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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 18기 정치국위원 열전 ①] 대내총관 리잔수(栗戰書)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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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중국에는 ‘당과 국가의 영도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25명이 있다. 중앙정치국 위원에게 붙는 존칭이다. 이들의 동정은 당 중앙 기관지 인민일보를 통해 보도된다. 보통 부총리급 이상의 대우를 받는다. 공산당의 헌법 격인 당장에 따르면 이들은 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폐회된 기간 동안 그 직권을 대체하는 정치국회의의 성원이 된다. 정치국회의는 평균 한 달에 한 번 꼴로 열린다. 17기의 경우 47차례 열렸다. 정치국 위원은 서열이 없다. 가나다순 격인 성의 획순을 따른다. 마오쩌둥의 1인 독재의 재현을 막기 위해 당주석제를 폐지하면서 정치국도 서열을 없앴다. 위키리크스에 드러난 주중미국대사관의 비밀 케이블에 따르면 미국의 한 외교관은 ‘25인의 정치국은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조직’이라고 평가했다. 말 그대로 정치국 회의는 계급장을 떼고 격론이 벌어지는 공간이란 의미다. 지난 15일 18기1중전회에서 25명의 정치국 위원이 뽑혔다. 이들은 짧게는 5년 길게는 지금부터 20년간 중국을 지배할 사람들이다. 과연 어떤 이들이 13억 중국호의 조타수에 올랐는지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 총 25명의 18기 중앙정치국 위원 해부 시리즈를 시작한다. 당 중앙위원회의 살림을 도맡을 리잔수 당중앙판공청 주임부터 해부했다.

‘중국 공산주의 지배자들의 비밀스러운 세계’라는 부제가 붙은 ‘The Party’라는 책의 첫 장의 제목은 ‘붉은 기계(the Red Machine)’이다. 중국을 움직이는 중국공산당의 핵심 권력자 300명의 책상에는 다이얼 없이 수신만 가능한 붉은 전화기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남방주말’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장관급 인사의 숫자는 400명이 채 못된다. 그렇다면 300명이라면 중국에서는 장관급 이상의 요인들이라는 말이다. 지난 7월16일 이들 당·정·군 요인 300명 앞으로 당 중앙의 서명이 쓰인 문건 한 통이 배달됐다. 최근 2년간 이런 문건이 날아온 적이 딱 한 차례 있었다. 지난해 초 철도부장이자 17기 중앙위원인 류즈쥔(劉志軍)이 면직당한 채 수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 이런 형식으로 전달됐다. 이번에 온 문서의 내용은 단 한 줄이었다. “리잔수(栗戰書) 중공중앙판공청 상무부주임 임명”

이틀 뒤인 18일 구이저우성 간부대회가 갑자기 소집됐다. 중앙조직부에서 파견된 간부가 선포했다. “자오커즈(趙克志) 성장을 당서기에 임명하고 리잔수를 서기직에서 면직한다. 별도의 임용이 있을 것이다”라고만 말했다.

23일에는 리잔수가 중국중앙방송(CC-TV)의 뉴스 화면에 등장했다. 7월23일 열린 전국 장관급 주요 영도간부 전문세미나의 보도화면이었다. 화면에 잡힌 리잔수는 맨 앞줄에 중앙기율위부서기와 중앙조직부 부부장 사이에 앉아 있었다. 1주일 사이에 리잔수는 급부상했다.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돌연 사라졌던 지난 9월6일 중국 관영통신사 신화망은 후진타오 주석의 블라디보스토크 APEC 참가 소식을 보도한다. 후진타오를 수행하는 인사 명단이 기사 말미에 실렸다. “중공중앙서기처서기 겸 중앙정책연구실주임 왕후닝, 국무위원 다이빙궈, 중공중앙판공청주임 리잔수, 외교부장 양제츠, 국가발전개혁위원회주임 장핑, 상무부장 천더밍, 후진타오주석 판공실주임 천스쥐, 외교부장조리 마자오쉬, 상무부장조리 위젠화 등.” “링지화, 왕후닝, 다이빙궈” 순서로 이어지던 기존의 후진타오 수행자 명단과 달랐다. 1일자 인사로 통전부장으로 옮겨간 링지화가 수행자 명단에서 사라지고 신임 중앙판공청 주임 리잔수가 처음 등장했다. 단 서열은 다이빙궈 뒤로 밀렸다.

리잔수가 ‘일인자(一把手)’ 역을 맡은 중공중앙판공청의 정식 명칭은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판공청이다. ‘중국공산당조직공작사전’의 유권 해석에 따르면 중앙판공청은 “당중앙, 중앙직속기관의 각 부문, 지방의 각급 당조직을 위해 서비스하는 사무기관으로 당중앙의 직접 영도 하에 업무를 수행한다. 공산당 창당 초기에 설치됐으며 당시에는 중앙비서청으로 불렸다. 주요 직무는 당중앙의 문건 작성관리업무, 회의업무, 중앙중요 공작부서의 업무 검사, 중앙의 지시와 중앙영도자 지시의 전달과 촉구를 책임진다. 전국 당정 계통의 비밀 통신과 비밀 관리를 책임지고, 중앙의 문건과 중요한 통신을 전달하는 업무, 당과 국가 주요 영도인의 중요 활동장소의 경호와 의료보건을 책임진다. 중앙 주요 기관의 정보수집, 동태반영, 종합연구, 문건의 기초·수정·교정업무를 수행한다. 중앙이 제정한 당내 법규와 입법 서비스, 중앙 사료 자료 수집 정리 보관 연구, 당 중앙 직속 각 부분의 복지와 연락 업무 등 제반 업무를 수행한다”고 정의돼 있다. 중앙판공청은 비서기관으로 당 1인자를 위한 서비스 기구다.
중앙판공청은 또한 문무(文武) 대권을 총괄하는 기구다. 한국의 청와대 경호실 격인 8341부대를 지휘한다. 당중앙 문건을 기초하고, 당내 법규를 제정하고, 국가 입법을 지도하는 권한을 가졌다. 프랑스어로 중앙판공청을 번역하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영도처’다. 총서기 명의로 전 당원에게 명령을 하달하는 영도 기구라는 의미다. 중국의 중추신경으로 그 수장은 중국의 ‘대내 업무 총관리자(對內總管·대내총관)’로 불린다. 황제 신변의 제1총신이자, 현대판 태감(太監·환관의 우두머리)인 셈이다.

역대 중앙판공청주임은 린비스(任弼時), 양상쿤(楊尙昆), 왕둥싱(汪東興), 야오이린(姚依林), 후치리(胡啓立), 차오스(喬石), 왕자오궈(王兆國), 원자바오(溫家寶), 쩡칭훙(曾慶紅), 왕강(王剛), 링지화(令計劃)가 역임했다. 리잔수는 12대 중앙판공청 주임이다. 중앙판공청 주임 중, 원자바오, 쩡칭훙, 왕강, 링지화는 부주임을 짧게는 1년 반에서 길게는 8년간 근무한 뒤에 비로소 주임으로 승진했다. 리잔수는 이 부분 기록을 갈아치웠다. 부주임 부임 1개월 반 만에 주임으로 승진한 것이다.

리잔수는 1950년생으로 62세다. 중앙판공청 주임 취임 나이로 가장 많다. 선임자들은 대개 40대에 취임했다. 기존에 가장 나이가 많았던 야오이린도 61세에 취임했다.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공산당 내부의 간부 세대교체 시스템이 완비됐다는 의미다. 더 이상 젊은 피에 구애 받을 필요가 없다. 둘째, 나이를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능력 있는 간부들이 너무 빨리 ‘퇴출’당했다는 인식 때문이다. 리잔수 인사를 대륙에서는 ‘노성모국(老成謀國)’이라고 보도한다. 연륜을 높이 샀다는 뜻이다.

리잔수는 공산당이 베이징을 점령하기 직전에 교두보로 삼은 혁명의 성지 시바이보(西柏坡)가 소재한 허베이성 핑산(平山)현 출신이다. 넷째 할아버지는 1927년 공산당에 입당한 핑산현 제1호 공산당원이다. 그는 건국 후 산둥성 부성장을 역임했으나 문혁 때 박해를 받아 사망했다. 셋째 할아버지는 항일 팔로군에 참가했고, 친할아버지도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다. 부친도 당원이었다. 전형적인 홍색가정 출신이다. 태자당 시진핑과 같은 가정환경을 가졌다.

리잔수의 공직생활은 허베이성 스자좡(石家莊)에서 시작됐다. 1983년 늦깎이로 허베이사범대를 졸업한 리잔수는 당시 간부 연경화 분위기에 힘입어 우지(無極)현 서기로 승진했다. 86년부터 4년간 허베이성 공청단 서기로 근무했다. 시진핑이 당시 인근의 정딩(正定)현 서기였다.

리잔수는 태자당 겸 공청단파인 하이브리드다. 1986년 허베이성 공청단 서기를 역임했다. 그의 후원자는 쩡칭훙이다. 리잔수의 삼촌인 리장장(栗江江)이 쩡칭훙의 누이동생 쩡하이성(曾海生)과 위잉(育英)소학교 동창이다. 허베이 토박이인 리잔수는 1998년 산시성 상무위원으로 산시성농촌공작영도소조 부조장으로 영전했다. 쩡칭훙의 도움이 컸다. 2년 후 성 조직부장을 거쳐 2002년 시안시 서기에 취임했다. 2003년 말 이번에는 동북의 끝 헤이룽장 부서기로 옮겨갔다. 2007년 성장으로 승진한 뒤 2010년에는 서남부 구이저우(貴州)성 서기로 자리를 옮겼다. 2011년 5월 시진핑이 구이저우성 시찰을 나왔다. 리잔수는 4박5일 시진핑 시찰 전기간동안 모든 일정을 밀착 수행했다. 이 때 모종의 교감을 나눈 것으로 알려진다.

홍색가정 출신으로 당·정·단에서 두루 경력을 쌓았고, 화북·동북·서남지역까지 지방 근무경력을 폭넓게 쌓았다. 허베이, 서북의 산시, 동북의 헤이룽장까지 3대 북부 요지에서 업무 경력을 쌓았다고 해서 ‘삼북(三北)간부’라는 별명도 얻었다.
리잔수는 특별한 파벌 색채가 옅다. 어떤 파벌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인사다.

리잔수는 시인이기도 하다. “대장부 말고삐를 잡고 집 떠나 만리요, 지사가 시를 읊으니 눈물이 천 길이네. 하룻밤 가을 바람이 소나무와 강물 위 달을 스치고, 두 세 개 등불에 고향을 생각하네(兒男縱馬家萬里, 志士吟詩淚千行, 一夜秋風松江月, 兩三燈火是故鄕)” 그가 2004년 중추절에 지은 ‘강변에서 고향을 생각하네(江畔思鄕)’라는 제목의 시다.

리잔수의 취미는 무협드라마와 전통 경극 관람이다. 외동딸 리잔신(栗潛心)은 홍콩의 한 투자은행 간부로 근무 중이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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