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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외의존 경제는 식민지배 산물"

중앙일보

입력

1910년부터 36년 동안 이 땅 위에서 펼쳐졌던 일본의 식민지 통치는 사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그 기간에도 경제는 그대로 돌아 갔고, 벼는 심어졌다 수확되고, 학교에서는 교육이 행해졌다.

식민 지배자의 질곡과 왜곡이 가해졌지만 그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역사 속의 '현실' 이었다. 현실의 복잡다기한 여러 층면(層面) 들을 세세하게 들여다 보지 않고서는 그 시기의 암울했던 조건들이 남겨 놓은 현재 우리의 여러 상처들을 제대로 조명할 수 없다.

『식민지의 경제 변동-한국과 인도』는 이러한 취지에서 식민지 시기 한반도의 상황, 그 가운데서도 경제적 변화의 과정들을 집중 조명한 책이다.

특히 한반도의 식민지 상황을 영국의 점령 아래 놓였던 인도의 그 것과 비교하면서 우리의 식민시기 공업화와 민족자본의 형성.동태, 정치적 구조 등이 다른 지역의 식민지와 어떻게 달랐는지를 설명한다.

이같은 시도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우리의 근대화를 앞당긴 것이라거나, 아니면 수탈적 구조가 장기간 지속된 데 불과하다는 식의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 과 '수탈론' 에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라는 점에서 우선 평가할 만하다.

저자는 '효용.이윤의 극대화' 라는 관점에서 식민지를 관찰한다.

식민지를 경영하는 지배 국가나 이들의 통치를 받는 식민지민들 모두 경제적인 효용과 이윤의 극대화를 향해 움직인다는 것.

한반도의 상황을 예로 볼 때, 일본 정부와 의회의 감시를 받았던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경영의 수입과 지출에 대해 항상 부담을 안았으며 결국 30년대 이후 한국에서 최대한의 잉여를 끌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설명이다.

친일(親日) 의 빈번한 행각으로 비판대에 오르내리는 한국의 당시 기업가들도 30년대 이후 식민정부에 대한 복종을 통해 이윤 극대화를 노린 점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정책적인 측면에서 볼 때 영국은 인도에서 식민지민의 동화를 추진하지 않았던 데 비해 일본은 동화주의를 시행했으며 이는 총독정치라는 정치체제로 나타났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러한 차이는 결국 한국의 경제가 일본 경제에 완전히 종속하고, 나아가 한국이 독립된 경제 지역이 아니라 일본 경제권 내의 한 지역으로 취급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식민 시기 일본에 대한 수출에 상당히 의존했던 한국과 대만은 독립 이후에도 대외의존형 경제의 틀을 지속했으나 일정한 자치권과 함께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립을 누릴 수 있었던 인도 경제는 영국으로부터 해방된 이후에도 자립형 경제를 꾸려 갈 수 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해방 이후의 정국, 한 걸음 더 진전해 60년대식 경제 건설과 독재정치의 전개도 식민지의 경험을 무시하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외무역의존형 경제 시스템이 우선 그렇고, 식민시기 일본의 정치참여 제한이 불러들인 국내 정치세력 부재는 해방 이후 독재형 정치의 온상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비교적인 관점에서 얻어지는 선명한 시각, 그동안 일본과 서방 사회에서 쌓여진 식민사회 연구의 정밀한 통계 수치들을 적절히 인용한 점 등이 저자의 설득력을 높인다.

책은 식민지와 제국주의의 상호 작용, 덧붙여 '효용.이윤의 극대화' 라는 관점에서 식민 시기 한국의 정치.경제적 성장과 그 것이 더 이상 진전할 수 없었던 여러 제약 조건 등을 다루고 있다.

식민지 경험을 논할 때 항상 따라 붙었던 '근대화론' 과 '수탈론' 의 좁은 울타리를 상당히 벗어났다는 느낌이다.

단지 비교대상이 한반도와는 부피가 달랐던 인도에만 맞춰지고 있다는 점, 아울러 지배의 영속화를 노린 일본의 전략 등 좀 더 커다란 시각을 결여하고 있는 점 등은 책의 공감대를 좁힐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준다.

*** 식민지 경험 다른 각도서 접근

일본 식민지 시기를 논의할 때 우리는 버릇처럼 '친일파' 부터 떠올린다. 그만큼 그 시기는 일제로부터의 압박이 극심했고 그에 따른 한반도 일부 식민지인들의 행태가 민족적인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비정상적으로 전개됐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도 일본이 한반도를 집요하게 착취했다는 전통적인 '수탈론' 과 함께 저들이 식민지를 운영하면서 일으킨 산업적 발전이 결국 한국의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는 '근대화론' 이 한 데 엉켜 치열한 논전을 벌여 왔다.

이제는 식민지 경험에 관해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야 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의 정치.사회적 구조는 비록 식민지라는 파행성을 띠고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의 전개 과정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를 '수탈과 개발' 아니면 '반일과 친일' 이라는 단선적 시각에서만 본다면 결국 우리는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부적절한 부담만 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식민지의 경제 변동 - 한국과 인도』는 그런 점에서 매우 반가운 저작이다. 비록 한반도와의 비교대상이 영국이 통치한 인도에 국한되고 있다는 단점을 안고는 있지만 우리의 식민지 경험을 이야기하는 '방법' 을 달리했다는 점에서 새롭고 기대되는 책이다.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시대적 환경이 정상적이었다 하더라도 그 갈래는 아주 복잡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그 시대적 배경이 이(異) 민족에 의한 지배와 착취가 횡행한 식민지적 상황이었다면 얘기는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쨌든 그 시대를 지금과는 무연(無緣) 하다는 식의 공백으로 남겨둘 수는 없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식민지적 삶의 구조와 의식이라는 측면에 대해 지식의 경계를 더욱 확장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친일과 반일' 이라는 문제도 당시 식민지인이 경험했던 구조와 체제, 사회적 흐름 등을 되짚어본 뒤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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