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마음에 안 든다고 사법부 공격, 국가 틀 무너뜨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1.02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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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호 12면

[SUNDAY 인터뷰]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사법부 판결 관련 논란, 공수처 문제 등과 관련해 최근 이슈가 된 사안들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전민규 기자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사법부 판결 관련 논란, 공수처 문제 등과 관련해 최근 이슈가 된 사안들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전민규 기자

지난해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 최대 화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와 법무부(추미애 장관)·검찰(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의 극한 대립 등이었다. 중앙SUNDAY는 법조 3륜(법원, 검찰, 변호사협회)의 수장 중 한명인 이찬희(55) 대한변호사협회장을 만나 큰 갈등을 빚은 여러 사안에 대해 허심탄회한 얘기를 들었다. 특히 최근 윤 총장 징계 사안, 정경심 교수 1심 유죄 판결 등을 놓고 일부에서 사법부를 비난하는 것과 관련해 이 협회장은 “갈등 해결을 위해 헌법이 권한을 부여한 사법부를 흔드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우리 사회 전반에 승복의 문화가 부족한 것 같아 아쉽다”는 입장을 전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대한변협 사무실에서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정치 등 우리 사회 승복문화 부족
여론몰이로 헌법이 정한 권한 무시

공수처 중립성 지킬 방안 찾아야
편향 수사하면 국민 가만 있겠나

검찰개혁 급하게 밀어붙여 역효과
검찰도 엘리트·우월주의 돌아봐야

윤 총장 직무 정지 효력 중단, 정 교수 1심 판결 등을 놓고 일부에서 사법부를 공격한다.
“사법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행위다. 사법부는 분쟁이 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계약에 따라 헌법적 권한을 부여받았다. 판사도 사람이라 잘못된 판결을 내릴 수 있다. 그래서 3심제, 재심제를 두고 있다. 법원 판결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사 신상을 터는 등 사법부를 공격하는 것은 헌법 정신을 무시하고 국가 제도의 틀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재판정에서 법리와 증거를 가지고 싸워야지 여론을 동원해 공격하는 것은 결코 합리화할 수 없다.”

비선출 권력이란 비난, 위헌적 발상

특히 윤 총장 징계 건과 관련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재가 사안을 비선출 권력인 판사가 뒤집었다고 비난하는데.
“선출직 권력의 결정을 일개 판사가 뒤집었다는 논리에는 동의할 수 없다. 더구나 사법부를 두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공격하는 것은 위헌적 발상이다. 국회의원도 특정 지역구민의 선택으로 선출된 것이고, 대통령도 선거 때 지지하지 않은 국민이 많지만 헌법에 따라 합법적 권한을 부여받지 않나. 국민이 직접 뽑지 않았다지만 판사도 헌법이 정당하게 부여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여든 야든 민감한 정치적 사건 판결이 날 때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우리 사회 전반, 특히 정치권은 승복 문화가 부족한 것 같다. 정치권이 누구보다 법의 안정성과 헌법 정신을 이해하고 지켜줘야 할 것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도 사법부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갈등이 있을 때마다 법적 분쟁으로 끌고 가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정치력을 발휘하고, 조정·중재·합의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한 갈등 해소가 필요한데 너무 쉽게 법적 수단을 동원한다. 고소·고발 과잉사회다. 대법관 한 분이 연간 4000여건의 사건을 배당받는 것이 현실이다.”
공수처장 후보 선정이 마무리됐다. 대한변협이 추천한 김진욱 헌재 선임연구관이 초대 공수처장 후보로 지명됐는데.
“지난 3월부터 변협 회원들로부터 후보 추천을 받았고 다양한 경로를 거쳐 후보자 중 한 분으로 선정됐다. 김 후보자는 선뜻 후보 추천을 수락하지 않았다. 판사 출신으로 대학에서 헌법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교수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고사하더라. 하지만 공수처가 검찰 개혁의 한 축이라는 명분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처장은 이왕이면 검사가 아닌 판사 출신이 더 적합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특히 형사 사건을 거시적이고 종합적으로 많이 다뤄 본 법관으로서의 경험이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계속 설득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후보 수락을 했다. 국회 인사청문회라는 검증 절차가 남아있지만, 정치적 편향성이나 문제가 될 만한 큰 도덕적 흠결은 없다고 생각한다.”
공수처장 후보 선정이 6차 회의까지 진행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추천위 내부 표결 과정에서 일부 위원이 자리를 박차고 회의장을 나가는 일도 있어 무척 당황스러웠다. 합리적 논의를 기대했는데 여야가 끝없이 평행선만 달리더라.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과 민낯을 본 것 같다.”
공수처 출범을 놓고 아직도 논란이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공수처 반대 입장이었다. 상설특검, 특별감찰관 등 이미 존재하는 제도를 확대하면 되는데 굳이 새로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었다. 패스트트랙으로 무리하게 공수처법을 통과시켰다는 논란도 있지만, 다수결 원칙으로 법이 통과된 만큼 이제는 어떻게 중립적·독립적으로 운영할지를 고민할 때다.”

여·야 중간에 끼어 양쪽서 다 욕먹어

공수처장 후보자 추천위 5차 회의에서 만난 이찬희 협회장(왼쪽)과 이헌 변호사 . [뉴스1]

공수처장 후보자 추천위 5차 회의에서 만난 이찬희 협회장(왼쪽)과 이헌 변호사 . [뉴스1]

공수처 반대라는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고 비판받지는 않았나.
“보수 진영에서는 나를 여당 편이라고 비난하겠지만, 나는 국회 법사위원장 등 일부 상임위원장 자리를 야당이 맡아야 한다고 계속 주장해 왔다. 여권에선 나를 보수로, 야권에선 진보라며 각자 입맛에 맞게 평하더라. 중간에 끼어 양쪽에서 다 욕을 먹은 것 같다. 정치는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이 돼선 안 된다. 완벽한 제도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가능한 법 테두리 안에서 협상을 잘해 각자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방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부에선 공수처가 대통령과 현 정권 호위대가 될 것이라고 의심한다.
“그런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논리만 내세우면 다음 대선에서 정권이 야당으로 넘어갔을 때 공수처를 뭐라고 할 건가. 초대 공수처장 후보가 내정된 만큼 이제는 적절한 자질을 가진 공수처 검사를 인사위원회를 통해 어떻게 잘 선정할 수 있을지 등 후속 작업에 신경 써야 한다.”
공수처가 잘 운용될 것이라고 보나.
“만약 일부의 우려처럼 공수처가 정권 보위 등 특정 세력을 위한 선택적 수사를 한다면 국민이 가만히 있겠는가. 보궐선거, 대선, 지방선거 등에서 국민이 심판하지 않겠나.”
법무부와 검찰의 계속된 갈등으로 국민 피로도가 높았다.
“오랫동안 뿌리박힌 조직 내 문제를 하루아침에 다 바꾸기는 어렵다. 급하게 밀어붙이기만 하면 성과를 내기는커녕 내부의 반발만 키운다. 개혁에 공감하는 내부 구성원들마저 돌아서게 하는 역효과를 낳는다. 나는 추 장관이 주도한 윤 총장 징계와 관련해 이를 철회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추 장관의 입장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만 너무 조급했다. 조선시대 정도전과 조광조의 급진적 개혁 시도의 결과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어야 한다. 내 임기 동안 모든 것을 이루겠다는 생각보다는 초석을 깔고 주춧돌을 쌓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진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검찰이 돌아봐야 할 부분은 없나.
“최근 검사 술접대 수사와 관련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법리적으로는 맞을지도 모르지만 국민 법 감정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2010년 스폰서 검사 특검, 이후 벤츠·그랜저 검사 사건 등 잊을 만하면 검찰의 곪은 상처가 터져 나온다. 검찰은 제 살을 도려내는 철저한 반성과 성찰이 있었는지 스스로 조직문화를 돌아봐야 한다. 검찰 내부 비판자들에 대해 조직의 부적응자, 이단자라고만 비난해서도 안 된다.”
일부에서 지적하는 검찰의 특수수사 관행은 어떻게 생각하나.
“여죄 수사, 별건 수사 등을 통해 먼지털기식으로 하면 안 털릴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검찰이 수사를 통해 맘만 먹으면 모든 것을 다 털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를 준 부분이 있지 않았나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변호사로서 바라보는 검찰 출신 변호사들의 모습은 어떤가.
“검사 옷을 벗었어도 검찰에서의 경험만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고, 여전히 자신이 검사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더라. 자기가 했던 수사는 다 완벽하고, 검찰이 우리 사회의 흐름을 바꾸고 항상 옳았다는 생각도 강하다. 일부는 검찰 엘리트주의, 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모습도 보이더라.”
이찬희 변협회장
1965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다. 2019년 2월 제50대 대한변호사협회장에 취임했다. 연세대 특임교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통일법제 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2010년 스폰서 검사 특검 특별수사관, 경찰개혁위원회 위원을 거쳐 2017년 제94대 서울지방변호사협회장을 역임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냈고, 평소 양심적 병역거부와 난민문제 등 인권과 소수자 문제 같은 우리 사회 민감한 사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 왔다.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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