 은퇴자산을 헐지 않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일까. “자칫 퇴직을 조금 일찍 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명이 다하기 전에 돈이 바닥 나 버리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주된 직장에서 퇴직하는 시기는 대개 자녀들의 교육비와 결혼비용 등 지출이 많은 시기다. 중산층이라고 해도 이때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궤도에서 이탈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가계는 50대까지는 소득이 지출보다 큰 상태였다가 60세부터 적자구조로 빠진다. 개인적으로 이 적자로 전환되는 시기를 70세로 늦추는 것이 목표이고, 도전이다.”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이 주된 직장에서 퇴직하는 평균 연령은 49.3세다. 하지만 실질 은퇴시기는 72.3세다. OECD 국가 중 실질 은퇴가 가장 늦다. 그때까지 격차가 무려 23년에 이른다. 김 고문은 이 시기를 ‘은퇴연옥’이라고 한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연옥(煉獄)에 빗댄 말이다. 연옥은 천국에 가기에 미흡한 사람들이 일정기간 동안 영혼을 정화하는 시간을 갖는 곳이다. 퇴직했지만 완전히 은퇴하기엔 미흡해, 일하면서 은퇴를 준비하는 은퇴연옥에 머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60대는 평균적으로 10명 중 6명은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늦게 직장에 진입하고, 일찍 퇴직하고, 자녀 관련 지출이 많은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그는 퇴직 전 펴냈던 저서 『1인 1기』에서 “퇴직 후 치킨집이 아니라 학교로 가라”고 당부했다.   학교에 가면 쓸모가 있을까. “예전에 일본에서 『은퇴남편 길들이기』 같은 책이 많이 팔렸다. 그런데 고령화사회에 접어들수록 ‘직업’ 관련한 책이 주목받고 있다. 본질적인 생존문제를 중시하는 것이다. ‘고3’이다 생각하고 1~2년 투자해서 노년에 양질의 일자리를 얻는 것이 40년을 풍요롭게 하는 ‘수지맞는 장사’라고 본다. 지인 중에는 금융회사를 나와 손해사정사 자격증을 딴 경우도 있고, 폴리텍을 졸업해 제조업 기업의 이사로 일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론 이번 학기부터 방송통신대 일본어학과에 등록했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일본 사회도 더 들여다보고 일본어도 공부해서 은퇴자산 관리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   김 고문은 퇴직 후에도 유튜브 방송이나 강연, 기고를 통해 금융전문가로 맹활약 중이다. 최근 그가 출연한 ‘41년만의 역대급 부자될 기회, 그냥 넘기지 마세요’라는 방송은 2개월 만에 조회 수가 94만회를 넘어설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퇴직 전까지 달려왔는데, 또 일해야 하나. “서머셋 몸의 『달과 육펜스』에서 육펜스가 죽도록 일을 하는 전반부에 해당한다면, 달은 후반의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쉼 없이 달려왔는데, 퇴직하고도 또 일해야 하냐고 물을 수 있는데, 차이가 있다. 인생 전반의 일은 ‘죽도록’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였다면, 인생 후반의 일은 삶을 풍성하게 돕는 일이어야 한다.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적어도 목표는 그렇게 두어야 한다. 단순 근로직이나 소자본 창업보다는 기술에 기반을 두는 게 좋다.”   노후에 중요한 세 가지는 돈·건강·일자리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그는 그동안 젊은 세대에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자본가’가 되라고 설파해 왔다. 올 들어 조정을 거친 주식의 가격은 무릎 아래 수준으로 내려왔고, 뒤를 이어 부동산이 조정을 거칠 것으로 봤다. 이러한 거품이 걷어지면, 주식과 부동산처럼 장기 성장하는 ‘자본’을 소유하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은퇴 자산은 어떻게 운용해야 할까.   은퇴자산, 운용전략은. “옛날 유대인은 ‘자산의 3분의 1은 자기 사업, 3분의 1은 부동산, 3분의 1은 현금에 배분하라’고 했다. 요즘으로 치면 주식, 리츠(부동산), 채권에 해당한다. 은퇴 자산은 특정자산에 치중하지 않고, 3대 자산에 분산투자가 바람직하다. 목표 운용 수익률은 평균 연 5%다. 최근에는 채권의 경우 국고채가 3%대 후반대, 회사채는 4%가 넘어 안정적 수익을 얻기 수월해졌다. 주식은 다시 상승장이 왔을 때 반등 가능성이 높은 종목(바이오·헬스케어·배터리·메타버스 등)으로 갈아타는 것을 추천한다. 고령화와 기술이 만나는 지점을 특히 주목하면 좋겠다.”   리츠를 주목한 이유는. “흔히 퇴직하면 부동산(상가) 사서 노후준비를 해보겠다한다. 그동안 모아둔 돈을 상가에 몰아넣었는데, 잘못되면 어떡하나. 리츠로 5~6개 종목에 분산해놓으면, 배당을 받고 분산으로 위험도 낮출 수 있다. 국내 상장 리츠도 국내 부동산뿐 아니라 해외 건물을 살 수 있다. 특히 내년쯤을 투자 적기로 본다. 배당수익률과 자산 가격의 상승이 기대된다.”   한때 은퇴자산 ‘10억원 만들기’가 유행했다. “50대의 평균 자산을 보면, 부채를 제외할 경우 집을 포함해도 5억원 수준이다. 10억원은 한참 먼 얘기다. 요즘 도시에 사는 중산층의 눈높이에서 ‘은퇴자산 월 400만원 만들기’를 얘기한다. 퇴직연금은 8.3%, 국민연금은 9%를 소득에서 저축하는 효과가 있다. 5000만원 소득의 직장인이 퇴직연금(IRP) 공제 한도(연금저축 합산 연간 700만원)까지 불입한다면 14%를 저축하는 셈이다. 30대 젊은 부부가 퇴직 때까지 꾸준히 연금 맞벌이를 한다면 도달 가능한 목표다.”   끝으로, 은퇴에 직면해 당혹스러운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 “지난해 말 퇴직하면서 2가지를 했다. 첫 번째, 페이스북으로 퇴직을 알렸다. 응원이 쏟아졌다. 퇴직하면 은둔하지 말고, 주변에 알리라고 말하고 싶다. 여러 정보와 일자리 기회도 얻기 유리하다. 두 번째는 노트를 만들어 아이디어가 있을 때마다 기록하고 있다. 블로그도 만들고, 회사 이름을 지어 사업자등록을 할 생각이다. 2~3년 일하고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70~75세까지 쭉 일을 한다는 관점에서 본격 은퇴 설계를 하면 좋겠다. 노후에 가장 중요한 3가지는 돈, 건강, 일자리가 아닐까 싶다. 이중 돈은 소득이 없고 저축이 어렵다면, 별 뾰족한 방법을 찾기 어렵다. 일하는 기간을 늘려야 한다. 1억원 자산으로 3%의 수익을 더 올린다고 해도, 이자는 연 300만원에 불과하다. 이보다는 월 300만원의 일자리를 갖는 게 바람직하다. 일자리가 있으면 건강도 증진되고, 사회적 관계도 유지된다. 건강과 일자리의 2가지 조건을 갖췄다면, 은퇴의 7~8할은 준비됐다고 할 수 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2022.09.17 00:01

  • “2025년까지 경기 불황 지속, 내년 2~3분기 고통 정점 올 듯”

    “2025년까지 경기 불황 지속, 내년 2~3분기 고통 정점 올 듯”

     ━  코스피 300에서 3000까지 지켜본 김한진 이코노미스트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시장의 착각이었나. 지난 여름, 미국 인플레이션 상승세가 둔화됐다는 소식에 시장은 반짝 미소를 지었다. 금리 인상 리스크 축소에 대한 기대감으로 지난달 코스피지수는 2530선까지 올랐다. 그러나 미 연준의 지속적인 긴축정책을 재확인한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잭슨홀 미팅’ 쇼크 이후 시장은 다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자산 시장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는 지금, 중앙SUNDAY는 국내 증시의 ‘300에서 3000시대’까지 굽이진 역사를 최일선에서 지켜본 ‘1세대 간판 이코노미스트’를 만나봤다.   거시경제 전문가로 손꼽히는 김한진 3프로TV 이코노미스트(박사)다. 그는 애널리스트라는 용어가 생소했던 1986년부터 36년간 주식시장에서 산전수전을 겪어왔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원·달러 환율이 2000원까지 치솟고, 코스피지수가 300까지 곤두박질쳤던 때 “주가가 곧 1000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의견을 꿋꿋이 냈고, 실제 주가는 반등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발생 초기엔 우리나라에 미치는 위험이 제한적일 것으로 봤지만, 위기의 진원지가 ‘전 세계 금융의 핵심인 미국의 월가’라는 점에서 충격이 컸다고 고백한다. 그는 투자업계에서 ‘영원한 현역’으로 통한다.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을 거쳐 삼성투자신탁운용 리서치헤드,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2013년부터 이코노미스트로 다시 거시경제 분석 현장에 돌아왔다.   원달러 환율은 1400원 넘을 수도   코로나19 후폭풍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가 휘몰아치는 현 시점에서 그는 또 위기를 이야기한다. “세계 경기는 후퇴에서 침체로 치닫고 있다”며 “지금은 개인 투자자가 주식시장에 섣불리 발을 담글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2025년까지 경제 불황이 이어질 수 있으며, 그 고통은 예상보다 더 강하고,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세계 경기가 심리적으로 가장 두렵고 실제로도 제일 심각한 시기는 2023년 2~3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매파 파월 쇼크’. 파월 의장의 잭슨홀 미팅 발언은 예상보다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면 당분간 제약적인 정책 기조 유지가 필요하다. 경제에 ‘고통’을 초래할 방식으로 금리를 계속 인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은 이러한 파월 의장의 매파적 발언에 화들짝 놀란 모습이지만, 김한진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의 기대가 앞섰던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과소평가와 낙관적 경제 전망의 오류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2년(7월)과 2023년 경제 전망치를 미국 2.3%→1.0%, EU 2.6%→1.2%, 독일 1.2%→0.8% 등을 제시했지만, 실제 성장률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경기 침체기, 신중한 접근에서 오는 흔한 낙관적 오류라고 해석했다. 다만 “예고된 위험보다 빗나가는 예측이 시장엔 더 충격을 줄 수 있다”며 “위험의 본질을 알아야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침체, 피하기 어렵나. “1950년 이후 12번의 경기 침체 중 10번이 3% 이상 물가상승 다음에 도래했다. 특히 이번 인플레이션은 복합적이고 뿌리가 깊다. 사상 유례없는 유동성 팽창과 공급 및 수요 인플레이션이 맞물려있다. 쉽게 소멸되지 않을 듯하다. 천천히 떨어질 것이다. 미 연준의 금리인상은 올 3월에 시작됐다. 당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이미 8.5%였다. 이러한 ‘지각 긴축’의 대가는 수요 파괴, 즉 성장률 둔화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 문제는 미국보다 디플레이션(deflation, 물가의 지속적 하락)이 우려되는 유럽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인해 신흥국의 피해가 더 클 것이란 점이다.”   세계 경제는 지금 어디에 있나. “주요 국가들은 이제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아니라, 디플레이션에 직면해있다. 중국은 지방정부의 부채 문제 등 구조조정으로, 유럽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경제불황 속 물가 상승)을 거쳐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들어설 위험이 크다. 경기침체의 고통은 저개발국이나 외환 취약국이 가장 심각할 수 있다. 파키스탄, 스리랑카로부터 남아시아국가들의 연쇄 부도로 번지고, 헝가리·체코 등 에너지 취약국도 상당한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당장 심각한 위험은 무엇인가. “당장 유럽발 에너지 쇼크로 환율이 요동칠 수 있다. 유로화 환율이 달러에 비춰 4~5% 빠지면, 원달러 환율은 1400원 위로 치솟을 수 있다. 일시적이겠지만, 환율이 1400원이 넘으면 공포스럽지 않겠는가. 일본 엔화의 사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강달러 시대, 슈퍼 엔저로 대응하고 있는 엔화는 투기 세력의 표적이 될 위험이 존재한다. 현재 엔달러환율이 138엔(8월31일 기준)인데, 150엔을 넘어간다면 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넘어가며 원화 가치가 폭락할 수 있고, 코스피지수도 2000 아래로 곤두박질칠 수 있다.”   강달러 영향은 언제까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사고의 진원지는 미국인데, 신흥국이 더 큰 고통을 겪었다. 그래도 그때는 중국이 고도성장기였고, 미국에서 사고가 터졌기 때문에 신흥국으로도 글로벌 자금이 들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경제는 올해보다 내년이 더 어둡게 예측되는 상황이다. 이 불안한 상황에서 글로벌 자금이 신흥국이나 유럽으로 가겠는가. 강달러 현상은 쉽게 꺾이기 어려워보인다. 세계 경기가 바닥에 접근할 때까진 달러 자산은 일정 부분 들고 가라.”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지금 위기는 공급 측면의 극단적 인플레이션 시기라는 점에서는 1, 2차 오일쇼크와 유사하다. 현재 주가의 거품이 적어 비교는 적절하지 않지만, 유동성 잔치 후유증이란 측면에서는 2000년 닷컴버블과 2008년 금융위기를 떠올렸다. 김한진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위기를 돌아보며 “모든 위기는 유동성 팽창 후 과도하게 부풀어올랐던 자산이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발생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채권, 일부 주식 그리고 부동산에 거품이 끼어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가계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고 봤다. 무분별한 부채 증가는 대표적 경제 불균형 현상 중 하나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부채 비율은 상환능력을 잃게 만들고, 그러한 불균형은 결국 신용위기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우리나라는 주요 국가 가운데 지난 20년간 부채 조정이 이뤄지지 않은 거의 유일한 국가다. 그 여파는 2002년 카드사태 때보다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어떤 국면에 있나. “우리나라는 내수와 수출의 동반 부진 위험이 크다. 내년 리세션(recession, 경기 후퇴 초기 국면에 나타나는 침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2023년 경제성장률은 1.6% 수준으로 떨어지고, 2025년까지 경기하강이 예상된다. 특히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는 2014년 대비 40% 넘게 폭증했다. 그 중 상당 부분은 부동산으로 흘러갔다는 점에서 부동산 경기 하강은 경기에 큰 파열음을 일으킬 수 있다. 처음에는 쓸 돈이 없어져 소비가 위축되는 수준이지만, 나중에는 빚을 못 갚는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가계 파산과 더불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집 매수)’을 주도한 20·30세대의 고통이 세대간 사회 갈등으로 치달을 수 있다.”   개인들이 수익을 얻기 어려운 장으로 봤는데, 어떻게 해야하나. “가능한 현금 비중을 늘리고, 당분간은 주식 시장에 섣불리 발을 담그지 마라. 현재 주식시장의 거품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코스피지수는 2200~2500 사이의 약한 박스장이 예상된다. S&P500의 적정 주가는 3600~3700선으로, 현재 주가(3955, 8월31일 기준) 대비 10% 추가 하락 위험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를 주가가 비교적 저렴한 시점이나 손실 위험이 적은 것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 박스권을 지나고 보면 대개 상승 종목보다 하락 종목이 많았다. 개인 투자자라면 추세적으로 저점을 높여가는 시기에 주식을 늘려가는 게 현명하다.”   현금 비중 늘리고 채권은 연말·연초에 투자   공포는 내년 2~3분기에 정점에 이를 것으로 봤는데. “올해는 인플레이션과 싸웠다면, 내년에는 경기침체와 부채의 고통에 짓눌릴 가능성이 크다. 내년 2분기쯤 미국의 애플과 같은 기업도 주변국의 소비 활동 저하에 따라 어닝 쇼크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 그렇게 경기가 바닥을 치고 침체가 완연해지면 비로소 금리 인상 시계는 멈출 것이다. 이번 사이클에서 연준의 마지막 금리 인상은 내년 6월로 예상된다.”   혼돈기 자산배분은 어떻게. “주식을 사서 물려있는 상황이라면, 종목 교체도 고려해보자. 고PER(주가수익비율)주나 밈주식(유행성 주식), 고부채 종목 등을 줄여라. 올해 또는 내년 주가 추가하락 전까지는 최대한 현금 비중을 늘려라. 내년 2분기 이후 바닥에 근접하면 현금과 달러 비중을 줄여 국내외 성장주와 채권 비중을 늘리는 전략을 고려해볼 수 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기업과 그 후보가 될 만한 기업에 계속 자본을 몰아주는 게임은 앞으로 가속화할 것이다. 코카콜라, 화이자, 펩시 등의 안정 성장주나 애플 같은 우량 성장주에 올라타 다음 강세장을 대비할 것을 추천한다. 국내 주식에서는 시스템 반도체 및 소재·부품·장비, K콘텐트, 신재생에너지, 바이오 시대 정신에 맞고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비교우위 섹터가 신성장동력으로 재평가받을 수 있다. 채권은 연말부터 내년 상반기가 향후 10년 내에 도래하기 어려운 투자 적기가 될 것이다. 단, 내년 한계기업 부도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부실등급의 회사채는 피해야 한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2022.09.03 00:01

  • “외환보유액 급감 우려스러워, 당국 개입은 위기로 비칠수도”

    “외환보유액 급감 우려스러워, 당국 개입은 위기로 비칠수도”

     ━  [SUNDAY 인터뷰]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   “물가 잡으려다 외환위기 오면, 경제를 잃습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는 최근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서며 ‘환율 방어’ 논란이 나오는 것과 관련 “인위적으로 누른 환율은 어느 순간에 점프하며 외환위기를 부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식 교수 올해 외환시장 첫날(1월3일) 1193원으로 출발한 원·달러 환율은 15일엔 장중 1320원을 돌파했다.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300원을 넘어선 환율에 ‘경제 위기의 시작’이라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지만, 김 교수는 오히려 ‘뉴노멀’에 가깝다고 봤다. “지난해는 무역 수지 흑자였고, 자본 유출 걱정도 적었는데 1년새 크게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크게 떨어진 만큼, 환율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말했다. 이제 환율 방어보다 수출 활성화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제언이다.   김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그림자를 다시 상기한다. 미국 금리 인상과 일본 엔저 공습은 과거 위기를 부른 때와 흡사하다. 정책운용 체계가 충분히 자리잡지 못한 정권교체기라는 점도 그렇다. 김 교수는 “이미 환율 전쟁이 시작됐다. 물가 안정에 초점을 둔 환율 및 금리 정책은 ‘전시 상황’에선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 유출·노사분규 땐 외환위기 가능성   외환위기가 우려될 정도로 심각한가. “미국이 단기간(1~2년)에 금리를 3% 이상 올린 경우 한국은 예외 없이 위기를 겪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이다. 하반기 미국이 금리를 올리게 되면, 신흥국 전체가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약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 28년 만의 충격이다. 부동산 등 자산 가격 버블에, 임금 인상 움직임으로 수출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 자본 유출이 일어나기 쉬운 여건이다. 여기에 노사분규까지 터지면 외환위기로 들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 외환보유액이 감소하고 있는데. “6월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382억8000만 달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2005억 달러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많다. 하지만 외국인 주식 투자 비중이 높고, 안보 위험도 높은 나라여서 외부 충격을 막기에 충분한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최근 외환보유액이 감소하고 있는 점이 우려스럽다. 지난해 10월에 비해 310억 달러가 줄어들었는데, 당국이 원화가치 하락(환율 상승)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한 때문으로 보인다. 하반기에 미국 금리가 더 높아질 것이기에 이런 식으로 개입하면 또 몇 백억 달러가 감소하게 된다. 이를 외국에선 외환위기의 시그널로 볼 수 있다. 한국 경제가 더 불안해지는 요인이 될 것이다.”   적정 환율은 어느 정도로 보나. “우리나라 펀더멘털을 제대로 반영하자면 지금보다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적정 환율은 무역수지를 적자로 만들지 않는 수준이어야 한다. 우리나라 펀더멘털이 나빠서 환율이 올라가는 것은 억지로 막는다고 되지 않는다. 만일 (적정 환율이 아닌데) 원·달러 환율 1300원 선에서 막고 있으면 우리나라 수출은 감소하고, 무역수지 적자에 따라 환율도 더 올라갈 수 있다. 당국이 외환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렇다면 환율 정책은 어떻게 펴야 하나. “지난 정부가 재정건전성 악화에도 외환위기를 겪지 않은 것은 무역수지 흑자와 한·미 통화스와프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는 이러한 안전판이 없다. 미국 금리 인상기에는 수출 증대와 무역수지 흑자 전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동안 물가 안정에 중심을 뒀던 패러다임은 바꿔야 한다. 지난 5월부터 대중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섰다. 5월 11억 달러, 6월 12억1000달러 적자를 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에 주요 산업을 넘겨주고 ‘20년 경기 침체’에 들어갔듯, 이제 우리가 중국에 밀리고 있다. 그 나라의 전망이 어둡다고 생각되면, 외국 자본은 투자한 돈을 한꺼번에 빼갈 수 있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를 통해 외환 시장 안전판도 마련해야 한다.”   한·미 통화스와프, 가능할까. “2008년과 코로나19 팬데믹 직후에도 그러했듯 신흥국 여러 국가와 그룹으로 맺었던 방식으로 통화스와프를 재개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통화스와프가 체결된다면 현재 1300원 선의 환율은 1200원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수입 물가도 낮아지고, 주가도 큰 폭으로 상승할 수 있다.”   일본 엔저의 역습을 경고했는데. “엔·달러 환율은 137엔 이상 치솟았다(엔저). 하반기 미국 금리가 올라가면 일본 엔저 현상은 심화할 수 있다. 일본과 경합 품목이 줄어들고 있지만, 엔저의 위력은 여전히 크다. 일본이 공격적으로 환율을 높여 수출 가격을 낮추면 그만큼 일본 제품이 잘 팔리게 된다. 하반기 엔·달러 환율이 150엔 가까이 높아지면, 서비스 무역도 흔들릴 것이다. 일본 여행이 늘어나면서 서비스 수지도 악화할 수 있다. 엔화 환율이 높아지면, 우리도 그만큼 원화 환율을 높여야 한다.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되면 외환시장의 불안은 더 커진다.”   일본과 중국의 대응전략에서 눈여겨볼 점은 무엇인가. “미국의 금리 인상기에 일본과 중국은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저금리·고환율)으로 맞서왔다. 그런데 이들 국가가 환율을 높일 때, 우리는 환율을 낮추려고 한다. 여기에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연관성도 있다. 환율이 높아지면 ‘3만5000달러’ 시대가 흔들린다. GNI는 한 해 동안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총소득을 인구수로 나눈 것으로, 달러로 환산된다. 같은 소득이라도 환율이 상승하면, 국민소득 감소로 집계된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이면 1인당 GNI는 3만 달러로, 1400원에 이르게 되면 2만8000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 ‘3만5000달러 시대’의 자긍심과 국가적 위기대응, 무엇이 더 중요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미 금리 3% 이상 올릴 때마다 한국 위기   수출에 초점 맞추면, 물가 불안은 어떡하나. “우리 사회 노사 분규가 큰 문제인데, 왜 그럴까. 돈의 가치가 땅바닥에 떨어진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물가 상승률 3%, 5% 하니까 돈의 가치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오인하는데, 주택 가격 상승률을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집값이 2배, 3배 올랐으면 임금도 그렇게 올라야 하는 것이다. 임금 인상 요구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외곽의 허허벌판에 아파트만 짓지말고, 강남처럼 인프라와 주택 공급을 병행해 주택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고통스럽더라도 고금리 정책도 펴야 한다. 한은이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인플레이션 기대를 낮춰야 ‘임금인상→물가인상’이라는 남미식 악순환으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있다.”   한국은행이 13일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한국은행이 더 늦기 전에 빅스텝을 단행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오는 26~27일(현지시간)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 한·미 금리 역전이 발생할 위험은 남아 있다. 그러나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하더라도, 그 차이를 줄이는 것이 현재로선 중요하다. 금리 역전이 자본 유출의 위험을 높이겠지만 반드시 자본 유출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미 통화스와프를 맺거나 무역 수지가 개선되면 금리 역전으로 인한 자본 시장의 영향은 줄어들 수 있다.”   ■ 김정식 「 한국적 현실에 맞는 ‘국제금융’ 분야를 개척한 국내 대표적 거시경제·금융 전문가다. 1990년 미국 클레어몬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객원교수, 한국경제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경제학부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   ■ 환율 치솟자 달러예금 늘고, 달러보험도 인기 「 “환율이 1300원대인 데도 달러 선호도가 높습니다. 자산가들은 매도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되레 조금 싸지면 비중을 늘리겠다는 문의가 많습니다.” 유상훈 신한은행 PWM압구정센터 PB팀장은 강남 부자들의 달러에 대한 관심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하반기 원·달러 환율이 1350원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10년 주기상 고점에 가까워 분할 매수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했다.   강(强)달러시대, 눈치 보던 자금이 다시 달러로 ‘U턴’하고 있다.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서 “비쌀 때 팔자”던 달러 매도 움직임이 보유 쪽으로 돌아섰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6월 말 달러예금 잔액은 567억 달러로 집계됐다. 달러예금은 지난 2월 말 587억 달러에서 4월 말 548억 달러까지 줄었지만, 5월 말에는 568억 달러로 늘어났다. 김현섭 KB국민은행 한남PB센터장은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제로금리였던 달러예금에도 연 2~3%대의 이자가 붙는다”며 “이자가 적더라도 안전자산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KB국민은행의 ‘달러 외화예금’은 6개월 만기 시 연 2.96%, 12개월은 연 3.25%의 금리를 적용해준다. 우리은행의 외화정기예금(달러)은 6개월 연 2.93%, 12개월 연 3.26%의 이자를 준다.   보험금을 ‘달러’로 받는 달러보험의 인기도 상승세다. 현재 AIA생명, 메트라이프 등 외국계 생명보험사에서 주로 판매 중이다. 노후대비를 위한 연금보험부터 사망 보장을 위한 종신보험 등 종류도 다양하다. AIA생명의 ‘골든타임 연금보험 II’ 상품의 판매 건수는 지난 4월부터 2개월간 1000여 건(보험료 1000억원 수준)으로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배나 증가한 규모다. 메트라이프생명의 ‘백만인을 위한 종신보험’은 달러를 통한 보장자산의 다변화를 추구하는 상품으로, 보험금 수령 시 달러와 원화 중 화폐가치가 높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메트라이프 관계자는 “위기 시 믿을 건 달러밖에 없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달러보험에 문의가 많다. 가입기간이 최소 5년에서 20~30년인 장기보험으로 보험 유지 능력과 보장 목적을 고려해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 배현정 기자 hyunjung.bae@joongang.co.kr

    2022.07.16 00:20

  • 기대인플레 꺾으려면, 정부 지출 억제해 솔선수범해야

    기대인플레 꺾으려면, 정부 지출 억제해 솔선수범해야

     ━  [SUNDAY 인터뷰] 김인호 전 무역협회장    김인호 전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물가 급등세를 꺾기 위해서는 방만한 재정 지출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32.5%. 1980년 10월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다. 두 차례 오일 쇼크가 덮쳤던 70~80년대 물가는 무시무시했다. 20%대 물가상승은 흔했다. 물가가 다락같이 오르니 국민 살림은 어렵기만 했다. 아무리 경제가 고성장을 해도 헛일이었다. 그랬던 물가가 80년대 중반 1%대로 떨어졌다(87년 2월은 0.5%). 당시 ‘물가와의 전쟁’의 현장 지휘관 격인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장(85~87년)은 김인호 전 무역협회장(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인호는 80년대 물가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한국 경제의 체질을 획기적으로 바꾼 ‘안정화 군단’의 멤버다. 김재익(전 경제수석, 아웅산테러로 순직), 강경식(전 재무부 장관), 김만제(전 경제부총리), 사공일(전 경제수석) 등이 주역이었다. 당시 물가정책국의 사무관이 추경호 현 경제부총리다.   이 ‘전설의 물가국장’을 만났다. ‘겨우’ 5%대 물가에도 휘청이는 한국 경제를 위한 처방책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물가를 확실하게 잡은 그때가 한국 경제를 비정상화에서 정상화로 돌려놓은 시작점”이라며 “그때를 기점으로 한국 경제의 정상적 운용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또 “인플레 국면에선 물가 심리를 잡아야 한다”며 “대통령과 정부의 물가안정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시는 전두환 대통령의 5공화국이었습니다. 독재권력의 완력이 있었기에 물가를 잡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동의하지 않아요. 그 전만 해도 정부가 35개 독과점 품목의 가격을 하룻밤 새 조정하는 일도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물가국장으로 있던 당시엔 정부가 민간의 개별 가격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심지어 공공부문도 가격조정이 필요한 합당한 경우에만 개입했지요. 가령 서울 지하철 요금은 올렸어요. 물가엔 다소 부담이 될지 몰라도 누적된 서울지하철 적자 개선을 위해선 불가피한 조치였으니까요. 물론 전제 조건으로 지하철공사에 뼈를 깎는 경영합리화 노력을 주문했고요.”   32%까지 치솟던 물가 1%대로 잡아   그런데도 어떻게 물가를 1%대로 잡을 수 있었나요.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삼은 정부의 정책 방향,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 사회적 공감대라는 3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지요. 차츰 국제여건이 나아지면서 수입 물가가 안정된 덕도 봤습니다. 무엇보다 전 대통령은 물가안정에 대한 의지를 실제 행동으로 보여줬어요.”   어떻게 말입니까. “당시 물가국장은 매 분기 전 대통령에게 물가동향을 직접 보고했습니다. 대통령을 일 년에 한 번도 독대하지 못하는 장관이 흔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통령이 그만큼 물가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방증이었지요. 다른 부처와의 의견 차이로 물가안정에 어려움이 있는 부분을 보고하면, 전 대통령은 대개 물가국장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대통령을 직접 만나 자주 보고하고, 대통령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실제 물가 관리에서 큰 힘을 발휘했지요.”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 대목에서 김 전 회장은 전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였던 김재익 전 경제수석을 소환했다. 전 대통령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신뢰받았던 인물. 그는 군인 출신 대통령의 머릿속에 물가안정의 중요성을 확고하게 심어준 안정화 정책의 설계자였다. 당시 김 수석은 물가안정을 위해 예산과 통화의 강력한 긴축, 가격 직접 규제의 최소화 등을 주문했다. 당시의 물가안정은 거시경제운용의 총합이었고, 온 나라가 물가안정이라는 하나의 목표에 매달린 결과물이었다.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으로 내다보는 기대인플레이션율도 뛰어오르고 있습니다. 기대인플레를 꺾으려면 무엇이 중요합니까. “결국 정부가 솔선수범해야지요. 정부부터 지출을 억제해야 합니다. 정부는 방만하게 쓰면서 기업과 국민만 씀씀이를 줄이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물가가 뛰면 사람들은 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심리를 잡는 것이 물가관리의 절반은 차지한다고 보면 됩니다. 시장을 경쟁적 구조로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경쟁적 시장에선 공급자가 쉽사리 가격을 인상할 수 없으니까요.”   당시 정부의 솔선수범은 빈말이 아니다. 정부는 84년 나라 예산을 동결했다. 사상 최초였다. 공무원 봉급도 동결했다. 그것도 국회의원 선거(85년)를 한 해 앞둔 시점에서였다. 당시 전 대통령은 “예산 동결 탓에 선거에 진다면 그런 선거는 져도 좋다”며 밀어붙였다(『대통령의 경제학』 이장규 지음). 그런 점에서 보자면 윤석열 정부의 출발은 재정 긴축과는 거리가 있다. 이미 소상공인들의 코로나 피해 보상을 위해 62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을 시행 중이고, 대통령 선거 기간에 쏟아낸 선심성 공약도 적지 않다.   “돈 풀면, 푸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분 좋지요. 그런데 나중이 문제입니다. 돈 풀면서 경제 안정 의지를 어떻게 보일 겁니까. 결국 돈의 양이 많으면 물가는 올라가고, 돈이 줄면 물가는 내려가는 겁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재정을 줄이는 겁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취약계층을 보듬는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원론적으로는 맞습니다. 예컨대 국가 방역 정책상 피해를 본 소상공인들에게 보상을 해주자는 취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경제 위기 때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물가가 더 중요하다. 만약 물가를 못 잡으면 결국 돈 푸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 인플레로 돈 가치가 떨어지면 국민이 다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런 식으로 국민을 설득하고 재정의 고삐를 조여나가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추경 규모를 절반은 줄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으로는 맞을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셈입니다.”   선심성 공약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포퓰리즘적인 공약은 걷어내야지요. 대통령이 직접 간곡하게 물가안정의 중요성과 선거 때 했던 공약을 지킬 수 없는 사정을  호소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해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내년 예산안부터 필요 없는 지출은 과감하게 줄여나가야 합니다.”   결국 공공부문 개혁으로 이어집니다. “지난 5년간 공무원이 대폭 늘었고, 예산도 방만하게 사용된 것이 많습니다. 정부가 필요 없는 일, 안 해도 될 일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대통령이 임기 5년 내에 공공부문을 개혁하기는 참 힘이 듭니다. 더구나 공무원은 법에 따라 신분 보장을 받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혁명적 발상과 수단을 동원해야 합니다. 일례로 정부가 산업을 책임진다는 발상을 없애는 것이 필요합니다. 미국엔 개별 산업을 책임지는 부처가 별로 없고, 세계 최고의 농업국가인 네덜란드에 농업 전담 부처가 없는 이유를 살펴봐야 합니다.”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은 인상요인이 누적돼 있습니다. 하지만 공공요금을 올리면 물가가 오를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 정부 때 올려줬어야 합니다. 요금 인상을 다음 정권으로 떠넘긴 것 아닌가요. 그렇다고 언제까지 공공요금을 붙들어놓을 수 있을까요. 결국 현실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가가 시급하다고 가격부터 규제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격을 억누르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가격 기능을 죽여버리면 이중가격이 형성되고 경제가 엉망진창이 됩니다. 장기적으로는 원전 사용 비율을 높이고 경제성이 낮은 에너지원 사용을 줄여서 단가를 낮춰갈 수 있지만,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다만 한국전력 등의 공공요금을 면밀히 검토해서 경영 효율화를 통해 흡수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흡수하도록 해야겠지요.”    방만해진 공공부문 개혁 절실   생활물가가 많이 오르다 보니 봉급생활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가 분출하고 있습니다. 노동계에선 최저임금 인상 요구도 거셉니다. “최저임금을 일률적으로 모든 기업체에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규제 아닌가요. 업종별로 경영 형태가 천차만별이고 지역별 사정이 다른데 일률적으로 같은 임금을 적용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겁니다. 무엇보다 최저임금을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구조와 관행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금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금리 인상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국제금융이 얼마나 이자율에 민감합니까. 0.1%만 높아도 돈이 몰려가지요. 한국 경제는 정말 ‘개찰구 없는 국제화’가 필요합니다. 유리할 때는 문 열고, 불리할 때는 닫는 것이 아니라 항상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거기서 해결책을 찾아가야 합니다. 금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데 우리만 올리지 않으면 돈은 빠져나가기 마련입니다. 물론 국내여건상 금리를 올리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요. 엄청난 가계 부채와 기업 부채가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대내외 균형이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럴 땐 원칙적으로 대외 균형을 우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 경제의 숙명이지요.”   김 전 회장은 윤석열 정부의 물가 대책에 대해 “지금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쓰고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물가를 왜 안정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배경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물가 안정은 궁극적으로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며,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가 합리적으로 선택하도록 유도해야 물가가 잡힌다”는 확고한 신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전설적인 물가국장 김인호의 생각은 들을수록 단순명료했다. ‘고삐가 풀린 물가를 끌어내려 안정시키려면 상당한 고통이 수반된다. 그러자면 우선 정부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 가격을 강압적으로 누르는 것은 하책이다. 시장경제를 제대로 하면 경쟁이 촉진되고, 경쟁을 통해 가격이 내려가게 된다. 그러자면 경제가 인기 위주의 정치논리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한국 경제는 왜 명쾌한 정도(正道)를 두고, 자꾸만 멀리 우회로를 택해 왔던 것일까. 만난사람=이상렬 편집국장, 정리=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2022.06.25 00:02

  • “내년엔 주택시장 거품 꺼지고, 공황 수준 침체 불가피”

    “내년엔 주택시장 거품 꺼지고, 공황 수준 침체 불가피”

     ━  [SUNDAY 인터뷰] ‘한국의 닥터둠’ 김영익 서강대 교수   김영익 교수는 내년 심각한 경기침체로 자산 가치와 물가상승률이 떨어지고, 금리를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올 것으로 내다봤다. 전민규 기자 “다가올 공황 수준의 침체에서 살아남으려면 ‘리스크를 역전시킬 판’을 지금 짜야합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연말이 오기 전에 자산시장 경착륙에 대비해야 한다”며 “내년 주식시장에 이어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진짜 위기에 휩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닥터둠(doom)’으로 불리는 김 교수는 2001년 9·11 사태 직전 폭락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거품 붕괴를 정확히 예고한 거시경제 전문가다.   지난해 6월 들어서는 증시 하락장과 다가오는 경기침체를 경고해 투자자들을 섬뜩하게 했다. “당시 경기를 보여주는 선행지수순환변동치가 고점을 찍고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코스피에 40% 가까이 거품이 낄 정도로 자산시장은 과대평가됐고, 부채 문제는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해 경기침체가 불가피하다고 직감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예측이 들어맞고 있다. 2분기 들어 국내, 해외 가릴 것 없이 주식시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김 교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늘고 있다.     22일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이코노미스트로 일하면서 제가 바빠지면 경기가 안 좋았다”며 이날도 부산과 경남 창원을 돌며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경제 전망을 강의했고, 앞으로도 전국 강연이 줄지어 있다고 전했다. 그는 “내년에는 이제껏 본 적 없는 공황수준의 침체가 불가피하다”며 “하반기 잠깐 주가가 살아나는 반등이 오면, 주식을 줄이고 국채로 갈아타라”고 말했다.    올 3분기 증시 반짝 상승 땐 주식 팔아야   주가는 어디까지 내려갈까. “자산가격은 연착륙보다는 경착륙한다. 내년 코스피 하단을 2200 정도로 예상한다. 일시적으로 더 빠질 수도 있다. 다만 현재 국내 증시가 이미 저평가 구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단기 반등이 올 수 있다. 3분기로 예상한다. 이른바 ‘베어마켓 랠리’다. 코스피 2750 정도까지 상승이 예상된다. 이때 주식 비중이 높은 경우 일부 정리하는 편이 좋다. 연말부터 다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연말 전에 주식을 다 팔아야 하나. “주식을 전부 팔라는 얘기는 아니다. 장기적으로 가져갈 일부 좋은 주식을 제외하고 정리하는 의미다. 지금 우리나라 주식은 저평가구간에 들어갔다. 수출금액으로 적정 주가를 추산해보면, 코스피가 지난해 4월에는 40%나 과대평가된 수준이었지만, 지난달에는 3% 과소평가된 국면으로 내려왔다. 좋은 주식이면 주가를 보지 말고 기다려도 좋다. 하지만 아직 바닥은 아니다. 내년에는 증시가 전반적으로 크게 요동칠 수 있음을 고려해 주식 비중을 줄이는 편이 낫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좋은 주식은 무엇인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등주’다,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차 등 업종 대표주는 기다리면 오른다.”   삼성전자는 ‘5만전자’가 됐다. 사도 되나. “중장기 투자라면 서서히 사도 된다. 특히 3분기에는 원화 가치가 상승하는 가운데 외국인이 삼성전자를 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적극적 매수 시기는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주가가 떨어질 때 이득을 볼 수 있는 인버스(inverse) 상장지수펀드(ETF)를 그만큼 보유해 리스크 관리를 한다. 충분히 바닥이라고 보일 때 인버스 ETF를 팔아, 주식을 더 담을 것이다.”   미국 기술주는 더 많이 떨어졌다. “지금 미국 기술주의 거품이 2000년대 ‘IT 버블’ 때보다 심각하다고 본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가 IT 버블이 붕괴되고 제자리를 찾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렸다. 물론 오랜 시간 참고 인내하면 다시 오를 수 있으나, 상당한 조정 국면을 거쳐야 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 경제의 성장축도 미국 등 선진국에서 아시아지역으로 이전되는 과정에 있다. 앞으로 10년은 미국보다 중국 주가가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달러 환율이 치솟고 있는데, 달러는 계속 보유해야 하나. “달러 가치는 장기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대내외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중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71%에서 지난해에는 59%까지 낮아졌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10년 이상 지속될 것이다. 달러 자산 비중은 줄이는 게 좋다.”   채권, 주식에 이어 부동산 버블이 꺼질 것이라고 했는데, 충격이 어느 정도일까. “거시적으로 물가, 소득, 전·월세 등과 비교해 적정 주택 가격을 추산해보면, 최소 30% 이상 과대평가돼 있다. 소득 대비 주택가격도 2008~2020년 평균 12배에서 지난해 말에는 19배로 크게 올라갔다. 지금 부동산 시장에 새롭게 진입할 시기는 아니다.”   원자재 가격은 언제 떨어질까. “곧 떨어진다. 원자재 가격은 우리나라 주가에 한 달 후행하는 경향이 있다. 코스피가 연저점을 갱신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 수출이 잘 안 된다는 의미다. 원자재 수요도 줄고, 이에 따라 가격도 떨어질 것이다. 경기 침체의 전조이기도 하다.”   그럼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위기가 올 때는 현금과 국채 등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들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위기가 왔을 때 주식이나 부동산 등 모든 자산을 싸게 살 수 있다. 기업도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면, 다양한 투자 기회 뿐 아니라 좋은 기업을 싸게 살 수 있다.”   채권을 강조한 이유는. “현재 3%대인 국고채 수익률은 적정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추정된다. 10년 국고채 수익률은 명목GDP(국내총생산) 성장률보다 낮은 편이다. 현재 명목GDP 성장률은 3% 정도다. 시장금리가 더 오르기 힘들다는 뜻이다. 2022년 하반기 이후는 시장금리 하락으로 채권투자에서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가계의 금융자산 가운데 주식 비중을 줄이고, 채권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의미다. 기존 채권 보유자는 상당한 손실을 봤겠지만, 서둘러 팔지 말고 매수를 확대하는 것이 좋다. 하반기 이후에는 경기둔화에 따른 수요 위축으로 물가 상승률이 점차 낮아지고, 장기금리가 먼저 하락할 수 있다. 만기가 긴 10년 국고채가 유리하다. 회사채는 내년부터 기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기업·가계 부채 외환위기 때보다 많아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자산배분은 어떻게 해야 하나. “개인적으로는 부동산 40%, 금융자산 60%에서 채권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주식에서는 거품이 발생한 미국의 비중을 낮추고, 향후 성장성이 높은 중국 전기차를 비롯해 인도나 베트남 등 다양한 투자처로 배분하고 있다. 곡물ETF도 장기 관점에서 분할 매수한다. 배당 투자도 매력적이다. KT 배당수익률이 4~5%, 포스코도 4% 안팎이다. 배당수익률이 은행이자보다 높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배당성향이 아직 낮기 때문에 더 올라갈 여지가 있다. 다만 위기가 오면 성장성이 높은 주식도 일시적으로 조정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고려해야 한다.”   내년에 닥칠 경제위기는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2000년대 들어 두 번의 경제위기가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였다. 2009년 세계경제는 -0.1%(IMF 기준), 2020년에는 -3.1%로 역성장했다. 2023년 세계경제는 그 두 번보다 더 심각한 침체를 겪을 것으로 내다본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국 경제가 수축국면 초기에 있다. 내년이 가장 어려운 해가 될 것이다.”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가. “2008년 이후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으로 채권, 주식, 부동산 등 모든 자산가격에 거품이 발생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07년 146조4000만 달러였던 세계 부채가 2020년에는 306조4000만 달러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위기를 전망할 때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고려하지 못했는데, 2월 전쟁 발발 후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당초 예상보다 경제성장률은 더 낮아지고 물가는 더 상승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 상승과 더불어 경기 둔화로 자산가격 거품이 붕괴되고 조만간 부채 문제도 드러날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자이언트스텝은 자산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는 물가안정이다. 경기는 나빠지고 있는데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연준이 6월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고, 앞으로 몇 차례 금리를 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금리 상승이 자산가격 거품을 터뜨리고 있고, 시차를 두고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경기침체를 초래할 것이다. 내년에는 심각한 경기침체로 물가상승률이 떨어지고, 오히려 금리를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올 것으로 본다.”   한·미 금리 역전 우려도 나온다.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금리는 미국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금리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경제성장률인데, 우리 잠재성장률은 매우 빠른 속도로 낮아지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선진국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2021년부터 2%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그만큼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고, 가계 또한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서 이에 대비해야 한다.” 배현정 기자 hyunjung.bae@joongang.co.kr

    2022.06.25 00:02

  • “민간 기업 뚫는 해커조직 득세, 산업 보안이 국가 안보”

    “민간 기업 뚫는 해커조직 득세, 산업 보안이 국가 안보”

     ━  [SUNDAY 인터뷰] 사이버 보안 전문가 에란 슈타우버   100만 달러(약 12억원). 지난 2월 국제 해커조직 랩서스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를 해킹한 뒤 빼돌린 기밀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 대가로 제시한 금액이다. 이들은 지난 3월 6일 삼성전자에도 사이버 공격을 감행해 총 190GB(기가바이트)에 달하는 보안 관련 소스코드(프로그래밍 설계도)와 파일을 탈취했다. 지난해 11월부터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랩서스는 마이크로소프트와 T모바일, 옥타, LG전자 등 전 세계 정보통신(IT) 기업은 물론 미국 연국연방수사국(FBI) 공격한 것으로 알려지며 악명을 떨쳤다.   글로벌 기업을 향한 사이버 공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랩서스 이전엔 래빌·아바돈·헤르메스 등의 해커그룹이 악명을 떨쳤다. 이 가운데 러시아와 연계된 해커조직 래빌은 지난해 3월 중국 IT 업체 에이서에 랜섬웨어(몸값과 소프트웨어의 합성어) 공격을 감행했다. 랜섬웨어는 악성프로그램의 일종으로 감염될 경우 특정 데이터나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데, 해커들은 이런 데이터를 인질로 삼아 몸값을 요구하곤 했다. 래빌은 당시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인 5000만 달러어치의 암호화폐를 요구했다. 넉 달 뒤인 7월엔 미국 IT 기업 카세아를 동일한 방식으로 공격해 7000만 달러를 요구한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사이버 보안에 주목하고 있다. 2022년 세계경제포럼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500대 기업 CEO는 올해 기업 성장의 가장 큰 위협으로 ‘사이버 보안’ 문제를 지목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사이버 보안 기업 울트라레드의 에란 슈타우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기업이 해커보다 한발 앞서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했다. 15일 한·이스라엘 컨퍼런스가 주최한 사이버인텔리전스 강연차 방한한 슈타우버 CEO는 이스라엘 사이버 방위군인 ‘8200부대’에서 선임 애널리스트와 프로젝트 리더를 역임한 사이버 보안 전문가다. 그가 창업한 울트라레드는 노키아를 비롯한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의 보안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 그에게 최근 증가하고 있는 사이버 공격에 대해 물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군 출신이란 이력이 특이한데. “계속해서 정부 쪽에서 일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경제를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해선 경제와 민간사업 분야의 힘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이스라엘은 익히 알려진 대로 혁신기업 창업 정신이 강한 나라다. 해커의 수준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데 이들을 막을 수 있는 기술이 군대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창업했다. 전 세계 사이버 보안 투자의 20%가 이스라엘 기업에서 나올 만큼, 이스라엘의 사이버 보안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도 사이버 공격을 종종 받는다. “한국은 주변 국가로부터 위협에 놓인 나라라는 점에서 한국과 이스라엘은 비슷한 입장이다. 주목할 부분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례에서 보듯 정부의 지원을 받은 해커 그룹이 민간 기업을 공격하는 일이 빈번해졌다는 것이다. 민간 해커가 넷플릭스나 아마존 같은 대기업을 뚫는다면 대단한 수준인데, 정부 차원의 공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떤 차이가 있나. “국가 차원의 엘리트 부대가 사이버 공격에 나서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공격을 반복할 수 있다. 더구나 최근 사이버 공격의 추세는 기업 한 곳이 뚫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공격받으면 협력사 정보도 유출될 수밖에 없어 관련 산업 정보가 통째로 넘어가게 된다. 기업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게 유관 산업을 보호하고 국가 안보를 지키는 일이란 얘기다.”   최근 사이버 위협이 증가한 이유도 이 때문인가. “전시 상황이 아니라면 민간 기업에 대한 사이버 공격은 민간 해커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민간 해커의 무기도 예전과 다르게 발전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분야에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등 해커 입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한 것이다. 먹잇감인 기업은 원자재 확보나 공급망 다변화 등으로 전 세계에 진출했고 네트워크 활용이 극대화된 상태다. 보안 취약점이 늘어난 것이다. 암호화폐의 성장도 주목할 부분이다. 전 세계적으로 암호화폐의 거래가 일반적인 일이 되면서 해커 입장에선 해킹한 정보를 팔아치우기 쉬운 상황이다. 래빌만 하더라도 달러가 아니라 암호화폐인 모네로와 비트코인을 요구했다. 이런 암호화폐는 거래 경로를 추적하기가 쉽지 않다.”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나. “해커는 다크넷을 하나의 커뮤니티로 활용한다. 다크넷은 특정 소프트웨어로만 접속할 수 있는 ‘오버레이 네트워크’(기존 네트워크 위에 별도로 구성된 가상 네트워크)인데 인터넷의 블랙마켓(암시장)과 유사하다. 삼성전자를 공격한 랩서스도 공격하기 전 다크웹을 통해 공격 대상 임직원 정보를 구매하기도 했다. 다크웹에선 이런 해커 그룹의 채용 공고도 올라오고, 다음에 누굴 공격할지 토론하기도 한다. 우리가 개발한 ‘딥인리치먼트’를 사용해 다크넷에서 구글의 g메일을 입력하면 25억 개의 g메일 계정이 다크넷에서 위험 노출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가운데 8만1000개 계정은 해커에 의해 판매 중이다. 이를 분석해 취약점을 확인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다.”   해커도 대응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사이버 공격과 방어는 항상 함께 성장한다. 한쪽이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내면 다른 한쪽도 그에 맞게 변화하곤 했다. 앞으로 또 다른 환경에 놓인다면 또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다만 지금 시점에선 사이버 공격이 진행되기 전에 사전에 막는 데 초점을 두고 있고, 기업도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기업입장에서 신경써야 할 부분은. “일단 해커들이 진화한 만큼 사이버 보안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10년 전엔 백신과 방화벽 같은 보안책을 사용했다면 5년 전부터는 회사의 브랜드와 직원 정보 등 빅데이터를 파악했다. 이제는 CISO(최고정보보안책임자)가 사이버 위협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대응하는 역할까지 맡는 추세다. 이 가운데 어느 수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기업 스스로 보안 의식을 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2022.06.18 00:20

  • 국내 골프장 85%·300만 회원 확보, 유니콘 기업 도약할 것

    국내 골프장 85%·300만 회원 확보, 유니콘 기업 도약할 것

     ━  정성훈 스마트스코어 대표   정성훈 대표가 지난 7일 서울 대치동 스마트스코어 대표실에서 골프 서비스 플랫폼 ‘스마트스코어’ 출시 배경과 전망 등을 설명했다. 정준희 기자 골프장에서 종이 스코어카드를 없앤 기업이 있다. 국내 최대 골프 플랫폼으로 성장한 스마트스코어(대표 정성훈)다. 휴대전화에 스마트스코어 앱을 깐 회원이 295만명, 스마트스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골프장이 350개를 넘는다. 대략 우리나라 골프 인구의 절반, 골프장의 85% 정도가 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개요는 이렇다. 캐디가 회원의 스코어를 태블릿 PC에 입력한다. 라운드가 끝난 뒤 스코어와 기념사진 등을 각 회원의 휴대전화로 전송한다. 회원은 모든 라운드의 결과를 확인하고 축적할 수 있다. 그날의 동반자, 특이사항, 날씨와 기분 등을 적어놓기도 한다. 원하면 스코어와 기념사진 등이 담긴 스코어카드를 출력할 수도 있다.   플랫폼 사업의 요체는 ‘모객’이다. 300만 가까운 회원을 확보한 스마트스코어는 골프장 관리, 부킹, 골프용품 유통, 광고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골프패션 브랜드 맥케이슨, 골프 클럽의 황제로 불리는 마제스티, 글로벌 1위 골프잡지 골프매거진의 한국판(골프매거진 코리아) 등을 인수하며 왕성한 식욕을 과시하고 있다.   서울 대치동에 있는 스마트스코어 본사 사옥에서 정성훈 대표를 만났다. 편안한 티셔츠 차림의 그는 “2014년 창업 후 8년 만에 국내 1위 골프 플랫폼이 됐으니 다양한 가치를 담은 골프 포털로 가겠다. 유니콘(기업가치 1조) 기업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겠다”고 말했다.   스마트스코어의 성공 비결은? “스포츠로서 골프의 본질을 파고들어 골프 문화를 바꾼 게 아닐까. 처음 골프장에 이걸 갖고 갔을 때 모두 ‘이게 되겠냐’고 했다. 그러나 ‘기억은 기록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처럼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끊임없이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한 게 주효했다.”   베트남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국내에서 성공한 모델에다 현지 특성을 가미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워낙 내기를 좋아해 관련 기능을 추가했다. 동남아는 IT 시장이 우리보다 좀 늦게 발달해 유료 서비스에 대한 거부감이 작다. 앞으로 동아시아를 넘어 서양권까지 진출할 계획이다.”   골프 유통 쪽으로도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는데. “그 동안 온라인 골프 마켓을 운영하고 퍼플핀이라는 브랜드로 오프라인 골프샵도 운영해 왔다. 이젠 남의 것 받아서 팔기만 할 게 아니라 직접 브랜드를 소유해서 발전시키고 싶었다. 플랫폼-유통-제조 분야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성장하고, 각 필드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골프 잡지도 인수했는데. “온라인 시대에 인쇄매체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오랜 전통을 가진 골프에서 글로벌 순위 1,2위를 다투는 종이 매체는 분명히 살아남을 거다. 골퍼들에게 유용한 콘텐트를 제공하는 건 골프 전문기업으로서 사회적 역할이기도 하다. 온라인 쪽을 강화해 오프라인과 균형 있게 발전시키려 한다.”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위한 실탄(투자 유치)은 확보하고 있나. “지금까지 1000억원 정도 투자를 유치했다. 전국 골프장에 깔려 있는 태블릿 PC만 4만 대에 이른다. 탄탄한 인프라와 플랫폼 파워에 힘입어 회사의 전체 가치가 1조원에 가깝다는 전문기관의 평가를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3~4년 이내 상장을 하고, 유니콘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다.”   스마트스코어 앱에 저장된 라운드 기록. 정 대표는 회계사 출신이다. 안정적인 회계법인을 박차고 나와 전혀 새로운 길을 열게 된 과정을 물었다. 그는 “회계사를 15년 정도 하면서 무조건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었다. 골프를 워낙 좋아했고, 골프장과 골퍼를 연결시키는 아주 도전적인 사업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반기에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기획이 있다던데. “네이버와 함께 ‘스마트스코어 전국 아마추어 골프 리그’를 창설한다. 올 가을부터 시작해 1년에 1000회 정도 전국 골프장을 대여해 회원끼리 경기를 하고 연간 성적을 누계해 플레이오프를 진행할 계획이다. 스마트스코어가 있기에 가능한 대형 프로젝트다.”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정 대표의 대답에서 그가 골프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앙UCN 유튜브 채널 “경기장은 넓은데 심판이 없는 게 골프다. 아무도 나를 안 보는 시간이 많기에 더 정직해야 한다. 4명이 5시간 동안 함께하는 게 골프다. 일주일 내내 연습하고 필드 나갔는데 어프로치에서 뒤땅을 치면 표정 관리하기 어렵다. 그럴수록 동반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필요하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UCN 대표 jerry@joongang.co.kr

    2022.06.11 00:21

  • “제 식구 감싸는 국회 윤리특위, 제재·견제 장치 필요”

    “제 식구 감싸는 국회 윤리특위, 제재·견제 장치 필요”

     ━  [SUNDAY 인터뷰] 노동일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장   노동일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장은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해 의원 징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영재 기자 최근 여야 정치권이 21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협상에 착수한 가운데 국회의원 징계 기구인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이번에야말로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의원들의 일탈 행위를 자체 징계하도록 돼 있는 윤리특위가 매번 ‘제 식구 감싸기’ 비판 속에 솜방망이만 휘두르며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한 데 대한 여론의 질타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1991년 국회의원 윤리강령에 따라 윤리특위가 설치된 뒤 31년간 가장 무거운 처벌인 제명을 결정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국회는 2005년 외부 인사 8명으로 국회의장 직속 윤리심사자문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이 또한 강제권이 없다 보니 실질적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월에도 자문위는 박덕흠·윤미향·이상직 의원을 제명해야 한다는 의견을 만장일치로 국회에 전달했지만 정작 윤리특위는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었다.   이에 대해 21대 국회 후반기 자문기구 수장을 맡은 노동일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장(경희대 교수)은 “윤리특위가 식물 기구로 전락한 건 징계를 제대로 하지 않아도 의원들에게 명시적 손해가 없기 때문”이라며 보다 실질적인 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1대 후반기 국회 출범을 앞두고 중앙SUNDAY가 노 위원장을 만나 윤리특위와 자문위를 정상화하고 국회의 기강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외부 기구는 의정 활동 간섭할 우려   윤리특위가 사실상 실종된 근본 이유는. “무엇보다 비윤리적 행위를 제대로 징계하지 않을 경우 이를 제재·견제할 기구가 없다는 게 문제다. 일반 기업을 예로 들어보자. 직원의 일탈 행위가 발생하면 조직 내 감사팀이 작동하고 징계위원회가 열린다. 같은 회사 동료를 징계한다는 측면에서 여기까진 국회 윤리특위처럼 ‘셀프 징계’다. 하지만 회사가 징계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고용노동부 등 담당 부처의 제재를 피할 수 없다. 공직 사회도 징계를 머뭇거릴 경우 감사원 감사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국회는 어떤가. 동료 의원을 감싸도 이를 제재할 장치가 전혀 없지 않나. 언론과 유권자들이 감시하고 심판할 수 있다지만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비상설 기구로 격하된 탓도 커 보인다. “윤리특위가 상설 위원회였을 땐 언제든 의원들의 비윤리적 행위를 심사할 수 있다는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2018년 비상설 기구로 바뀌면서 정해진 기간에만 심사할 수 있게 됐고, 활동 시한이 종료되면 징계해야 할 의원이 생겨도 심사할 기구 자체가 부재한 상황이 돼버렸다. 또 활동을 재개할 때면 특위 구성을 둘러싼 소모적 갈등으로 시간만 허비할 뿐이었다.”   자문위 의견도 반영되지 않는 구조다. “맞다.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문위도 윤리특위 산하가 아닌 국회의장 직속으로 뒀지만 현행법상 자문위는 말 그대로 자문 역할로 제한돼 있다. 지난 1월에도 의원 세 명을 제명하라는 의견을 전했지만 윤리특위는 지금껏 회의 자체를 열지 않고 있다. 윤리특위가 자문위 의견을 반드시 반영하도록 국회법이나 규칙을 개정해야 한다고 수차례 건의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는 실정이다. 그들에겐 전혀 급한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징계 규정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적잖다. “다른 나라의 국회 윤리 심사 기준을 보면 ‘이렇게까지 제한하나?’ 싶을 정도로 금지 행동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놓고 있다. 반면 우리 국회법은 단지 선언적 수준이다. 이젠 우리도 구체적 사례를 적시해 제재 효과를 높여야 한다. 과거 위반 사례를 명문화해 법에 저촉되는 행위가 뭔지 의원들이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의원들도 ‘내 사례가 법에 명시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경각심을 가질 수 있다.”   노 위원장은 윤리특위가 제 기능을 되찾으려면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금품 수수나 성범죄 등 형사적 책임을 질 수준의 범법 행위는 수사기관에 맡기고 의원들의 막말이나 보좌진에 대한 갑질 등 형사처벌에 이르기 어려운 일탈 행위를 징계하는 데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다. 노 위원장은 “요즘 국회를 보면 막말과 갑질이 난무하는데 정작 징계는 ‘품위 유지 의무 위반’으로 퉁치고 있다”며 “징계 규정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데 처벌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 처벌도 솜방망이 수준이다. “현재 징계는 경고, 사과, 출석 정지, 제명 등 네 가지뿐이다. 파면에 해당하는 제명과 나머지 세 개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 현역 의원이 30일 출석 정지 징계를 받았다고 해서 진지하게 반성을 할까. 국민도 과연 제대로 처벌했다고 생각할까. 의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활동비 삭감이다. 세비 3개월 감봉이나 의원실 운영 불이익 등 직접적인 처벌 효과가 큰 징계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    영국 감찰관제처럼 비위 예방 힘써야   의원들 징계를 담당할 독립적 성격의 외부 기구를 두자는 의견도 나온다. “그건 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헌법이 국회의 자유로운 의정 활동을 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 기구를 통해 강제 징계를 하면 사실상 국회의원의 활동에 간섭하는 게 된다. 또 자칫 옥상옥 기구로 전락할 수도 있는 만큼 국회 스스로 내부 기강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국회 윤리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김진표 의원이 21대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가 됐는데, 평소 윤리특위 징계의 실효성을 강조해온 점에 비춰볼 때 21대 후반기 국회에선 보다 진전된 방안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회 스스로 개혁하도록 맡겨 놓을 순 없다는 목소리가 크다. “국회가 바꾸고자 하는 뜻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보완할 수 있는 점이 많다. 국회법이나 규칙 개정이 첫걸음이다. 윤리특위에 의원 징계안이 접수되면 무조건 30일 내 처리하도록 강제하는 조항이나 전원 합의된 자문위 의견은 반드시 반영하도록 하는 조항 등을 신설하는 것만으로도 윤리특위의 실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비상설화된 윤리특위를 다시 상설화하는 것 또한 여야 합의만 되면 언제든 가능하다.”   사후 처벌은 물론 사전 예방도 중요한데. “영국의 경우 의회윤리감찰관 제도를 도입해 비위 행위 금지 교육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일탈 행위도 선제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우리도 국회 감사실이 있지만 행정직원만 감찰할 뿐이다. 당장 감찰 대상을 국회의원까지 확대하자고 주장하기엔 이르지만 사전 예방을 위한 국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것은 맞다. 과거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도 정부와 기업이 김영란법 교육을 엄청 하지 않았나. 윤리 준수 교육도 마찬가지다. 국회가 의원들에게 제대로 인지만 시켜도 일정 정도 예방 효과는 있을 거라고 본다. 지금은 윤리 교육 자체가 없는 게 현실이다.”   ■ 체포동의안 38건 중 8건만 가결, 비리 혐의 의원 방패막이로 악용 「 국회 윤리특위가 지난 1월 27일 전체회의에서 의원 징계안을 상정하고 있다. [중앙포토] 국회의원 면책특권은 의원 징계안이 국회 윤리특위에 회부되더라도 실질적 징계를 피할 수 있는 명분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잖았다. 또 다른 특권 중 하나인 불체포특권도 마찬가지다. 현역 의원이 형사 책임을 피하는 방패막이로 오·남용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헌법 제44조에 따라 국회 회기 중에만 불체포특권이 보장된다는 점을 이용해 임시국회를 소집하거나 회기를 연장하며 의원 체포를 원천 봉쇄하는 등 ‘방탄국회’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비판이 거세질 때마다 국회가 쇄신안이라며 가장 먼저 꺼내는 카드 역시 불체포특권 포기론이었다.   불체포특권은 국회 의정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대통령제 정부 형태에서 대통령의 권력이 의회의 감시와 견제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1948년 제헌헌법 제정 당시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이 명문화됐다. 그런 만큼 이런 ‘특권’이 삼권분립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노동일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장은 “불체포특권은 의원 개인이 아니라 의원‘직’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나친 특권이란 지적도 많지만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의원의 독립적 입법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행정부와 사법부 등 외부 간섭을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불체포특권이 그동안 의원 개인의 비리를 감싸는 방패로 악용돼 왔다는 점이다. 2003년 국회의원 7명이 100억원대의 SK 비자금을 불법 수수한 의혹이 불거졌지만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모두 부결된 게 대표적이다. 이후에도 저축은행 비리 혐의를 받은 의원 등이 불체포특권을 앞세워 구금을 피해 가는 사례가 잇따르자 불체포특권을 폐지 또는 축소하라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졌다. 실제로 2000년 16대 국회 이후 현재까지 본회의에 상정된 의원 체포동의안 38건 중 가결된 동의안은 8건(21.1%)에 불과하다. 대부분 부결(31.6%)되거나 철회 또는 임기 만료로 폐기(47.4%)되기 일쑤였다.   미국·독일 등 일찍이 의회 제도가 자리 잡은 국가들은 대의민주주의 실현이란 명목하에 불체포특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반역죄나 치안 방해죄 등 일부 혐의를 제외하고 상·하원 의원의 불체포특권을 보장하고 있다. 나치 독재를 경험한 독일도 국정의 감시자인 의원들의 불체포특권이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다. 반면 프랑스는 불체포특권을 축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국가 중 하나다. 프랑스 의회는 당초 불체포특권을 광범위하게 보장했지만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1995년 헌법 개정을 통해 의회 의장단만 동의하면 의원 체포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 불체포특권 적용 범위를 대폭 축소했다. 」   ■ 노동일 「 경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사우스웨스턴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주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대법원 사법정책자문위 전문위원과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장과 중앙선관위 선거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2022.06.11 00:20

  • “IPEF는 중국 배제도 견제도 아니다, 원하면 참여 가능”

    “IPEF는 중국 배제도 견제도 아니다, 원하면 참여 가능”

     ━  [SUNDAY 인터뷰] 왕윤종 국가안보실 경제안보비서관   왕윤종 국가안보실 경제안보비서관은 “IPEF 는 공급망의 규범을 정립하는 차원이고, 중국도 원한다면 참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영재 기자 ‘경제안보동맹’은 윤석열-바이든 첫 정상회담의 대표작품이다. 경제는 경제, 안보는 안보라고 여겼던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사실 국제현실이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산 원유·가스 수입을 금지했다. 러시아는 흑해 봉쇄로 우크라이나 밀 수출을 막았다. 그 결과 세계의 기름값과 밀 가격이 급등했다. 경제가 곧 안보인 세상의 단면이다. 한국도 창립멤버로 참여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도 이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경제안보동맹의 실무를 맡은 왕윤종 국가안보실 경제안보비서관을 25일 만났다. 경제안보 정책의 최일선 조율사인 그는 한·미 경제안보 대화 채널의 담당자이기도 하다.    IPEF에 한·일·호주 등 13개국 참여   경제안보가 왜 중요해졌나. “경제와 안보가 따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로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시대가 됐다. 경제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움직이는데, 수요 측면은 통화나 재정정책으로 어느 정도 대처가 된다. 하지만 공급 쪽 충격은 그렇지 않다. 1970년대 중동전쟁으로 인한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이 그런 경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지정학적 사건, 팬데믹 재확산, 기후위기와 탈탄소 움직임 등이 모두 공급 측면에서 거대한 교란 요인이 될 것이다. 이런 공급 쪽 충격을 총체적으로 관리하고 안정화하는 것이 바로 경제안보다.”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는. “한·미간 안보동맹이 한 차원 더 강화됐고, 핵 억지력도 강조됐다. 경제적 측면에선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선언한 점도 의미가 크지만 우주, 원자력 기술에서 협력 방안을 꽤 많이 도출해냈다. 특히 ‘첨단기술 동맹체제’ 구축을 위한 기반을 만들었다고 본다. 소형모듈원전(SMR)의 경우 FIRST(미국 주도의 제3국 역량강화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했다. 우주항공기술에선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을 만드는 데 미국이 적극 기술 이전을 해주겠다고 했다. 우주기술은 군사 기술과 병용된다는 이유로 미국이 지원을 꺼려왔던 분야다. 미국의 유인 달탐사 프로그램 ‘아르테미스’에도 참여한다. 다시 말해 기술동맹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같은 내용이 구체화돼 공동선언문에 명시됐고, 후속 조치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시중엔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내준 것은 많고, 받은 것은 적다”는 시각도 있다는 지적에 대해 왕 비서관은 “‘몇 대 몇’ 이라고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최소한 균형은 잡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대규모 미국 투자계획에 대해서도 그는 현시점에서 필요하고 맞는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왜 그런가. “우리 기업이 돈과 일자리를 미국 시장에 쏟아붓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시장 선점을 위해선 갈 수밖에 없다. 가령, 삼성의 파운드리 공장을 보자. 설계도면을 주면 그것을 찍어내는 작업이 파운드리인데, 삼성은 메모리 중심이다 보니 파운드리 강자인 대만 TSMC에 밀린다. 설계를 담당하는 고객은 주로 미국에 있기 때문에, 삼성 입장에선 고객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이 맞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 지역에 대규모 투자계획을 갖고 있다. TSMC를 잡기 위해선 미국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80% 투자는 국내에서 이뤄진다. 현대차의 경우 앞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 전기차 시장을 겨냥한 투자다. 조지아 지역에 투자함으로써 미국의 거대 전기차 시장 확보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또 삼성과 현대차 모두 국내 투자를 대폭 늘리기로 했다. 국내 일자리 감소에 대한 우려는 기우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번 회담에서 빠질 수 없는 키워드는 IPEF다. 지난 23일 출범한 IPEF에 한국은 일본, 호주, 인도를 포함해 12개국과 함께 창립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건 미국 주도의 IPEF 가 ‘중국 견제용’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왕 비서관은 “어떤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차원이 절대 아니다”라며 “IPEF는 공급망의 규범을 정립(rule setting)하는 차원이고, 중국도 원한다면 참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IPEF 참여의 의미는. “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만들어진 이후 약 30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무역환경이 많이 변했지만, 규범은 그대로다. 미국은 디지털·공급망·탈탄소 등을 반영한 새로운 규범체계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를 반영해 IPEF가 출범했다. 즉,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국제경제질서의 규범이다. 한국은 창립멤버로서 규범 정립에 참여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를 맞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중국이 반발하나. “규범 자체가 중국한테 부담되는 부분들이 많다. 예를 들면 디지털 통상에서 미국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이다. 중국은 그걸 차단한다. 디지털 환경에서 중국은 거대한 성이다. 구글, 페이스북도 중국에서 사업을 못 하지 않나. 카카오와 네이버도 그렇고.”   결국 중국 견제 성격 아닌가. “아니다. 중국의 선택이다. 중국이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도 개방하겠다’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태 때처럼 중국의 보복은 우려하지 않나. “IPEF에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7개국이 참여했다. 한국만 콕 집어서 보복하는 것은 최소한의 상식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게다가 우리가 중국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큰 협력 틀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왕치산 중국 부주석도 한·중 FTA와 한·중·일 FTA를 거론했다. 게다가 한·중·일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어 얼마든지 협의가 가능하다. 중국과의 탈동조화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공급망 관리에서 IPEF의 역할은. “공급망 문제는 한 나라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여러 나라가 파트너십을 갖고 해야 한다. 일례로, 인도가 갑자기 밀 수출을 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이 IPEF 프레임에서라면 대화가 되지 않을까. 각국이 조기경보시스템을 만들어 위험 요인을 조기에 포착하고, 대안을 공동으로 모색하자는 것이 IPEF가 추구하려는 핵심 중 하나다.”    중국, 한국만 콕 집어 보복 어려울 것   일본과의 소재·부품·장비 갈등 문제는. “양국이 IPEF에 참여하면서 상호 공급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풀릴 것으로 본다. 수출규제 대상에 오른 3개 품목(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은 현재 공급상 큰 불편함이 없다고 알고 있고, 서두를 필요 없다고 본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주목받은 또 다른 포인트는 한·미 통화스와프 논의 여부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달러당 원화가치가 1300원에 근접할 정도로 떨어진 것이 시장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그러나 통화스와프는 체결되지도 않았고, 정상회담 선언문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통화스와프는 정상회담에서 논의됐나.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가 (미국 측과) 협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상회담때 언급되기도 했다. 미국 측에선 통화스와프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결정 사항이어서 명시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대신 서로 금융시장을 모니터링해가면서 협력해가자고 공감대를 만들었다. 양국 공동성명에 외환 시장 안정성 부분이 기재된 것은 처음이다. 국제금융시장 상황이 나빠져서 Fed가 통화스와프를 한다면, 반드시 한국은 포함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왕 비서관은 인터뷰 말미에 “사실 시장이 잘 작동해서 공급적 교란 요인들이 많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경제안보라는 개념이 요구되지 않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흐르고 있다. 왕 비서관 자신도 현재의 공급망 위기에 대해 “상당히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어떤 물품도 금방 찍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IPEF 참여로 공급망 관리의 첫걸음을 뗐다. 하지만 공급망 문제는 친구만으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한국은 대표적인 자원 빈국이다. 정부는 이제 친구 국가를 더 늘리고 더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실력을 발휘할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 정부 차원 위기 대응 위해 ‘공급망 관리 기본법’ 필요 「 왕윤종 비서관은 “공급망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불가피하게 개입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때 정부 차원의 대응에 있어 기금 마련과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공급망 관리 기본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외적으로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로 공급망 관리를 하되, 대내적으로는 ‘공급망 관리 기본법’ 제정으로 대비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기획재정부에서 오는 9월 정기국회 상정을 목표로 ‘공급망 관리 기본법’(잠정)을 준비 중에 있다. 일본에서는 ‘경제안전보장추진법안’이 내년 1월 발효된다.   ‘공급망 관리 기본법’은 말그대로 ‘공급망 관리’에 있어서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한 경우, 타법률과 상충 없이 공급망 안정을 위한 비축, 다변화, 리쇼어링 등의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왕 비서관은 “정부가 공급망 관리를 한다고 기업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정보까지 공개하라고 하면 부담일 것”이라며 “이러한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기금 마련을 위해서도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가령 마스크 부족 사태가 일어났을 경우, 정부 조달로도 충분한 마스크 확보가 어려울 땐 기업에 요청해야 하는데 그럴 때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공급위기’ 품목을 비축하기 위한 재원도 필요하다.   정부는 ‘공급망 관리 기본법’을 통해 공급위기 품목을 상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공급망 교란 요인을 데이터화해 조기에 포착하는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해나갈 방침이다. 」   ■ 왕윤종 「 미국 예일대학교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국제거시금융실장,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을 지냈다. SK차이나 수석부총재, 현대중국학회장을 거친 ‘중국통’이기도 하다. 」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2022.05.28 00:20

  • “산업계와 기초과학 파트너십, 교내 스타트업 130개 성공”

    “산업계와 기초과학 파트너십, 교내 스타트업 130개 성공”

     ━  [SUNDAY 인터뷰] 우리 시반 이스라엘 테크니온 총장   테크니온 총장실에서 중앙선데이와 만난 우리 시반 총장. 저명한 물리학자이기도 하다. 최준호 기자 이스라엘 최고 명문 공과대학 테크니온(Technion- Israel Institute of Technology)은 ‘창업국가’로 이름 높은 이스라엘의 상징과도 같은 대학이다. 이스라엘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대다수가 테크니온 출신이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기업의 80%가 테크니온에서 개발한 기술을 활용했다. 이스라엘에 들어온 글로벌 기업들의 R&D센터가 이스라엘 북부 하이파에 몰려있는 이유가 테크니온에 있다. 지난 14일 이스라엘 제3의 도시 하이파에 있는 테크니온을 찾아 우리 시반(67) 총장을 인터뷰했다.   테크니온을 소개해 달라. “테크니온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1912년에 하이파 항구에서 가까운 카르멜산 척박한 비탈에 학교를 세웠다. 이스라엘이 건국(1948년)되기 36년 전이다. 테크니온이 다른 대학과 다른 점은 이스라엘의 안보와 경제가 대학의 DNA에 각인돼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도로·철도·수도시설과 같은 사회간접자본의 대부분이 테크니온 교수진 또는 졸업생들의 손에서 시작됐다. 건국 이후에도 우리 손으로 드론·인공위성·미사일 방어장치·항공 등 첨단산업의 붐을 일으켰다.”    대기업 CEO 대다수 테크니온 출신   이스라엘 북부 상업도시 하이파의 카르멜산 언덕에 자리잡은 테크니온대학. 정문에 히브리어와 영어로 교명이 적혀있다. 최준호 기자 혁신과 성공의 비결이 뭔가. “세 가지 측면을 이야기하겠다. 첫째는 ‘질문을 던지는 유대인 문화’다. 우리는 모든 것에 의구심을 품고 질문을 던진다. 이스라엘 부모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오늘 무엇을 배웠느냐’고 묻지 않는다. 대신 ‘오늘 좋은 질문을 했느냐’고 묻는다. 그게 과학적 탐구의 원천이다. 질문을 하는 문화는 유대인 문화에 아주 깊게 뿌리내려 있다. 둘째는 ‘필요’다. 이스라엘은 적국들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나라다. 천연자원도 거의 없고, 국토의 3분의 2가 사막이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발명해 내야 했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였던 셈이다. 셋째는 ‘열린 토론, 자유로운 사고방식, 의사소통이 원활한 문화’다. 테크니온은 매년 한 학기씩 중국에 교환학생을 보내는 데, 그때 이스라엘과 중국 학생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스라엘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고, 교수가 하는 말에 의구심을 품는다. 반면, 중국 학생들은 질문 없이 조용히 앉아만 있는다. 질문하는 것은 교수의 권위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요’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스라엘을 흔히 ‘스타트업 네이션’(StarT-up Nation:창업국가)라고 하는데, 국가 자체가 1948년에 설립된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 있다. 초대 총리 벤구리온이 스타트업 이스라엘의 창업자인 셈이다. 건국 당시에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고, 인구도 60만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아랍 적국에 둘러싸여 수많은 도전과제를 이겨내고 살아남아야 했다. 이제 이스라엘 인구는 9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렇게 성장한 국가를 찾기 힘들지 않나. 맨땅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국가는 하나의 스타트업이라 할 수 있다.”   테크니온은 졸업생의 4분의 1이 창업을 한다고 들었다. “이스라엘에는 삼성 같은 대기업이 없다. 때문에 스타트업을 하는 게 굉장히 자연스럽다. 그러다보니 누군가 아이디어를 가지고 군대나 고등학교·테크니온 등에서 사귄 서너 명의 친구들과 창업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렇게 스타트업이 시작되고 벤처캐피털의 지원을 받게 된다. 테크니온에는 ‘T허브’라는, 학생들에게 창업 멘토링을 해주는 기관이 있다. 또 비즈테크라는 이름의 스타트업 경합대회도 있다. 여기서 선발되면 투자뿐 아니라 멘토링도 받을 수 있다.”   테크니온은 뛰어난 기술 상용화 실적으로도 아주 유명한데. “테크니온에는 기술이전 등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T-3라는 이름의 산하기관이 있다. 지금까지 아주 성공적으로 활약해오고 있다. T-3에는 다양한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 뿐 아니라, 분야별 상용화 담당 전문가들이 포진해있다. 이들은 다른 분야로 순환근무를 하지 않고 전문성을 쌓는다. 시간이 지나면 같은 분야에서 승진할 뿐이다, 이런 창업 생태계 덕분에 테크니온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은 130개가 넘는 스타트업을 보유하고 있다. 상장기업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지금까지 대학의 전통적 역할은 교육과 연구 아니었나. 21세기 대학의 역할이 뭐라 생각하나. “정말 중요한 질문이다. 수년 전까지 대학은 기초연구와 교육, 산업은 응용연구와 전문적 훈련으로 역할이 나뉘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전통적인 산업과 학문 간의 경계가 허물어져 가고 있다. 산업계에서도 기초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대학에서 딥테크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있고, 대기업이 교육을 담당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청소기와 헤어드라이어로 유명한 다이슨은 ‘다이슨 인스티튜트’라는 기술대학을 설립해서 독자적 교육기관의 자격으로 공학학위를 준다. 대학은 지식 전달과 연구뿐 아니라 기업에 기술을 적용하는 것으로 역할이 확장되고 있다.”   자칫 기초과학을 소홀히 할 수 있지 않나. “학문이 산업에서 완전히 구분되느냐, 아니면 산업을 포용하느냐의 두 가지 전략이 있다면 테크니온은 포용을 선택했다. 우리는 소수의 산업 전략 파트너를 선별하고 캠퍼스로 불러들이고 있다. 이런 파트너 연구자들이 학생을 멘토링하고 우리의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리스크는 산업에서 거의 진행되지 않는 기초과학 연구를 대학 내에서 이끌다가 한계점에 도달하면 기초과학 연구가 점차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초과학 연구가 계속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힘든 과제다.”   테크니온의 학생 창업지원 기관 T-허브에서 담당자가 창업지원 제도를 설명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테크니온이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난 대학이긴 하지만, 개교 이래 지금까지 노벨과학상 수상자 4명을 배출한 대학이기도 하다. 2004년 노벨화학상 아브람 헤르슈코와 아론 치에하노베르, 2011년 노벨화학상 단 셰흐트만, 2013년 노벨화학상 아리 워셜이 그들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로 평가받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92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이 테크니온의 주요 설립자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전략 파트너라는 말이 신선하다. “첨단산업 이해도가 높은 산업계는 대학이 완전히 응용학문만 하고 학생들에게 기초과학을 가르치지 않으면 미래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스라엘 대학이 산업계 파트너를 계속 확보할 수 있는 이유다. 세계적으로 기업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아주 튼튼한 기초과학 연구의 기반이 있는 대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학생들이 응용학문만 공부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략적 파트너들과 긴밀한 연대를 맺고 있다.”    노벨과학상 수상자도 4명 배출   테크니온에 의과대학도 있다고 들었다. “관련해서 두 가지를 얘기하고 싶다. 먼저 우리는 데이터과학 등과 같이 다른 대학 의대에서 가르치지 않는 과목을 의대생들에게 가르친다. 그것이 테크니온 의대 설립 동기 중 하나다. 의대가 테크니온에서 컴퓨터공학·데이터사이언스 등 여러 학과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의대와 공대, 과학·데이터사이언스 등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또 하나, 인체 건강은 다학제적 영역이란 점이다. 인체 건강 증진을 위해서는 의학뿐 아니라 데이터과학, 기계비전, 영상처리 등이 필요하다. 의료기기를 만드는 데에도 전기공학자·기계공학자·재료공학자·물리학자·화학자·생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필요하다. 이런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전체 가치사슬을 이뤄져야 한다.”   ■ 이스라엘 「 ●건국: 1948년 ●인구: 921만7000명(2020년) ●면적: 2만2145㎢(경상남북도 면적) ●인구 대비 스타트업 수: 세계 1위(1400명당 1개) ●미국 나스닥 상장 기업 순위: 세계 3위(1위는 미국, 2위는 중국) ●글로벌 기업 R&D센터: 400여 개 ●1인당 GDP: 4만3610달러(2020년, 세계은행) 」   ■ 우리 시반(Uri Sivan) 「 1955년생. 폴란드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만난 부모 아래서 태어났다. 고교 졸업 후  전투기 조종사로 군복무를 했다. 텔아비브대학 학부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하고, 물리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뉴욕의 IBM 왓슨연구소에서 3년간 연구원으로 경력을 쌓은 뒤, 1991년 테크니온 물리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총장에는 2019년 취임했다. 」 이스라엘=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joonho@joongang.co.kr

    2022.04.30 00:20

  • 아직 배고파, 기록·감각·기술 완벽한 ‘궁극의 스케이팅’ 꿈

    아직 배고파, 기록·감각·기술 완벽한 ‘궁극의 스케이팅’ 꿈

     ━  [SUNDAY 인터뷰] ‘쇼트트랙 월드 퀸’ 최민정   최민정은 “영원한 1등도, 당연한 1등도 없다. 동메달도 금메달만큼 귀하다”고 했다. 최영재 기자 최민정(24·성남시청)은 주니어 시절부터 ‘쇼트트랙 천재’로 불리던 선수였다. 1m63㎝의 작은 체구지만 엄청난 순간가속력과 지구력을 앞세워 빙판을 평정했다.   최민정은 이제 ‘쇼트트랙 월드 퀸’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올해 2월 열린 베이징 올림픽에서 초반 중국의 편파 판정에 시달렸지만 1000m 은메달을 시작으로 반전을 시작했고, 1500m 금, 3000m 계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4월 10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끝난 세계선수권대회는 최민정의 ‘여왕 즉위식’ 무대였다. 4개 종목(1000m, 1500m, 3000m 슈퍼 파이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통산 4번째 여자부 종합우승(2015,2016,2018,2022년)을 달성했다. 특히 3000m 계주에서 막판 불꽃같은 ‘아웃코스 질주’로 드라마 같은 역전 금메달의 주역이 됐다. 1,2위를 확신했던 캐나다-네덜란드 선수가 약속이나 한 듯이 얼굴을 감싸 쥐는 모습은 뭉크의 그림 ‘절규’를 연상케 했다.   최민정은 과거엔 ‘뭔가 불안하고 쫓기는 모습’의 선수였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정상에 오른 지금은 편안함과 여유가 느껴진다.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최민정의 소속사 올댓스포츠에서 그를 만났다.    관중석도 ‘어, 이건 뭐지’ 놀란 분위기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으로 이어지는 빅 시즌이 끝났는데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좀 다녀왔고요. 행사나 인터뷰도 소화했습니다. 학교(연세대 스포츠응용산업학과)는 다음 학기에 복학해서 남은 15학점을 채워야 합니다.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게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졸업은 해야죠. 하하.”   세계선수권 3000m 계주 결승의 엄청난 아웃코스 역전승이 요즘도 화제입니다. “두 바퀴를 남기고 3등으로 계주를 받았는데 거리가 생각보다 많이 벌어져서 쉽지는 않겠다 싶었지만 ‘마지막 주자로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달렸죠. 한 바퀴 남았을 때 저는 속도가 확 나고 1,2등은 몸싸움을 하면서 속도가 좀 줄었어요. 그 찰나의 타이밍이 잘 맞아서 추월을 할 수 있었죠.”   결승선 들어올 때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나요. “마지막 바퀴 돌면서 ‘이거 되겠다’ 싶었고 결승선 끊는 순간 ‘아, 내가 먼저 들어왔구나.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좀 많이 놀랐고 진짜 짜릿했던 순간이었죠. 관중석도 ‘어, 이건 뭐지’ 하는 놀람과 반전의 분위기였어요.”   최 선수의 극적인 레이스를 보면서 ‘나도 힘들지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댓글을 남기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그런 댓글도 많이 봤고 ‘선수님처럼 저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니까 좋은 일이 생겼다’는 내용의 손편지도 많이 받았어요. 운동선수로서 많은 분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하고 감사했고 ‘더 좋은 경기를 보여드려야 한다’는 책임감도 커졌어요.”   아웃코너로 추월하려면 엄청난 가속력이 필요한데 도대체 얼마나 연습을 하는지요. “기본적으로 체력이 바탕이 돼야 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기술도 몸에 배야 합니다. 이미지 트레이닝도 많이 해야 하고요. ‘나보다 더 연습을 많이 했다면 그 선수가 금메달을 따라’고 말했다는 건 살짝 와전이 된 거고요. 모두가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경쟁하니까 어떤 결과가 나와도 후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었어요. 한창 체력훈련 할 때는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늘 운동을 했던 것 같아요.”   최민정이 2022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여자 1000m 준결승에서 역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쇼트트랙은 변수가 많고 마지막까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게 매력이다. 그러나 몸싸움 과정에서 실격자가 나오고 순위가 뒤집히는 경우가 잦아 ‘공정한 스포츠냐’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최 선수는 “그런 상황이 생기는 경기도 많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점 때문에 누구에게나 1등을 하거나 메달을 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게 쇼트트랙의 매력”이라며 “그런 변수를 줄이기 위해 선수들은 굉장히 노력하고 준비합니다. 그러면서도 ‘쇼트트랙에선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고,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나서죠. 그런 변수까지 감안하면서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들을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힘들고 지루한 훈련의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요. “선수촌 안에 갇혀 있는 시간이 많은데 친구들이랑 통화를 하면서 수다 떠는 게 좋고요. 요즘은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보면서 맛있는 간식을 먹는 게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 되는 것 같아요.”    반려견 위해 열심히 사료값 벌어야   옹심이(반려견) 자랑 좀 해 주세요. “(얼굴이 확 밝아지며) 옹심이 자랑하려면 한도 끝도 없긴 한데…. 진짜 뭘 해도 다 귀여운 것 같아요. 애교도 많고. 옹심이를 위해서 열심히 사료값 벌어다 주고(웃음), 장난감이나 간식도 많이 사다 줍니다. 옹심이는 동물이나 캐릭터 인형을 좋아해요.”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떤 마음이 드세요.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커서 보니까 운전하는 일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빙상장에서 집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전을 해 주셨고, 제가 체격이 작으니까 엄마가 먹는 것도 신경을 많이 써 주셨어요. 오늘의 최민정이 있게 해 주신 분이죠.”   스물넷인데 너무 많은 걸 이루었어요. 아직도 배가 고픕니까. “당연하죠(웃음). 지금보다 더 잘 타고 싶어요. 한계를 정하지 않고 지금 자리에서 더 하다 보면 더 좋아질 수 있고 더 빨라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스케이팅은 기록으로 나타나는 것뿐만 아니라 제가 느끼는 어떤 감각이나 기술 같은 부분도 있을 거라고 봐요.”   그 얘기를 들으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2018년 평창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2위를 한 ‘맞수’ 이상화를 꼭 안아줬던 고다이라 나오(일본)다. 2018년 6월 도쿄에서 만난 고다이라는 “궁극의 스케이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궁극의 스케이팅이란 ‘몸의 움직임, 스피드, 마음,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최고의 감각을 느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역시 세계 최고 레벨 선수들은 느끼는 게 비슷한 것 같다”고 하자 최민정 선수는 “진짜 멋진 표현이네요. 사실 이번 3000m 계주가 그런 느낌에 가장 가까웠던 경기였어요. 그런 레이스를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쇼트트랙 퀸의 미소가 아름다웠다. 중앙UCN 유튜브 채널   ■ 곽윤기는 유튜버 오빠, 치킨 연금 포인트 4억 「 인터뷰 중간중간 ‘다섯글자 게임’을 했다. 사진을 보여주고 그게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건지 다섯 글자로 답하게 했다.   쇼트트랙 남자 대표팀 곽윤기(33·고양시청)의 사진을 보여줬더니 ‘유튜버 오빠’라는 답이 돌아왔다. ‘스포츠텔러, 쇼트트랙 연구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곽윤기는 유튜브 채널 ‘꽉잡아 윤기’를 운영하며 쇼트트랙을 널리 알리고 있다. 이 채널의 구독자는 125만 명에 이른다.   최민정 선수에게 본인도 이런 걸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주도적으로 하는 건 좀 어려울 것 같지만 기회가 되는 대로 언론을 통해 쇼트트랙을 열심히 알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치킨 사진을 보여주자 웃음을 터뜨린 뒤 ‘평생 먹는 것’이라고 답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이기도 한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은 베이징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에게 만 60세까지 매일 ‘1인 1닭’을 할 수 있도록 ‘치킨연금 포인트’를 지급했다. 최민정이 받게 될 포인트는 약 4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 jerry@joongang.co.kr

    2022.04.30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