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미 상원 여자 화장실에 교통체증이 생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8면

박승희
워싱턴총국장

“오늘은 미국 역사가 새로 쓰여진 날이다. 연방 상원에 있는 여자 화장실이 처음으로 ‘교통 체증’을 일으킨 날이다. 화장실 안에 2개의 공간이 있는데 무려 5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지난주 여성인 바버라 미컬스키(민주·메릴랜드주) 연방상원의원은 이 한마디로 인터넷 공간을 달궜다.

 11월 6일 끝난 미국 대선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이란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대선과 함께 치러진 총선거에선 미국 정치사에 남을 새로운 기록이 쏟아졌다.

 하와이에서 당선된 메이치에 히로노 연방상원의원은 세 개의 기록을 동시에 세웠다. 아시안계 최초의 여성 상원의원, 일본 태생의 첫 상원의원, 그리고 첫 불교신자 상원의원이란 기록이다. 위스콘신주의 태미 볼드윈은 동성애자로서 첫 연방상원의원이 됐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에선 여성 돌풍이 거셌다.

 5명의 여성이 새로 당선돼 전체 100명의 연방상원의원 중 20명을 여성이 차지했다. ‘여자 화장실에 교통 체증이 일어날 만큼’ 역대 최다다. 뉴햄프셔 주에서는 주지사, 연방상원의원 2명, 연방하원의원 2명 등 최고위 선출직 자리를 모두 여성이 차지하는 허리케인급 ‘여풍’이 불었다.

 미국 정치가 대단히 개방적일 것 같지만 유독 여성에게만은 진입장벽이 높다. 흑인에게 투표권을 준 게 1870년인 반면 연방 헌법에 여성의 투표권을 명문화한 건 그보다 50년 뒤인 1920년이다. 연방하원 본회의장 근처에 여성용 화장실이 생긴 것도 불과 지난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조차 2008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성차별적 공격을 숱하게 당했다. 라스베이거스 토론회 때 클린턴은 “(여성이란 이유로 공격해오는)열기를 견디기 위해 석면으로 된 바지정장을 입고 있다”고 조크를 했을 정도다.

 공교롭게도 이런 진입장벽은 여성 정치인들의 용감하고, 집요한 도전으로 하나 둘 허물어지고 있다. 그 결과물이 2012년 11월 선거다. 미국에서 여성 정치의 효용은 점점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클레어 매카스킬 연방상원의원은 재정적자를 놓고 민주·공화 양당이 접점 없이 대치할 때 “남자들은 때때로 싸우기 위해 싸우는 것 같다”며 “여성들은 천성적으로 양육자고 협상자라서 더 많은 여성의 참여가 미국 정치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해 호응을 얻었다.

 미국의 경우 군소 정당을 제외하곤 대선 본선에 아직 여성 후보가 등장한 일이 없다. 이 점만 놓고 보면 한국의 여성 정치계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다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게 있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란 문구다. 야당 후보보다 경륜이 있음을 내세우고 싶은데, 15년 전 ‘준비된 대통령’을 선점당하다 보니 ‘여성’이란 두 글자를 보탰나 보다. 하지만 여성 대통령은 결과여야지, 선택의 목적이 되는 건 영 어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