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후 달력, 거꾸로 지도…“남이 안하는 것 해야 일류 된다”

    10년 후 달력, 거꾸로 지도…“남이 안하는 것 해야 일류 된다”

     ━  [SUNDAY 인터뷰] 이광형 KAIST 신임 총장   ‘괴짜 총장’ 이광형 KAIST 총장이 ‘10년 후 미래를 생각하며 살자’는 취지로 만든 2031년 달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총장 오른쪽 뒤에 ‘거꾸로 세계지도’가 걸려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괴짜 총장’의 집무실은 역시 남달랐다. ‘4월 8일 화요일’. 책상에 올려진 4월 달력의 날짜와 요일이 맞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앞으로 10년 후, 2031년 달력이다. 그는 평소 연구실의 TV를 거꾸로 걸어두고 있어 ‘괴짜 교수’로 불려왔다. 1999년 방영한 인기 TV 드라마 ‘카이스트(KAIST)’에서 ‘괴짜 교수’로 불렸던 박기훈(안정훈 분) KAIST 전산학과 교수의 실존 모델이다. 총장실을 더 둘러보니 이상한 건 달력뿐 아니었다. 세계지도도, 조직도도 거꾸로 걸려있다. 중앙일보가 지난 2월 말 취임한 이광형(67) KAIST 신임 총장을 8일 오후 만났다. 취임 두 달이 채 못 된 이 총장의 아래·윗입술이 부르터있었다.    실리콘밸리 다녀온 김정주, 넥슨 창업   이광형 KAIST 총장이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10년 후 달력에 거꾸로 세계지도, 거꾸로 조직도 …, 좀 당황스럽다. “‘10년 후 미래를 생각하며 살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일부러 소문낸 것도 아닌데 2031년 달력 반응이 좋다. 300부를 만들었는데, 달라는 곳이 많아 300부를 더 주문했다. 거꾸로 세계지도는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만들어 쓰고 계신 걸 나눠주신 거다. 세계지도를 뒤집어 보면 한반도는 대륙에서 대양으로 뻗어 나가는 최적의 항구 모양, 위쪽 일본 열도는 방파제 격이다. 거꾸로 조직도엔 총장이 맨 아래에 있다. 교직원을 섬기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내 다짐이다.”   KAIST 개교 50주년에 총장이 되셨다. 지난 50년을 돌아보면. “KAIST는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발전이라는 정부의 목표 아래 국내 최초의 연구중심 이공계 특수대학원으로 1971년 설립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사회·경제·교육 환경이 열악해 수많은 인재가 해외 유학을 떠났고, 대부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환경에서 출범한 KAIST가 국민의 전폭적 지지와 성원 덕분에 50년 만에 QS대학평가에서 세계 39위에 오르는 세계적 수준의 대학이 됐다. 다만 지금 대한민국의 국가 위상이 세계 12위고, 세계 10위권 기업과 음악·영화 등에서도 세계 수위권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대학은 그러질 못하고 있다.”   총장실 벽면에 걸려 있는 거꾸로 세계지도(왼쪽)와 거꾸로 조직도. 김성태 객원기자 한국 대학 교육의 문제점은 뭔가. “한국 대학은 획일화돼 다양성이 부족하다. 대학마다 독특한 특성을 가질 수 있도록 자율성을 줘야 하는데, 정부에서 대학을 평가하는 잣대가 너무 획일적이다. 교수도 성공하기 쉬운 연구만 한다.”   KAIST의 향후 비전은 뭔가. “국가 위상에 맞는 세계 일류대학이다. 기존의 따라 하기 성장전략으로는 2등까지는 할 수 있지만, 1등은 못한다. 1등을 하려면 남이 못하는 것, 안 하는 것을 해야 한다. 그래서 향후 미래 50년을 위한 신문화 비전으로 ‘QAIST’를 제안했다. 질문하는 창의인재와 인공지능(AI) 시대 이후의 연구, 캠퍼스의 글로벌화, 기술사업화를 통한 재정자립, 신뢰 인재양성이 그것이다.”〈표 참조〉   이광형 총장이 인터뷰에 앞서 KAIST 교정 조형물 앞에 섰다. 김성태 객원기자 세계 일류대학을 육성하기 위한 총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세계 일류대학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KAIST 구성원의 의식을 바꾸는 역할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KAIST가 세계 50위 안팎에 머무른 이유는 세계 일류대학이 되겠다는 다짐을 안 해서다. 삼성은 세계 일류 기업이 됐고, 방탄소년단(BTS)은 빌보드차트 1위에 올랐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는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고 말했다. KAIST도 구성원들이 일류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결의를 다진다면 일류가 될 수 있다.”   교내 1개의 연구소(랩)가 1개의 벤처기업을 육성하자고 제안하는 등 창업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다. “20세기형 대학은 교육과 연구가 주된 임무였다. 하지만 21세기형 대학은 교육·연구와 더불어 이를 사업화하는 임무가 추가된다. 기술사업화는 연구자에게 보람과 명예, 재산을 주고, 대학엔 재정 자립화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임기 중 부작용이 날 정도로 적극 벤처 창업을 지원할 생각이다. 청년 실업이 국가적 문제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창업이다. 경제 영토를 넓히려면 창업이 가장 좋은 수단이다.”   교내 호수에서 이광형 총장이 캠퍼스 내 연못에 사는 거위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이 총장은 '거위 아빠'로도 유명하다. 20여년 전 인근 유성시장에서 직접 사와 지금껏 길렀다. 김성태 객원기자 취임식 때 밝힌 ‘기술이전전담조직(TLO·Technology Licensing Office) 민영화’도 창업 활성화를 위한 방법인가. “그렇다. KAIST가 보유한 특허와 지식재산이 상당한데, 이를 잘 활용하면 새로운 사업을 창출할 수 있다. 기존의 경직적인 조직문화를 탈피하려면 민간 기업이 이를 담당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학생과 연구 인력이 보유한 지식재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들이 창업할 수 있는 기술을 발굴하기 위해서 올해 안에 스핀오프(spin off) 방식으로 TLO를 민영화하겠다.”   제자들이 삼성·구글과 같은 일류기업에 가지 않고 창업하겠다고 하면 학교로서는 조금 주저할 수 있지 않나. “왜인가. 나는 학생들이 대기업을 지향하는 건 2류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일류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자기가 잘났고 똑똑하다면 자기 인생을 자기 스스로 정한 목표를 향해서 투신하는 게 보람 있는 것 아닌가. KAIST 졸업생이 세계 일류기업에 취직하는 것보다 창업하는 것을 원한다. 그게 본인을 위하고 인류를 위한 길이다.”   ‘성공 가능성이 80% 이상으로 높은 연구에는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파격 발언도 하셨다. “정부 연구·개발(R&D) 과제 성공률이 90%가 넘는다고 하지 않나. 목표를 달성하기 쉬운, 연구를 위한 연구가 문제다. 이제는 ‘따라가는’ 연구가 아닌 무엇을 연구할까를 생각해야 할 때다. ‘최고’보다 ‘최초’의 연구를 통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미래 내다보고 준비해야 대처 가능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한때 미국 실리콘밸리로 제자들을 연수보냈다는 얘기가 흥미롭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직전까지 90년대 중반까지 6개월씩. 매년 4명을 보냈다. 학생들에게 우물 밖 세상을 보여주자는 취지였다. 처음엔 좀 걱정했는데 다들 스스로 알아서 잘했다. 그때 ‘우리 학생들은 능력이 무한하구나. 간섭할 필요 없이 세상을 보여주고 꿈을 갖게 하면 되는구나’하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수조원의 기업을 이끄는 넥슨 김정주와 아이디스 김영달도 그때 실리콘밸리를 다녀온 제자다.”   국회 세계특허허브추진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지식재산은 국부의 원천이다.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의 특허 분쟁에서 보는 것처럼, 이제 특허가 없으면 사업을 할 수 없는 시대가 열렸다. 우리나라를 동아시아 특허의 중심 국가로 육성하자는 취지에서 공동대표를 맡았다. 특허는 속지주의다. 특허를 출원한 국가에서만 특허의 효력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분쟁이 생기면 해당 국가에서 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이때 특허권자 입장에서 전문 지식을 갖춘 판사가 빠르고 정확하게 판결을 내리는 국가에서 먼저 특허소송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한 국가에서 판결을 내리면, 다른 국가도 이를 참조해 판결하기 때문이다. 미국 남부 텍사스 동부법원과 미국 서부 산호세법원, 독일의 만하임법원이 대표적이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이런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천국제공항도 30여 년 전에는 갯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동북아 허브공항으로 자리매김했다. 공항처럼 한국도 특허중심 국가가 될 수 있다.” 이광형 총장 집무실 원탁 테이블 가운데엔 조그만 어린왕자 인형이 놓여있다. 이 총장은 어린왕자를 보면 어릴 적도 그랬지만, 지금도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이유가 뭐냐는 기자의 물음에, "무한한 자유를 느낀다"고 답했다. 김성태 객원기자   과학기술 특성화대학인데 미래전략대학원도 만들었다. 왜 미래학인가. “미래는 항상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고 불확실하지만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것이다. 그래서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시점에 더 필요한 건 기술의 발전으로 사회가 급변하는데 1년 후도 내다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래 연구의 기본은 발생 가능한 여러 가지 미래를 미리 내다보고 대비하는 거다. 이렇게 하면 어떤 미래가 닥쳐도 당황하지 않고 맞이할 수 있다. 또 발생 가능한 미래 중에서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미래를 만들어 갈 수도 있다. 그래서 미래학이 필요한 것이다. 10년 후 달력을 만든 이유기도 하다.”   거액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유독 KAIST에 거금을 기부하는 이유가 뭘까 “그분들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 돈을 쓰고 싶어 한다. 더불어 과학기술 발전이 국가 발전이며, KAIST가 대한민국 과학기술 발전의 선봉장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돈을 주면 제대로 쓴다는 믿음이 쌓여온 영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 이광형 총장은 「 ● 1954년 전북 정읍생 ● 서울대 산업공학 학사 ● KAIST 산업공학 석사 ● 프랑스 국립응용과학원(INSA) 컴퓨터 석·박사 ● 프랑스 리옹제1대학 전산학 박사 ● KAIST 교수(1985~ ) ●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대 원장 ● KAIST 17대 총장(2021.3~ ) ● 프랑스정부 훈장(Chevalier) 수상(2003) ●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2016) ● 대한민국 녹조근정훈장(2020) 」    대전=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문희철 기자 joonho@joongang.co.kr

    2021.04.10 00:43

  • “007 같은 비밀요원 없지만…1억건 인터폴 DB로 범죄 추적”

    “007 같은 비밀요원 없지만…1억건 인터폴 DB로 범죄 추적”

     ━  [SUNDAY 인터뷰] 김종양 인터폴 총재   한국인 첫 인터폴 수장인 김종양 총재. 김 총재는 지난 2018년 11월 러시아 출신 후보를 누르고 총재에 당선됐다. 전민규 기자 지난해 하반기 MBC에서 방영된 ‘나를 사랑한 스파이’는 인터폴 비밀요원들의 활약상과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다. 국제적인 산업스파이를 체포하기 위해 인터폴 산업기밀국 아시아지부 소속 요원들이 여행 출판사 직원 등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비밀 작전을 펼친다. 각종 호신술로 단련해 격투에 능한 요원, IQ160의 천재급 두뇌로 사건을 꿰뚫어 보는 요원도 등장한다.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국제경찰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인터폴의 진짜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 나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2018년 11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인터폴 수장에 오른 김종양(60) 총재는 “007처럼 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거악을 척결하기 위해 국경을 넘나들며 임무를 수행하는 국제경찰들이 모여 있는 조직이라는 오해를 할 때가 많다”며 “실제 인터폴은 각국에서 수집된 엄청난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글로벌화한 범죄를 예방하고 대응하기 위한 정보 교환과 분석 그리고 각국 경찰을 연결하는 국제 협력을 목적으로 한 국제기구다”라고 설명했다.      2년 전 한국인으로는 첫 수장에 당선   인터폴의 세계 김 총재는 인터폴 요원들이 정예화된 특수 수사관이라는 식의 일반인의 오해를 없애고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리기 위해 최근 ‘인터폴의 세계’(파람북·사진)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김 총재는 “영화와 TV에서 그려지는 것과 다른 현실 속 인터폴의 실제 모습을 알게 되면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하지만 그는 “‘보다 안전한 세상을 위해서’라는 인터폴의 설립 목적은 영화에서 그려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부속기사 참조) 지난 24일 중앙SUNDAY는 김 총재를 만나 인터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봤다.   인터폴에 대한 오해를 많이 받지 않나. “인터폴 총재가 됐다고 하니 국경을 넘나들며 국제범죄에 맞서는 특수 요원들을 거느린 조직의 수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변에도 적지 않더라. (웃음)  내가 ‘인터폴의 세계’라는 책을 쓴 이유 중 하나기이기도 하다.”   인터폴이 회원국 수가 가장 많은 국제기구라고 들었다. “정치·사회·경제·환경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유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회원국 수로만 보면 194개국으로 가장 많다. 또 역사도 100년 가까이 됐다. 세계 많은 나라가 범죄로부터 자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인터폴과의 협력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1964년에 회원국이 됐다.”   한국인으로서는 첫 인터폴 수장이다. 2년 전 선거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 “유럽 부총재로 일하던 러시아 출신 후보, 아프리카 후보 그리고 나까지 3파전이었다. 특히 수사정보 국장 출신이자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러시아 후보와의 경쟁이 치열했다. 러시아 후보의 당선을 예측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3차까지 가는 투표 끝에 당선됐다. 1국가 1표제인 만큼 선거운동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약소국이거나 소외된 국가들을 상대로 집중적으로 지지를 호소한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인터폴은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국제형사경찰기구( International Criminal Police Organization)의 약칭이다. 인터폴은 일반범죄가 아닌, 국제범죄 즉, 범행의 계획과 실행, 경과,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서 2개국 이상의 국가와 관련된 범죄를 다룬다. 또 각 회원국이 서로 다른 형사사법 절차와 수사체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이들 국가 간의 공조와 협력이 필요한 경우 인터폴을 통해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담당한다.”   국제범죄라고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가. “테러, 사이버, 조직범죄들이다. 구체적으로는 해킹, 밀수·밀매, 화폐위조, 마약, 인신매매 등 국경을 넘나들며 저지르는 범죄들이 대상이다. 인터폴은 이들 범죄의 최신 동향과 정보를 모니터링하고 수집해 회원국들과 공유한다. 인터폴 데이터베이스에는 1억여 건의 자료가 축적돼 있다. 세계 각국의 수사기관은 1초당 200여 건의 자료를 조회해 수사에 활용하고 있다.”   인터폴이 중심이 돼 해결한 주요 사건 사례를 소개해 달라. “2018년 5월 중남미·카리브 해 지역에서 인신매매 조직에 착취·구금 등을 당하던 350명을 구출하고 범죄 조직원 22명을 체포한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들은 금 광산, 공장, 재래시장, 농장 등지에서 일하다가 자유의 몸이 됐는데 이들 중에는 어린이와 여성도 많았다. 인신매매 조직 소탕 작전은 브라질, 베네수엘라, 자메이카, 벨리즈, 카리브 해 국가 등 총 13개국 경찰 조직의 공조로 이뤄졌다. 인터폴은 이들 국가와 성공적 작전을 위한 범죄 조직의 동향 파악 등 자세한 정보를 공유하고 분석했다. 어느 한두 나라만의 수사로 해결할 수 없는 국제범죄였다.”   인터폴과 한국 경찰과의 공조 사례는? “한국은 회원국 중 인터폴과 가장 협력과 공조가 잘 되는 국가 중 하나다. 지난해 4월 국내 한 업체가 만든 K팝 스타들의 동향 공유 웹사이트의 채팅앱을 통해 미국인 학생과 독일인 학생이 동영상 채팅을 하던 중 벌어진 사건이다. 당시 미국 학생이 극단적 행위를 하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독일인 학생이 수사 기관에 신고했지만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 해결이 쉽지 않았다. 우선 미국인 학생의 주소 파악을 위해 채팅앱 서버가 있는 한국 경찰의 협조가 필요했다. 공조 요청을 접수한 한국 인터폴 사무국은 서버가 있는 경기도 분당의 관할 경찰서에 연락을 했다. 경찰은 앱 관리 회사 관계자와 접촉해 가입자 주소를 파악한 뒤 인터폴 워싱턴 사무국에 정보를 전달했다. 다행히 미국 학생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자정 즈음에 벌어졌다. 인터폴을 통해 유럽과 미국, 아시아가 실시간으로 움직여 피해를 막은 것이다. 특히 야간인데도 신속히 움직인 한국 경찰의 우수성과 함께 각국 경찰 조직 간의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한·미·독 공조, K팝 채팅앱 극단 선택 막아   코로나19로 인한 펜데믹으로 전 세계가 비상이다. 인터폴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마스크와 백신은 요즘 가장 중요한 물자다. 지난해 전 세계가 마스크 품귀로 어려움을 겪을 때  인터넷에서 마스크를 판매한다고 속여 거액을 뜯어내는 등 마스크 사기 범죄가 잦았다. 이와 관련된 수사 사례와 예방 활동 등 각종 정보를 취합해 회원국들과 공유하고 있다. 또 백신 판매를 가장한 사이버 스미싱 등 범죄도 새롭게 나타났다. 가짜 백신 판매 시도를 막기도 했다. 최근 인터폴은 현지 경찰과 공조해 남아공의 한 창고에서 2400회분의 중국산 위조 백신을 압수하고 관련자를 체포했다. 중국 공안도 인터폴의 지원을 받아 베이징 등에서 위조 백신을 압수하고 제조·유통에 가담한 일당 80여명을 체포했다. 인터폴은 이미 지난해 12월  백신을 대상으로 한 각종 범죄에 대비하기 위해 글로벌 경보를 발령한 바 있다.”   올해 말까지 남은 임기 동안 계획은? “각 국가의 경찰 역량이 비슷해야 공조도 원활하게 이뤄진다. 아프리카나 중남미 등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국가들의 치안력을 업그레이드 하는 데 있어 인터폴의 지원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 모나코 왕실 털어 다른 나라로 도망친 도둑 잡으려, 107년 전 첫 국제형사경찰회의 「 1914년 유럽의 도시국가 모나코를 통치하던 앨버트 1세 왕세자는 카지노를 찾아온 젊고 예쁜 독일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비밀 통로를 통해 왕세자의 거처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이 여성은 카지노에 온 다른 남자와 짜고 왕실의 귀중품을 훔칠 계획을 세웠다. 어느 날 밤 왕세자가 여성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남자는 비밀 통로를 이용해 귀중품을 훔쳐 이탈리아로 달아났다. 수사에 나선 모나코 경찰은 하지만 이미 다른 나라로 도망친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 왕세자는 다른 나라 경찰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각국의 경찰 관계자들을 초청해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24개국의 경찰관, 법학자, 변호사 등 180명이 참석한 최초의 국제형사경찰회의가 열린 것이다. 인터폴이 탄생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2년마다 국제형사경찰회의를 열기로 했지만 이후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과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실현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1923년 9월 오스트리아 경찰청장을 지낸 요한 쇼버 박사가 전후 위조화폐 등 심각한 국제범죄에 대응하고 오스트리아의 위상 회복을 위해 국제형사경찰회의를 다시 열었다. 유럽 17개국 138명이 참석해 국제형사경찰위원회를 상설 기구로 설치하고 매년 총회 개최를 결의했다. 이때를 인터폴의 공식 출발점으로 본다.   인터폴의 정식 명칭은 국제형사경찰기구(ICPO ; International Criminal Police Organization)다. ‘보다 안전한 세상을’(for a safer world)이란 슬로건 아래 국제범죄, 테러, 재해 등과 관련 국가 간 협력을 위해 구성된 국제기구다. 인터폴 본부는 프랑스 리옹에 있다. 회원국은 194개국으로 유엔(193개국)보다 많다. 총재를 포함해 13명의 집행 위원으로 구성된다. 아시아·유럽·아메리카·아프리카 4개 대륙별로 부총재를 뽑은 후 이 중에서 총재를 선출한다.   2018년 9월 당시 중국 출신 인터폴 총재인 멍 훙웨이가 모국으로 출장을 간 후 연락이 두절됐다. 이후 중국 당국이 멍 총재를 반부패 등 혐의로 체포해 조사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멍 총재가 사임했고, 당시 총재 권한대행을 맡고 있던 김종양 부총재가 11월 선거에 나서 총재직에 당선됐다. 역대 총재는 유럽 국적이 많고, 아시아권에선 필리핀, 일본, 중국, 싱가포르에서 총재를 배출했다. 김 총재는 아시아에서는 5번째, 한국인으로서는 첫 인터폴 수장에 올랐다. 」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2021.03.27 00:21

  • 팬데믹 탓 길 잃은 인터넷·SNS, 허상 더 믿는 음모론 기승

    팬데믹 탓 길 잃은 인터넷·SNS, 허상 더 믿는 음모론 기승

     ━  [SUNDAY 인터뷰]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    뇌과학자 김대식 KAIST 교수. 『김대식의 키워드』에서 팬데믹을 인류의 동반자라고 했다. 그만큼 자주 발생했었다는 뜻이다. 전민규 기자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 종식의 희망이 보인다. 그런데 집단 면역이 현실화되면 우리 삶은 다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 뇌과학자인 KAIST 김대식 교수는 “인공지능(AI)과 스마트폰을 만들고 도시에서 살지만 인간의 뇌는 원시 시대 인간의 뇌에서 한 치도 진화하지 못했다”고 했다. 새 책 『김대식의 키워드』(김영사) 출간으로 이뤄진 인터뷰에서다. 30만 년 전 처음 출현한 호모사피엔스의 두뇌 그대로여서 전쟁·불평등 등 아직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쌓여 있는데 AI가 등장하고,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쳤다는 진단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책은 ‘미래를 여는 34가지 질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팬데믹·음모론·정체성·현실·죽음 등 삶의 기반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황에서 새롭게 부각되거나 그 의미가 변질되는 34개 단어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김대식의 키워드 뇌과학자인데도 역사·철학·예술 등 전방위적 글쓰기를 해왔다. 코로나 이후 우리 삶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인류가 경험한 마지막 팬데믹은 1918년 스페인 독감이었다. 그러니까 지구상에 성인으로 팬데믹을 경험한 사람은 지금까지는 없었다. 역사적으로 팬데믹은 주기적으로 발생했는데, 없던 것들이 팬데믹 이후 새롭게 생겨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전부터 있었던 현상이 가속화된다. 그럼 21세기에는 어떤 트렌드가 가속화될까. 가령 현실이 쪼개지는 현상이 가속화될 것 같다. 인터넷·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공지능, 이런 것들로 인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현상이 강화된다는 얘기다. 각자 머리 안의 상상을 현실로 인정하다 보면 현실이 여러 개로 쪼개진다. 그러다 보면 토론이 불가능해지고, 사회문제를 해결할 공론장이 사라진다. 팬데믹 와중에 다양한 음모론이 나오지 않았나. 음모론은 공론장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믿는다. 빌 게이츠가 세계 통제를 위해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조사되는데, 10년 전이었으면 말도 안 되는 얘기였을 거다.”   책에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의 원인을 찾다 보니 음모론이 싹튼다고 했는데. “14세기 흑사병이 돌 때 유대인들이 기독교도 아이들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얘기가 돌았다. 600년이 지나, 그 사이에 계몽과 산업화를 경험했는데도 팬데믹이 발생하자 과거의 못된 버릇인 음모론이 다시 나온다. 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두뇌가 3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두뇌여서 그렇다. 인간은 낡은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듯 스스로를 업데이트해왔다. 종교·교육·과학이 그런 것들이다. 문제는 두려움에 빠져 미래 예측이 불가능해지면 다시 본능으로 내려간다는 점이다. 확률적으로 그렇다. 가령 멀쩡하던 중산층이 전쟁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닥치면 학살을 저지르지 않나. 뇌라는 기계는 30만 년 전에는 생존에 적합한 알고리즘이었다. 이제는 시대적 오차가 생겼다. 과거에는 유전적 관계가 있는 작은 그룹하고만 같이 살면 됐다. 이방인은 무조건 나쁜 사람이었다. 지금은 수백 만, 수천 만 명의 이방인과 같이 살아야 하는 세상인데도 팬데믹 같은 문제가 터지면 자기 사람만 챙기기 시작한다. 그런 현상이 한 사회, 국제관계 같은 차원으로 확산되면 문제가 커진다.”   이런 문제의 해결 방법은 있나. “사회적 문제 해결에 역시 민주주의가 가장 좋은 시스템인데 한국이라는 하드웨어의 운영체제로서 민주주의는 낡은 버전 같은 느낌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할수록 공론장이 강해지고, 선택과 결정 과정은 복잡해진다. 30만 년 두뇌의 인간에게는 더욱 답답한 상황인데, 왜 그렇게 선택 과정이 복잡해져야 하는지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쪼개진 공론장을 다시 복원하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뉴스 생산에 드는 비용을 보상해주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학교에서 가짜 뉴스 대처법도 가르쳐야 한다. 정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짜뉴스라고 차단해버리면 역효과가 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언론 자유는 없어져 버린다.”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삶의 태도는. “내 책의 키워드들은 새로울 게 없다. 중요한 점은 키워드의 의미가 변한다는 거다. 기술 발전, 팬데믹으로 과거 당연하던 것이 앞으로도 당연하다는 보장이 없어졌다. 하얀 백지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으로 각자 자기 인생에서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겼던 나만의 키워드를 써보고 간추려 삶을 단순화시키되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해보면 어떨까.”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2021.02.27 00:02

  • 포기 모르는 ‘찐 무명’ 노래꾼들, 대중음악 판을 뒤집다

    포기 모르는 ‘찐 무명’ 노래꾼들, 대중음악 판을 뒤집다

     ━  [SUNDAY 인터뷰] JTBC ‘싱어게인’ 주역 정홍일·이무진   두 사람은 방송 이미지 그대로였다. 정홍일은 ‘서윗하게’ 분위기를 맞춰갔고, 똘끼 충만한 이무진은 뻔하지 않은 대답만 했다. 박종근 기자 천편일률은 위험하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TV 채널을 돌릴 때마다 들리는 트로트가 어느새 흥겹지 않고 지겨워지는 것은 획일화에 대한 경고일 터다. “여기 다른 음악도 있소”라며 외로운 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를 낸 JTBC의 ‘싱어게인’의 가치가 돋보이는 이유다. 재야의 음악 고수들이, 영화·드라마 OST로만 알려진 얼굴 없는 가수들이, 홀로 선 아이돌들이, 그리고 거리의 ‘찐 무명’ 노래꾼들까지 71팀이 한 자리에 모여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며 자신만의 색깔로 자웅을 겨뤘다.   각각 29호와 63호였던 준우승자 정홍일(45)과 3위 이무진(21)은 첫 무대부터 팬덤을 구축하며 일찌감치 화제를 예고했다. 정홍일은 “내한 공연을 보는 듯했다”는 심사위원의 격찬을 들은 정통 헤비메탈 가수. 목사님 같은 차분한 말투지만 반전의 허리케인급 샤우팅으로 ‘선비메탈’이란 별칭도 얻었다. 첫곡 ‘누구없소’로 유튜브 1700만 뷰를 목전에 둔 이무진은 기타를 메고 ‘돌격 앞으로’ 자세를 취하며 패기를 뽐냈다. 최연소 참가자지만 자기 음악을 확실히 내세운 ‘음색 깡패’다.   16일 오후 자리를 함께한 두 사람은 첫 경연 당시 서로에게 느낀 강렬함을 토로했다. “무진이가 스타트를 끊었는데, ‘여보세요’ 첫 소절은 모든 참가자에게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됐죠. 처음부터 저렇게 하면 뒤에는 다 쫄아서 어떻게 하나 싶었어요.(웃음)”(정) “형님이 새벽 2시 마지막 차례였거든요. 졸다가 깨보니 ‘그대는 어디에’를 부르고 계시더군요. 아, 저렇게 부르니 내가 깼구나 했죠.(웃음) 그 새벽에 그런 알맹이 있는 소리를 내다니 내공이 엄청난 분이구나 싶었어요.”(이) jtbc 싱어게인에서 각각 2위, 3위를 차지한 정홍일(오른쪽), 이무진이 16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이들은 둘 다 ‘올 어게인(심사위원 만장일치 합격)’으로 출발했지만 각각 한 번씩 탈락 위기를 겪으며 드라마틱하게 톱 3에 올랐다.   정홍일 “콘서트에선 100% 보여줄 것”   ‘싱어게인’ 톱10라운드에서 조용필의 ‘꿈’을 부르는 이무진. [사진 JTBC] 정홍일은 1998년 데뷔해 지금까지 부산·경남 일대에서 활동해왔다. 그가 오래 몸담았던 헤비메탈 밴드 ‘바크하우스’는 직장인 밴드로 시작했지만, 그는 “음악을 하기 위해 직장을 다녔다”고 했다. 음악을 적당히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키워주는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버텨야 했다. 밴드 활동과 병행해 음악학원을 운영했고 사무용품 관련 사업도 했다. 통기타를 치던 부인은 영어 강사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며 뮤지션 남편을 내조하고 응원했다. 서울도 아닌 지역에서, 비주류인 헤비메탈을 고수해온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jtbc 싱어게인에서 각각 2위, 3위를 차지한 정홍일(오른쪽), 이무진이 16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그럼에도 그는 “음악 인생이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즐겁게 살고 싶어도 힘들잖아요. 그런 정도죠. 록커들이 고민은 많아요. 무대 위에서 한 소절만으로 객석이 같이 뛰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터득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밴드라는 건 혼자 하는 게 아니라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까지 과정이 험난합니다. 저는 항상 막내여서 제 생각은 그냥 내려놓아야 했죠. 그래야 오래 할 수 있거든요. 기타 리프 하나에 다 같이 들썩이는 그 에너지 때문에 지금껏 록을 했어요. 그걸 고스란히 음반으로 전달하는 프로듀싱 능력은 또 다른 건데, 한국 록 음악은 아직 클럽 문화 밖에 없어 아쉽죠.”   서울로 굳이 와야 할 명분이 없어서 꾸준히 지역에서 활동했다는 정홍일은 “전부터 다양성을 보여주는 콜라보 공연을 많이 해왔고 호응도 좋았는데, 서울에서 여러 경험을 쌓아 지역을 살리는 콘텐트에 대한 고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톱10라운드에서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OST ‘마리아’를 부르는 정홍일. [사진 JTBC] 2016년 ‘K팝스타’ 출전 당시 1라운드에서 통편집 당했다는 이무진은 그간 칼을 간 모양새다. 2018년 ‘고양 보이스’ 대회에서 입상해 고양시 소재 웹툰 OST 앨범인 ‘메마뮤 보이스 시즌3’에 삽입한 곡 ‘산책’을 들어보면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득음이라도 한 걸까. “음색을 타고나는 건 아니니까요. 노래할 때 어느 공간을 울려 소리를 내고 어느 정도 밀도를 사용해야 된다는 톤메이킹 연습을 오래 했어요. 듣기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주변 피드백도 받고 레슨도 받으면서 천천히 색깔을 찾았죠. 사실 ‘누구없소’도 편곡 기간까지 6개월 가량을 준비했어요. ‘유비무환’이라고, 준비 잘해서 내가 잘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면 긴장이 전혀 안 되거든요.”   정홍일이 동갑내기 부산사나이 김준휘(10호)와 팀을 이뤄 이무진·이승윤(30호) 조와 대결한 팀 경연 무대는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10호와 29호는 심장을 울리고 30호와 63호는 심장을 뛰게 했다’는 댓글의 표현대로 멋진 대결을 펼쳤지만, 재간 넘쳤던 젊은 조가 이겼다. 최종 우승자이기도 한 이승윤은 ‘장르가 30호’라 불릴 정도로 색깔을 규정하기 힘든 경계인. 그에 대해 두 사람도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 형은 되게 요상한 사람이에요. 아이보리 맨투맨에 남색 수면 바지처럼 일반적이지 않은 조합을 즐기죠. 그걸 ‘인디씬 비주류’ 장르라 하는데, 형은 그 비주류스러운 편곡을 자기 스타일로 밀고 가면서 대중성을 확보했으니 대단하단 거죠.”(이) “아티스트 면모가 있는 멋진 친구예요.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원석인데,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 그 원석을 깰 때 아픔도 있겠죠. 그걸 견뎌내면 정말 멋진 다이아몬드가 될 거라 생각해요.”(정)   이무진 “다양한 음악이 들리는 시장 됐으면”   ‘싱어게인’의 미덕은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던 다양한 백그라운드의 실력파 가수들에게 설 자리를 제공했다는 데 있다. 정홍일은 이를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나라는 사람이 여기 속하게 된 자체가 너무나 큰 혁명”이라며 “뉴스에 나가 샤우팅을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하나씩 틀을 깨는 모습이 ‘싱어게인’의 취지가 아니었을까”라고 헤아렸다.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싱어게인’이 평균적 감수성에 호소하는 대중문화의 본질적 특성을 따르지 않고 모험에 나섰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댄스 뮤직·발라드·트로트라는 협소화 된 틀을 가진 다른 오디션과 달리 ‘장르 불문, 나이 불문’으로 틀을 깬 콘셉트였기에 정홍일, 이승윤 같은 비주류들이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됐다”는 것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주류 음악이 요구하는 틀로 다듬어가지 않고 오히려 자기 색깔을 제대로 보여주라고 참가자들을 북돋웠던 점도 기존 오디션과의 차별점이다. 이 평론가는 “이무진이 ‘K팝스타’에서 잘됐다면 평범한 발라드 가수로 다듬어졌을 것”이라며 “안정된 이윤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여러 취향의 비주류를 아우르는 실험 덕분에 뮤지션들이 자유롭게 실력을 펼치고 다양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와 경제 침체로 모두가 우울해진 상황에서 시청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이다. ‘싱어게인’이 종편 예능으로선 이례적인 시청률 11%를 돌파한 이유다.   대세만 따르던 우리 음악 시장에 ‘싱어게인’이 조금은 균열을 낸 것일까. 뮤지션들이 각자가 원하는 음악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은 과연 올까. “활동하고 있는 무대에서 절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다 보면 기회가 올 겁니다. 공연이나 음반 제작을 돕는 지원 사업도 있는데, 뮤지션들이 서류 작성에 약해요. 본인들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런 환경이 좀 수월해지면 좋겠어요.”(정) “제가 가장 응원했던 참가자가 36호 ‘더레이’님이었어요. 그동안 본인이 원하지 않는 발라드를 계속 불러야 했는데, 최근에 힙합 알앤비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이제 진짜 본인이 원하는 음악을 하게 되셨다고 해서 응원하고 있어요. 음악 시장이 다양해지기 위해서는 듣는 이도 다양해져야 할 것 같아요. 리스너들이 그런 음악을 쉽게 들을 수 있는 환경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   파이널 무대에서 마그마의 ‘해야’를 부르며 록의 정체성을 포효했던 정홍일과 신촌블루스의 ‘골목길’을 모던록 장르로 편곡해 선보인 이무진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음악을 물었다.   jtbc 싱어게인에서 각각 2위, 3위를 차지한 정홍일(오른쪽), 이무진이 16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버킷리스트처럼 살면서 가보고 싶은 ‘음악의 여행지’들이 있는데, 원곡이 블루스인 곡을 U2나 콜드플레이의 음악처럼 편곡해 보는 게 그중 하나였죠. 홍일 형님처럼 뚝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안 휘둘리고 덜 타협하려 해요. ‘싱어게인’에서도 ‘K팝스타’ 때보다 줏대가 생기고 휘둘리지 않아서 좋은 결과를 낸 것 같아요.”(이) “록커로서 뿌리를 간직할 수밖에 없지만, 저도 다양한 시도를 할 겁니다. 댓글을 보면 제게 록의 부흥을 책임지라고들 하시는데, 저는 여러 음악을 다 해보고 싶거든요. 트로트만 빼고요.(웃음) 경연이라는 부자연스러운 환경에서 노래를 하다 보니 이번에는 70%밖에 못 보여드린 것 같은데, 3월부터 ‘싱어게인’ 톱10과 함께 하는 콘서트 무대에서는 100%를 보여드리겠습니다.”(정)   자신이 낭중지추(囊中之錐)임을 이번에 증명한 무명 가수가 어디 이 둘뿐이랴. 다시 노래하게 된(sing again) 그들은 이름과 무대를 얻었고, 우리는 가수를 얻었다(singer gain).   중앙SUNDAY 유튜브 채널 유주현 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yjjoo@joongang.co.kr

    2021.02.20 00:02

  • “코로나 코너 돌면 상생·공존의 생명화 시대 펼쳐질 것”

    “코로나 코너 돌면 상생·공존의 생명화 시대 펼쳐질 것”

     ━  [SUNDAY 인터뷰] 이어령 전 장관의 코로나 1년 성찰   이어령 전 장관은 코로나19로 보낸 지난 1년을 성찰하며 “이제 상생·공생·공존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해 2월 촬영한 모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역병이 창궐해 전 세계를 뒤덮은 지 1년. 세상이 바뀌었고, 우리의 삶은 달라졌다. 공포와 불안과 고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 미증유의 사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 꼽히는 이어령(87) 전 문화부 장관에게 물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단단했다.   코로나19로 보낸 지난 1년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요. “한국인들은 누구에게서도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한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코로나의 역설’이라 부르겠습니다. 네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어요. 우선 글로벌의 역설입니다. 전 세계가 촘촘하게 이어졌고 누구나 어디로든 갈 수 있었죠. 그런데 그 때문에 코로나19가 비행기의 속도로 퍼졌습니다. 하나의 질병이 동시에 전 세계에서 발병한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입니다. 그 결과 봉쇄가, 로컬화가 시작됐죠. 두 번째는 선진화의 역설입니다. 자유의 가치, 인권의 가치가 높은 나라일수록 피해가 더 컸죠. 그러다 보니 정부가 자유나 인권을 제한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 등장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희구하는 것은 자유와 인권, 글로벌인데 결과적으로는 그것을 추구하면 곤란해지는 세상이 된 것이죠.”   여태껏 세상을 지탱해온 논리가 뒤집어지고 있군요. 세 번째는 무엇입니까. “호저의 딜레마입니다. 호저는 고슴도치처럼 몸에 뾰족한 가시가 있습니다. 추우면 짐승들은 함께 모여 온기를 나누는데, 호저는 찔리니까 서로 가까이하지 못합니다. 혼자는 춥고, 모이면 아프고. 인간도 마찬가지죠. 혼자 있고 싶어하지만, 외로우니까 또 같이 있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보편화 되면서 억지로 혼자 있게 된 사람은 더욱 외로워지고, 억지로 같이 있게 된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됐습니다.”    물음표가 씨앗, 느낌표가 꽃인 인생   우울증이 심해지는 ‘코로나 블루’, 홧병이 생기는 ‘코로나 레드’로 인해 가정불화와 이혼도 늘고 있다죠. 마지막 네 번째는 또 어떤 건가요. “디지털의 역설입니다. 디지털을 만능으로 알던 사람들은 ‘아, 디지털만 있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지요. 온라인 수업만 하면서 학교에 못 가게 되니 오히려 선생님의 지도, 친구들과의 만남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디지털은 ‘접속’하는 것이고 아날로그는 ‘접촉’하는 것인데, 이 둘은 같이 가야 하거든요. 이것이 바로 제가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디지로그’입니다.”   이 네 가지 역설을 통해 우리가 깨달은 혹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아무리 강력한 군대가 있어도 코로나를 이길 수 있나요. TV 속보를 통해 죽음을 매일 매일 실감하는 가운데 ‘오늘은 안 걸렸구나’하고 안도하는, 러시안룰렛이 일상이 돼버렸어요. 그래서 생명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는 것이 가장 귀중한 교훈이겠죠. 앞만 보고 달려오던 삶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나에게 이토록 소중한 생명을 주신 부모와 그 부모의 부모로 거슬러 올라가는 생명의 원천적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또 그동안에는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싶을 때 갔는데, 그런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도 알게 됐습니다. 자유와 생명은 같은 뜻입니다. 자유를 잃으면 다 잃는 것이죠. 그래서 생명의 가치는 곧 자유의 가치입니다.”   일찍이 ‘생명이 자본’이라고 강조했던 말씀이 코로나 시국에서 역설적으로 힘을 얻게 되었네요. “코로나는 언젠가는 갑니다. 이 수난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흥하는 국가와 쇠하는 국가가 갈리게 됩니다. 경주에서도 코너워크 할 때 순위가 바뀌죠. 우리를 포함한 모든 국가는 산업화, 정보화에 이어 코로나라는 코너를 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직진 코스를 달렸기에 레이스에 큰 차이가 없었죠. 이 코너를 돌고 나면 이제 생명화의 시대가 펼쳐집니다. 생명이 가장 중요한 테제가 되는 세상입니다. 앞으로 반생명적인 것들은 절대 발을 붙일 수가 없어요.”   ‘생명화 시대’의 특징은 어떤 건가요. “생명은 서로 같이 사는 것입니다. 상생하고 공생하고 공존하지요. 인간이 동굴에 살 때부터 박쥐와 같이 살았다는 사실은 전염병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연구하는 데 있어 흥미로운 테마입니다. 사실 바이러스도 인간과 공생해 왔어요. 그런데 어떤 문제가 생겨서 인간에게 달려든 것이죠.”   ‘같이 산다’는 말이 왠지 짠하게 느껴지는데요. “마스크를 예로 들어 볼까요. 마스크는 내가 걸리지 않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남에게 옮기지 않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언제든 피해를 볼 수도, 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가 걸렸다고 하면 쉽게 그를 욕하고 그가 속한 집단을 매도합니다. 흔한 말로 갑질하는 것이죠. 그런데 누군가에게 갑인 사람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을이 되지 않나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나 살고 너 죽자’(이기주의)나 ‘나 죽고 너 살자’(이타주의), ‘나 죽고 너 죽자’(물귀신)가 아닌 ‘나 살고 너 살자’(상호주의)만이 코로나 시국을 벗어날 수 있는 해답입니다. 인류는 포식에서 기생, 기생에서 상생의 ‘자리행 이타행(自利行 利他行)’의 단계로 발전해 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 마스크는 삶의 일부가 돼 버렸죠. 마스크 없이는 어디도 갈 수 없게 됐으니 말입니다. “자, 마스크를 꼭 정부가 쓰라고 하니까 쓰는 걸까요. 벌금을 때리니까 쓰는 걸까요. 정부를 위해 방역하는 게 아닙니다. 법이 그러니까 쓰는 게 아니라,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고 너의 행복이 나의 행복인 것을 알기 때문에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K방역 성공’의 본질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마스크를 열심히 쓰긴 하죠. “봉쇄하지 않고 개방했는데도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이유는 한국인들이 이 상생의 원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즉 남을 위해 흘려주는 ‘눈물 한 방울’을 가졌다는 거죠. 한국인의 이런 생명 사상은 위기가 왔을 때마다 발현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피니시를 잘 못 해.”    매 순간 마침표 찍어야 새 삶 가능   이어령, 80년 생각 그건 왜 그런가요. “서구에서는 개인이 시시비비를 묻고 따지는 계몽주의를 18세기에 거쳤는데, 우리는 그런 경험이 없어요. 즉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힘이 좀 모자랍니다. 그럼 지속력이 떨어져요. 코로나 사태 한 방에 순식간에 구한말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이 없으면 남의 생각에 휘둘리기 쉽거든요.”   최근 출간된 회고 인터뷰집 『이어령, 80년 생각』도 한마디로 요약하면 ‘스스로 생각하라’인데요. “먼저 말해둘 것은, 그 책을 위해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도 내 자랑하는 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말했어요. 남이 자기 자랑하는 글을 누가 읽겠어. 다만 ‘나와 똑같이 생기고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밖에 없는 내 생각을 내 머리로 풀어내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그것들이 합쳐져 창조적인 집단 지성이 생겨난다’는 것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지요. 누구나 ‘온리 원’의 천재로 타고 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인물 탐구론으로 접근해 달라고요.”   그게 어떤 삶이었습니까.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간 게 내 인생이에요. 물음표가 씨앗이라면 느낌표는 꽃이죠. 품었던 수수께끼가 풀리는 순간의 그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호기심을 갖는 것, 그리고 왜 그런지 이유를 찾아내는 것.”   음력 설 연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소의 해’를 맞는 느낌을 말씀해 주시지요. “이 기회에 밝혀둘 것이 있어요. 지금 유튜브에는 내가 2007년 1월 1일자 중앙일보에 쓴 소원 시 ‘날개’가 마치 지금 쓴 것처럼 나돌아 곤란한 인사를 받기도 하고, 또 내가 쓰지 않은 시가 내 이름으로 올라온 것들도 있어요. 모두 남을 해치는 것이 아닌 덕담이기에 일일이 찾아서 삭제할 수도 없지만, 조금은 난감하지요. 그런가 하면 ‘소가 한 마리면 소원, 두 마리면 투우, 세 마리면 우하하’라는 유머를 적어 연하장을 보내온 독자들도 있습니다. 코로나의 우울 속에서도 웃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려는 내 이웃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기보다 마음이 울컥해지더라고. 글 쓰는 사람은 한 줄 쓰고 마침표를 찍어야 새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매 순간도 마침표 찍듯 매듭을 지어야 비로소 새 삶을 살 수 있겠지요. 우리 모두 이 코로나 시대를 큰 마침표 하나 찍어 보내고, 희망의 새해를 맞이하기를 기원합니다.”   정형모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2021.02.06 00:02

  • “직장 스트레스 풀려고 공상, 꿈 사고팔고픈 내 얘기 썼다”

    “직장 스트레스 풀려고 공상, 꿈 사고팔고픈 내 얘기 썼다”

     ━  [SUNDAY 인터뷰] 30만 부 팔린 『달러구트 꿈 백화점』 작가 이미예   첫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으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미예씨. 근래 한국 문단에서 가장 떠들썩한 작가 데뷔다. 김현동 기자 새해에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판타지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팩토리나인)의 인기 말이다. 지난해 7월 출간된 소설은 지금까지 30만 부가 팔렸다. 50만, 60만 부까지 팔릴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21일 현재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 1위, YES24와 알라딘 종합 3위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소설의 이런 성공은 감탄은 물론 궁금증도 부른다. 1990년생인 저자 이미예씨는 부산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그 좋다는 삼성전자에 취직했지만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달러구트…』가 그의 첫 소설이다. 어디서고 소설 작법을 배운 적이 없다. 이제 소설 성공 공식 같은 건, 있다면, 폐기되어야 한다.   판타지가 먹히는 현실도 의미심장하다. 소설 속 세계에서는 꿈을 사고판다. 밤에 꾸는 꿈 말이다. 한 마디로 잘 자자는 얘기다. 미세 시간 단위까지 쪼개가며 자기계발 테크놀로지에 매달리는 시대에 역행하는 설정이다. 꿈조차 달콤하게 꾸기 어려운 코로나 시대, 필요한 건 응원이고 위로라는 뜻일까. 지난 19일 이씨를 만났다.   검색해보니 의외로 인터뷰를 많이 안 했더라. “민망했다. 책 잘 쓰시는 분들 많은데, 나는 운이 좋은 거 아닌가. 자꾸 했던 얘기 또 할 게 아니라 한 줄이라도 더 써야 할 것 같았다.”   진짜 첫 작품인가. “글쓰기와 아예 접점이 없었다.”   창작 수업을 받아본 적도 없나. “그렇다. 하지만 창작 방법을 아예 몰랐다고 하기가 그런 게, TV 드라마나 소설책을 보면서 이 작품은 왜 잘 됐을까, 사람들은 왜 이걸 잘 썼다고 할까, 그런 걸 파고들었기 때문에 어디서도 안 배웠다고 하기는 그렇다.”   그래서 성공 공식을 발견했나. “문학을 정말 즐기는 사람들은 좋은 책이라는 확신만 있으면 끝까지 읽는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읽다가 실패해도 5분, 6분만 손해 보면 되는 콘텐트는 쉽게 접근하는데, 2주 걸려 읽어 재미없는 경우를 못 참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명작은 대단한 작가들도 평생 쓸까 말까고, 어차피 내가 그런 길로는 못 갈 테니까 그냥 쉽게 쓰자는 게 내 결론이었다. 첫 번째 책은 무조건 끝까지 읽을 수 있게 쓰자. 내가 아직 깊이도 없지 않나. 대신 살면서 느꼈던 점들을 접목시키자. 그런 생각이었다.”   삼성을 다니다 그만두고 소설을 썼다. “내게는 TV 보는 것과 공상하는 게 동급이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 겸 공상할 때 떠오른 아이디어를 적기만 하다가 많이 쌓이니까 내버려 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안 가면 더 많이 쓸 텐데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소설의 꿈 결제 시스템이 독특하다. 후불제고, 꿈을 꾸고 난 고객이 만족도에 비례해 감정의 형태로 꿈값을 지불한다. 선불이고, 품질에 비해 가격이 터무니없는 경우가 많은 현실의 시장경제에 대한 비판 같은데. “소설에서 꿈을 구입한 사람들은 꿈을 꾸고 난 다음에 잊어버리니까 구입한 사실까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꿈값을 어떻게 받아야 할까. 꿈을 만든 사람도, 판매한 사람도 있으니 안 받을 수는 없다. 이 대목이 가장 고민스러웠다. 아무리 꿈이 기분 좋았어도 깨고 나면 좋았던 기분이 반감되고 기억을 못 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럴 때 꿈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좋았던 감정의 절반 정도를 백화점에 지불해서 사라지는 것으로 하자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일종의 ‘아하 모멘트’였겠다. “그랬다. 판타지 소설이 원래 말이 안 되는데 사람들은 말이 되는 구석을 찾으면 몰입하고, 그걸 찾는 데 실패하면 독서를 그만둔다. 남들을 몰입하게 하려면 결국 소설 이야기가 나를 납득시켜야 할 것 같았다. 요즘 독자는 진짜 똑똑하다. 조금이라도 이야기가 이상하면 금방 눈치챈다.”   독자 피드백도 많았을 것 같은데. “돈 주고 책을 산 분의 첫 리뷰가 가장 기분 좋았다. 아이가 먼저 읽고 엄마에게 권했다는 사연도 진짜 좋았다. 대개 엄마는 재미없어 할 거야 하고 숨기는 경우가 많지 않나. 뭔가 그 집안의 좋은 일을 같이 나눠 가진 느낌이었다.”   인물들 이름이 재미있다. 어떻게 지었나. “캐릭터별로 어울리는 이름이 생각날 때까지 계속해서 고쳤다. 주인공 달러구트는 네 글자로 하되, 외우기 쉬우면서 된소리가 섞여서 특색 있게 발음되는 이름으로 짓고 싶었다. ‘트’로 끝나니까 앞에는 ‘ㄹ’이 들어가야 균형이 맞을 것 같았다.”   인물들이 대개 허점이 있는데 그래서 매력적이다. “사람들을 만날 때 허점에서 더 매력을 느끼는 편이다. 너무 좋은 사람인데 허점도 같이 떠오르는 사람 있지 않나. 애정을 갖고 허점을 인물에 집어 넣었다.”   삶이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위한 응원 메시지가 곳곳에 담겨 있는데, 의도한 거였나. “소설 쓸 때 가장 응원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나였다. 그러니까 내게 한 말들이다. 소설이 잘 되다 보니 소설 속 응원의 말들이 독자들을 위하는 결과가 됐다. 독자들이 읽어줄수록 책에 있는 응원의 말들이 현실이 된다. 신기하다.”   어떤 점이 그렇게 힘들었길래. “완성해봤자 아무도 안 봐줄 것 같았고, 글쓰기는 어렵고, 완성하겠다고 누구랑 약속한 것도 아니고, 글 쓴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데, 그래도 안 쓰면 인생에 한이 될 것 같은 순간 진짜 힘들었다. 뭔가 저주를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이과 출신인데 소설 쓰는 데 도움이 되나.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어떤 부분을 쓰고 싶다고 해서 어떻게 써야 할지 아이디어가 바로 떠오르는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부분부터 쓴다. 결국 소설을 구성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나중에 알기 쉽도록 잘 정리하고 분류해야 하는데, 대학 시절 며칠씩 화학실험을 해서 리포트를 써냈던 거에 비하면 소설 쓰는 데 필요한 분류나 정리는 오히려 재미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는데, 소감은. “너무 좋다. 세상이 살아볼 만 하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다른 생각은 별로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이런 시절이 또 없을 수도 있잖나.”   앞으로 꿈이 있다면. “다른 취미가 없다. 그래서 글 쓰는 게 싫어지면 안 된다. 인생이 재미없어지는 것이니까. 전업 작가가 됐으니 책값만큼 독자에게 돌려 드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기는데 그러면서도 쓰는 즐거움을 잊어버리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2021.01.23 00:20

  • “야권 단일화 실패는 대선 포기하는 것, 필승 후보 뽑아야”

    “야권 단일화 실패는 대선 포기하는 것, 필승 후보 뽑아야”

     ━  [SUNDAY 인터뷰]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5일 여의도 당사에서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핸들’을 튼 것은 지난해 12월 20일. 이날 서울시장 출마 선언문에서 ‘결자해지’와 정권 교체 기반 마련, 야권 전체의 승리를 강조한 안 대표는 이후 야권 후보 단일화와 관련해 연일 강한 메시지를 내놓으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안 대표는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중앙SUNDAY와 인터뷰하는 자리에서도 첫마디부터 “야당 전체가 이기는 선거를 하겠다”며 승리 의지를 다졌다.   서울시장 출사표에서 정권 교체의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는데. “문재인 정권은 총체적으로 무능하다. 이런 정권을 바꾸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각계 원로분들도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하면 내년 대선은 물 건너간다’며 나라 걱정을 많이 하셨다.”   야권 후보 단일화와 관련해 말들이 많다. “무엇보다 당과 개인의 유불리를 떠나 본선에서 필승할 수 있는 후보를 뽑는 게 중요하다. 서울시민이 동의한다면 후보 단일화와 관련해 어떤 방법도 받아들일 수 있다.”   국민의힘 입당도 가능한가. “공당의 대표가 탈당해 다른 당에 입당한다는 건 정치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극히 비상식적인 요구다.”   단일화가 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국민의당과 국민의힘 모두 마음을 열어야 한다. 둘은 경쟁 상대가 아니다. 지금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야권 전체의 경쟁력을 깎아 먹는 행위일 뿐이다.”   결국엔 단일화가 될 거라고 보나. “단일화 실패는 대선 포기와 동의어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의 더불어민주당 차출설 등 제3후보론도 거론되고 있다. “제대로 된 분이 많이 나와서 함께 정책 경쟁을 벌이는 건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유익하다. 그런 점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나경원 전 의원의 참여도 얼마든지 환영한다.”   안 대표가 야권 단일 후보가 될 경우 여권에서 누가 나와도 이길 자신이 있나. “당연하다. 나는 의사와 벤처기업가 출신이다. 지금 서울에 필요한 게 방역과 일자리 아닌가. 나만큼 경쟁력을 갖춘 후보는 없다고 본다.”   박원순 전 시장의 시정을 평가한다면. “유럽 도시들과 달리 서울은 우물 안의 개구리 같다. 공무원들을 만나 보니 전임 시장이 서울시민들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이나 개인적 취미 수준의 일을 많이 벌였다고 하더라.”   최근 이미지 변신에 신경 쓰는 모습이다. “경영학과 학생들을 가르칠 때 ‘벤처기업이 제품만 잘 만들면 잘 팔릴 것이란 오류에 빠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마케팅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정작 내가 그런 점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반문재인 빅텐트 구상도 나온다. “반문만으로는 부족하다. 집권하면 어떤 나라, 어떤 도시를 만들 건지 유권자들께 말씀드릴 수 있어야 한다. 이 정권에 반대만 해서는 선거에서 이긴다 해도 국민이 불행해진다. 또 선거에서 이기려면 두 야당 지지자는 물론 중도·진보 성향 유권자들도 끌어모아야 한다. 보궐선거는 투표율이 낮은 데다 현재 서울은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지 않나.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 야권 후보가 10%가량 앞선다 해도 뚜껑을 열어 보면 박빙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시대정신이 중요하다. 지금은 국민 통합이 최우선 과제다.”   최경호·최현목 기자 squeeze@joongang.co.kr 관련기사“안철수와 단일화 안 돼도, 국민의힘 후보가 이길 것”

    2021.01.16 00:02

  • “안철수와 단일화 안 돼도, 국민의힘 후보가 이길 것”

    “안철수와 단일화 안 돼도, 국민의힘 후보가 이길 것”

     ━  [SUNDAY 인터뷰]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정국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경빈 기자 시곗바늘을 약 8개월 전인 지난해 5월 22일로 돌려보자. 그날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김종인(81)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를 공식 확정했다. 당시 미래통합당 지지율은 25%대에 머물러 있었다. 창당 이래 최저 수준이었다. 반면 ‘윤미향 논란’ 와중에도 문재인 대통령(62.3%)과 민주당(42.5%) 지지율은 고공비행 중이었다. 미래통합당은 대구·경북(TK)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민주당에 밀렸다.   이후 김 위원장은 당의 간판을 국민의힘으로 바꾸고 중도층 공략에 나섰다.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무릎 꿇고 사죄했고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구속에 대해 사과했다. 여당과의 극한 대립을 지양하고 비호감도를 줄이면서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민심을 흡수해 나갔다. 기본소득 등 사회적 현안도 선점했다. 이슈화 능력이 취약한 국민의힘에 최적화된 전략을 취한 셈이다.   지난 11일 리얼미터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33.5%까지 올라 민주당(29.3%)을 추월했다. 서울의 정당 지지율도 32.7%로 1위다. 하지만 정작 서울시장 지지 후보 1위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다.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패할 경우 제1야당은 존재 이유를 사실상 잃는다. 그렇다고 필승 구도를 위해 안 대표에게 야권 단일후보를 양보하면 제1야당의 입지가 극히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김 위원장은 어떤 활로를 모색하고 있을까. 지난 12일 국회 국민의힘 대표실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단호한 화법으로 제1야당이 걸어가야 할 ‘당위’를 역설했다.    “안철수 후보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전직 대통령 유죄에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 탄핵당한 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에서 진즉에 했어야 할 일이다. 찬반이 나뉘어 옥신각신 투쟁만 했지 당을 안정시키기 위한 노력을 안 하다 보니 지난해 4월 총선에서 그런 결과를 맞이하지 않았나.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면 변할 수밖에 없다. 위기의 근원이 뭔지 알아내야 한다.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이 이젠 예전 모습에서 탈피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5·18 묘역 ‘무릎 사과’도 반향이 컸다. “5·18 민주화운동을 폄하하는 발언이 과거 당내에서 나왔다. 모두가 인정하는 민주화운동을 유독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니 국민이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선 근본적 사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김 위원장이 온 뒤 당 지지율은 올라갔지만 국민의힘 소속 대선 주자나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아직 우리 당에서 일치된 후보를 내놓지 않았다. 경선이 시작되면 차근차근 후보자들 지지율도 올라갈 것이다.”   당내 후보는 많지만 안철수 후보 한 명에게도 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안 후보는 마치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이다. ‘안 후보가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여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안 후보 외에는) 아무도 없다. 서로 경쟁을 통해 후보를 내는 것이다. 내가 대장이니 내가 단일후보로 나서겠다? 이런 사고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   당내 유력 인사들이 안 대표와의 연대를 거론한 데 대해 격노했다고 들었다. “안 후보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입당을 하느니, 합당을 하느니, 이따위 소리들을 꺼내나. 누가 이 당을 대표하는 사람인가. 그런 말을 뱉어 결국엔 당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으니 ‘제발 그런 얘기 좀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다.”   ‘안철수’를 자꾸 거론하는 건 ‘단일화하지 않으면 진다’는 절박함 때문 아닐까. “그래서 내가 오래전부터 얘기했지 않았나. 우리 당에 들어와서 경선을 치르든지, 아니면 국민이 야권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니 우리 당 후보가 정해진 뒤 (3월 초 후보 등록 직전까지) 단일화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두 가지 방법뿐이다. 다른 얘기는 해봤자 의미가 없다.”   지난 6일 안 후보와 회동한 뒤 ‘앞으로 만날 일 없다’고 했다. 접점을 못 찾았나. “내가 그날도 방법은 둘밖에 없다, 둘 중에 하나로 결심이 서면 나에게 연락을 달라, 그런 식으로 말했다.”   안 후보는 별 반응이 없었나. “그렇다. 본인의 결심이 서야 만나지 내가 더 이상 말할 이유가 뭐 있겠나.”   세부적으로 분석해 보면 안 후보의 지금 지지율은 별 의미가 없다고 했는데. “과거 사례를 봐도 선거 몇 달 전 초기 지지율이 1등이었던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선거가 시작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여론조사 지지율을 가지고 얘기할 필요가 없다.”   3자 구도로 가도 이길 수 있다고 했다. “맞다. 이길 수 있다. 안 후보가 ‘단일화가 안 되더라도 선거에 나가겠다’고 하면 우리가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러면 3자 구도(민주당 후보, 국민의힘 후보, 안 후보)로 가는 거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국민이 용납하겠나.”    신세대, 불평등·불공정·불의 싫어해   1995년 서울시장 선거 때 조순 후보도 야권이 분열된 3자 구도에서 당선됐다. “그때도 여론조사에서는 무소속 박찬종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예상됐다. 지금 안 후보는 당시 박 후보만큼 지지율이 높지도 않다. 겨우 20%대인데 그 지지율도 분석해 보면 우리 당 지지층이 다수 포함돼 있다. 심지어 민주당 지지층도 있다.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면 표심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으로 가게 돼 있다. 그럼 (안 후보에게) 남는 게 뭐가 있겠나.”   민주당이 선거를 앞두고 백신과 재난지원금 이슈 등을 들고나올 수 있다. “그런 유혹은 잘 먹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유권자들은 그런 얘기에 좌우될 정도로 수준이 낮지 않다. 특히 서울 유권자들은 지식수준이 매우 높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4년간 내세울 업적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공통된 인식 아니겠나.”   단일화를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건가. “그렇다. 우리 당의 훌륭한 후보를 만들어내는 게 내 책무다. 그 사람을 당선시키는 일도 내 책무다. 그 외에 다른 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참신한 이미지의 경제인을 영입할 거란 얘기도 나온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문 대통령이 장밋빛 경제 전망을 내놨다. “신년사에서 ‘코로나19 터널의 끝에 빛이 보인다’고 했는데, 현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만 보는 것 아닌가 싶다.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가 (글로벌 경제 반등이란 전제 없이) 독자적으로 금방 회복될 것으로 예상하는 건 너무 낙관적이다.”   부동산 논란에 송구하다는 표현도 썼다. “부동산 정책을 24번이나 내놨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올해도 집값이 오를 것으로 국민은 예상한다. 투기를 잡는다고 세금을 올리면 주택값은 더 오르게 돼 있다.”    4월 보선 끝나면 당에 있지 않을 것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오른쪽)이 지난 11일 관훈클럽 창립 64주년 기념식에서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유동성 과잉 시대에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주장이 여권에서 다시 제기된다. “이 정부는 예측 능력이 없다. 3차 재난지원금 예산 확보도 처음에는 관심도 안 가지다가 나중에 겨우 확보한 게 3조원 아닌가. 그 돈으로 안 되니 예비비 등을 끌어왔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코로나19 이전 상황으로 경제가 돌아간다고 했는데 여당에서는 4차 재난지원금을 얘기하는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   추가 지원도 선별 지급이 맞다고 보나. “당연하다. 안 그래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재난지원금은 재난을 당한 사람에게 지원해 줘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지원할 정도로 과연 대한민국 재정이 풍부한가.”   코로나 방역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예측 능력이 빵점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지속될지는 전문가들도 충분히 경고했지만 자기들의 K- 방역만 믿고 괜찮을 거라고 했다. 그러다 백신도 확보하지 못한 것 아니냐.”   김 위원장이 생각하는 시대정신은 뭔가. “불평등·불공정·불의·비민주, 이런 걸 신세대는 가장 싫어한다. 다음에 대통령이 될 사람이 이런 분야에서 확고한 신념을 갖지 못하면 무척 힘들 것이다.”   정권 심판론이 통할 것으로 예상하나. “그렇게 본다. 국민의힘이 서울시장 선거를 승리하면 정치 지형이 완전히 바뀔 것이다.”   4월 선거를 승리로 이끌면 당에서 비대위원장을 더 맡아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그럴 일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 당이 너무 왜소하게 되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해서 차기 대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놓고 나는 그만둔다고 늘 얘기해 왔다. 보궐선거가 끝나면 더 이상 나는 이 당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 4월 이후 국민의힘이 어떻게 갈 것인지는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김영준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18일 발간되는 월간중앙 2월호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야권 단일화 실패는 대선 포기하는 것, 필승 후보 뽑아야”

    2021.01.16 00:02

  • “공장식 축산 시설 놔두면 새로운 팬데믹 생긴다”

    “공장식 축산 시설 놔두면 새로운 팬데믹 생긴다”

     ━  [SUNDAY 인터뷰] 미국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기후변화와도 관계있다. 축산업이 연결 고리다. 고기 공급을 위한 산림 벌목이 환경위기와 코로나를 불렀다는 주장이다. 미국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논픽션 『우리가 날씨다』 등에서 그런 주장을 했다. 세상을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인간의 반성을 촉구한다.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산다면 더 이상 미래는 없다는 자연의 경고라는 지적이 과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되돌아봐야 할 우리 삶의 목록 가운데 동물의 고기를 먹는 육식 문화도 들어 있다. 그렇다는 게, 미국의 중견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44)의 생각이다.   포어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2005년 장편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으로 ‘1급 작가’ 이미지를 굳혔다. 아버지를 잃은 소년의 시선으로 9·11 테러를 다룬 작품이다. ‘문학 신동’이라는 수식어까지 따라붙었다.   2009년 논픽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지구촌 공장식 축산 실태를 파헤친 데 이어 지난해 논픽션 『우리가 날씨다』에서 기후변화의 미래를 경고했다. 공장식 축산이 기후변화의 주범이기 때문에 아침·점심에는 고기를 먹지 말자는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그렇게 한다 해도 기후변화 재앙을 피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초순 포어를 전화 인터뷰했다.   포어의 책들. 왼쪽부터 『우리가 날씨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미국의 코로나 확산세가 심각한 것 같다. (※12월 초순 미국의 확진자 수는 연일 20만 명이 넘었다) “내가 사는 뉴욕에서는 지난봄 앰뷸런스 소리를 항상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후 상황이 좋아져 여름부터 최근까지는 안전하다고 느껴졌다. 지금은 바뀌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걱정된다.”   코로나든, 기후변화든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의 대처가 달라지지 않겠나. “바이든의 당선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확실치 않은 점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는 거다. 세상이 좀 더 괜찮아지고 미국도 더 좋은 나라가 되겠지만 얼마나 좋아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조류인플루엔자도 축사서 발생   『동물을…』에서 새로운 팬데믹 발생을 경고했다. “특별한 얘기를 한 건 아니다. 과학자들이 늘 얘기해오던 거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팬데믹이 발생하느냐 안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 발생하느냐가 문제라고 했다. 우리가 팬데믹이 발생할 완벽한 조건들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하자 사람들이 서로 떨어져 지내야 한다고 하지 않나. 내가 문제 삼은 공장식 축산 시설에서는 정확히 반대되는 일이 벌어진다. 미친 짓이다. 이런 공장식 축산 시설에서 새로운 팬데믹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공장식 축산이 코로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수산시장에서 처음 발생했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인간의 동물 고기 거래에서 발생한 게 확실하다는 점에서 이전 팬데믹들과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과거 조류인플루엔자나 돼지인플루엔자 모두 공장식 축산 시설에서 생겨났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다른 팬데믹처럼 치명적이지 않아 그나마 다행스럽다. 조류인플루엔자의 치사율은 50%였다. 코로나가 그 정도였다면 세상이 달라졌을 거다.”   두 책을 집필하면서 알게 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가…』보다 『동물을…』이 쓰기가 훨씬 어려웠다. 사람들이 정보를 숨겨서다. 『동물을…』의 경우 공장식 축산이 얼마나 널리 지배적인 방식인지가 놀라웠다. 사람들은 공장식 축산이 나쁘다는 점을 잘 안다. 동물과 축산 농부, 소비자의 건강은 물론 팬데믹 안전에도 나쁘다. 그런데도 미국에서 생산되는 닭고기(육계·肉鷄)의 99.9%가 공장식 축산에서 나온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기후변화를 다룬 『우리가…』의 경우 문제의 규모에 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부족한지가 놀라웠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길래…. “목표를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관련 자료를 읽고 이야기를 나눈 기후과학자들 대부분이 탄소 배출 수치를 극적으로 줄여야 하는 시간이 10년쯤 남았다고 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우리가…』에는 기후변화와 축산업의 상관관계가 선명하게 정리돼 있다. 현재의 기후변화 추세는 파멸적이다. 지구 온난화를 억제하는 파리협약 목표치를 가령 2050년까지 달성한다고 해도 해수면 상승으로 뉴욕 등 전 세계 수십 개 대도시에 사람이 살 수 없게 돼 1억4300만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한다. 동물 종의 절반, 식물 종의 60%가 절멸 위협에 처한다. 그런데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에서 지구촌 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계산방식에 따라 적게는 14.5%, 많게는 51%에 이른다는 게 과학계의 추산이다. (그래픽 참조) 그래서 육식을 즐기는 우리 식탁, 이를 지탱하는 축산 관행을 당장 바꾸지 않는 한 지구를 구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공장식 축산은 축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공장식 축산이 문제가 되는 이유다.   공장식 축산은 어떻게 억제해야 하나. “정부가 바뀌고, 축산 기업들의 경영 관행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개인도 변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균형을 이루지 않고서는 지구를 구할 길이 없다.”   개인의 변화가 말처럼 쉽지는 않다. “테슬라는 현재 미국 역사상 가장 커다란 자동차 제조사다. 테슬라를 정부가 만든 게 아니다.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원하니까 그렇게 됐다. 식물성 성분인 비욘드 버거 역시 요즘 미국 시장에서 엄청나게 성공적인데 마찬가지로 소비자가 선택한 결과다. 소비자들의 선택의 힘을 저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의 식습관은 이미 변하고 있다.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변한다.”    공장식 축산에 엄청난 불의 존재   식습관 변화 사례를 든다면. “미국의 대학 캠퍼스에 가톨릭 신자보다 채식주의자가 더 많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35세 이하 연령층의 25% 정도가 자신이 채식주의자라고 밝혔단다. 얼마나 정확한 자료인지 모르지만 재미있지 않나. 사람들이 스스로 채식주의자로 표현하고 싶어한다는 얘기 아닌가. 내가 대학생일 때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채식주의자가 실제로는 더 많았다. 채식주의자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기 때문에 밝히지 않아서다. 지금은 실제보다 많은 사람이 채식주의자라고 밝힌다. 더 쿨하게 보여서다.”   개인의 변화로 축산기업도 바뀌게 될까. “내가 만난 많은 축산 농부들이 자신들은 사람들이 구입하는 것을 키운다고 말한다. 공장식 축산에는 엄청난 불의(injustice)가 존재한다. 해체(dismantle)해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이들에게 돈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가 고기를 적게 먹어야 한다.”   세상에는 기후변화를 믿지 않는 회의론자도 있다. 기후변화를 믿더라도 육식을 줄이지 않으려는 사람이 대다수 아닐까.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과학과 이성의 방식으로만 토론을 해서는 설득하기 어렵다. 어떤 사람이 진실을 안다고 해도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아주 어려울 수 있다. 의지가 약하거나 비이성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습관의 힘, 음식과 관련된 개인의 역사, 열망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이 인간성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을 부인하지 않는 게 설득의 출발점이다.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 어렵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그게 훨씬 유익하다. 그런 다음 서로가 공유하는 가치에 호소해야 한다. 자기 자신과 아이, 타자, 미래를 위해 지구를 구하는 일 말이다.”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되기는 어렵다. “육식이나 채식 중에 하나를 선택하자는 게 아니다. 정체성을 뒤바꿀 필요는 없다. 균형을 유지하며 먹으면 된다.”   소설가로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문장의 정의는? “내 문장이냐, 남의 문장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 문장이라면 내가 쓰고 싶었던 바에 충실한 문장. 남의 문장이라면, 카프카가 그런 얘기를 했는데, 읽는 이의 머릿속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문장. 글은 때때로 그런 일을 한다.”   지난 추수감사절(2020년 11월 26일)에 칠면조 고기 안 먹었나. “답을 알지 않나? 안 먹었다. 칠면조를 즐기지 않는 것을 즐겼다. (enjoyed not enjoying it)”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2021.01.09 00:02

  • “판결 마음에 안 든다고 사법부 공격, 국가 틀 무너뜨려”

    “판결 마음에 안 든다고 사법부 공격, 국가 틀 무너뜨려”

     ━  [SUNDAY 인터뷰]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사법부 판결 관련 논란, 공수처 문제 등과 관련해 최근 이슈가 된 사안들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전민규 기자 지난해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 최대 화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와 법무부(추미애 장관)·검찰(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의 극한 대립 등이었다. 중앙SUNDAY는 법조 3륜(법원, 검찰, 변호사협회)의 수장 중 한명인 이찬희(55) 대한변호사협회장을 만나 큰 갈등을 빚은 여러 사안에 대해 허심탄회한 얘기를 들었다. 특히 최근 윤 총장 징계 사안, 정경심 교수 1심 유죄 판결 등을 놓고 일부에서 사법부를 비난하는 것과 관련해 이 협회장은 “갈등 해결을 위해 헌법이 권한을 부여한 사법부를 흔드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우리 사회 전반에 승복의 문화가 부족한 것 같아 아쉽다”는 입장을 전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대한변협 사무실에서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윤 총장 직무 정지 효력 중단, 정 교수 1심 판결 등을 놓고 일부에서 사법부를 공격한다. “사법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행위다. 사법부는 분쟁이 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계약에 따라 헌법적 권한을 부여받았다. 판사도 사람이라 잘못된 판결을 내릴 수 있다. 그래서 3심제, 재심제를 두고 있다. 법원 판결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사 신상을 터는 등 사법부를 공격하는 것은 헌법 정신을 무시하고 국가 제도의 틀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재판정에서 법리와 증거를 가지고 싸워야지 여론을 동원해 공격하는 것은 결코 합리화할 수 없다.”    비선출 권력이란 비난, 위헌적 발상   특히 윤 총장 징계 건과 관련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재가 사안을 비선출 권력인 판사가 뒤집었다고 비난하는데. “선출직 권력의 결정을 일개 판사가 뒤집었다는 논리에는 동의할 수 없다. 더구나 사법부를 두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공격하는 것은 위헌적 발상이다. 국회의원도 특정 지역구민의 선택으로 선출된 것이고, 대통령도 선거 때 지지하지 않은 국민이 많지만 헌법에 따라 합법적 권한을 부여받지 않나. 국민이 직접 뽑지 않았다지만 판사도 헌법이 정당하게 부여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여든 야든 민감한 정치적 사건 판결이 날 때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우리 사회 전반, 특히 정치권은 승복 문화가 부족한 것 같다. 정치권이 누구보다 법의 안정성과 헌법 정신을 이해하고 지켜줘야 할 것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도 사법부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갈등이 있을 때마다 법적 분쟁으로 끌고 가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정치력을 발휘하고, 조정·중재·합의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한 갈등 해소가 필요한데 너무 쉽게 법적 수단을 동원한다. 고소·고발 과잉사회다. 대법관 한 분이 연간 4000여건의 사건을 배당받는 것이 현실이다.”   공수처장 후보 선정이 마무리됐다. 대한변협이 추천한 김진욱 헌재 선임연구관이 초대 공수처장 후보로 지명됐는데. “지난 3월부터 변협 회원들로부터 후보 추천을 받았고 다양한 경로를 거쳐 후보자 중 한 분으로 선정됐다. 김 후보자는 선뜻 후보 추천을 수락하지 않았다. 판사 출신으로 대학에서 헌법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교수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고사하더라. 하지만 공수처가 검찰 개혁의 한 축이라는 명분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처장은 이왕이면 검사가 아닌 판사 출신이 더 적합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특히 형사 사건을 거시적이고 종합적으로 많이 다뤄 본 법관으로서의 경험이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계속 설득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후보 수락을 했다. 국회 인사청문회라는 검증 절차가 남아있지만, 정치적 편향성이나 문제가 될 만한 큰 도덕적 흠결은 없다고 생각한다.”   공수처장 후보 선정이 6차 회의까지 진행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추천위 내부 표결 과정에서 일부 위원이 자리를 박차고 회의장을 나가는 일도 있어 무척 당황스러웠다. 합리적 논의를 기대했는데 여야가 끝없이 평행선만 달리더라.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과 민낯을 본 것 같다.”   공수처 출범을 놓고 아직도 논란이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공수처 반대 입장이었다. 상설특검, 특별감찰관 등 이미 존재하는 제도를 확대하면 되는데 굳이 새로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었다. 패스트트랙으로 무리하게 공수처법을 통과시켰다는 논란도 있지만, 다수결 원칙으로 법이 통과된 만큼 이제는 어떻게 중립적·독립적으로 운영할지를 고민할 때다.”    여·야 중간에 끼어 양쪽서 다 욕먹어   공수처장 후보자 추천위 5차 회의에서 만난 이찬희 협회장(왼쪽)과 이헌 변호사 . [뉴스1] 공수처 반대라는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고 비판받지는 않았나. “보수 진영에서는 나를 여당 편이라고 비난하겠지만, 나는 국회 법사위원장 등 일부 상임위원장 자리를 야당이 맡아야 한다고 계속 주장해 왔다. 여권에선 나를 보수로, 야권에선 진보라며 각자 입맛에 맞게 평하더라. 중간에 끼어 양쪽에서 다 욕을 먹은 것 같다. 정치는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이 돼선 안 된다. 완벽한 제도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가능한 법 테두리 안에서 협상을 잘해 각자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방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부에선 공수처가 대통령과 현 정권 호위대가 될 것이라고 의심한다. “그런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논리만 내세우면 다음 대선에서 정권이 야당으로 넘어갔을 때 공수처를 뭐라고 할 건가. 초대 공수처장 후보가 내정된 만큼 이제는 적절한 자질을 가진 공수처 검사를 인사위원회를 통해 어떻게 잘 선정할 수 있을지 등 후속 작업에 신경 써야 한다.”   공수처가 잘 운용될 것이라고 보나. “만약 일부의 우려처럼 공수처가 정권 보위 등 특정 세력을 위한 선택적 수사를 한다면 국민이 가만히 있겠는가. 보궐선거, 대선, 지방선거 등에서 국민이 심판하지 않겠나.”   법무부와 검찰의 계속된 갈등으로 국민 피로도가 높았다. “오랫동안 뿌리박힌 조직 내 문제를 하루아침에 다 바꾸기는 어렵다. 급하게 밀어붙이기만 하면 성과를 내기는커녕 내부의 반발만 키운다. 개혁에 공감하는 내부 구성원들마저 돌아서게 하는 역효과를 낳는다. 나는 추 장관이 주도한 윤 총장 징계와 관련해 이를 철회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추 장관의 입장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만 너무 조급했다. 조선시대 정도전과 조광조의 급진적 개혁 시도의 결과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어야 한다. 내 임기 동안 모든 것을 이루겠다는 생각보다는 초석을 깔고 주춧돌을 쌓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진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검찰이 돌아봐야 할 부분은 없나. “최근 검사 술접대 수사와 관련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법리적으로는 맞을지도 모르지만 국민 법 감정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2010년 스폰서 검사 특검, 이후 벤츠·그랜저 검사 사건 등 잊을 만하면 검찰의 곪은 상처가 터져 나온다. 검찰은 제 살을 도려내는 철저한 반성과 성찰이 있었는지 스스로 조직문화를 돌아봐야 한다. 검찰 내부 비판자들에 대해 조직의 부적응자, 이단자라고만 비난해서도 안 된다.”   일부에서 지적하는 검찰의 특수수사 관행은 어떻게 생각하나. “여죄 수사, 별건 수사 등을 통해 먼지털기식으로 하면 안 털릴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검찰이 수사를 통해 맘만 먹으면 모든 것을 다 털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를 준 부분이 있지 않았나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변호사로서 바라보는 검찰 출신 변호사들의 모습은 어떤가. “검사 옷을 벗었어도 검찰에서의 경험만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고, 여전히 자신이 검사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더라. 자기가 했던 수사는 다 완벽하고, 검찰이 우리 사회의 흐름을 바꾸고 항상 옳았다는 생각도 강하다. 일부는 검찰 엘리트주의, 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모습도 보이더라.”     ■ 이찬희 변협회장 「 1965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다. 2019년 2월 제50대 대한변호사협회장에 취임했다. 연세대 특임교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통일법제 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2010년 스폰서 검사 특검 특별수사관, 경찰개혁위원회 위원을 거쳐 2017년 제94대 서울지방변호사협회장을 역임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냈고, 평소 양심적 병역거부와 난민문제 등 인권과 소수자 문제 같은 우리 사회 민감한 사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 왔다. 」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2021.01.02 00:20

  • “코로나 피정 기간, 영성 잘 가꿔 이웃 도와줘야”

    “코로나 피정 기간, 영성 잘 가꿔 이웃 도와줘야”

     ━  [SUNDAY 인터뷰] 이해인 수녀   새해 같지 않은 새해다. 새 아침의 기운을 실감하기 어렵다. 코로나와 함께해야 하는 겨울이 길게만 느껴져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이제까지 우리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뒤흔든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접촉, 연결을 타고 번진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다. 대규모의 재난 앞에 어려운 사람들이 더욱 고통받는다는 점도 문제다. 여유 있는 계층에 비해 소득은 줄고 감염 위험은 커진다.   나쁜 꿈 같은 현실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방법은 뭘까.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서정시의 영성’을 실천해온 이해인 수녀. 중앙SUNDAY에 코로나 극복을 응원하는 신년 시를 보내왔다. 오종택 기자 ‘국민 이모’ 이해인(75) 수녀는 이 시기를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지난해 말 출간한 인터뷰집 『이해인의 말』(마음산책)에서 ‘골방의 영성’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코로나의 골방에서 영성을 찾자는 얘기다.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고통은 혼자 방에 머물 줄 모르는 데서 온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생전 수녀와 관계가 돈독했던 법정(法頂, 1932~2010) 스님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1978년 수녀에게 써 보낸 붓글씨 편지에 이런 문장이 있다고 한다.   “수도자에게 있어서 고독은 그림자 같은 것이겠지요. (…) 수도자의 고독은 단절에서가 아니라 우주의 바닥 같은 것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지요. 말하자면 절대적인 있음 안에 서 있는 자신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요. 배부른 상태에서는 고독을 느끼지 못합니다.”   수도자의 그림자. 우주의 바닥에서 느끼는 고독. 무슨 뜻일까. 수녀는 골방의 영성의 교훈을 이렇게 해석했다.   “우리는 모두 코로나 수련생이다. 코로나 시기에 깨달은 게 있다면 첫째,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둘째 그렇기 때문에 나한테서 빠져나와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의식하며 이타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성탄절인 12월 25일 오후. 코로나를 고려한 전화 인터뷰에서다. 수녀는 이례적으로 사회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 사회적인 노력을 거론하는 대목에서 거친 언어를 주고받으며 정쟁을 일삼는 정치권을 질타했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입맛에 맞게 해석 가능한 발언이었다.   1978년 법정 스님이 수녀에게 보낸 붓글씨 편지. [사진 마음산책] 목소리가 맑다. 건강은 어떠신가. (※수녀는 알려진 것처럼 2008년 직장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명랑 투병’이 고유의 수식어가 될 만큼 적어도 겉으로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감자바위 영성’, 씩씩한 영성이다.) “큰 어려움은 없지만 이빨에 문제가 생겨 틀니를 했고, 양쪽 다리 모두에 인공관절을 해 넣었다. 암환자다 보니 항상 합병증 두려움이 있다. 건강 염려증으로 약간 우울한 성탄절을 보내고 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이 어떤 것인지 상상이 안 된다. “지난해 11월 25일 친오빠가 돌아가셨다. 서울에서 만난 지 2, 3주밖에 안 됐는데…. 곧이어 같이 지내던 수녀 한 분이 돌아가셨고, 그 수녀님을 돌보던 또 다른 수녀님이 심장대동맥박리라는 병으로 기로에 서 있다가 의식을 회복했다. 죽음이 우리 삶 속에 있다는 점을 절감하게 된다. 그래서 죽음에 관계된 책들을 주문해 읽고 있다. 『엄마의 마지막 말들』 『애도의 문장들』, 이런 책들이다. 죽음을 곁에 두고 묵상하면 순간순간 삶에 충실해질 테니 사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에 이르는 투병 과정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어쨌든 끝이 있는 것이라는 사실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수도자로서 존엄한 죽음을 맞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는데 내 허영심이겠지.”   죽음의 정의를 내린다면. “자신의 본성을 내려놓고 겸손해지는 거다. 수도자인 나도 인간이다 보니 동료의 어떤 행동이 용서가 안 될 때가 있다. 홧김에 확 표현할 수 있지 않나. 그 순간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일종의 정신적인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교만한 마음에 큰소리치고 내가 옳다고 우기고 싶을 때, 지금 이 사람하고 내가 영원히 사는 것도 아닌데 겸손으로 본성을 극복하자, 평소 정신적인 죽음 연습을 해둬야 나중에 진짜 죽을 때 잘 죽을 수 있어, 스스로 교육한다. 이렇게 몇십 년을 살다 보니 마음이 순해진 것 같다.”   죽음의 공포까지는 아니겠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다.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낼수록 골방의 영성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밖으로 나돌았다. 자신을 잘 들여다보되 바깥의 타자에게도 눈길을 돌려야 한다. 코로나 와중에 넓은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괴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어떻게 남을 위하는 일로 연결되나. “법정 스님의 편지는 인간의 고독과 한계를 더 깊이 들여다볼수록 그것을 기초로 남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3년 전 돌아가신 친언니 수녀님이 평생 바깥에 나오지 않는 봉쇄 수도원에 계셨다. 만나 보면 자기한테는 엄격하면서 남에게는 바다 같이 넓고 쾌활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본의 아니게 봉쇄 수도자 같은 삶을 살지 않나. 갇혀 지내다 보니 사람들이 그리워지고 남들에게 인색했던 부분들을 반성하게 된다. 가톨릭에서는 1년을 잘 살기 위해 8박 9일 피정을 한다. 코로나 시기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피정 기간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혼자 있는 동안 영성을 잘 가꿔 코로나가 풀리면 맨발로 뛰어나가 이웃들을 막 도와주라는 피정 말이다.”   개인 아닌 공동체 차원에서 형편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전 사회적으로 가톨릭의 카리타스, 그러니까 애덕(愛德)이나 자선 같은 행동을 운동처럼 실천하면 어떨까. 꼭 돈만이 아니라 재능 기부도 좋고. 가족처럼 서로 보살피며 마을 단위로 말이다.”   『이해인의 말』 수녀의 ‘코로나 처방전’은 이 대목에서 정치권 질타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런 일이 몇 사람만의 이상 갖고는 잘 안 되는 것 같다. 정부 차원에서 움직여야 한다. 맨날 싸움만 하지 말고. 아이들이 신문에서 여당 야당 싸움하는 것만 본다. 공부는 해서 뭐하나,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정치인들이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새해에는 너무 배움이 없는 사람들처럼 원색적인 비난을 하지 말고 유머도 섞어 가면서 세련된 언어로 싸우면 좋겠다. 공동선을 향해 사심 없이 좋은 나라를 만들어가야 한다. 가끔 김수환 추기경님도 생각나고 법정 스님도 생각난다. 그분들처럼 어떤 지침을 줄 수 있는 분들이 아쉽다.”   정치인들이 스스로 바뀔 것 같지 않다. “우리 문제는 모두 남 탓만 한다는 거다.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어떤 사람이 잘못하는 모습이 혹시 내 모습은 아닐까, 한 번쯤 골방에 들어가 자신을 살펴보면 어떨까. 어떤 잘못을 했을 때 망신당하거나 매 맞을 각오를 하고 약점을 자랑한다고 할까, 그렇게 사과하는 용기를 내는 리더가 나오면 나라가 좀 나아지지 않을까. 모든 국민이 거짓말인 줄 아는데 정작 본인은 아니라고 하니까 정치가 잘 되는 듯하다가도 퇴보하고….”   새해 결심 같은 게 있다면. “환대다. 좋아하는 격언 중에 이런 게 있다. ‘타인을 냉대하지 말라. 그가 천사일지 모르니’.”     ■ 새해의 기도 -이해인 수녀 「 코로나 위기 속에 어둡고 답답한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내며 참 많이 울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무참하게 희생 된 우리 가족 친지 이웃 수많은 의료진들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며 제대로 된 애도조차 못한 미안함과 회한으로 우리의 눈물은 아직도 마를 날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떻게 희망의 별을 찾아야할지 몰라 마주 보는 웃음대신 탄식을 앞세우며 시시로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웃음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푸르디 푸른 생명의 힘과 다른 이를 더 먼저 배려 할수 있는 사랑의 지혜를 주십시오   설레임과 반가움으로 한 해를 맞아야 할 우리 마음이 아직은 어둠 속에 두렵고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다시 힘을 모아 희망을 향한 발걸음을 시작해야겠지요?   일상의 거리두기에서 배운 자신을 위한 절제와 이웃을 향한 그리움으로 더 넓은 사랑을 시작해야겠지요?   공간의 균을 소독하는 방역 뿐 아니라 어느 새 몰래 숨어들어 온 미움 탐욕 불신 분노 나태 등등 마음의 균도 제대로 소독하면서 진정한 참회의 기도로 거듭나는 코로나 수련생 치열한 구도자가 되어야겠지요?   하얀 소의 해라는 2021년 우리도 소처럼 어리석을만큼 우직하게 순하게 부지런하게 깨어살 수 있길 소망합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충실한 참을성과 겸손함으로 가정 속의 나 나라 속의 나 세계 속의 나를 다시 한 번 샘솟는 희망과 용기로 길들이며 2021년을 하나의 선물로 받아 안을 수 있길 원합니다   그 어느 날 고난과 시련의 절망스런 위기를 희망으로 극복 한 후의 가장 크고 밝은 웃음꽃이 우리 모두의 것일 수 있도록!   2021년 1월 1일 」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2021.01.02 00:02

  • “정부, 집값 잡겠다는 의지보다 시장 이기겠다는 오기 강해”

    “정부, 집값 잡겠다는 의지보다 시장 이기겠다는 오기 강해”

     ━  [SUNDAY 인터뷰]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   윤희숙 의원은 “부동산 정책이나 국정원법 개정안 등을 보면 정부와 여당이 국민을 너무 등한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나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하는 국회 5분 연설로 ‘국민 사이다’라는 별명을 얻은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서초갑). 윤 의원은 국회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 그는 11일 국회 단상에 올라 여당이 일방 처리를 하려던 ▶국정원법 개정안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5·18역사왜곡처벌법을 ‘닥쳐 3법’이라 부르며 12시간 47분간 조목조목 반박했다. 필리버스터 종전 최고 기록(12시간 31분)도 갈아치웠다.   더불어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강제 중단시키고 14일 ‘닥쳐 3법’을 통과시켰지만, 윤 의원의 필리버스터는 여운을 남겼다.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관련 국회 연설과 마찬가지로 “속 시원하다”는 평가가 뒤따랐고, ‘철의 여인’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얻었다. 초선 의원인 윤 의원의 발언이 대중적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 경제학자로 경제 정책의 문제점을 논리적이고 쉽게 설명하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윤 의원을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 국민들이 가장 답답해하면서도 중요한 부동산 문제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임대차 2법은 선거공학 산물   5분 연설 등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바뀐 건 없고, 인기 등을 의식할 시간도 없다. 6시면 출근해 공부하고 9시부턴 일상적인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집값·전셋값이 오르는 원인은 뭘까. “정부 정책의 실패 탓이고, 그 기저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때문이다. 정부가 공급은 하지 않고 계속 (집값이) 안정화할 것이라고 국민을 현혹했다. 그래 놓고 7월엔 느닷없이 임대차 2법을 강행했다. 전셋집마저 줄어드니 정부 말만 믿었던 국민들은 당장 오갈 곳이 없어졌다. 정부가 24번에 걸쳐 국민들의 뒤통수를 친 건데, 임대차 2법이 기폭제가 돼 결국 이렇게 된 거다.”   임대차법의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다. “정부와 여당의 의도는 중요치 않다.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 법이 나쁜 법은 절대 아니지만, 문제는 임대인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어떤 정책이고 법이든 양쪽을 신경 써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데, 정부와 여당은 오로지 임차인만 위해 이 법을 만들었다. 법이 한쪽 편으로 쏠려 있으니 부작용이 나타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이 진짜 그걸 몰랐을까. 10년을 논의했다면서? 아니라고 본다. 이 법을 만든 진짜 목적은 임차인 보호가 아니라 ‘우리가 임차인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고 있다’고 보여주기 위한 법이다. 임대인보단 임차인이 더 많으니까.”    주거 안정보단 표를 의식했다는 얘긴가. “분명 선거공학에 근거한 법률이다.”   전셋값 상승세가 너무 가파르다. “음…. 임대차 2법을 지금이라도 없애는 것 외엔 딱히 방법이 없어 보인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니 뭐. 집을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부는 매매시장도 공급이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렇게 포장하고 싶어 하는 분도 있지만, 정부도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안다. 홍남기 부총리도 국회에 나와 ‘공급을 늘리는 게 답’이라고 여러 번 얘기했다. 자기들도 알지만, 그냥 수요-공급을 시장에 맡겨 놓기 싫은 거다. 시장을 이겨서 통제하고 싶은 거다. 24번에 걸친 부동산 대책이 다 상위(象魏·청와대)의 의중을 시장에 명령하려는 태도 아니었나.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보단 시장을 이겨보겠다는 오기가 더 크게 느껴진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정부와 여당 일각, 여당 지지층에선 공급을 늘리라는 주문에 대해 대놓고 혐오감을 드러낸다. ‘공급을 아무리 늘려도 자가보유율은 제자리걸음’이라면서 공급을 늘리면 건설사와 기존 집주인(재개발·재건축), 다주택자 배만 불린다는 논리다.   공급보단 다주택자를 옥죄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는 집이 없는데 어떤 사람은 수십 채가 있다고 하면 당연히 밉겠지. 다주택자는 그러나 미워해야 할 대상이지 규제할 대상이 아니다. 정책에서 중요한 건 플레이어의 역할이다. 이건 정책학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다주택자는 시장에서 무슨 역할을 하나? 임대시장을 떠받치고 있다. 공공임대가 8% 정도이고, 자가주택거주율이 57%(서울은 42.9%) 정도 된다고 한다. 나머지 국민은 민간임대에 살고 있다. 이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게 다주택자다. 다주택자를 때리는 건 정책 실패의 희생양을 찾기 위한 거다.”   주택시장을 정상화할 해법은 없을까. “무엇보다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건 쉽지 않아 보인다. 사람이 원하는 곳에 공급하는 게 중요한데 (문 정부는) 그런 개념이 없다. 원하는 곳에 원하는 집이 들어설 수 있게 하는 방법은 규제를 푸는 것 말고는 없다. 도심 재개발·재건축이다. 또 정부가 수요 규제 차원에서 대출을 막는 이유가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한 것인데, 전 세계 어느 나라도 특정 지역의 집값을 잡기 위해 대출 규제를 하는 예가 없다. 2030세대 등 젊은 세대에게 자유로운 대출로 안정적 주거를 실현해줘야 한다.”   정부 기조와는 정반대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만 봐도 알 수 있다. 변 후보자는 어떻게 봐도 문제가 많은 사람인데, 그를 내세웠다는 건 정부가 ‘우리 잘 하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임대차 2법이나, 대출 규제 등 앞에서 했던 정책 때문에 이 사단이 났는데 그게 다 맞는다고 재차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 정상적인 사람을 장관으로 데려올 수 없는 거다. 정부 입장에선 변 후보자 밖엔 답이 없었을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기세로만 보면 (정부가) 새 임대차 계약에도 임대료 상한(5%)을 적용할 것 같다’고 하자, 윤 의원은 “도시를 파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2가지 있는데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첫째는 폭격이고, 둘째는 임차료 통제”라고 말했다. 임차료를 통제하면 임대주택을 새로 짓거나 보수·유지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도시가 황폐화한다는 것이다. 실제 사례도 있고, 임대차 2법 도입 당시 일부 전문가들이 지적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날 국회에서 열린 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변 후보자는 전세난의 대안으로 “표준임대료 도입 등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에 대한 반발도 커지고 있다. “하, 세금은…. 이것도 기본이 안 돼 있다. 세금을 부과할 때 최우선으로 고려할 게 담세능력이다. 소득은 고려하지 않고 종부세율을 급격히 올리고, 공시가격을 현실화하겠다는 건 국민들에게 ‘벌이가 없어서 종부세 못내? 그럼 집 팔고 이사 가라’는 소리다. 세상에 어떤 정부가 국민에게 이런 소리를 하나. 자산가격이 오르면 당연히 세금을 더 내야 하지만, 그것도 사정을 봐가면서 해야 한다. 이 ‘사정’이 바로 담세능력이다. 무엇보다 자산 가격이 오른 건 정부의 정책 실패 때문인데, 왜 그 부담을 국민에게 뒤집어씌우나.”    ‘부자 때리기’, 정권 재창출 수단   국민 1%에만 해당하니 괜찮다고 한다. “‘부자 배싱(bashing·맹공격)’인데 선거공학적으론 합당해 보인다. 다만 부자 증세라도 세금을 올릴 때는 질서 있는 룰이 필요한 데 정부는 그게 없다. 그냥 1%만 해당하기 때문에 올려도 괜찮다는 논리다. 소득세율만 해도 그렇다. 주요 7개국(G7) 국가 중 2015년 이후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린 나라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무려 3번이나 올렸다. 이때도 부총리는 1%에만 해당해 괜찮다고 말했다. 세금을 올리는 데 원칙도 명분도 없다. 오로지 선거공학만 있다.”   당 차원에선 논의를 하나. “당에 부동산TF팀이 있고 거기에서 이미 큰 틀의 계획은 다 만들어 뒀다. 재·보궐선거 등 기회가 되면 그 때 맞춰서 내놓을 거다. 지금은 의석수 차이가 있어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   정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는 건가. “음…. 진짜 할 수 있는 게 없다. 여당은 수틀리면 바로 기립한다. 그래서 유튜브라도 열심히 할 생각이다. 이번에 유튜브 채널(현재 채널명은 임시로 ‘윤희숙 채널’)도 만들었다. 12시간짜리 필리버스터도 움짤(인터넷상의 동영상 등)로 만드는 중이다. 국민들에게 열심히 알리다 보면 국민도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지 않을까.”   주로 전자투표를 사용하는 본회의와 달리 상임위에선 이의 유무를 묻는 표결 방식과 손을 드는 ‘거수’ 표결, 그리고 ‘기립’ 표결이 쓰인다. 국회를 장악한 여당은 임대차 2법 등 주요 법안 대부분을 이의 유무를 묻는 표결이 아닌 기립 표결을 했다. 지난 20대 국회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기립 표결은 4년간 4건에 불과했다. 극히 드문 표결 방식인데, 여당은 기립 표결로 ‘입법 폭주’를 계속하고 있다.   국정원법 등은 뭐가 문제인가. “닥쳐 3법은 국가가 개인에게 닥치라고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문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자유도 없고 민주도 없다. 임대차 2법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여당이 뭐라고 국민 개개인에게 중요한 법을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마구 만드나. 정부와 여당이 국민의 기본권을 매우 경시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건 자유도 아니고 민주도 아니다.”   한편 윤 의원은 내년 4월 치러질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윤 의원이 최근 당의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천관리위에 합류키로 하면서 서울시장 출마를 접은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는데, 이날 공관위에 합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을 물었지만, 윤 의원은 답변하지 않았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2020.12.26 00:02

  • “코로나 방역·경제 공존 방법 찾기 위해 최대한 노력”

    “코로나 방역·경제 공존 방법 찾기 위해 최대한 노력”

     ━  ‘방역 야전사령관’ 정세균 총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하루 1000명을 넘어서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확진자가 급증하는 수도권에서는 병상 부족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정부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올 한 해 방역과 경제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온 정부 입장에서 쉽게 결정할 수만은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백신과 치료제도 시급한 현안이다. 영국에 이어 미국·캐나다 등 세계 각국이 앞다퉈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돌입했지만 한국은 백신 물량 확보와 접종 시기 모두 불확실한 실정이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과 마주한 지금 정부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어떤 대책을 준비하고 있을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본부장을 맡아 코로나19 방역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정세균 국무총리를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나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전략을 들어봤다. 정 총리는 이날 1시간 동안 박신홍 중앙SUNDAY 정치에디터와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현 내각에 대한 평가와 내년 선거 정국에 대한 견해도 가감 없이 밝혔다.    치료제 내년 1월 상용화, 백신은 3월 접종   정세균 총리가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전략과 정국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신인섭 기자 3차 대유행이 갈수록 거세지면서 K-방역이 고비를 맞은 모습이다. “아주 엄중한 상황이다.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감염이 발생하고 있다. 현재의 유행이 우리가 경험한 코로나19와의 전쟁 중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고비가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서 코로나에게 지면 지금까지 우리가 쌓은 성과가 모두 수포로 돌아갈 수 있는 만큼 사생결단의 각오로 가용한 모든 행정력을 코로나 위기 대응에 집중하고 있다.”   3단계로 격상하라는 목소리가 크다.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은 단순히 확진자 수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3단계는 파급효과가 너무 커서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방역에 치중하면 경제가 울고, 경제를 고려하면 방역이 우는 상황에서 방역과 경제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선 고도의 판단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언제쯤 결단이 가능한가.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각계 전문가 의견을 적극 수렴해 검토하고 있다. 더욱이 거리두기 격상은 국민의 수용성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다. 또한 3단계로 가더라도 당장 하루 이틀 만에 갈 수는 없고 국민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도록 말미를 드려야 한다. 그 기간은 상황이 얼마나 엄중하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의료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느냐다. 외국 사례도 많이 보지 않았나. 하루 확진자가 단 100명 나와도 의료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고 1000명이 발생해도 버틸 수 있다. 의료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으면 서두르지 않고 좀 더 침착하게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   현재 정부가 설정해 놓은 기준은 뭔가. “하루 신규 확진자 1000명이 열흘 연속 발생해도 의료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도록 준비하고 있다. 이 기준을 넘을지 여부가 3단계 격상의 중요한 변수 중 하나가 될 거다.”   병상이 모자라게 되면서 사전 대비가 부족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지금까지 의료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고 잘 유지돼 오지 않았나. 1차 유행을 겪으면서 보건당국은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수도권에서 하루 1000명이 나왔을 때도 감당할 수 있는 준비를 계속해 왔다. 현재 중증 환자 병상이 빠듯하긴 하지만 입원을 못할 정도는 아닌 상황이다. 의료 시스템이 작동하는 한 패닉 상태로 갈 일은 아니다.”   K-방역이 성과도 많았지만 막상 3차 대유행 준비엔 미흡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 부분은 지금 왈가왈부해도 의미가 없다고 본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우리 국민과 전 세계가 평가할 부분이다. 중대본부장인 저와 방역에 책임지고 있는 분들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정세균 총리가 18일 은평구 생활치료센터에서 의료진과 주먹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정부는 백신 공동 구매를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1000만 명분, 글로벌 제약사와 개별 협상을 통해 3400만 명분 등 총 4400만 명분의 백신을 내년 1분기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미국·영국 등은 인구의 2~5배에 달하는 백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백신 도입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총리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정부는 ‘제때 필요한 만큼을 확보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백신 확보에 국민의 생명이 달려 있으면서 동시에 적잖은 세금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잘 판단해야 한다. 코로나 백신은 속도전이다 보니 공급하는 쪽에서 부작용 면책권을 요구하거나 개발 도중 실패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등 일방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 조건들을 무작정 수용할지 따져볼 문제다. 나는 무조건 빨리 확보하기보다는 당연히 따질 건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접종 시기를 앞당기자는 요구가 많다. “아직은 개발된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는 만큼 코로나19 상황과 해외 접종 동향, 국민 수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접종을 시작할 계획이다. 우선 내년 2월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들어오기로 돼 있으니 식약처 심사 후 3월 중엔 접종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치료제 개발 상황은 어떤가. “치료제 도입 시기는 더 빠르게 보고 있다. 현재 여러 국내 기업이 경증·중증 환자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내년 1월쯤에는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백신이든 치료제든 임상 부작용 등 돌발 상황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언제쯤 맘껏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겠나. “우리가 10개월 넘게 엄청난 고통을 겪어오지 않았나. (잠시 말을 멈춘 뒤) 이젠 3분의 2쯤은 왔기를 바란다. 완전한 종식은 아니더라도 내년 봄까지는 코로나19가 관리 가능한 환경이 갖춰지면서 국민의 일상이 정상화될 수 있길 진정 바라고 있다.”   정 총리는 지난 1월 취임 일성으로 “경제 총리, 통합 총리가 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취임 6일 만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코로나 총리’로 1년을 보내야 했다. “당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제대로 대비하는 기틀 마련과 선도 경제로의 체질 개선을 위한 산업 생태계 조성을 구상했는데 정말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원래 복병은 저 뒤나 중간에 만나는 건데 시작할 때부터 만나 옴짝달싹 못 하게 됐다. 아쉬운 점이 많다. 그럼에도 사회 통합을 위한 소통 행보는 꾸준히 이어가고자 했다. 한국형 대화 모델로 평가받는 ‘목요대화’를 30차례 진행한 게 대표적이다.”   어떤 만남이 가장 인상 깊었나. “청년들과 두 차례 만났는데, 쉽지 않은 대화였지만 얘기를 주고받으며 많은 것을 배우고 이해하게 됐다. 청년정책 기본 계획에도 반영하도록 했다. 또 각계각층의 분들을 만나면서 얼마나 소통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여건이 좋지 않다고 소통을 포기해서는 안 되고 마지막 순간까지 상생과 타협을 모색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북·미 관계 순항만 기대하긴 어려워   지난 1년 내각 성적표를 매긴다면. 논란을 빚은 장관들도 적지 않았는데. “총리는 장관들이 일을 잘하게 도와주는 자리다. 부처 갈등이 생기면 이를 조율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조정자 역할도 하고. 다행히 내가 2006년 장관할 때보다 다들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언론과 시민사회의 지적을 받은 장관들도 있었는데 누군들 비판받을 게 없겠는가. 당연히 비판을 받아가면서 성장하는 것이고 그걸 고깝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지적을 받으면 잘 수용해서 더 나은 성과를 보여주면 된다.”   개각을 두 번 나눠 할 거라고 했는데. “식사하면서 한 얘기인데 그게 또 기사화가 됐더라. 총리의 역할도 있지만 인사는 대통령의 몫이지 않나. 개각 얘기가 총리 입에서 나가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앞으로의 거취는. 대선도 다가오는데 총리는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거취는 무슨…. 코로나 잘 극복하는 데 전력한다는 생각뿐이다.”   내년 1월 바이든 정부 출범을 맞아 한·미 관계와 북핵 문제는 어떻게 전망하나. “한·미 협력은 늘고 동맹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미국 민주당 정부가 공화당 정부에 비해 전통적으로 보호무역에 가깝다는 점은 대비해야 할 부분이다. 북·미 관계는 트럼프 정부 때와 달리 순항만 기대하긴 어려울 수 있다. 그런 만큼 우리가 조금 더 운신의 폭을 넓혀 주도적으로 상황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거다.”   이제 선거 국면에 접어드는데,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은 뭐라고 생각하나. “(잠시 뜸을 들인 뒤)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올해 역성장을 했다. 어떻게 하면 다시 V자 반등을 이뤄내 국민 생활을 윤택하게 할 것인가를 매우 큰 과제로 봐야 할 거다. 아울러 분열과 갈등에 모두 지쳐 있는 만큼 통합 또한 화두가 될 것이다. 결국 민생 경제와 사회 통합이 중요하지 않겠나.”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17일 발간된 월간중앙 신년호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8일 “내년에” 18일도 “내년에”…진전 없는 백신 확보전정부, 백신 부작용·예산 걱정해 '돌다리'만 두드려야당 “국산 치료제 우선시 하다 게임체인저 백신 놓쳐”외국, 대통령도 정보 기관도 봄부터 백신에 '올인'코로나 백신 불신 커져, 투명한 접종 로드맵 빨리 짜야

    2020.12.19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