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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같은 비밀요원 없지만…1억건 인터폴 DB로 범죄 추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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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호 27면

[SUNDAY 인터뷰] 김종양 인터폴 총재

한국인 첫 인터폴 수장인 김종양 총재. 김 총재는 지난 2018년 11월 러시아 출신 후보를 누르고 총재에 당선됐다. 전민규 기자

한국인 첫 인터폴 수장인 김종양 총재. 김 총재는 지난 2018년 11월 러시아 출신 후보를 누르고 총재에 당선됐다. 전민규 기자

지난해 하반기 MBC에서 방영된 ‘나를 사랑한 스파이’는 인터폴 비밀요원들의 활약상과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다. 국제적인 산업스파이를 체포하기 위해 인터폴 산업기밀국 아시아지부 소속 요원들이 여행 출판사 직원 등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비밀 작전을 펼친다. 각종 호신술로 단련해 격투에 능한 요원, IQ160의 천재급 두뇌로 사건을 꿰뚫어 보는 요원도 등장한다.

TV·영화 속 인터폴과 딴판이지만 #1초당 200건 각국 자료 연결해 수사 #회원국 194개국, 유엔보다 더 많아 #전 세계 경찰 24시간 실시간 연결 #가짜 백신·마스크 사기 범죄 공조 #저개발국 치안력 업그레이드 고민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국제경찰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인터폴의 진짜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 나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2018년 11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인터폴 수장에 오른 김종양(60) 총재는 “007처럼 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거악을 척결하기 위해 국경을 넘나들며 임무를 수행하는 국제경찰들이 모여 있는 조직이라는 오해를 할 때가 많다”며 “실제 인터폴은 각국에서 수집된 엄청난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글로벌화한 범죄를 예방하고 대응하기 위한 정보 교환과 분석 그리고 각국 경찰을 연결하는 국제 협력을 목적으로 한 국제기구다”라고 설명했다.

2년 전 한국인으로는 첫 수장에 당선

인터폴의 세계

인터폴의 세계

김 총재는 인터폴 요원들이 정예화된 특수 수사관이라는 식의 일반인의 오해를 없애고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리기 위해 최근 ‘인터폴의 세계’(파람북·사진)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김 총재는 “영화와 TV에서 그려지는 것과 다른 현실 속 인터폴의 실제 모습을 알게 되면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하지만 그는 “‘보다 안전한 세상을 위해서’라는 인터폴의 설립 목적은 영화에서 그려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부속기사 참조) 지난 24일 중앙SUNDAY는 김 총재를 만나 인터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봤다.

인터폴에 대한 오해를 많이 받지 않나.
“인터폴 총재가 됐다고 하니 국경을 넘나들며 국제범죄에 맞서는 특수 요원들을 거느린 조직의 수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변에도 적지 않더라. (웃음)  내가 ‘인터폴의 세계’라는 책을 쓴 이유 중 하나기이기도 하다.”
인터폴이 회원국 수가 가장 많은 국제기구라고 들었다.
“정치·사회·경제·환경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유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회원국 수로만 보면 194개국으로 가장 많다. 또 역사도 100년 가까이 됐다. 세계 많은 나라가 범죄로부터 자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인터폴과의 협력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1964년에 회원국이 됐다.”
한국인으로서는 첫 인터폴 수장이다. 2년 전 선거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
“유럽 부총재로 일하던 러시아 출신 후보, 아프리카 후보 그리고 나까지 3파전이었다. 특히 수사정보 국장 출신이자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러시아 후보와의 경쟁이 치열했다. 러시아 후보의 당선을 예측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3차까지 가는 투표 끝에 당선됐다. 1국가 1표제인 만큼 선거운동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약소국이거나 소외된 국가들을 상대로 집중적으로 지지를 호소한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인터폴은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국제형사경찰기구( International Criminal Police Organization)의 약칭이다. 인터폴은 일반범죄가 아닌, 국제범죄 즉, 범행의 계획과 실행, 경과,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서 2개국 이상의 국가와 관련된 범죄를 다룬다. 또 각 회원국이 서로 다른 형사사법 절차와 수사체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이들 국가 간의 공조와 협력이 필요한 경우 인터폴을 통해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담당한다.”
국제범죄라고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가.
“테러, 사이버, 조직범죄들이다. 구체적으로는 해킹, 밀수·밀매, 화폐위조, 마약, 인신매매 등 국경을 넘나들며 저지르는 범죄들이 대상이다. 인터폴은 이들 범죄의 최신 동향과 정보를 모니터링하고 수집해 회원국들과 공유한다. 인터폴 데이터베이스에는 1억여 건의 자료가 축적돼 있다. 세계 각국의 수사기관은 1초당 200여 건의 자료를 조회해 수사에 활용하고 있다.”
인터폴이 중심이 돼 해결한 주요 사건 사례를 소개해 달라.
“2018년 5월 중남미·카리브 해 지역에서 인신매매 조직에 착취·구금 등을 당하던 350명을 구출하고 범죄 조직원 22명을 체포한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들은 금 광산, 공장, 재래시장, 농장 등지에서 일하다가 자유의 몸이 됐는데 이들 중에는 어린이와 여성도 많았다. 인신매매 조직 소탕 작전은 브라질, 베네수엘라, 자메이카, 벨리즈, 카리브 해 국가 등 총 13개국 경찰 조직의 공조로 이뤄졌다. 인터폴은 이들 국가와 성공적 작전을 위한 범죄 조직의 동향 파악 등 자세한 정보를 공유하고 분석했다. 어느 한두 나라만의 수사로 해결할 수 없는 국제범죄였다.”
인터폴과 한국 경찰과의 공조 사례는?
“한국은 회원국 중 인터폴과 가장 협력과 공조가 잘 되는 국가 중 하나다. 지난해 4월 국내 한 업체가 만든 K팝 스타들의 동향 공유 웹사이트의 채팅앱을 통해 미국인 학생과 독일인 학생이 동영상 채팅을 하던 중 벌어진 사건이다. 당시 미국 학생이 극단적 행위를 하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독일인 학생이 수사 기관에 신고했지만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 해결이 쉽지 않았다. 우선 미국인 학생의 주소 파악을 위해 채팅앱 서버가 있는 한국 경찰의 협조가 필요했다. 공조 요청을 접수한 한국 인터폴 사무국은 서버가 있는 경기도 분당의 관할 경찰서에 연락을 했다. 경찰은 앱 관리 회사 관계자와 접촉해 가입자 주소를 파악한 뒤 인터폴 워싱턴 사무국에 정보를 전달했다. 다행히 미국 학생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자정 즈음에 벌어졌다. 인터폴을 통해 유럽과 미국, 아시아가 실시간으로 움직여 피해를 막은 것이다. 특히 야간인데도 신속히 움직인 한국 경찰의 우수성과 함께 각국 경찰 조직 간의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한·미·독 공조, K팝 채팅앱 극단 선택 막아

코로나19로 인한 펜데믹으로 전 세계가 비상이다. 인터폴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마스크와 백신은 요즘 가장 중요한 물자다. 지난해 전 세계가 마스크 품귀로 어려움을 겪을 때  인터넷에서 마스크를 판매한다고 속여 거액을 뜯어내는 등 마스크 사기 범죄가 잦았다. 이와 관련된 수사 사례와 예방 활동 등 각종 정보를 취합해 회원국들과 공유하고 있다. 또 백신 판매를 가장한 사이버 스미싱 등 범죄도 새롭게 나타났다. 가짜 백신 판매 시도를 막기도 했다. 최근 인터폴은 현지 경찰과 공조해 남아공의 한 창고에서 2400회분의 중국산 위조 백신을 압수하고 관련자를 체포했다. 중국 공안도 인터폴의 지원을 받아 베이징 등에서 위조 백신을 압수하고 제조·유통에 가담한 일당 80여명을 체포했다. 인터폴은 이미 지난해 12월  백신을 대상으로 한 각종 범죄에 대비하기 위해 글로벌 경보를 발령한 바 있다.”
올해 말까지 남은 임기 동안 계획은?
“각 국가의 경찰 역량이 비슷해야 공조도 원활하게 이뤄진다. 아프리카나 중남미 등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국가들의 치안력을 업그레이드 하는 데 있어 인터폴의 지원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모나코 왕실 털어 다른 나라로 도망친 도둑 잡으려, 107년 전 첫 국제형사경찰회의

1914년 유럽의 도시국가 모나코를 통치하던 앨버트 1세 왕세자는 카지노를 찾아온 젊고 예쁜 독일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비밀 통로를 통해 왕세자의 거처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이 여성은 카지노에 온 다른 남자와 짜고 왕실의 귀중품을 훔칠 계획을 세웠다. 어느 날 밤 왕세자가 여성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남자는 비밀 통로를 이용해 귀중품을 훔쳐 이탈리아로 달아났다. 수사에 나선 모나코 경찰은 하지만 이미 다른 나라로 도망친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 왕세자는 다른 나라 경찰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각국의 경찰 관계자들을 초청해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24개국의 경찰관, 법학자, 변호사 등 180명이 참석한 최초의 국제형사경찰회의가 열린 것이다. 인터폴이 탄생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2년마다 국제형사경찰회의를 열기로 했지만 이후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과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실현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1923년 9월 오스트리아 경찰청장을 지낸 요한 쇼버 박사가 전후 위조화폐 등 심각한 국제범죄에 대응하고 오스트리아의 위상 회복을 위해 국제형사경찰회의를 다시 열었다. 유럽 17개국 138명이 참석해 국제형사경찰위원회를 상설 기구로 설치하고 매년 총회 개최를 결의했다. 이때를 인터폴의 공식 출발점으로 본다.

인터폴의 정식 명칭은 국제형사경찰기구(ICPO ; International Criminal Police Organization)다. ‘보다 안전한 세상을’(for a safer world)이란 슬로건 아래 국제범죄, 테러, 재해 등과 관련 국가 간 협력을 위해 구성된 국제기구다. 인터폴 본부는 프랑스 리옹에 있다. 회원국은 194개국으로 유엔(193개국)보다 많다. 총재를 포함해 13명의 집행 위원으로 구성된다. 아시아·유럽·아메리카·아프리카 4개 대륙별로 부총재를 뽑은 후 이 중에서 총재를 선출한다.

2018년 9월 당시 중국 출신 인터폴 총재인 멍 훙웨이가 모국으로 출장을 간 후 연락이 두절됐다. 이후 중국 당국이 멍 총재를 반부패 등 혐의로 체포해 조사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멍 총재가 사임했고, 당시 총재 권한대행을 맡고 있던 김종양 부총재가 11월 선거에 나서 총재직에 당선됐다. 역대 총재는 유럽 국적이 많고, 아시아권에선 필리핀, 일본, 중국, 싱가포르에서 총재를 배출했다. 김 총재는 아시아에서는 5번째, 한국인으로서는 첫 인터폴 수장에 올랐다.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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