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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꿈 키우던 신촌 그곳 쉰두살 홍익문고 사라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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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52년간 신촌을 지켜온 홍익문고. [사진 홍익문고]

그곳에는 추억의 책장들이 가득하다. 반백 년 넘게 그곳에서 대학생들의 꿈과 사랑이 익어갔다. 연세대·서강대·이화여대·홍익대 등 서울 신촌의 대학생들에게 그곳은 약속 장소로도 유명했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18-36번지. 홍익문고 얘기다.

 1960년부터 52년간 신촌 대학가의 명물로 자리 잡았던 홍익문고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18일 서대문구청에 따르면 구청은 홍익문고를 포함한 일대 4597㎡ 부지에 대형 상업·관광·숙박 시설을 건립하는 신촌 도시환경정비구역 지정 계획안에 대한 공람을 진행 중이다. 이 계획안이 구의회 의견 청취와 관계부서 협의를 거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면 현재 홍익문고 자리에는 최대 높이 100m, 최대 용적률 1000% 이하의 대형 상업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신촌 지역 주민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홍익문고를 지켜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촌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여인승(37) 사장은 10년 전 지금의 부인을 홍익문고에서 처음 만났다. 여씨는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 홍익문고는 유명한 데이트 장소이자 약속 장소였다”며 “서점이 사라진다니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홍익문고에서 23년째 근무 중인 이성호(46) 과장도 “서점 곳곳에 스며 있는 수많은 청춘의 추억과 내 흔적이 한꺼번에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홍익문고 측은 지난 11일부터 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을 상대로 서명을 받고 있다. “서점을 계속 운영하게 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엔 현재까지 2500여 명이 서명했다. 문고 측은 4000명 이상이 서명하면 탄원서를 서대문구청 등에 제출할 계획이다. 홍익문고 박세진(44) 대표는 “재개발 이후에도 서점을 계속 운영하려면 30억원에 이르는 건축비와 인건비 등을 부담해야 하는데 그만한 여력이 없다”며 “재건축 계획안이 확정되면 서점 운영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홍익문고는 2010년 매출이 6~7% 줄어든 데 이어 올해 매출은 지난해 대비 20% 감소했다. 그럼에도 박 대표는 서점 운영을 고집하고 있다. “신촌에 서점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꼭 설립 100주년을 맞이해달라”는 창업주이자 선친인 박인철 대표의 유훈을 지키기 위해서다. 박 대표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LG전자·LG그룹 회장실 등에서 근무하다 선친이 작고하기 2년 전인 2007년 회사를 그만두고 서점 일을 도맡았다.

 그간 땅과 건물 소유주인 그에게 60억~80억원에 건물을 임대하라는 제안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박 대표는 서점 경영에만 매진했다. 그는 “돈을 벌려면 건물을 병원이나 카페에 임대를 주는 게 훨씬 낫지만 매일 찾아오는 1500여 명의 고객과 서점의 역사를 그냥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도시 미관을 위해서라면 서점 건물을 리모델링할 생각도 있다”며 “서울시가 역사와 추억이 깃들어 있는 홍익문고가 계속 운영될 수 있도록 합당한 조치를 취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시환경정비구역안은 구청이 입안하기 때문에 이견을 받아들일지는 해당 구청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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