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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신혼부부' 공무원, 세종시 방없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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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멀리 아파트가 보이는 곳이 6500여 가구가 입주한 세종시 첫마을이다. 하지만 이곳과 달리 다른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야 할 주변은 빈 땅으로 남아 있다. 민간 아파트 공급이 지연되면서다. 이 때문에 3500가구의 입주가 당초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 [세종시=프리랜서 김성태]

주택 전세시장은 특성상 약간의 수요 증가만으로도 쉽게 불안해진다. 매매시장과 달리 철저히 실수요 위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수요가 생기거나 공급이 줄면 어김없이 전셋값이 뛰고 주변 지역으로 바로 상승세가 확산되는 것도 그래서다. 동맥경화가 오기 쉬운 시장이다.

 요즘 세종시가 딱 그렇다. 동맥경화로 신음하고 있다. 그것도 중증이다. 정부부처 이전(수요)과 아파트 입주(공급) 시기의 미스매치(부조합)로 전셋값이 올 들어서만 최고 50% 정도 뛰었다.

연초 1억1000만원 정도 하던 세종시 첫마을 일대 84㎡형(이하 전용면적) 아파트 전셋값이 지금은 1억6000만원 선이다. 최근에는 1억8000만원짜리 물건도 등장했다.

 59㎡형 역시 연초보다 5000만원 정도 올라 1억4000만원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지금은 전세 물건 구하기도 어렵다. 첫마을 다음공인 김선우 사장은 “전셋값이 2억원 이상인 중대형(85㎡ 초과)만 몇 개 남아 있는데 전세 문의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세종시의 동맥경화로 대전·청원군 등 인접 지역도 몸살을 앓고 있다. 전세 수요가 주변 지역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종시가 차로 20여 분 거리인 대전 노은지구 일대 84㎡형 아파트 전셋값은 6월보다 2000만~3000만원 정도 뛰어 지금은 2억원을 호가(부르는 값)한다.

KTX(경부고속철도) 오송역 인근의 오송생명과학단지도 마찬가지다. 오송읍 제일공인 관계자는 “원룸 등 소형 주택은 진작에 동이 났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동맥경화 합병증까지 왔다. 전세 수요가 매매로 돌아서면서 아파트 값이 들썩인다. 첫마을 푸르지오 아파트 84㎡형은 최근 2000만원이 올라 2억8000만원에 매물이 나온다. 더샵레이크파크·웅진스타클래스 등 정부청사 인근의 민간 아파트 분양권 웃돈도 오름세다.

 세종시의 전세난은 사실 예견된 일이다. 새로 입주하는 신도시인 만큼 수요와 공급 예측이 가능했지만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세종시에는 연말까지 기획재정부·국토해양부 등 7개 부처 5500여 명이 이주한다. 정부부처 이주 계획은 갑자기 잡힌 게 아니다. 세종시 개발이 시작된 10여 년 전부터 잡혀 있었다.

 그런데 당장 입주 가능한 주택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첫마을 아파트 6520가구가 전부다. 그나마 이 아파트는 계약자의 절반 정도가 원주민 등 주변 지역 실수요자다.

실제로 입주자의 66%가 대전·공주시 등 충청권에서 이주해 왔다(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조사). 정부부처 이주 공무원이 매매나 전세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집은 불과 2200여 가구밖에 안 되는 것이다.

 주택 공급 계획이 원래 이렇게 적었던 것은 아니다. 계획대로라면 지금 세종시에는 LH 단지와 민간 건설업체 아파트 등 1만여 가구가 입주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집권 초기 세종시 개발 계획을 수정하겠다고 나서면서 민간 아파트 공급이 늦어졌다. 일부 건설업체는 LH로부터 매입한 아파트용지를 반납하기까지 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관계자는 “세종시 개발 수정 논쟁으로 세종시 건설 자체가 불투명했고 부동산 시장마저 침체하면서 민간 건설업체가 사업을 접거나 미루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민간 건설업체는 지난해 9월에야 첫 분양에 나섰다. 세종시에서 아파트용지가 분양된 지 4년여 만이다. 이들 단지는 내년 하반기부터 입주하므로 당장 동맥경화 치료에는 도움이 안 된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민간 아파트 입주 전까지는 이주 공무원의 불편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중·장기 전망은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부처 이전 본격화로 세종시에 대한 개발 기대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달 세종시 땅값은 9월보다 0.34% 오르며 올해 3월부터 8개월 연속 전국 땅값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1년간 세종시 땅값은 무려 5.22%나 상승했다.

 이 덕에 아파트·오피스텔 건설 사업도 활발하다. 올해에만 20여 개 단지가 분양에 나서 2014년 말까지 1만7000여 가구가 새로 입주한다. 조치원·오송 등지의 신규 공급 물량을 더하면 세종시 일대 입주 물량은 2만 가구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2014년까지 추가로 이주하는 공무원은 6300명 정도다. 한밭대 도시공학과 임윤택 교수는 “이 고비를 넘기면 한숨 돌릴 수 있겠지만 세종시가 자리를 잡아가면 예상 못한 이주 수요가 증가할 수 있으므로 지금부터라도 주택시장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황정일 기자

[J Report] 집 구하기 힘들어 생긴 풍속

동료 집 방 한칸 빌린 ‘하숙족’
4시간 걸려 서울 왕복 ‘포기족’
빈 방 찾아주기 캠페인까지

세종시에선 공무원들의 ‘집 구하기’ 행태도 다양하다. 전셋집을 못 구해 다급해진 이들의 작전 1순위는 ‘더부살이’. 국토해양부와 행복도시건설청의 국장 2명은 얼마 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청사 가까운 한솔동의 ‘첫마을’에 집을 구하려 했으나 물량이 많지 않아 매번 실패했다.

‘007 첩보원’처럼 탐문을 거듭하던 이들은 결국 부처 내 동료 국장이 첫마을 아파트를 분양받은 걸 알고 이를 ‘공략’했다. 결국 약 60㎡(25평형)짜리 집의 방 3개를 나눠 쓰기로 합의했다. 국토부 국장은 “나이 들어 하숙생 같은 생활이 힘들겠지만 막판에라도 방을 구했으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들처럼 ‘방 쪼개기’가 유행처럼 번지자 세종시는 아예 15일부터 ‘빈방 안내 운동’이란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아파트·원룸·일반주택에 남는 방을 공무원들에게 알선하는 것이다. 김택복 자치행정과 사무관은 “세종시 11개 읍·면·동에 남는 방이 2000여 개로 파악됐다”며 “이곳에 월세 등으로 입주를 희망하는 공무원을 주인과 연결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초치기’도 다반사다. 경제 부처의 A사무관은 세종시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그러나 입주가 2014년 10월이었다. 별수 없이 2년간 전세를 얻기로 하고 한달 반 전 1억7000만원에(142㎡) 계약했다.

그는 “원래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1차로 찍어 놓고 다른 집을 보러 갔는데 ‘벌써 다른 이가 계약했다’고 중개업소에서 연락이 오더라”며 “이러단 집을 못 구하겠다 싶어 지금 집을 얼른 계약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분초를 다퉈 계약을 해야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다.

 세종시 삼성부동산 관계자는 “전셋값이 뛰고 물건 구하기도 어려워지자 ‘눈치족·포기족’도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당장 집 구하기를 포기하고 일단 서울서 출퇴근하다가 가격 동향과 추가 공급물량 등을 봐가며 나중에 집을 구하겠다는 이들이다.

신혼의 맞벌이 부부인 기획재정부 K 서기관이 그렇다. 홀로 내려가 살기로 결정한 그는 “집도 동났다는데 지금 구하러 다녀봤자 스트레스만 받는다”며 “닥치면 어떻게든 수가 생기지 않겠느냐”고 푸념했다.

연말까지 세종시로 옮기는 공무원(5400여 명) 중 서울·수도권에서 출퇴근을 각오한 인원은 1500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왕복 4시간 이상의 ‘파김치 출퇴근’에 지칠 가능성이 크고, 이럴 경우 전셋집 마련에 나서는 공무원도 증가할 전망이다. 집 구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아파트를 찾지 못한 이들은 가재도구가 갖춰진 ‘풀옵션 원룸’으로 눈길을 돌린다. 방 하나에 화장실 딸린 26~30㎡짜리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이다. 그러나 이마저 찾기가 쉽지 않다. 자녀 교육 문제 등으로 가족을 남겨 두고 ‘나홀로’ 세종시행을 택하는 공무원들이 원룸을 많이 찾기 때문이다. 2014년까지 입주 공무원은 올해의 두 배가 넘는 1만2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세종시 ‘집 전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김준술.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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