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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EF는 중국 배제도 견제도 아니다, 원하면 참여 가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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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0호 06면

[SUNDAY 인터뷰] 왕윤종 국가안보실 경제안보비서관

왕윤종 국가안보실 경제안보비서관은 “IPEF 는 공급망의 규범을 정립하는 차원이고, 중국도 원한다면 참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영재 기자

왕윤종 국가안보실 경제안보비서관은 “IPEF 는 공급망의 규범을 정립하는 차원이고, 중국도 원한다면 참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영재 기자

‘경제안보동맹’은 윤석열-바이든 첫 정상회담의 대표작품이다. 경제는 경제, 안보는 안보라고 여겼던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사실 국제현실이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산 원유·가스 수입을 금지했다. 러시아는 흑해 봉쇄로 우크라이나 밀 수출을 막았다. 그 결과 세계의 기름값과 밀 가격이 급등했다. 경제가 곧 안보인 세상의 단면이다. 한국도 창립멤버로 참여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도 이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경제안보동맹의 실무를 맡은 왕윤종 국가안보실 경제안보비서관을 25일 만났다. 경제안보 정책의 최일선 조율사인 그는 한·미 경제안보 대화 채널의 담당자이기도 하다.

IPEF에 한·일·호주 등 13개국 참여

경제안보가 왜 중요해졌나.
“경제와 안보가 따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로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시대가 됐다. 경제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움직이는데, 수요 측면은 통화나 재정정책으로 어느 정도 대처가 된다. 하지만 공급 쪽 충격은 그렇지 않다. 1970년대 중동전쟁으로 인한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이 그런 경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지정학적 사건, 팬데믹 재확산, 기후위기와 탈탄소 움직임 등이 모두 공급 측면에서 거대한 교란 요인이 될 것이다. 이런 공급 쪽 충격을 총체적으로 관리하고 안정화하는 것이 바로 경제안보다.”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는.
“한·미간 안보동맹이 한 차원 더 강화됐고, 핵 억지력도 강조됐다. 경제적 측면에선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선언한 점도 의미가 크지만 우주, 원자력 기술에서 협력 방안을 꽤 많이 도출해냈다. 특히 ‘첨단기술 동맹체제’ 구축을 위한 기반을 만들었다고 본다. 소형모듈원전(SMR)의 경우 FIRST(미국 주도의 제3국 역량강화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했다. 우주항공기술에선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을 만드는 데 미국이 적극 기술 이전을 해주겠다고 했다. 우주기술은 군사 기술과 병용된다는 이유로 미국이 지원을 꺼려왔던 분야다. 미국의 유인 달탐사 프로그램 ‘아르테미스’에도 참여한다. 다시 말해 기술동맹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같은 내용이 구체화돼 공동선언문에 명시됐고, 후속 조치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시중엔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내준 것은 많고, 받은 것은 적다”는 시각도 있다는 지적에 대해 왕 비서관은 “‘몇 대 몇’ 이라고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최소한 균형은 잡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대규모 미국 투자계획에 대해서도 그는 현시점에서 필요하고 맞는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왜 그런가.
“우리 기업이 돈과 일자리를 미국 시장에 쏟아붓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시장 선점을 위해선 갈 수밖에 없다. 가령, 삼성의 파운드리 공장을 보자. 설계도면을 주면 그것을 찍어내는 작업이 파운드리인데, 삼성은 메모리 중심이다 보니 파운드리 강자인 대만 TSMC에 밀린다. 설계를 담당하는 고객은 주로 미국에 있기 때문에, 삼성 입장에선 고객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이 맞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 지역에 대규모 투자계획을 갖고 있다. TSMC를 잡기 위해선 미국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80% 투자는 국내에서 이뤄진다. 현대차의 경우 앞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 전기차 시장을 겨냥한 투자다. 조지아 지역에 투자함으로써 미국의 거대 전기차 시장 확보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또 삼성과 현대차 모두 국내 투자를 대폭 늘리기로 했다. 국내 일자리 감소에 대한 우려는 기우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번 회담에서 빠질 수 없는 키워드는 IPEF다. 지난 23일 출범한 IPEF에 한국은 일본, 호주, 인도를 포함해 12개국과 함께 창립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건 미국 주도의 IPEF 가 ‘중국 견제용’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왕 비서관은 “어떤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차원이 절대 아니다”라며 “IPEF는 공급망의 규범을 정립(rule setting)하는 차원이고, 중국도 원한다면 참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IPEF 참여의 의미는.
“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만들어진 이후 약 30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무역환경이 많이 변했지만, 규범은 그대로다. 미국은 디지털·공급망·탈탄소 등을 반영한 새로운 규범체계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를 반영해 IPEF가 출범했다. 즉,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국제경제질서의 규범이다. 한국은 창립멤버로서 규범 정립에 참여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를 맞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중국이 반발하나.
“규범 자체가 중국한테 부담되는 부분들이 많다. 예를 들면 디지털 통상에서 미국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이다. 중국은 그걸 차단한다. 디지털 환경에서 중국은 거대한 성이다. 구글, 페이스북도 중국에서 사업을 못 하지 않나. 카카오와 네이버도 그렇고.”
결국 중국 견제 성격 아닌가.
“아니다. 중국의 선택이다. 중국이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도 개방하겠다’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태 때처럼 중국의 보복은 우려하지 않나.
“IPEF에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7개국이 참여했다. 한국만 콕 집어서 보복하는 것은 최소한의 상식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게다가 우리가 중국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큰 협력 틀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왕치산 중국 부주석도 한·중 FTA와 한·중·일 FTA를 거론했다. 게다가 한·중·일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어 얼마든지 협의가 가능하다. 중국과의 탈동조화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공급망 관리에서 IPEF의 역할은.
“공급망 문제는 한 나라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여러 나라가 파트너십을 갖고 해야 한다. 일례로, 인도가 갑자기 밀 수출을 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이 IPEF 프레임에서라면 대화가 되지 않을까. 각국이 조기경보시스템을 만들어 위험 요인을 조기에 포착하고, 대안을 공동으로 모색하자는 것이 IPEF가 추구하려는 핵심 중 하나다.”

중국, 한국만 콕 집어 보복 어려울 것

일본과의 소재·부품·장비 갈등 문제는.
“양국이 IPEF에 참여하면서 상호 공급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풀릴 것으로 본다. 수출규제 대상에 오른 3개 품목(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은 현재 공급상 큰 불편함이 없다고 알고 있고, 서두를 필요 없다고 본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주목받은 또 다른 포인트는 한·미 통화스와프 논의 여부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달러당 원화가치가 1300원에 근접할 정도로 떨어진 것이 시장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그러나 통화스와프는 체결되지도 않았고, 정상회담 선언문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통화스와프는 정상회담에서 논의됐나.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가 (미국 측과) 협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상회담때 언급되기도 했다. 미국 측에선 통화스와프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결정 사항이어서 명시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대신 서로 금융시장을 모니터링해가면서 협력해가자고 공감대를 만들었다. 양국 공동성명에 외환 시장 안정성 부분이 기재된 것은 처음이다. 국제금융시장 상황이 나빠져서 Fed가 통화스와프를 한다면, 반드시 한국은 포함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왕 비서관은 인터뷰 말미에 “사실 시장이 잘 작동해서 공급적 교란 요인들이 많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경제안보라는 개념이 요구되지 않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흐르고 있다. 왕 비서관 자신도 현재의 공급망 위기에 대해 “상당히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어떤 물품도 금방 찍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IPEF 참여로 공급망 관리의 첫걸음을 뗐다. 하지만 공급망 문제는 친구만으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한국은 대표적인 자원 빈국이다. 정부는 이제 친구 국가를 더 늘리고 더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실력을 발휘할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정부 차원 위기 대응 위해 ‘공급망 관리 기본법’ 필요

왕윤종 비서관은 “공급망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불가피하게 개입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때 정부 차원의 대응에 있어 기금 마련과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공급망 관리 기본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외적으로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로 공급망 관리를 하되, 대내적으로는 ‘공급망 관리 기본법’ 제정으로 대비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기획재정부에서 오는 9월 정기국회 상정을 목표로 ‘공급망 관리 기본법’(잠정)을 준비 중에 있다. 일본에서는 ‘경제안전보장추진법안’이 내년 1월 발효된다.

‘공급망 관리 기본법’은 말그대로 ‘공급망 관리’에 있어서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한 경우, 타법률과 상충 없이 공급망 안정을 위한 비축, 다변화, 리쇼어링 등의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왕 비서관은 “정부가 공급망 관리를 한다고 기업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정보까지 공개하라고 하면 부담일 것”이라며 “이러한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기금 마련을 위해서도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가령 마스크 부족 사태가 일어났을 경우, 정부 조달로도 충분한 마스크 확보가 어려울 땐 기업에 요청해야 하는데 그럴 때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공급위기’ 품목을 비축하기 위한 재원도 필요하다.

정부는 ‘공급망 관리 기본법’을 통해 공급위기 품목을 상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공급망 교란 요인을 데이터화해 조기에 포착하는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해나갈 방침이다.

왕윤종

미국 예일대학교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국제거시금융실장,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을 지냈다. SK차이나 수석부총재, 현대중국학회장을 거친 ‘중국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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