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작 ‘현질’ 도를 넘었다”…충성유저 ‘린저씨’마저 등돌려

    “신작 ‘현질’ 도를 넘었다”…충성유저 ‘린저씨’마저 등돌려

     ━  [SUNDAY 추적] 엔씨소프트 주가 급락 사태    이쯤 되면 기업도 투자자도 공황상태다. 게임 업체 엔씨소프트 얘기다. 지난달 25일까지만 해도 83만원대였던 이 회사 주가는 불과 1주일 사이 24% 급락하면서 이달 초 63만원대가 됐다. 이후 더 하락해 10일 현재 7개월 전 연고점 대비 43% 내려간 60만원대를 형성했다. 엔씨소프트는 히트작 ‘리니지’로 국산 단일 게임 첫 100만 회원 돌파(1999년), 첫 누적 매출 3조원 돌파(2016년) 등 전례 없는 기록을 달성한 회사다. 역대 리니지 시리즈 지식재산권(IP)에서 발생한 누적 매출만 10조원 이상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1000만 관객 영화 70여 편이 나올 때 매출 합계다. 잘나가던 이 회사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주가 급락은 지난달 26일 새 모바일 게임 ‘블레이드&소울2’를 출시하면서 시작됐다. 이 게임은 사전 예약에 746만 명이 참여할 만큼 하반기 최대 기대작으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출시 직후 혹평이 쏟아졌다. 이 게임은 리니지 같은 MMORPG(여러 이용자가 동시 접속해 같은 가상공간에서 특정 역할을 수행하며 즐기는 게임) 장르이면서 리니지의 수익 모델인 과금(이용료 결제) 유도 시스템을 무늬만 살짝 바꿔 계승했다. 예컨대 게임 속 전투에서 상대를 이기기 위해선 더 좋은 무기 등의 아이템이 필요한데, 현실 세계의 돈을 많이 쓸수록 좋은 아이템을 뽑을 확률이 오르게끔 게임을 설계했다.    “리니지M 캐릭터에 1억 써도 하수”   이를 ‘확률형 아이템’이라 한다. 결국 “리니지와 다른 게임이라고 홍보하더니 또 ‘현질’(게임을 위한 돈쓰기) 유도냐”는 이용자들의 거센 반발에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주가 급락을 설명하긴 힘들다. 지금의 ‘으리으리한’ 엔씨소프트 사옥(경기도 판교)을 세운 것은 이른바 ‘린저씨’(리니지 하는 아저씨)로 불리는 리니지 시리즈의 열성팬이기 때문이다. 즉, MMORPG 장르나 과금 유도 시스템은 충분히 검증된 인기 요소라는 얘기다. 당연히 회사 입장에선 이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린저씨마저도 이번 신작에 분노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껏 참고 참았지만, 문제점을 개선하기는커녕 도가 지나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린저씨를 자처했던 직장인 임모(44)씨는 “확률형 아이템을 통한 부분 유료화 자체는 낯설지 않은 일이라, 그래도 적정 수준이면 이 회사 게임에서 손을 뗄 생각까진 안 했다”며 “문제는 회사 수익성 강화를 위해 현질의 ‘진입장벽’을 일반인 수준에선 감당조차 못할 정도로 높인 것”이라고 말했다. 린저씨 사이에선 2017년 엔씨소프트가 출시한 모바일 버전의 리니지 게임 ‘리니지M’이 인기를 모으면서 이런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끼리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경험을 공유하면서 내린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리니지M에서 캐릭터에 1억원을 썼는데도 ‘혈맹’(리니지 세계관 내에 형성된 이용자 모임) 내에서 아무 역할도 못하는 하수(下手)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소 10억~30억원 정도는 써야 캐릭터의 전투 성능이 좋아져 다른 혈맹과 싸울 때 중간급 역할을 하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더라는 거였다. 아울러 50억~70억원은 써야 혈맹 내에서 핵심 인물로 통할 수 있고, 다른 혈맹에서도 우러러보는 높은 위상의 고수(高手)가 되려면 100억원 이상은 써야 한다는 게 이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최모(47)씨는 “과거 PC 버전 리니지에서는 현질을 안 해도 (게임 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거나, 손놀림이나 머리 쓰는 데 재능이 있으면 남들이 박수칠 만큼 캐릭터를 강하게 키울 수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오직 현질로 캐릭터를 치장해야만 그게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김택진 대표 2019년 ‘리니지2M’ 출시 이후에도 이런 얘기는 계속 나왔다. 린저씨들은 엔씨소프트의 연간 영업이익 등 실적 수치와 주가가 최근 몇 년간 가파르게 오른 게 이처럼 이용자의 현질 수준을 대폭 높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현질 수준을 높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수한 확률형 아이템이 뽑힐 확률을 웬만큼 돈 써서는 어림도 없을 만큼 극단적으로 낮추는 것이다. 이 때문에 “리니지가 도박과 다를 게 없다”는 지적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정치권에서도 공론화될 정도였고, 급기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2018년 국정감사에 불려 나갔다. 당시 김 대표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아이템이 공정하게 이용자 사이에서 나뉘는 데 필요한 기술적 장치”라고 밝혔다. 다만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시리즈의 확률형 아이템이 회사 수익에는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전체 확률이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 등은 아직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확률은 일부만 공개).    “미국·유럽선 안 통하는 사업 모델”   설상가상으로 최근 들어 리니지에 대한 현질을 악용한 사기 범죄와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7월 인천서부경찰서에 따르면 A씨 등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리니지M 계정 판매자를 찾아 거래하자고 한 다음, 휴대전화로 발신번호가 조작된 허위 ‘입금완료’ 문자 메시지를 발송하는 수법으로 70명으로부터 18억원 상당의 계정을 가로챈 혐의로 검거됐다. 현질로 무장해 강력해진 게임 캐릭터 계정을 현실 세계에서 사고파는 일이 빈번하다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 앞서 4월엔 리니지M 내에서 통용되는 사이버 머니인 ‘다이아’를 판매한다고 속인 뒤 4명에게 거액을 챙긴 B씨가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가뜩이나 기업 이미지가 나빠진 엔씨소프트로선 달갑지 않은 사건들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 같은 일들을 겪으면서 엔씨소프트라는 회사 전반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커진 게 최근 주가 폭락의 실체라는 게 시장의 진단이다. 정호윤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확률형 아이템 등 리니지의 성공 방정식에 대한 이용자들의 피로감과 불만이 누적된 상황이라는 게 이번 신작을 통해 재차 드러났다”며 “결국 주가 폭락도 신작 하나에 대한 실망감보다는 회사의 미래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엔씨소프트가 주가 반등을 이끌려면 린저씨마저 등을 돌린 기존 성공 방정식에서 벗어난 게임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는 비단 엔씨소프트만의 문제가 아니라 K게임이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리니지의 인기에 영향을 받은 많은 국내 게임사들이 비슷한 MMORPG 장르와 과금 유도 시스템의 게임 개발·출시에 여전히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넥슨의 인기 게임 ‘메이플스토리’, 카카오게임즈의 최근 히트작 ‘오딘’ 등도 리니지처럼 확률형 아이템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중국과 일본은 게임 속 확률형 아이템의 도박성이 해가 된다며 규제하고 있고, 미국·유럽 시장에선 확률형 아이템은 아예 통하지 않는 사업 모델”이라며 “확률형 아이템이 주는 국내 단기 수익에 중독된 기업들이 체질 개선에 힘쓰지 않는 한, K게임은 장기적으로 국내에서 외면되는 건 물론이고 글로벌 경쟁에서도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게임 개발 노력 없이 ‘헤비 과금러’에 의존하다 역풍 「 가상공간인 게임 속 캐릭터 하나를 키우는 데 실제로 수십억원을 쓴다. 아무리 수중에 돈이 많은 린저씨더라도 리니지 하나에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뭘까. 경험자들은 “리니지만이 주는 중독적 쾌감이 상상을 초월하다보니 과금을 멈출 수 없다”고 전한다. 사업가 박모(51)씨는 “가상공간이지만 내 혈맹 구성원들을 진두지휘하면서 존경의 대상이 되고, 다른 혈맹에 피해를 입히면서 때론 거리낌 없이 내 입맛대로 ‘갑질’까지 하며 얻는 쾌감은 경험해본 사람만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이런 지위를 놓지 않기 위해선 계속 많은 돈을 써서 캐릭터를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에 따르면 국내 리니지 이용자 7018명은 주당 평균 31시간(하루 4~5시간)씩 이 게임을 했다. 다만 최근엔 리니지를 떠나는 이용자도 늘고 있다. 리니지 속 한 혈맹의 리더 역할까지 했다가 최근 게임을 접은 송모(41)씨는 “아이가 생기고 코로나19에 사업도 잘 안 되다보니 리니지에 이렇게까지 열중해서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엔씨소프트 역시 더 이상 이들 헤비 과금러에만 의존하기 힘들 만큼 여론 악화에 직면했다. 지난 4월엔 린저씨들이 엔씨소프트 사옥과 국회의사당 등을 도는 트럭 시위로 회사 측을 규탄하는 일도 있었다. 스탠리 양 JP모건 애널리스트는 “엔씨소프트는 혁신적인 게임 개발 노력 없이 지나친 과금 유도로 이용자 신뢰를 잃었다”고 꼬집었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2021.09.11 00:20

  • 임상의학에 쏠림 심해, K백신 만들 기초의학자 씨 말라

    임상의학에 쏠림 심해, K백신 만들 기초의학자 씨 말라

     ━  [SUNDAY 추적] 백신 개발 낙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가장 중요한 만큼 임상 단계별 맞춤형 지원을 확대하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백신 관련해 지난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중 일부다. 해외 백신 확보와는 별개로 국내 원천기술로 개발 중인 ‘K백신’에 대해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9일 수도권 방역상황 긴급점검 회의에서도 문 대통령은 “국내 기업들의 치료제 개발 빠른 진전으로 백신 이전에 치료제부터 먼저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기초의학계는 냉담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생화학 등 기초의학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초의학에 대한 기초체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당장의 예산 투입만으로 백신 성과를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반응이 나온다. 특히 임상의학에 쏠려 있는 국내 의료시스템 개선 없이는 K백신 개발은커녕 또 다른 변종 바이러스 발생 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단 목소리가 나온다.   기초의학자는 인체 기능부터 바이러스, 질병 치료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전문 의학 연구자다. 통상 미생물학·병리학·예방의학·해부학 등 8개 분야가 기초의학으로 분류된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장협회의 ‘2016년 기초의학 활성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전국 41개 의과대학의 기초의학 분야 전임 교수는 1298명이다. 2002년(1219명)에 비해 6.5%(79명) 정도 늘어난 수치다. 이중 의사 면허를 소지한 기초의학자는 30~40명뿐이다. 반면 환자 진료 분야에 해당하는 임상의학 전임 교수는 2010년 8748명으로 2002년(6386명) 대비 37%나 증가했다.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갈수록 심화되는 대학 내 성과주의탓에 기초의학을 담당하는 교수 현재 더욱 줄어들고 전문 연구원 역시 메말라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의사국시도 기초의학 평가 안 해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전문가들은 기초와 임상의학 사이의 불균형 원인으로 임상의사 양성 위주의 의대 교육과정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학생들에게 환자 진료 역량을 강조하다 보니 기초의학 교과목은 자연스레 외면받는 모습이다. 대한기초의학협의회가 발간한 ‘2015년 기초의학백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기초교실별 개설되는 이론 강좌 수는 평균 2.6개였다. 실기 강좌는 개설되지 않는 곳이 다수였다. 전용성 대한기초의학협의회 회장(서울대 생화학)은 “2000년대부터 통합교육과정 기조 하에 기초의학을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추세”라며 “이런 상황에서 의사국가고시마저 기초의학 분야를 평가하지 않으니 의대생들의 임상 쏠림은 당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안덕선 소장 역시 “정부가 장학금을 통해 기초의학 전공생을 유치하겠다고 하지만 학비가 문제가 아니라 배울 수 있는 수업 자체가 의대 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 백신 개발에만 연 2조원 투자   더 큰 문제는 기초 전공생들이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란 점이다. 의대 졸업 후 주요 대학 병원으로 취직하는 임상의와 달리 기초를 선택한 전공의들은 대학 병원 진입이 어렵다. 국내 대학 병원 운영이 환자 진료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의료 연구에 투자가 사실상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 단위 연구소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당장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분야다 보니 매년 예산 지원을 장담할 수 없다. 기초 연구자가 해외 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이유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는 “바이러스와 감염병 대응 인력은 사실상 국가가 채용해야 하는데 바이러스가 유행하지 않으면 해당 연구원들을 마치 ‘필요하지 않은 인력’으로 치부한다”며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으니 전공생들이 다시 임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용성 회장은 “현재 국내 민간 제약사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주도하고 있지만 제약사 역시 민간 조직이란 한계가 있다”라며 “국민 건강이라는 의료적 접근 차원에서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의학 위기 탓에 의료계는 2010년대부터 의대별 의사과학자(physician scientist) 양성 R&D 사업을 확대했다. 기초연구를 원하는 임상 의사들이 전일제 대학원에 입학해  연구 경험을 쌓으며 석·박사 학위 취득을 지원하는 제도다. 그러나 임상의사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애초 의대에서부터 기초 분야를 선택한 기초의학자는 지원에서 제외된다. 또 학위를 취득한 임상 의사가 박사과정 후 연구원 생활 대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 연구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 주요 국가들은 장기투자라는 정공법을 통해 기초의학 강국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모더나 백신 개발에 참여한 미국국립보건원(NIH)은 27개의 연구소와 연구센터로 이뤄져 미 기초의학 연구의 중심으로 꼽힌다. 연간 33조원의 연구비를 운영하고 있고 이중 바이러스 백신 개발에만 2조원가량을 투자한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의대 교육과정 개선에 나섰다. 일찌감치 일본 사회에 드리운 저출산·고령화 위기 때문이다. 국가가 직접 신진연구자를 채용하고 연구비를 지원해 기초연구자들의 이탈을 막고 있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관련기사하루 확진 1000명대…코로나 3단계 여부 일요일 결정키로중남미도 받은 백신 성탄선물, 한국엔 주한미군용만누적 확진자 514명 동부구치소 “수용 과밀 탓”

    2020.12.26 00:20

  • 야당 “국산 치료제 우선시 하다 게임체인저 백신 놓쳐”

     ━  [SUNDAY 추적] 코로나 백신 확보 왜 늦어졌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확보 실패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야권에선 “국산 치료제 개발 효과를 낙관하다가 해외 백신 도입에 대해 안일하게 판단한 것 아니냐”(조명희 국민의힘 의원)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는 지난 15일 셀트리온 항체 치료제가 임상3상을, GC녹십자가 임상2상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산 치료제 개발에 상당한 관심을 보여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15일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치료제는 올해 안에 본격적인 생산을, 백신은 내년까지 개발 완료를 기다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18일에도 “빠르면 올해 말부터 항체 치료제와 혈장 치료제를 시장에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 여권 핵심관계자는 “녹십자는 혈장 방식이라 안전하지만 대량 생산에 한계가 있다”며 “항체 방식인 셀트리온 치료제는 대량 생산이 가능해 병원에 풀리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민주당도 셀트리온의 치료제 개발을 적극 뒷받침하고 있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셀트리온은 이미 치료제 제조에 들어가 내년 1월부터는 쓸 수 있을 것”이라며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국내에는 원가로, 북한에는 무료로 공급할 생각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에선 “백신보다 치료제를 우선시 하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판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인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게임 체인저는 백신이 1순위, 치료제는 2순위”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치료제가 게임 체인저라면 치료제가 있는데 아이들 예방접종은 왜 하겠나”며 “백신이 있어야 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야당 일각에선 서 회장이 문재인 정부와 교감이 두터운 데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한 초선의원은 “지난해 1월 문 대통령이 ‘기업인과의 대화’를 위해 대기업·중견기업 대표들을 초청해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는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오른편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왼편에 서정진 회장이 섰다”며 “셀트리온과 현 정부의 친밀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서 회장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충북 청주 동향에 1957년생 동갑내기로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야권에선 “애초부터 권력 핵심부가 백신보다 치료제를 우선시 하다보니 자연히 복지부도 백신 구매에 소극적으로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영익·김기정 기자 hanyi@joongang.co.kr 관련기사8일 “내년에” 18일도 “내년에”…진전 없는 백신 확보전정부, 백신 부작용·예산 걱정해 '돌다리'만 두드려외국, 대통령도 정보 기관도 봄부터 백신에 '올인'“코로나 방역·경제 공존 방법 찾기 위해 최대한 노력”코로나 백신 불신 커져, 투명한 접종 로드맵 빨리 짜야

    2020.12.19 00:27

  • 외국, 대통령도 정보 기관도 봄부터 백신에 ‘올인’

    외국, 대통령도 정보 기관도 봄부터 백신에 ‘올인’

     ━  [SUNDAY 추적] 주요국은 코로나 백신 선점 레이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경내 아이젠하워 행정관 건물에서 화이자 백신을 맞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지난 8일 영국, 14일 미국과 캐나다에서 화이자 백신의 접종이 시작되면서 선구매 국가들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확보 과정에 관심이 쏠린다. 백신은 누가 뭐래도 코로나 팬더믹을 하루라도 일찍 종식해 정상생활과 경제활동 재개를 이룰 수 있는 ‘게임 체인저’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통 큰 조기 연구·개발 투자’가 주효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은 누적 확진자가 150만명을 넘어선 지난 5월 15일 대응 프로젝트인 ‘워프 스피드 작전(Operation Warp Speed)’에 들어갔다. 스타트렉 같은 SF 드라마에서 나오는 초광속 항해 기술인 ‘워프’에서 따온 이름이다. 일찌감치 코로나 대응의 핵심을 백신으로 잡고 3억 명분을 2021년 1월까지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식품의약청(FDA), 국립보건원(NIH) 등 미 정부 조직과 민간 제약업체가 힘을 합쳐 백신을 개발하고, 국방부가 운반과 보관에 손을 보태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가 별것 아니다”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는 등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지만 백신 확보에는 누구보다 빨리 움직인 것이다.   사실 미 연방정부는 이 작전 시작 전부터 백신 개발에 거액을 지원했다. CNN에 따르면 3월 들어 신규 감염자 수가 하루 3만명을 넘어서자 미 연방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30일 민간 제약사인 존슨앤드존슨에 4억56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지원 규모는 갈수록 늘어갔다. 4월 16일에는 모더나에 4억8300만 달러, 5월 21일에는 아스트라제네카에 12억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백신 개발뿐 아니라 생산시설 확보에도 6억2800만달러를 투자했다. 이런 지원에 힘입어 미국은 이미 지난 7월에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1억 회분, 8월엔 모더나와 2억 회분의 백신 구매 계약을 맺었다.   미국은 7월 들어 하루 확진자가 7만명을 넘어서자 3상 시험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화이자 백신은 4만명, 모더나의 백신은 3만명이 참여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백신 임상시험은 동물시험 이후 보통 3차에 걸쳐 이뤄진다. 1상은 소수(20~100명)의 건강한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실제 효과가 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을 판단한다. 2상은 100~300명을 대상으로 적절한 투여량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판매 허가를 얻기 전 마지막 단계인 3상은 1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안전성과 효능을 최종적으로 확인한다.   이번에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공급된 화이자 백신의 경우 이미 지난 3월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계약을 맺고 백신 플랫폼을 공동으로 개발해 왔다. 독일 국제방송 DW는 “계약 체결 당시 전 세계의 코로나 확진자는 17만9000명이었고 사망자는 7000명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이같은 각국 정부와 기업의 노력을 통해 보통 8~10년이 걸리는 백신 개발을 코로나가 발생한 지 1년 안에 마무리했다. 이는 전문가들조차 예상치 못한 속도다. 실제로 지난 5월 유럽의약품청(EMA)은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에 따르면 백신이 1년 안에 준비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효과도 기대 이상이다. 과학자들은 75% 이상의 효과를 가진 백신을 기대했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도 “50~60% 정도의 효력만 있어도 쓸 만하다”고 언급했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3상 시험에서 90% 이상의 예방 효과를 보였다.   백신 개발이 속도를 내면서 이미 지난 여름쯤 경제적 여력이 있는 나라들은 발 빠르게 선구매를 통해 물량을 확보했다. 빈곤 해결과 공정 무역을 추구하는 국제기구인 옥스팜은 지난 8월 “전 세계에서 개발 중인 주요 백신 5개의 생산 능력은 59억 회분”이라며 “이 물량의 51% 정도가 미국·영국·유럽연합(EU)·호주·홍콩·마카오·일본·스위스·이스라엘 등 부유한 국가와 지역들이 선구매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8월 초 화이자 백신 1억2000만 회분을 계약했으며, EU는 8월 스웨덴·영국의 다국적 제약업체인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 4억 회분을 공급받기로 계약했다. DW는 전 세계에서 남은 백신 물량인 26억 회분은 방글라데시·중국·브라질·인도네시아·멕시코 등 중견 국가들이 서둘러 사들이거나 구매를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7일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의 접종을 시작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선제적 투자로 백신을 확보했다. 지난달 21일 압둘라 알라비아 인도주의 구호·원조 수석 고문은 “사우디는 5억 달러를 백신 개발에 투입했다”며 “이 중 2억 달러는 국제·지역 기구의 백신과 의약품 개발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는 이런 식으로 확보한 백신을 이웃 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바레인·오만에도 공급할 수 있도록 해 지역 백신 맹주를 노리고 있다.   이스라엘은 해외 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가 주도적으로 방역물자에 이어 백신 확보에 나섰다. 현지 일간지 예루살렘포스트는 “지난 10월 27일 모사드가 해외에서 백신을 구해 국내에 들여왔다”고 보도했다. 정보망을 동원해 임상시험 상황을 입수하고, 쓸 만한 백신을 우선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전통명절인 하누카(올해는 12월 10~18일)가 끝난 직후인 20일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   채인택 국제전문 기자, 김창우 기자 ciimccp@joongang.co.kr 관련기사8일 “내년에” 18일도 “내년에”…진전 없는 백신 확보전정부, 백신 부작용·예산 걱정해 '돌다리'만 두드려야당 “국산 치료제 우선시 하다 게임체인저 백신 놓쳐”“코로나 방역·경제 공존 방법 찾기 위해 최대한 노력”코로나 백신 불신 커져, 투명한 접종 로드맵 빨리 짜야

    2020.12.19 00:25

  • 정부, 백신 부작용·예산 걱정해 ‘돌다리’만 두드려

    정부, 백신 부작용·예산 걱정해 ‘돌다리’만 두드려

     ━  [SUNDAY 추적] 코로나 백신 확보 왜 늦어졌나   혹시나 기대했지만 ‘역시나’였다. 정부가 17일 예정에 없던 백신 도입 관련 브리핑을 18일 오전 하겠다고 기자단에게 공지했을 때 화이자·얀센·모더나 백신 도입 시기나 단계별 물량 등이 공개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화이자·얀센 백신은 이달 내에, 모더나는 내년 1월 계약 체결을 목표로 협의 중이라는 게 핵심이었다. 이달 8일 ‘4400만명 도입 계획’을 발표한 이후 간간이 내놨던 것과 차이 없었다. 18일 브리핑에선 한국이 ‘백신 후진국’을 모면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줬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정부는 4월 17일 치료제·백신 개발 범정부 실무추진단 회의를 열었다. 미국이 5월 중순 ‘초고속 작전팀’을 출범시킨 것에 비하면 4월 실무추진단 구성이 늦지는 않았다.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백신의 필요성을 일찍 인지한 듯 하지만 정작 관심은 국내 백신 개발이었다. 게다가 5, 6월 ‘K방역’ 홍보에 바빴다. 세계와 공유하고, 중남미까지 수출하고, 생활방역을 알린다고 홍보했다. 관련 정부 부처가 나서 세계 표준 길잡이를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정부가 5월에 백신 태스크 포스(TF)를 만들었지만 당시 하루 신규환자수가 50명 안팎으로 안정세를 보였기 때문에 느긋했다”며 “정권이 흔들릴 정도로 다급했던 미국·영국만큼 절실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후 8월 들어 신규환자수가 100명을 넘어서자 아스트라제네카(7월)·모더나(8월)·화이자(9월)·존슨앤존슨-얀센(10월) 등과 차례로 협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계약 협상은 3차 확산이 본격화된 11월 말에야 시작됐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000만명분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이 백신도 내년 2월 이후에야 공급될 예정이다. 이번 겨울 내내 백신없이 코로나와 싸워야할 판이다.   정부가 선구매를 주저한 표면적 이유는 안전성 문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부작용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최근 공개된 화이자의 3상 시험 결과에 따르면 백신을 맞은 1만8000명 가운데 9명이 코로나에 감염됐다. 위약을 접종한 대조군 1만8000명 가운데 감염자는 169명이었다. 백신이 감염자를 94.6% 줄인 것이다. 사망자는 백신 접종자 가운데서 2명, 플라시보 그룹에서 4명이 발생했다.   김남중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모든 백신은 부작용이 있다. 그러나 부작용을 감안해도 이득이 더 큰 집단이 있다. 65세 이상 노인과 기저질환(지병)이 있는 사람이 그렇다”고 말했다.   정부가 거리두기 효과를 과신한 측면도 있다. 상반기 내내 환자 발생이 많지 않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선구매 협상에 뛰어든 8월만 해도 거리 두기를 올려 치솟던 확진자를 막았다. 그런 방법으로 겨울을 넘길 수 있다고 쉽게 판단한 것이다.   예산상의 문제도 있다. 백신 도입에 관여한 한 전문가는 “가격과 임상 성공 여부 등 여러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차근차근 (협상을 진행)한 것 같다”면서도 “우리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따져온 것이다. 미국은 리스크를 짊어지고 모더나에 1조2000억원의 연구개발(R&D) 자금을 주고 3억 도즈를 선구매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우리가 그렇게 했으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감옥 가야 하지 않았겠느냐. 그럴 만큼 돈이 있는 나라도 아니고 미국·영국처럼 하기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정말 행정적인 입장에서 볼 때는 백신을 과도하게 비축했을 때 그것을 몇 개월 이내에 폐기해야 되는 문제가 생기는데 그에 따르는 사후적인 책임 문제도 사실은 있다”고 말했다. 결국 사후 책임을 두려워한 관료들의 보신주의가 걸림돌이 된 것이다. 한 보건의료 분야 원로 교수는 “정치가가 나서 ‘책임은 내가 질테니 공무원이 나서라’고 했어야 하는데 대통령도 총리도 그러질 않았다”고 지적한다. 미국·일본은 대통령과 총리가 나섰다.   백신의 필요성이 확인된 이후에도 정부는 돌다리만 두드릴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백신이 유일한 게임체인저(판도를 뒤집어놓는 요소)”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구해와야 하는 상황이라면 협상 전문가, 네트워크 좋은 사람들로 팀을 꾸리고 전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의 협상 조건은 나쁠 수밖에 없으니 과정상 절차 준수나 금액 손해 등의 법적·행정적 문제에서 보호해줘야 소신을 갖고 백신을 구해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야 할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한 방역 전문가는 “복지부만 질책할 것이 아니라 문 대통령이 백신 확보 계획을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하고, 먼저 백신을 맞아 안전성 논란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김창우·황수연 기자 ssshin@joongang.co.kr 관련기사8일 “내년에” 18일도 “내년에”…진전 없는 백신 확보전야당 “국산 치료제 우선시 하다 게임체인저 백신 놓쳐”외국, 대통령도 정보 기관도 봄부터 백신에 '올인'“코로나 방역·경제 공존 방법 찾기 위해 최대한 노력”코로나 백신 불신 커져, 투명한 접종 로드맵 빨리 짜야

    2020.12.19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