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이가 아니라 부모 욕심이 문제…불안 내려놓고 스킨십 하라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14호 02면

천근아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천근아 세브란스 병원 소아정신과 교수가 두려움, 불안이 밀려올 때 쉽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버터플라이 허그’를 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천근아 세브란스 병원 소아정신과 교수가 두려움, 불안이 밀려올 때 쉽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버터플라이 허그’를 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저출산 시대, 아이가 너무 귀해졌다. 부모들은 하나밖에 없는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뒤처질까 노심초사하며 전전긍긍한다. 그런데 마음이 아픈 아이도 점점 많아진다. 주변에 자녀가 ADHD라는 사람도 꽤 있고, 올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때문에 주목받은 자폐스펙트럼장애는 무려 50명 중 1명이 앓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귀한 아이 마음을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까.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마음이 아픈 자녀를 둔 부모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명의로 꼽힌다. 진료 예약 대기가 무려 5년에 달할 정도다. 최근 본지 연재 칼럼 ‘아이마음 다이어리’를 묶어 신간 『아이 마음을 다 안다는 착각』을 낸 천 교수를 만나 아이의 마음 다스리는 법에 대해 물었다. 해답은 아이 마음이 아니라 부모 마음에 있었다.

최근 부쩍 소아청소년의 정신 건강이 주목받고 있다.
“하나뿐인 아이를 오점 없이 키워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조금만 이상해 보여도 병원을 찾곤 한다. 온라인에 잘못된 정보가 많은 탓도 있다. 젊은 부모들이 모든 육아 정보를 온라인에서 얻으려다 보니 조금만 뒤처져도 과도한 불안을 느낀다. 사례 중심으로 정확한 정보와 전문적인 대처법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글을 쓴다.”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이 잘못된 건가.
“가위질을 못한다고 소근육 치료를 받게 하는 건 양육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거다. 아이발달에 있어 눈 맞추고 정서적 교감을 하는 게 기초공사인데 인테리어부터 하면 어떡하나. 그럴바엔 차라리 아이를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이 집착이 되고, 집착이 욕심과 불안을 낳고, 고스란히 아이에게 푸시가 되어 사랑이 아니라 노여움의 제스처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건 자기 불안을 애한테 뒤집어씌우는 꼴이다. 엄마가 내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달라질 수 있다.”
무한경쟁 한국사회에 살면서 애들이 제정신이기 힘든 건 아닌지.
“부모의 불안 때문이다. 무한경쟁이 애들이 아니라 부모 경쟁이다. 진료 때 주방놀이 세트를 주고 ‘같이 놀아보세요’ 하면 아이한테 ‘이게 뭐야?’ 묻기만 하는 부모들이 많다. 놀이를 하려면 감정교류를 해야되는데, 모든 게 테스트더라. 시간 남으면 줄넘기 학원까지 보내던데, 옆집 아이와 비교하는 엄마 욕심이 부족한 아이를 만든다. 다른 과목을 다 잘하고 수학만 못하는 아이에게 잘하는 것은 칭찬하지 않고 수학 못하는 것만 나무라면 자신감이 없어져 나중엔 다 못하게 된다. 존재 자체로 인정해주는 환경이라면 가난한 집에서도 밝고 낙천적인 아이가 나오고, 부모 배경이 훌륭한 집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아이는 부모의 반응을 보고 행동을 결정한다. 엄마가 내 존재가 아닌 내 능력에 따라 사랑할지 말지 결정한다면, 아이는 행복의 가치를 외적인 데서 찾게 된다.”
반항하는 사춘기 아이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사춘기에 정체성을 확립해야 되는데, 엄마가 짜놓은 스케줄대로 움직이던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해본 경험이 부족하다. 사춘기에 비로소 내맘대로 한번 살아보겠다고 반항을 하는 것이니 그런 부분을 존중해주고 믿어줘야 한다. 조금이라도 일탈하면 엄마가 불안해져서 몰래 아이를 감시하는데, 놔둬야 한다. 청소년기 뇌는 미완성 상태다. 자동차의 엔진과 같은 감정뇌는 끓어오르고 성호르몬은 폭발하는데, 브레이크 역할인 전두엽은 17, 8세가 돼야 공사가 끝나니 앞뒤가 안맞는 행동을 하는 게 당연하다. TV를 보며 사회부조리에 분노하며 어른스러운 척 하다가도 엄마가 분리수거하러 가자고 하면 발끈한다. 그러다 고2때 쯤 철이 드는 건 전두엽이 완공됐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지킬과 하이드처럼 앞뒤가 안맞는 게 정상이다.”

아이 행동 교정, 가족 전체가 노력해야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시킨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 ENA]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시킨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 ENA]

천 교수는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 영역은 한 아이를 중심에 두고 온 가족과 온 마을에 걸쳐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마음 다이어리’에서 ‘세상 속 아이들’로 칼럼 주제를 바꾼 이유기도 하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아이는 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가족 전체와 학교, 사회가 달라져야 아이가 비로소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빨리 변하니 어른들도 가치관 혼란에 빠진다. 중장년층은 어린 시절 ‘TV는 바보상자’라는 엄마 잔소리를 들으며 자랐는데, TV를 넘어 동영상 스트리밍에 점령되어 버린 요즘 세상에선 유튜브가 ‘정보의 보물상자’로 통하게 됐다. 이러니 부모들이 어린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고 편하게 볼일을 보면서도 죄의식이 없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영상의 바다에서 알고리즘의 파도에 출렁이며 자칫 정제되지 않은 콘텐트에 속절없이 노출되기 쉽다. 영상에 과다 노출된 아이들이 독서와 멀어지고 문해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도 당연한 결과다. 이런 모습을 묵과하는 사회가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세상이 급변하니 아이들 정신 건강에도 변수가 자꾸 생긴다.
“요즘 디지털 만능은 경계해야 한다. 젊은 엄마들이 유튜브를 한없이 보여주면서 문제의식이 없는데, 영유아기는 주양육자와의 1대 1 관계에 따라 뇌발달이 좌우되는 시기다. 스마트폰 사용은 최대한 늦출수록 좋다. 어쩔 수 없이 사줘야 한다면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내 경우도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사주면서 절제가 안되는 스마트폰의 중독적인 속성에 대해 경고하고 시간제한을 스스로 체크해서 삼진아웃제로 반납하게 했다. 이후 줄곧 2G폰을 쓰다가 대학 입학 이후에야 스마트폰을 사줬다.”
부모 노릇도 우울하고 가끔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다.
“요령껏 도망가야 되고, 배우자와 역할분담이 필수다. 요즘엔 진료에 남편들이 많이 따라오는 편이지만 상담에 적극적이지 않고 엄마의 노력을 폄하하는 아빠도 있다. 아이의 문제를 동일한 관점에서 공유하지 않을 때 엄마가 지쳐 있을 확률이 높다. 소아정신과에서 아이치료 보다 부모상담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를 교육하고 아이 속마음을 통역해주고 아이행동에 대한 부모의 대처방식을 교정해주는, 결국 가족전체를 치료해야 하는 일이다.”

유사자폐, 환경 교정으로 회복 가능

코로나19를 제외하고 올해 세상이 가장 주목한 질병이 있다면 ‘자폐스펙트럼장애’일 터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배우 박은빈이 똑부러지게 연기한 자폐 변호사 우영우가 너무도 사랑스럽고 똘똘하게 그려진 덕에 그늘에 가려져 있던 자폐스펙트럼장애가 화두가 되고 사회적 인식 개선 문제도 공론화됐다. 하지만 소수 케이스인 고기능 자폐가 부각되면서 보편적 자폐 가족들이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50명 중 1명꼴로 갖고 태어난다는 자폐 스펙트럼의 정체는 대체 어떤 것일까. 천 교수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전문가이기도 하다.

드라마에 그려진 고기능 자폐와 보편적 자폐는 많이 다르다던데.
“부모들이 당신 아이는 뭘 잘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미디어의 한계점도 있다. 하지만 아주 중증이 아닌 이상 부모들이 70% 정도는 드라마를 긍정적으로 봤더라. 정상인 큰 아이가 자폐아인 동생이 귀막고 소리지르는 걸 창피해 했는데 이해하고 배려하게 됐다면서, 형제자매에게 이해도를 높여줬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한다.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져서 공공장소에도 못 데려갔었는데, 이제 귀엽게 바라봐주게 돼서 고맙다는 부모도 있었다.”
환경적 영향으로 자폐가 되기도 하는지.
“자폐는 완전히 생물학적인 신경발달의 문제다. 자폐가 심하지 않았는데 부모의 정신건강과 결부돼서 자폐 합병증이 온다거나 심해질 수는 있다. 부모의 정신병리로 인해 아동학대 또는 방임이 일어날 경우 반응성 애착장애라는 자폐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아이도 있어서 그걸 가려내는 게 관건이다. 유사자폐는 환경 교정으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27년간 진료한 아이들 중 가장 인상적인 케이스를 꼽는다면.
“초등 입학 전에 와서 20대 후반이 된 친구가 있다. ADHD와 자폐가 같이 있는데, 어릴 때는 걱정이 많았지만 미대를 나와 디자이너가 됐다. 20년 넘게 치료가 안 돼서 오는 게 아니라 인생을 관리받는 거다. 지금 잘 살고 있지만 삶은 스트레스의 연속이니까 어려울 때마다 코칭이 필요하고, 퍼포먼스를 더 잘하고 싶어서 소량의 약을 먹는 수준이다. 내가 병원을 몇 번 옮겼는데도 계속 따라와 준 그 엄마가 인상적이다. 한 사람에게 자녀를 계속 맡기고 상담받게 하는 것이 아이와 가족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실패 사례에서 배운 적도 있나.
“사실 더 기억에 남는 건 초창기 실패 사례다. 지금은 냉담형 정서결여형이라고 정의된 품행장애를 가진 중학생이었는데, 부모가 조기유학을 보낸다면서 6개월간만 치료해 달라고 데려왔었다. 아주 잔인한 아이라 분명 부모와의 애착문제가 있었을텐데, 유학을 간다기에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고 흐지부지됐다. 유학을 말리고 입원 치료를 권했어야 했는데, 그 아이의 미래가 지금도 걱정된다.”
결국 부모의 태도가 관건인 것 같다.
“아이에 대한 불안을 내려놓으시라고 당부하고 싶다. 아이들은 자기를 부모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다. 네 존재 자체로 보석 같은 존재라는 걸 낯간지럽더라도 끊임없이 표현해야 한다. 안아주고 뽀뽀해주는 스킨십도 멈추지 말라. 나는 군대 간 둘째 아들이 며칠 전 갑자기 휴가를 나왔길래 너무 반가워 뽀뽀해줬다. 지금도 싫지 않은 눈치다.(웃음)”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