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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 발작 위기인데…‘하수구 정치’ 탓 경제 난제 쌓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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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호 02면

‘포퓰리즘 파이터’ 윤희숙 전 의원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1일 서울 중앙SUNDAY 인터뷰룸에서 위기상황 극복을 위한 정치권의 역할과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최영재 기자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1일 서울 중앙SUNDAY 인터뷰룸에서 위기상황 극복을 위한 정치권의 역할과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최영재 기자

“세계 경제의 판이 바뀌고 있는 엄중한 시기에 행정부와 입법부, 여·야는 초현실주의에 빠져있다.”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국민의 역량을 모을 수 있는 건 리더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리더십을 어떻게 보고 있나 생각하면 안타깝다”며 이렇게 말했다.

경제 위기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한국의 국가부도위험을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5년 만에 최고치(70bp)로 치솟았다. 미국이 네 번째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해 한·미 금리격차는 최대 1%포인트로 벌어졌다. 내년 대출금리 상단은 연 10%에 육박할 수 있다는 섬뜩한 예고까지 나온다. 윤 전 의원은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인 가계부채 문제가 채무불이행을 거쳐 금융권 부실로 연결될 수 있는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금 어디서 돌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

한국경제를 이끌어 온 무역에도 경고등이 커졌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누적 무역적자는 약 356억 달러로 7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수출 대들보인 반도체마저 3개월 연속 역성장 중이다. 이러한 때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한 이른바 ‘K-칩스법’은 국회에서 표류 중이고, 글로벌 유니콘 100대 사업 중 절반 이상이 국내에선 불법으로 싹을 틔우지 못하고 있다. 윤 전 의원은 이 같은 문제를 풀기 위해선 정치가 먼저 신뢰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기회를 품은 기업들이 발도 들여놓기 어려운 것은 우리 사회 갈등 구조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라며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지원해야 하는 정치권이 믿음을 얻지 못해 난제들이 쌓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 소신 발언으로 ‘포퓰리즘 파이터’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윤희숙 전 의원을 만나 한국경제의 위기 극복을 위해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이며, 연착륙 대책은 어떻게 세워야 할지 들어봤다.

정치인들이 초현실주의에 빠져 있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채권시장이 발작을 일으켰다. 긴급회의가 열리고, 급히 불을 끄기 위해 50조원이 넘는 돈을 투입하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정치는 전혀 딴 세상이다. 온통 청담동 술집이나 당 대표 얘기다. 굉장히 그로테스크한 느낌이다. 정치와 경제, 국민의 삶이 완전히 유리(遊離)돼 있다.”
정치는 왜 그렇게 현실과 동떨어졌나.
“(정치인) 개개인이 얼빠진 사람들일 가능성도 있지만, 정치 문화가 그렇게 형성돼 있다. 지지층의 결집에 과도한 역량을 낭비하고 있다. 태평성대라면 정치인들이 좀 한심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불안이 덜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불안하고 예민한 시기가 아닌가. ‘하수구 정치’라는 말이 나왔는데 딱 그런 느낌이다. 문제는 지금 그 정치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는 거다. 이 위기 상황을 제대로 헤쳐 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국민들이 갖기가 어렵다.”
위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지금은 돌이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미국 금리 인상, 원자재 불안, 영국 트러스 총리 파문, 일본 환율 개입 등 수시로 돌이 날아들고 있다. 이 같은 돌이 밖에서 날아올 때 어느 정도의 충격을 받는가는 우리 체력에 달려있기도 하다. 충격이 증폭되고 있는 것은 가계 및 기업의 부실 등 우리 안의 허약함에 있다. 그간 좀비기업이라고 하는 수익성이 나쁜 기업들이 연명하도록 구조개혁에 소홀했다. 가계부채도 심각하다. 대출에 물려있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면 대외 충격에도 이렇게까지 불안하지는 않았을 거다.”

윤 전 의원은 최근 유튜브 채널 ‘윤희숙TV’에서 레고랜드 사태 관련 “삐끗하다 큰일 난다”며 정치인들의 헛발질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금융시장의 불안이 실물시장으로 옮겨 붙을 위험에 대한 엄중한 경고였다. 그는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전임자의 부실 사업으로 인한 덤터기를 피하려다 더 큰 덤터기를 쓰게 됐다. 세계 경제가 극도로 예민한 상황을 이해 못 하고 삐끗한 거다”고 말했다. 여기에 헛발질을 넘어, 일부러 돌덩어리를 얹는 행태도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양곡관리법, 노란봉투법 등 표만 얻으면 된다는 포퓰리즘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레고랜드 사태, 왜 이렇게 커졌나.

“금융시장에 대한 정치권의 이해 부족과 지자체의 포퓰리즘이 겹쳐 사태가 커졌다. 전 강원도지사(최문순)는 부실사업을 잘 살펴보지도 않고 왜 덜컥 보증을 섰을까?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이어진 포퓰리즘이라고 본다. 지금처럼 금융시장이 예민한 때에 김진태 지사는 지급 거부로 비춰지는 언행을 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정치권의 이해 부족이 위험을 증폭시키는 기제가 된 셈이다. 전 지사 시절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강원도민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내 책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도, 도민들에 현 상황을 겸허히 알리고 책임을 지는 자세가 아쉬웠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급한 불은 끄고, 차후 근본 원인을 개선해가는 투트랙 전략이 중요하다.”
양곡관리법·노란봉투법은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는데.
“양곡관리법은 단지 쌀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이슈다. 구조조정이 필요한 곳에 충격을 줄이면서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문제다. 쌀 수요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쌀을 다 사들여 더 생산량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이끌면 어떡하나? 농민 보호를 명분으로 한 포퓰리즘에 지나지 않는다. 쌀 재배 면적을 줄여가면서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쌀에서 다른 작물로 옮겨갈 때 더 안정적인 수익이 나도록 지원하면 된다. 노란봉투법은 불법 파업이라도 책임을 지우지 않겠다는 것인데 그런 법이 어느 나라에 있나? 지금까지 제대로 된 원칙이 있지도 않았지만, 굉장히 큰 돌덩어리를 계속 얹어 가면 안 된다. 만일 이번에 그릇된 법이 통과되더라도, 잘못된 것을 국민에게 계속 알리고 소통하는 노력은 지속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이런 비슷한 일이 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찾을 것이다.”
반도체 경고등이 커졌다.
“우리 경제가 반도체에 편중돼 있다는 것은 다른 부분들이 약하다는 것이다. 반도체 규제도 풀고, 다른 산업도 풀어야 한다. 편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잘하는 쪽을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떨어지는 쪽을 끌어올려야 한다. 글로벌 유니콘 100대 사업 중 절반 이상이 국내에선 허용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설득과 이해조정을 통해서 새로운 시도를 열어주는 메커니즘이 약한 것이다. 신산업의 등장으로 피해가 우려되면 보상시스템을 만들고,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지원체계를 만드는 것이 정치권의 과제다. 그런데 정치권이 그런 믿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 지금 이런 많은 이해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큰 이유 중의 하나다.”
부동산 경기도 급락하고 있는데.
“최근 1주택자·무주택자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50%까지 확대했다. 그런데 대통령 인수위 보고서를 보면, 지역 상관없이 70%를 공약했다. 경제 위기의 우려가 크지 않았을 때도 부동산은 너무 규제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풀어야 한다고 발표했었다. 규제 완화가 너무 천천히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재건축 규제 완화도 필요하다. 거래절벽이라는 게 수요자만 위축시키는 게 아니다. 공급자들도 위축돼 있다. 청년 주택이나 공공임대 공급 등 정부가 할 일을 꾸준히 하고, 약속했던 재건축 규제는 풀어줘야 한다. 현재 시장은 그러한 규제를 푼다고 해도 금융비용이나 시장 위축으로 크게 반응하기 어렵다. 급한 불이 꺼진 다음에 다시 부동산이 폭등하는 상황으로 가지 않게 하려면 변동성을 줄이는 노력을 지금 해야 한다.”

정치권, 위기 헤쳐 나갈 거란 믿음 못 줘

원희룡 장관의 “집값이 40%까지 떨어져야 한다”는 발언이 논란이 됐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토론이 많았다. 집값은 몇 년 새 급등했기에 떨어지는 게 자연스럽다는 얘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미 거래 절벽을 걱정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국토부 장관으로부터 그런 메시지가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당황했다. 거래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가 나와야 하는 타이밍이었다고 본다.”
가계부채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하나.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금리를 올려야 한다. 한동안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 국민도 이를 각오하고 대비해야 한다. 이미 많은 빚이 생긴 상황에선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바꾸고(안심전환) 서민금융을 지원하고, 채무 감당이 어렵다면 채무조정으로 가는 ‘3단계 매뉴얼’이 실질적인 방안이다. 안심전환 대출 등의 한도와 대상 등은 상황에 따라 시장 수요에 맞게 당국이 살피면서 조정해야 한다.”
정치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다. 국민의 신뢰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을 했다. 경제위기를 초래한 것은 정치권의 잘못인데, 국민들은 그래도 정부와 정치권을 믿고 잘 따라줬다. 국민들이 정치에 갖는 신뢰는, 매우 중요한 무형자산이다. 위기의식이 높아질수록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정제해서 믿음을 쌓아가야 한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지속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각종 발표와 공청회, 청문회 등을 통해 전문가그룹과 활발하게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 지금은 너무 조용하다. 사실 지금 국민들이 금리와 물가가 이렇게 올라가는데도 잘 참아주고 있다. 이제 정치가 보답을 해야 한다.”

윤희숙,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과 국민경제자문회 민간자문위원,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등을 지냈다. 2020년 ‘임대차 3법’ 추진 과정에서 “나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하는 국회 연설로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도 했다. 저서로는 『정치의 배신』 『정책의 배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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