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고3처럼 공부, 기술·전문지식 익히면 40년 풍요롭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2.09.17 00:01

업데이트 2022.09.1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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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호 02면

은퇴한 은퇴전문가, 김경록 미래에셋 고문

‘은퇴연구소장’에서 물러난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한 달 새 3㎏의 살이 빠질 정도로 충격이 왔지만, 다시 대학을 다니며 ‘제2의 일’을 통한 노후설계에 나섰다. 박종근 기자

‘은퇴연구소장’에서 물러난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한 달 새 3㎏의 살이 빠질 정도로 충격이 왔지만, 다시 대학을 다니며 ‘제2의 일’을 통한 노후설계에 나섰다. 박종근 기자

몇 해 전 화제가 된 영화 ‘마션’에는 불의의 사고로 화성에 홀로 남겨진 한 남자의 재기발랄한 생존기가 나온다. 주인공 마크는 화성탐사 중 강력한 우주폭풍을 만나 대열에서 떨어져나간다. 구조팀은 4년 후에나 올 수 있는데, 화성에 남아있는 식량은 300일치뿐. 그는 구조를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식량을 아껴먹는 방법으로는 버티기 어려움을 깨닫고 전혀 다른 생존법에 도전한다. 화성에서 작물을 재배해 식량을 자체 확보하는 것이다. 김경록(60)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은 “이른 퇴직을 마주한 중장년은 ‘화성으로 가는 우주선’에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곳에는 이상한 미생물이 있을지, 먹을 것은 어떻게 구할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은퇴 후 세상과의 실전’이 당혹스러운 것은 은퇴전문가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은퇴연구소장이 은퇴했다. 지난 연말이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를 거쳐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소장으로 지난 9년간 은퇴를 연구하고 가르쳤던 그가 고문으로 물러났다. 그의 새 명함에는 ‘대표’ 대신 ‘경영자문역’이 새겨졌다. 은퇴 통보 직후 어떤 날은 90분짜리 외부 강의를 60분만 하고 내려왔고, 친구 딸 결혼식에서는 다른 가정에 축의금을 내는 실수도 했다. “한 달 새 3㎏이 넘게 몸무게가 빠져 체중계에 올라가기 겁이 났다”고 말했다.

퇴직 후 9개월. 실전 은퇴에서 느낀 가장 절실한 은퇴 준비는 어떤 것이었을까. 긴 노년생활의 길목에서, 그는 어떤 생존해법을 찾았을까. 김 고문은 “퇴직의 충격이 지나간 후 앞으로 40년의 소득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고 했다.

금융소득 줄어 근로소득 늘리려 고군분투

어떤 점이 가장 당혹스러웠나.
“은퇴자산을 모았다고 해도, 매월 들어오던 월급이 0원이 된다면 충격은 상당하다. 다행히 당분간 고문으로 일할 수 있다. 바로 회사 문을 나선 사람들에 비해, 연착륙은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불어나던 잔고가 앞으로 줄어들게 된다고 하니 이를 운용하는 문제가 크게 다가왔다. 퇴직 전까진 노후자산을 축적하는데 목적을 뒀다면, 퇴직 후에는 그 자산을 효과적으로 운용 및 인출해서 일정한 소득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은퇴소득은 어떻게 만들고 있나.
“퇴직 전에는 노후자산 축적을 위한 저축과 소비를 병행했지만, 이제 저축은 어려워졌다. 목표는 퇴직 전 모아둔 자산을 70세까지 유지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은퇴 자산을 헐어 쓰지 않으면서 강연 등의 일과 자산운용 수익으로 지출을 충당해보려고 한다. 초기부터 다소 어그러진 면은 있다. 주가가 폭락하지 않았나. 자산운용에서 나오는 금융소득이 줄어든 만큼, 근로소득을 늘리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70대까지 은퇴자산을 헐지 않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일까.
“자칫 퇴직을 조금 일찍 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명이 다하기 전에 돈이 바닥 나 버리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주된 직장에서 퇴직하는 시기는 대개 자녀들의 교육비와 결혼비용 등 지출이 많은 시기다. 중산층이라고 해도 이때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궤도에서 이탈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가계는 50대까지는 소득이 지출보다 큰 상태였다가 60세부터 적자구조로 빠진다. 개인적으로 이 적자로 전환되는 시기를 70세로 늦추는 것이 목표이고, 도전이다.”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이 주된 직장에서 퇴직하는 평균 연령은 49.3세다. 하지만 실질 은퇴시기는 72.3세다. OECD 국가 중 실질 은퇴가 가장 늦다. 그때까지 격차가 무려 23년에 이른다. 김 고문은 이 시기를 ‘은퇴연옥’이라고 한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연옥(煉獄)에 빗댄 말이다. 연옥은 천국에 가기에 미흡한 사람들이 일정기간 동안 영혼을 정화하는 시간을 갖는 곳이다. 퇴직했지만 완전히 은퇴하기엔 미흡해, 일하면서 은퇴를 준비하는 은퇴연옥에 머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60대는 평균적으로 10명 중 6명은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늦게 직장에 진입하고, 일찍 퇴직하고, 자녀 관련 지출이 많은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그는 퇴직 전 펴냈던 저서 『1인 1기』에서 “퇴직 후 치킨집이 아니라 학교로 가라”고 당부했다.

학교에 가면 쓸모가 있을까.
“예전에 일본에서 『은퇴남편 길들이기』 같은 책이 많이 팔렸다. 그런데 고령화사회에 접어들수록 ‘직업’ 관련한 책이 주목받고 있다. 본질적인 생존문제를 중시하는 것이다. ‘고3’이다 생각하고 1~2년 투자해서 노년에 양질의 일자리를 얻는 것이 40년을 풍요롭게 하는 ‘수지맞는 장사’라고 본다. 지인 중에는 금융회사를 나와 손해사정사 자격증을 딴 경우도 있고, 폴리텍을 졸업해 제조업 기업의 이사로 일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론 이번 학기부터 방송통신대 일본어학과에 등록했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일본 사회도 더 들여다보고 일본어도 공부해서 은퇴자산 관리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

김 고문은 퇴직 후에도 유튜브 방송이나 강연, 기고를 통해 금융전문가로 맹활약 중이다. 최근 그가 출연한 ‘41년만의 역대급 부자될 기회, 그냥 넘기지 마세요’라는 방송은 2개월 만에 조회 수가 94만회를 넘어설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퇴직 전까지 달려왔는데, 또 일해야 하나.
“서머셋 몸의 『달과 육펜스』에서 육펜스가 죽도록 일을 하는 전반부에 해당한다면, 달은 후반의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쉼 없이 달려왔는데, 퇴직하고도 또 일해야 하냐고 물을 수 있는데, 차이가 있다. 인생 전반의 일은 ‘죽도록’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였다면, 인생 후반의 일은 삶을 풍성하게 돕는 일이어야 한다.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적어도 목표는 그렇게 두어야 한다. 단순 근로직이나 소자본 창업보다는 기술에 기반을 두는 게 좋다.”

노후에 중요한 세 가지는 돈·건강·일자리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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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동안 젊은 세대에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자본가’가 되라고 설파해 왔다. 올 들어 조정을 거친 주식의 가격은 무릎 아래 수준으로 내려왔고, 뒤를 이어 부동산이 조정을 거칠 것으로 봤다. 이러한 거품이 걷어지면, 주식과 부동산처럼 장기 성장하는 ‘자본’을 소유하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은퇴 자산은 어떻게 운용해야 할까.

은퇴자산, 운용전략은.
“옛날 유대인은 ‘자산의 3분의 1은 자기 사업, 3분의 1은 부동산, 3분의 1은 현금에 배분하라’고 했다. 요즘으로 치면 주식, 리츠(부동산), 채권에 해당한다. 은퇴 자산은 특정자산에 치중하지 않고, 3대 자산에 분산투자가 바람직하다. 목표 운용 수익률은 평균 연 5%다. 최근에는 채권의 경우 국고채가 3%대 후반대, 회사채는 4%가 넘어 안정적 수익을 얻기 수월해졌다. 주식은 다시 상승장이 왔을 때 반등 가능성이 높은 종목(바이오·헬스케어·배터리·메타버스 등)으로 갈아타는 것을 추천한다. 고령화와 기술이 만나는 지점을 특히 주목하면 좋겠다.”
리츠를 주목한 이유는.
“흔히 퇴직하면 부동산(상가) 사서 노후준비를 해보겠다한다. 그동안 모아둔 돈을 상가에 몰아넣었는데, 잘못되면 어떡하나. 리츠로 5~6개 종목에 분산해놓으면, 배당을 받고 분산으로 위험도 낮출 수 있다. 국내 상장 리츠도 국내 부동산뿐 아니라 해외 건물을 살 수 있다. 특히 내년쯤을 투자 적기로 본다. 배당수익률과 자산 가격의 상승이 기대된다.”
한때 은퇴자산 ‘10억원 만들기’가 유행했다.
“50대의 평균 자산을 보면, 부채를 제외할 경우 집을 포함해도 5억원 수준이다. 10억원은 한참 먼 얘기다. 요즘 도시에 사는 중산층의 눈높이에서 ‘은퇴자산 월 400만원 만들기’를 얘기한다. 퇴직연금은 8.3%, 국민연금은 9%를 소득에서 저축하는 효과가 있다. 5000만원 소득의 직장인이 퇴직연금(IRP) 공제 한도(연금저축 합산 연간 700만원)까지 불입한다면 14%를 저축하는 셈이다. 30대 젊은 부부가 퇴직 때까지 꾸준히 연금 맞벌이를 한다면 도달 가능한 목표다.”
끝으로, 은퇴에 직면해 당혹스러운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
“지난해 말 퇴직하면서 2가지를 했다. 첫 번째, 페이스북으로 퇴직을 알렸다. 응원이 쏟아졌다. 퇴직하면 은둔하지 말고, 주변에 알리라고 말하고 싶다. 여러 정보와 일자리 기회도 얻기 유리하다. 두 번째는 노트를 만들어 아이디어가 있을 때마다 기록하고 있다. 블로그도 만들고, 회사 이름을 지어 사업자등록을 할 생각이다. 2~3년 일하고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70~75세까지 쭉 일을 한다는 관점에서 본격 은퇴 설계를 하면 좋겠다. 노후에 가장 중요한 3가지는 돈, 건강, 일자리가 아닐까 싶다. 이중 돈은 소득이 없고 저축이 어렵다면, 별 뾰족한 방법을 찾기 어렵다. 일하는 기간을 늘려야 한다. 1억원 자산으로 3%의 수익을 더 올린다고 해도, 이자는 연 300만원에 불과하다. 이보다는 월 300만원의 일자리를 갖는 게 바람직하다. 일자리가 있으면 건강도 증진되고, 사회적 관계도 유지된다. 건강과 일자리의 2가지 조건을 갖췄다면, 은퇴의 7~8할은 준비됐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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