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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삶...민중적 서정...내면의 울음

중앙일보

입력

"구걸하면서, 굶으면서 그려온 그림들이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생채기 난 꿈을 실현시키려는 욕망에서다. 고독에 오한을 느끼며 아픔에 신음하는 내면의 언어를 추려내어 가혹하고 엄격한 훈련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어떤 것에서 헤어나기 위해 고함지르는 나의 모습인 것이다. "

불구의 몸으로 극한의 가난을 견디면서 6백여점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서양화가 손상기(1949-88) . 그는 어깨를 덮는 장발, 창백한 안색에 붉게 충혈된 눈, 1m40㎝를 겨우 넘는 키, 척추만곡증(곱추) 으로 튀어나온 등과 가슴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괴롭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자서전 같은 풍경화, 내면의 상처를 무겁게 가라앉힌 정물화, 생명과 성에 대한 갈망이 살아있는 누드화가 그를 미술사속에서 살아있게 한다. 그는 그림의 제목과 내용을 미리 결정한 뒤에 단숨에 그려냈다.

그렇게 그려낸 작품들은 그의 내밀한 세계에서 빚어낸 이야기를 들려주며, 관람객들에게 독특한 서정성을 느끼게 했다.

39세로 사망한 그를 추모하는 대규모 유작전 '요절한 문제작가 - 그 천재성의 확인' 이 30일 부터 9월9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열린다. 각각 1백점의 유화와 스케치외에도 화집과 전기, 비디오.유작시.일기.포스터.유품 등을 통해 자칫 기억 저편으로 물러나려는 작가의 모습을 조망했다.

전시의 중심이 되는 유화는 정물화 '시들지 않는 꽃' 연작 20점과 풍경화 '공작도시' 연작 50점, 누드화 '사람내음' 연작 30점 등 대표적인 작품들을 모았다.

98년 서울 샘터화랑의 10주기 추모전 이후 3년만의 행사지만 당시 공개된 유화는 40여점에 불과해 이번이 사후 최대 규모다. 손상기 기념사업회(회장 이규일 월간 ART 대표) 주최로 유족, 샘터화랑, 개인 소장가 들의 작품 중 대표작을 엄선했다.

전남 여수의 한 섬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손씨는 3세때 구루병을 앓아 그의 작품이자 한 평전의 제목처럼 '자라지 않는 나무' 가 되었다.

여수상고에 미술특기 장학생으로 입학한 그는 재학중 '세계 학생미술 대전 특선' '호남 예술제 우수상' '제1회 원광대 전국학생미전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78년 원광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상경한 그는 서울 아현동 달동네에 7평짜리 월세방을 얻었다. 부뚜막의 아궁이 앞에 화폭을 기대놓고 연탄가스 냄새를 맡으며 창작에 몰두했다. 83년 서울 동덕미술관에서 열린 제3회 개인전을 계기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김기창.권옥연.전혁림 등의 작가들이 앞다퉈 작품을 사갔고 그해 미술평론가들은 '올해의 주목할 만한 문제작가 9인' 으로 그를 선정했다.

이후 해마다 샘터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어 매번 작품의 90%가 팔렸지만 돈을 벌지는 못했다. 어두운 색조의 무거운 그림들은 일반인들의 눈에는 덜 띄었던데다, '그림값은 싸야한다' 는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일반인의 3분의 1에 불과한 폐활량에 결핵 후유증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던 그는 88년 2월, 결국 폐울혈성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

짧은 생이었지만 고려병원의 담당의사는 "그의 신체조건으로는 천수를 누린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림이 그를 그나마 붙잡았던 것일까. 유족으로는 두번째 부인과 두딸이 있다.

입장료 일반 3천원, 학생 2천원. 02-580-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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