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세제에 봉급자 멍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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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에 다니는 A과장(37)의 연봉은 1999년 3천6백만원에서 지난해 4천8백만원으로 올랐다.

기본급이 오른데다 상반기 증시 호황으로 성과급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초 근로소득세 정산을 하면서 세금이 9백40만원이나 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연봉은 33% 늘었는데, 세금은 6백20만원에서 3백20만원(51%)이나 많아졌기 때문이다.

연봉 7천만원인 기업 임원 B씨(45)는 99년 1천6백만원의 근로소득세를 냈다. 그런데 판공비 2천5백만원과 기밀비 5백만원이 연봉에 포함돼 지급된 지난해에는 세금이 2천7백만원으로 불어났다. 1년 전과 같은 판공비와 기밀비를 쓰면서 연봉계산 방법이 달라진 이유만으로 세금이 1천1백만원(68.8%) 늘어난 것이다.

두 사례는 소득이 높아진 정도보다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근로소득세 체계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같은 현상은 특히 30대 후반~40대 회사 중간 간부층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현행 제도상 근로소득세는 세금을 매기는 기준(과세표준)이 1천만원 이하면 10%, 1천만~4천만원은 20%, 4천만~8천만원은 30%, 8천만원 초과분은 40%의 세율을 적용한다.

정부는 96년부터 5년째 같은 과표를 적용하고 있다.

그 결과 30대 후반 이후 연령층의 연봉이 기본급 인상과 연봉.성과급제 확산 등으로 늘어나면서 높은 세율을 적용받아 세금 부담이 커진 것이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근로소득세 징수액은 99년 4조9천3백82억원에서 지난해 6조5천1백88억원으로 32% 증가했다. 증가율이 같은 기간 평균 임금상승률(8%)의 네배다.

지난해 연봉 2천4백만원(월 2백만원)이하 봉급생활자 계층이 낸 세금은 99년보다 줄었지만, 2천4백만원 초과 봉급생활자 계층이 낸 세금은 늘었다.

연봉 4천8백만원 초과 봉급생활자 28만8천명은 99년보다 6천8백61억원(35.6%)을 더 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7일 "연봉제와 성과급제가 도입되면서 고액 소득자가 증가했지만 과세표준의 조정이 없었기 때문에 중산층 근로자가 최고 과세표준에 접근하는 문제가 나타났다" 며 "96년 이후 물가상승률과 임금인상률을 감안해 과세표준액을 40% 높여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상렬 기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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