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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 동의 없이도 국가 파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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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국제통화기금(IMF)은 외채를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디폴트) 위험에 빠진 나라들에 적용할 '국가파산제도' 초안을 7일 공개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국가파산제도란 기업의 법정관리(파산보호)제도처럼 외채상환이 어려운 국가가 국제기구에 파산을 신청하면 일시적으로 채무상환을 유예해주고, 이 기간 중 국제기구의 중재 하에 해당국과 채권단이 채무조정 교섭을 벌이는 제도다.

IMF는 이 제도가 과다한 외채로 인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개발도상국들의 금융위기를 주변국가와 전세계로 확산시키는 사태를 막아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1년 아르헨티나 금융위기의 경우 해당국가 뿐만 아니라 전세계 금융시스템을 불안에 빠뜨린 바 있다.

'국가채무조정제도'로 명명된 이 제도가 시행되면 외채를 상환할 수 없는 국가는 IMF와는 별도의 독립기구인 '국가채무분쟁조정포럼'에 통보만 하면 채권단 동의 없이도 파산절차를 밟을 수 있게 된다.

파산절차에 들어간 국가는 채권단에 모든 부채 관련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국가채무분쟁조정포럼은 이후 30일간 해당국이 제공한 정보의 신빙성을 검증하고 채권단과의 분쟁을 조정하게 된다.

이 절차가 끝나면 해당국가는 미상환 부채 총액의 75% 이상을 갖고 있는 채권단과 채무조정협약을 체결해야 한다. 이 협약은 나머지 채권기관들에 대해서도 구속력을 갖는다.

당초 IMF는 국가파산절차가 시작된 후 90일간은 대출금 회수를 목적으로 한 개별 채권기관의 독자적인 제소를 금지하는 조항을 포함시키려 했으나 채권기관의 반발로 이를 뺐다.

2001년 11월 국가파산제도 도입을 처음 제의한 앤 크루거 IMF 수석 부총재는 "국가채무조정제도 초안은 올 하반기에 IMF 정책을 관장하는 재무장관위원회에 제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재무장관위원회는 3개월 전 IMF에 구체적인 국가파산제도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청했었다.

그러나 국가파산제도가 IMF 초안대로 확정될지는 불투명하다. 국가파산제도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IMF 회원국 85%의 찬성이 필요한데 18%의 지분을 가진 미국이 국가파산제도보다는 채무재조정 방안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채권단이 국제기구의 중재 없이 디폴트 위기에 빠진 국가와 직접 채무재조정 계약을 하는 방식이 국가파산제도보다 시장친화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간 채권기관들도 미국측의 접근방법을 선호하고 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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