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론] 대통령-국회 동반자로 가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7면

새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이를 준비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의 일거수 일투족이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수위는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변화를 여망하는 국민의 뜻을 담아내기 위해 여러 가지로 고심하고 있는 듯하다.

그 한 예로 인수위에서는 대통령 취임식을 광화문이나 시청 앞으로 옮겨 행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했으나, 결국 과거와 같이 국회 앞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잠정 결정했다고 한다.

광화문이나 시청으로 옮겨보려고 한 것은 아마도 지난해 월드컵에서 느꼈던 축제와 감동의 분위기를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에 맞춰 되살려 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인수위가 취임식을 국민축제로 치르겠다는 애당초의 의도를 접고 다시 국회 앞에서 개최하기로 한 사실은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대통령제 아래서 대통령과 국회는 모두 국민으로부터 직접 권한을 위임받는 이중적 정통성(dual legitimacy)을 갖는다. 다시 말해 제도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갖지만 부여된 권한은 각기 다른 기구들인 셈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실상은 이와 같지 않았다. 민주화 이전 국회는 사실상 대통령의 하급 기구에 불과한 것이었고, 민주화 이후에도 국회를 바라보는 대통령의 시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 취임식장 옮기겠다는 발상

대통령은 국회를 국정의 동반자로 바라보기보다는 자신을 지원하는 보조적인 존재로, 혹은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려고 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당의 총재를 겸해 온 과거의 대통령들은 국회 내에서 벌어지는 정당 간 갈등에 직접 개입해 왔고, 따라서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기구이기보다 종종 대통령과 의회 간의 제도적 갈등의 장이 돼 왔다.

특히 야당이 국회 내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여소야대의 상황에서는 대통령과 국회가 정면충돌하는 양상까지 보였고 이로 인해 교착상태가 장기화되기도 했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과 야당 총재가 함께 져야 할 것이지만 국회를 경시해온 과거 대통령들에게 보다 큰 책임을 물어야 할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은 국회의 협조를 구하기보다는 국회를 우회해 직접 국민을 상대로 정치하려는 유혹에 빠지곤 했다.

김영삼(金泳三).김대중(金大中)정부 아래서 보았듯이 사안에 대한 자세한 검토나 장기적인 계획 없이 깜짝쇼나 여론몰이의 형태로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스트적인 정책이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새 대통령의 출범을 준비하는 요즈음이야말로 국회와의 동반자적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노력이 매우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된다.

과거의 경험에서 본다면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취임 초에 신임 대통령은 자만과 과신에 빠지기 쉽고 그만큼 국회를 경시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노무현(盧武鉉)대통령당선자는 국정 운영에 인터넷을 통한 국민의 직접 참여를 중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국회와의 건전한 관계를 설정하는 일은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대의민주주의의 결점을 보완하는 보조적 장치로 인터넷을 통한 직접민주주의 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이것이 제도화된 대의기관인 국회를 우회해 대통령의 결정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돼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 원수들이 국회에서 연설한 적은 있지만 정작 우리 대통령들은 취임식 때를 제외하면 국회에 가지 않았다.

*** 국회연설 기회 많았으면

과거 대통령들이 국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인수위에서 취임식장을 국회 앞에서 광화문이나 시청 앞으로 옮기겠다고 했던 발상은 처음부터 그리 적절한 것이 아니었다.

새 시대를 실감하게 하는 정치적 변화는 취임식장을 옮긴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국회를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인식하는 대통령의 변화된 태도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아래서는 단순히 취임식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국회를 직접 방문해 주요 국정 현안에 대해 연설하는 모습까지도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