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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보유액 급감 우려스러워, 당국 개입은 위기로 비칠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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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호 02면

[SUNDAY 인터뷰]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

“물가 잡으려다 외환위기 오면, 경제를 잃습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는 최근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서며 ‘환율 방어’ 논란이 나오는 것과 관련 “인위적으로 누른 환율은 어느 순간에 점프하며 외환위기를 부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식 교수

김정식 교수

올해 외환시장 첫날(1월3일) 1193원으로 출발한 원·달러 환율은 15일엔 장중 1320원을 돌파했다.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300원을 넘어선 환율에 ‘경제 위기의 시작’이라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지만, 김 교수는 오히려 ‘뉴노멀’에 가깝다고 봤다. “지난해는 무역 수지 흑자였고, 자본 유출 걱정도 적었는데 1년새 크게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크게 떨어진 만큼, 환율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말했다. 이제 환율 방어보다 수출 활성화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제언이다.

김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그림자를 다시 상기한다. 미국 금리 인상과 일본 엔저 공습은 과거 위기를 부른 때와 흡사하다. 정책운용 체계가 충분히 자리잡지 못한 정권교체기라는 점도 그렇다. 김 교수는 “이미 환율 전쟁이 시작됐다. 물가 안정에 초점을 둔 환율 및 금리 정책은 ‘전시 상황’에선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 유출·노사분규 땐 외환위기 가능성

외환위기가 우려될 정도로 심각한가.
“미국이 단기간(1~2년)에 금리를 3% 이상 올린 경우 한국은 예외 없이 위기를 겪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이다. 하반기 미국이 금리를 올리게 되면, 신흥국 전체가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약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 28년 만의 충격이다. 부동산 등 자산 가격 버블에, 임금 인상 움직임으로 수출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 자본 유출이 일어나기 쉬운 여건이다. 여기에 노사분규까지 터지면 외환위기로 들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 외환보유액이 감소하고 있는데.
“6월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382억8000만 달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2005억 달러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많다. 하지만 외국인 주식 투자 비중이 높고, 안보 위험도 높은 나라여서 외부 충격을 막기에 충분한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최근 외환보유액이 감소하고 있는 점이 우려스럽다. 지난해 10월에 비해 310억 달러가 줄어들었는데, 당국이 원화가치 하락(환율 상승)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한 때문으로 보인다. 하반기에 미국 금리가 더 높아질 것이기에 이런 식으로 개입하면 또 몇 백억 달러가 감소하게 된다. 이를 외국에선 외환위기의 시그널로 볼 수 있다. 한국 경제가 더 불안해지는 요인이 될 것이다.”
적정 환율은 어느 정도로 보나.
“우리나라 펀더멘털을 제대로 반영하자면 지금보다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적정 환율은 무역수지를 적자로 만들지 않는 수준이어야 한다. 우리나라 펀더멘털이 나빠서 환율이 올라가는 것은 억지로 막는다고 되지 않는다. 만일 (적정 환율이 아닌데) 원·달러 환율 1300원 선에서 막고 있으면 우리나라 수출은 감소하고, 무역수지 적자에 따라 환율도 더 올라갈 수 있다. 당국이 외환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렇다면 환율 정책은 어떻게 펴야 하나.
“지난 정부가 재정건전성 악화에도 외환위기를 겪지 않은 것은 무역수지 흑자와 한·미 통화스와프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는 이러한 안전판이 없다. 미국 금리 인상기에는 수출 증대와 무역수지 흑자 전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동안 물가 안정에 중심을 뒀던 패러다임은 바꿔야 한다. 지난 5월부터 대중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섰다. 5월 11억 달러, 6월 12억1000달러 적자를 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에 주요 산업을 넘겨주고 ‘20년 경기 침체’에 들어갔듯, 이제 우리가 중국에 밀리고 있다. 그 나라의 전망이 어둡다고 생각되면, 외국 자본은 투자한 돈을 한꺼번에 빼갈 수 있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를 통해 외환 시장 안전판도 마련해야 한다.”
한·미 통화스와프, 가능할까.
“2008년과 코로나19 팬데믹 직후에도 그러했듯 신흥국 여러 국가와 그룹으로 맺었던 방식으로 통화스와프를 재개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통화스와프가 체결된다면 현재 1300원 선의 환율은 1200원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수입 물가도 낮아지고, 주가도 큰 폭으로 상승할 수 있다.”
일본 엔저의 역습을 경고했는데.
“엔·달러 환율은 137엔 이상 치솟았다(엔저). 하반기 미국 금리가 올라가면 일본 엔저 현상은 심화할 수 있다. 일본과 경합 품목이 줄어들고 있지만, 엔저의 위력은 여전히 크다. 일본이 공격적으로 환율을 높여 수출 가격을 낮추면 그만큼 일본 제품이 잘 팔리게 된다. 하반기 엔·달러 환율이 150엔 가까이 높아지면, 서비스 무역도 흔들릴 것이다. 일본 여행이 늘어나면서 서비스 수지도 악화할 수 있다. 엔화 환율이 높아지면, 우리도 그만큼 원화 환율을 높여야 한다.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되면 외환시장의 불안은 더 커진다.”
일본과 중국의 대응전략에서 눈여겨볼 점은 무엇인가.
“미국의 금리 인상기에 일본과 중국은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저금리·고환율)으로 맞서왔다. 그런데 이들 국가가 환율을 높일 때, 우리는 환율을 낮추려고 한다. 여기에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연관성도 있다. 환율이 높아지면 ‘3만5000달러’ 시대가 흔들린다. GNI는 한 해 동안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총소득을 인구수로 나눈 것으로, 달러로 환산된다. 같은 소득이라도 환율이 상승하면, 국민소득 감소로 집계된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이면 1인당 GNI는 3만 달러로, 1400원에 이르게 되면 2만8000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 ‘3만5000달러 시대’의 자긍심과 국가적 위기대응, 무엇이 더 중요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미 금리 3% 이상 올릴 때마다 한국 위기

수출에 초점 맞추면, 물가 불안은 어떡하나.
“우리 사회 노사 분규가 큰 문제인데, 왜 그럴까. 돈의 가치가 땅바닥에 떨어진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물가 상승률 3%, 5% 하니까 돈의 가치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오인하는데, 주택 가격 상승률을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집값이 2배, 3배 올랐으면 임금도 그렇게 올라야 하는 것이다. 임금 인상 요구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외곽의 허허벌판에 아파트만 짓지말고, 강남처럼 인프라와 주택 공급을 병행해 주택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고통스럽더라도 고금리 정책도 펴야 한다. 한은이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인플레이션 기대를 낮춰야 ‘임금인상→물가인상’이라는 남미식 악순환으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있다.”
한국은행이 13일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한국은행이 더 늦기 전에 빅스텝을 단행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오는 26~27일(현지시간)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 한·미 금리 역전이 발생할 위험은 남아 있다. 그러나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하더라도, 그 차이를 줄이는 것이 현재로선 중요하다. 금리 역전이 자본 유출의 위험을 높이겠지만 반드시 자본 유출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미 통화스와프를 맺거나 무역 수지가 개선되면 금리 역전으로 인한 자본 시장의 영향은 줄어들 수 있다.”

김정식

한국적 현실에 맞는 ‘국제금융’ 분야를 개척한 국내 대표적 거시경제·금융 전문가다. 1990년 미국 클레어몬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객원교수, 한국경제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경제학부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환율 치솟자 달러예금 늘고, 달러보험도 인기

“환율이 1300원대인 데도 달러 선호도가 높습니다. 자산가들은 매도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되레 조금 싸지면 비중을 늘리겠다는 문의가 많습니다.” 유상훈 신한은행 PWM압구정센터 PB팀장은 강남 부자들의 달러에 대한 관심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하반기 원·달러 환율이 1350원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10년 주기상 고점에 가까워 분할 매수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했다.

강(强)달러시대, 눈치 보던 자금이 다시 달러로 ‘U턴’하고 있다.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서 “비쌀 때 팔자”던 달러 매도 움직임이 보유 쪽으로 돌아섰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6월 말 달러예금 잔액은 567억 달러로 집계됐다. 달러예금은 지난 2월 말 587억 달러에서 4월 말 548억 달러까지 줄었지만, 5월 말에는 568억 달러로 늘어났다. 김현섭 KB국민은행 한남PB센터장은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제로금리였던 달러예금에도 연 2~3%대의 이자가 붙는다”며 “이자가 적더라도 안전자산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KB국민은행의 ‘달러 외화예금’은 6개월 만기 시 연 2.96%, 12개월은 연 3.25%의 금리를 적용해준다. 우리은행의 외화정기예금(달러)은 6개월 연 2.93%, 12개월 연 3.26%의 이자를 준다.

보험금을 ‘달러’로 받는 달러보험의 인기도 상승세다. 현재 AIA생명, 메트라이프 등 외국계 생명보험사에서 주로 판매 중이다. 노후대비를 위한 연금보험부터 사망 보장을 위한 종신보험 등 종류도 다양하다. AIA생명의 ‘골든타임 연금보험 II’ 상품의 판매 건수는 지난 4월부터 2개월간 1000여 건(보험료 1000억원 수준)으로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배나 증가한 규모다. 메트라이프생명의 ‘백만인을 위한 종신보험’은 달러를 통한 보장자산의 다변화를 추구하는 상품으로, 보험금 수령 시 달러와 원화 중 화폐가치가 높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메트라이프 관계자는 “위기 시 믿을 건 달러밖에 없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달러보험에 문의가 많다. 가입기간이 최소 5년에서 20~30년인 장기보험으로 보험 유지 능력과 보장 목적을 고려해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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