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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와 기초과학 파트너십, 교내 스타트업 130개 성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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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호 06면

[SUNDAY 인터뷰] 우리 시반 이스라엘 테크니온 총장

테크니온 총장실에서 중앙선데이와 만난 우리 시반 총장. 저명한 물리학자이기도 하다. 최준호 기자

테크니온 총장실에서 중앙선데이와 만난 우리 시반 총장. 저명한 물리학자이기도 하다. 최준호 기자

이스라엘 최고 명문 공과대학 테크니온(Technion- Israel Institute of Technology)은 ‘창업국가’로 이름 높은 이스라엘의 상징과도 같은 대학이다. 이스라엘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대다수가 테크니온 출신이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기업의 80%가 테크니온에서 개발한 기술을 활용했다. 이스라엘에 들어온 글로벌 기업들의 R&D센터가 이스라엘 북부 하이파에 몰려있는 이유가 테크니온에 있다. 지난 14일 이스라엘 제3의 도시 하이파에 있는 테크니온을 찾아 우리 시반(67) 총장을 인터뷰했다.

테크니온을 소개해 달라.
“테크니온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1912년에 하이파 항구에서 가까운 카르멜산 척박한 비탈에 학교를 세웠다. 이스라엘이 건국(1948년)되기 36년 전이다. 테크니온이 다른 대학과 다른 점은 이스라엘의 안보와 경제가 대학의 DNA에 각인돼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도로·철도·수도시설과 같은 사회간접자본의 대부분이 테크니온 교수진 또는 졸업생들의 손에서 시작됐다. 건국 이후에도 우리 손으로 드론·인공위성·미사일 방어장치·항공 등 첨단산업의 붐을 일으켰다.”

대기업 CEO 대다수 테크니온 출신

이스라엘 북부 상업도시 하이파의 카르멜산 언덕에 자리잡은 테크니온대학. 정문에 히브리어와 영어로 교명이 적혀있다. 최준호 기자

이스라엘 북부 상업도시 하이파의 카르멜산 언덕에 자리잡은 테크니온대학. 정문에 히브리어와 영어로 교명이 적혀있다. 최준호 기자

혁신과 성공의 비결이 뭔가.
“세 가지 측면을 이야기하겠다. 첫째는 ‘질문을 던지는 유대인 문화’다. 우리는 모든 것에 의구심을 품고 질문을 던진다. 이스라엘 부모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오늘 무엇을 배웠느냐’고 묻지 않는다. 대신 ‘오늘 좋은 질문을 했느냐’고 묻는다. 그게 과학적 탐구의 원천이다. 질문을 하는 문화는 유대인 문화에 아주 깊게 뿌리내려 있다. 둘째는 ‘필요’다. 이스라엘은 적국들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나라다. 천연자원도 거의 없고, 국토의 3분의 2가 사막이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발명해 내야 했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였던 셈이다. 셋째는 ‘열린 토론, 자유로운 사고방식, 의사소통이 원활한 문화’다. 테크니온은 매년 한 학기씩 중국에 교환학생을 보내는 데, 그때 이스라엘과 중국 학생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스라엘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고, 교수가 하는 말에 의구심을 품는다. 반면, 중국 학생들은 질문 없이 조용히 앉아만 있는다. 질문하는 것은 교수의 권위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요’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스라엘을 흔히 ‘스타트업 네이션’(StarT-up Nation:창업국가)라고 하는데, 국가 자체가 1948년에 설립된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 있다. 초대 총리 벤구리온이 스타트업 이스라엘의 창업자인 셈이다. 건국 당시에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고, 인구도 60만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아랍 적국에 둘러싸여 수많은 도전과제를 이겨내고 살아남아야 했다. 이제 이스라엘 인구는 9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렇게 성장한 국가를 찾기 힘들지 않나. 맨땅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국가는 하나의 스타트업이라 할 수 있다.”
테크니온은 졸업생의 4분의 1이 창업을 한다고 들었다.
“이스라엘에는 삼성 같은 대기업이 없다. 때문에 스타트업을 하는 게 굉장히 자연스럽다. 그러다보니 누군가 아이디어를 가지고 군대나 고등학교·테크니온 등에서 사귄 서너 명의 친구들과 창업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렇게 스타트업이 시작되고 벤처캐피털의 지원을 받게 된다. 테크니온에는 ‘T허브’라는, 학생들에게 창업 멘토링을 해주는 기관이 있다. 또 비즈테크라는 이름의 스타트업 경합대회도 있다. 여기서 선발되면 투자뿐 아니라 멘토링도 받을 수 있다.”
테크니온은 뛰어난 기술 상용화 실적으로도 아주 유명한데.
“테크니온에는 기술이전 등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T-3라는 이름의 산하기관이 있다. 지금까지 아주 성공적으로 활약해오고 있다. T-3에는 다양한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 뿐 아니라, 분야별 상용화 담당 전문가들이 포진해있다. 이들은 다른 분야로 순환근무를 하지 않고 전문성을 쌓는다. 시간이 지나면 같은 분야에서 승진할 뿐이다, 이런 창업 생태계 덕분에 테크니온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은 130개가 넘는 스타트업을 보유하고 있다. 상장기업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지금까지 대학의 전통적 역할은 교육과 연구 아니었나. 21세기 대학의 역할이 뭐라 생각하나.
“정말 중요한 질문이다. 수년 전까지 대학은 기초연구와 교육, 산업은 응용연구와 전문적 훈련으로 역할이 나뉘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전통적인 산업과 학문 간의 경계가 허물어져 가고 있다. 산업계에서도 기초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대학에서 딥테크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있고, 대기업이 교육을 담당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청소기와 헤어드라이어로 유명한 다이슨은 ‘다이슨 인스티튜트’라는 기술대학을 설립해서 독자적 교육기관의 자격으로 공학학위를 준다. 대학은 지식 전달과 연구뿐 아니라 기업에 기술을 적용하는 것으로 역할이 확장되고 있다.”
자칫 기초과학을 소홀히 할 수 있지 않나.
“학문이 산업에서 완전히 구분되느냐, 아니면 산업을 포용하느냐의 두 가지 전략이 있다면 테크니온은 포용을 선택했다. 우리는 소수의 산업 전략 파트너를 선별하고 캠퍼스로 불러들이고 있다. 이런 파트너 연구자들이 학생을 멘토링하고 우리의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리스크는 산업에서 거의 진행되지 않는 기초과학 연구를 대학 내에서 이끌다가 한계점에 도달하면 기초과학 연구가 점차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초과학 연구가 계속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힘든 과제다.”
테크니온의 학생 창업지원 기관 T-허브에서 담당자가 창업지원 제도를 설명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테크니온의 학생 창업지원 기관 T-허브에서 담당자가 창업지원 제도를 설명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테크니온이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난 대학이긴 하지만, 개교 이래 지금까지 노벨과학상 수상자 4명을 배출한 대학이기도 하다. 2004년 노벨화학상 아브람 헤르슈코와 아론 치에하노베르, 2011년 노벨화학상 단 셰흐트만, 2013년 노벨화학상 아리 워셜이 그들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로 평가받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92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이 테크니온의 주요 설립자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전략 파트너라는 말이 신선하다.
“첨단산업 이해도가 높은 산업계는 대학이 완전히 응용학문만 하고 학생들에게 기초과학을 가르치지 않으면 미래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스라엘 대학이 산업계 파트너를 계속 확보할 수 있는 이유다. 세계적으로 기업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아주 튼튼한 기초과학 연구의 기반이 있는 대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학생들이 응용학문만 공부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략적 파트너들과 긴밀한 연대를 맺고 있다.”

노벨과학상 수상자도 4명 배출

테크니온에 의과대학도 있다고 들었다.
“관련해서 두 가지를 얘기하고 싶다. 먼저 우리는 데이터과학 등과 같이 다른 대학 의대에서 가르치지 않는 과목을 의대생들에게 가르친다. 그것이 테크니온 의대 설립 동기 중 하나다. 의대가 테크니온에서 컴퓨터공학·데이터사이언스 등 여러 학과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의대와 공대, 과학·데이터사이언스 등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또 하나, 인체 건강은 다학제적 영역이란 점이다. 인체 건강 증진을 위해서는 의학뿐 아니라 데이터과학, 기계비전, 영상처리 등이 필요하다. 의료기기를 만드는 데에도 전기공학자·기계공학자·재료공학자·물리학자·화학자·생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필요하다. 이런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전체 가치사슬을 이뤄져야 한다.”

이스라엘

●건국: 1948년
●인구: 921만7000명(2020년)
●면적: 2만2145㎢(경상남북도 면적)
●인구 대비 스타트업 수: 세계 1위(1400명당 1개)
●미국 나스닥 상장 기업 순위: 세계 3위(1위는 미국, 2위는 중국)
●글로벌 기업 R&D센터: 400여 개
●1인당 GDP: 4만3610달러(2020년, 세계은행)

우리 시반(Uri Sivan)

1955년생. 폴란드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만난 부모 아래서 태어났다. 고교 졸업 후  전투기 조종사로 군복무를 했다. 텔아비브대학 학부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하고, 물리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뉴욕의 IBM 왓슨연구소에서 3년간 연구원으로 경력을 쌓은 뒤, 1991년 테크니온 물리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총장에는 2019년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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