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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트렌드] 이번엔 예술계 거물들 한데 모여 저항의 말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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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호 28면

지금 와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꺼내는 건 뒷북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주 AFP통신 기사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니 그 새로운 진화에 대해 쓰고 싶어졌다. “이제 ‘강남스타일’이 죽은 것 같다고 누군가 말할 때마다 또 한 명의 유명인사가 튀어나와서 살려놓는다…. 놀라운 지구력의 노래다.”

다이하드 ‘강남스타일’

그러면서 AFP는 재선에 성공한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강남스타일’ 말춤을 내년 1월 “취임식 무도회에서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아내 미셸 앞에서 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던 말을 전했다. 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등 ‘강남스타일’에 합류한 세계 여러 정치인을 열거했다. 그런데 AFP는 ‘강남스타일’이 기성정치인의 인기를 위해 이용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권력에 저항하는 메시지가 되기도 하는 현상을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난 목요일(22일) 공개된 애니시 카푸어의 ‘강남스타일’ 패러디 동영상이다(사진). 현대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큰 뉴스다. 카푸어는 가장 중요한 동시대 조각가 중 하나로, 마침 서울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그의 개인전을 하고 있기도 하다.

카푸어의 동영상 ‘자유를 위한 강남(Gangnam for Freedom)’은 반체제 미술가의 아이콘인 중국의 아이웨이웨이를 응원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10월에 아이웨이웨이는 중국 정부의 인터넷 검열을 비판하는 동영상을 만들었다. ‘강남스타일’에 맞춰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고, 작년에 자신이 체포됐던 것을 풍자하기 위해 수갑을 휘둘렀다. 이 동영상 역시 중국의 검열에 걸려 주요 사이트에서 계속 차단됐다

카푸어는 이에 대한 응답으로 그의 런던 스튜디오에서 예술계 동료들과 함께 ‘자유를 위한 강남’(유튜브 주소: http://www.youtube.com/watch?v=tcjFzmWLEdQ)을 찍었다. 그는 아이웨이웨이에 대한 오마주로 수갑을 차고 말춤을 춘다. 손목을 엇갈려 모은 말춤 자세가 수갑 찬 자세로 절묘하게 응용된 것이다. 카푸어 외 참여자 면면도 화려하다. 동영상의 공동 감독은 현대무용계의 손꼽히는 젊은 안무가 아크람 칸. 독무를 추는 ‘섹시 레이디’는 영국 로열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 타마라 로호. 그밖에 문화예술계 주요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이 동영상에는 배경에 흐르는 경쾌한 ‘강남스타일’ 음악과 묘한 대조를 이루는 무거운 장면이 종종 나온다. 특히 예술인들이 고개를 숙인 가운데 카푸어가 ‘억압을 끝내고, 표현을 허하라(End Repression, Allow Expression)’라는 팻말을 든 장면. 그런데 그때 흐르는 가사는 “오, 오, 오빤 강남스타일~”이다. 이건 참,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이다.

애당초 카푸어는 이런 아이러니를 의도했다. “진지한 의도를 담고 바보 같아 보이는 짓을 하는 것”이 자신과 아이웨이웨이 동영상의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강남’과 ‘놀 땐 노는 싸나이~’ 같은 가사의 의미를 아는 한국인에게는, 아무래도 이 가사와 카푸어 동영상의 다소 무거운 분위기의 공존이 특히 어색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강남스타일’이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돼 있는 것이, 처음에 외국에서 인기를 얻는 데는 핸디캡이었는지 몰라도 이제는 ‘강남스타일’의 오랜 생명력의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어를 잘 모르는 세계인이 원작 가사에 구애 받지 않고 다양한 쪽으로 응용할 수 있어서 말이다.

물론 원작 자체가 아무 생각이 없는 노래가 아니기도 하다. ‘강남스타일’ 원작은 신나는 음악, 제목의 ‘강남’이 갖는 세련되면서도 속물적인 이미지, 허세 넘치면서도 왠지 어설픈 느낌의 가사, 의도적으로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뮤직비디오를 모두 결합해서 유쾌한 아이러니와 풍자적 뉘앙스를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강남이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심각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즉 ‘강남스타일’은 반어법적 풍자와 별 생각 없이 신나는 것 사이 그 어디쯤에 애매모호하게 서있다.

이렇게 ‘강남스타일’은 매혹적인 모순의 덩어리다. 촌스러운 뮤직비디오는 사실 그런 분위기와 웃음을 극대화하도록 정교하게 제작된 것이며, 가사는 B급 정서지만 음악은 주류적 팝이고, 메이저 가수와 제작사의 작품이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주류 음악을 편하게 듣는 일반인부터 저항적 예술인들에게까지 두루 어필하며, 정치인의 캠페인부터 반체제 운동에까지 다양하게 활용되는 것이다. 그것이 ‘강남스타일’ “지구력”의 비결이다. 그러니 대체 ‘강남스타일’이 “갈 때까지 가보는” 곳은 어디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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