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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 대표 임명 싸고 박원순·정명훈 ‘핑퐁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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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박원순(左), 정명훈(右)

서울시 산하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최근 내년도 해외 공연계획을 포기했다. 서울시향은 2010년 유럽 순회 공연에서 호평을 받은 이후 올해까지 3년째 해외 공연을 이어왔다. 하지만 내년에는 지방투어로 대신하기로 했다. 대표이사가 공석이어서 기업 후원 유치와 해외 공연장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시향은 내년 ‘우리동네 음악회’ 일정도 못 잡고 있다. 매년 서울시내를 돌며 수준 높은 음악을 들려주던 행사로 당장 내년 1월에 어디에서 공연을 할지 아직 알 수 없는 상태다. 역시 대표이사가 없어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탓이다.

 9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대표이사 공석사태로 인해 서울시향의 운영이 큰 차질을 빚고 있다. 18일 서울시와 문화예술계에 따르면 서울시향의 대표이사를 여태껏 임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 간 마찰 때문이다. 박 시장이 제안한 인물은 정 감독이 거부하고, 정 감독이 추천한 인물은 박 시장이 난색을 표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시민에게 수준 높은 음악을 선보이고 서울시를 대내외에 알려야 할 서울시향의 역할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 시장과 정 감독은 김주호 전 서울시향 대표이사의 임기 만료(올 2월)를 앞둔 올 초 후임자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의견이 엇갈렸다고 한다. 박 시장은 공연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면서도 참신한 인물을 원했다. 그래서 강은경(42·여)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을 후보로 제시했다. 강 전문위원은 예원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뒤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공연기획사 빈체로 기획팀장과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공연기획팀장을 지냈다.

 하지만 정 감독은 “대표이사는 전문 경영인 출신이 돼야 한다”고 맞섰다. 서울시향 대표이사는 기업 후원 유치를 총괄하고 안살림을 책임져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정 감독은 오남수 전 금호아시아나 사장을 추천했다. 오 전 사장은 금호아시아나 그룹 전략경영본부 사장을 역임하며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를 주도한 전략통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는 서울시가 반대하고 나섰다. 서울시는 강 전문위원과 비슷한 경력을 가진 2∼3명의 인물을 찾아 정 감독에게 의견을 물었지만 정 감독은 반대 입장만 거듭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양측 간 입장 차이가 너무 뚜렷하고 정 감독이 외국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이견 조율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시향 대표는 직제상 예술감독의 상위직이다. 2005년 초대 대표이사가 이팔성 현 우리금융회장이다. 7명으로 구성된 임원추천위원회가 심사를 통해 후보를 추천하면 시장이 임명한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라는 조직 특성과 정 감독의 음악계 내 위상 때문에 대표이사 선임과정에서 정 감독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현재 서울시향의 주요 행정업무에 대한 결재는 한문철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장이 대신하고 있다. 시향 업무를 감독해야 할 시공무원이 시향을 직접 운영하고 있는 기형적인 구조인 셈이다.

 대표이사 임명이 계속 늦어지자 서울시의회는 지난 9월 열릴 예정이던 서울시향에 대한 행정사무 감사를 거부한 바 있다. 김용석 서울시의원은 “이른 시일 내에 서울시향 대표를 선임해 시민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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