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에 기업정보 제공 범위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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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등록 기업이 시장에 공개해야할 정보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 인가.

삼성전자 李모대리가 반도체 판매실적 등을 F증권사에 넘겨준 혐의로 최근 구속된 사건을 계기로 증시에 정보 공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보의 깊이를 떠나 회사 직원이 업무상 얻은 비공개 정보를 외부로 빼돌린 것은 분명한 범죄행위" 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업들도 정보 공개를 막고 보자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투자자들에게 보다 다양한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제공해야 그 만큼 주가도 올라가고 증권시장의 투명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현재 상장.등록 기업들은 공시 규정에 따라 자신의 존립과 증시의 투자판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공시하고 있다.

법정관리나 화의 돌입, 타법인출자, 대규모 공사수주 등이 좋은 예다. 그러나 일상 경영활동과 세세한 통계 등 일반 정보는 자발적인 IR(기업 설명회)을 통해 알리고 있는데, 이 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 정보 차단의 역풍=이번 사건은 일단 기업들로 하여금 정보의 단속을 강화하는 역풍을 일으킬 전망이다.

A그룹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기업 내부정보를 직접 주식매매에 활용하는 내부자거래가 많았으나 요즘은 정보제공을 미끼로 돈을 받거나 직장을 옮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 며 "직원들의 정보 유출과 관련한 감사 활동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B그룹의 관계자도 "외환위기 이후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회사 정보를 이용해 한몫 잡으려는 유혹도 커지고 있다" 면서 "회사의 정보관리 체계를 재검토할 생각" 이라고 말했다.

◇ 정보 부족의 불만=개인의 정보 누출은 있어선 안되지만, 공개 기업의 입장에서 정보공개의 범위를 너무 좁게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라는 게 증시 관계자들의 불만이다.

굿모닝증권에 따르면 회사채신용등급 A이상인 채권시장의 '빅5 기업' 의 경우도 대부분이 판매 및 일반 관리비의 세부내역 공개를 거부하거나 관계사간 매출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형 전자업체인 A사의 경우 그룹 관계사 매출이 전체 매출의 47%나 차지하지만 이중 80%를 기타 항목으로 뭉쳐 분류하고 있다.

굿모닝증권 윤영환 애널리스트는 "기업정보의 불투명성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주식이 내재가치에 비해 헐값에 거래되는 불이익을 초래하는 한편 신용등급에서 푸대접을 받는 요인이 된다" 고 지적했다.

메리츠증권 최석포 애널리스트는 "그동안 기업들의 투자설명활동(IR)등 정보공개 범위가 늘어난 게 사실이지만 여전히 선진 외국 기업들에 비해선 부족하다" 고 주장했다.

대신경제연구소 진영훈 애널리스트는 "얼마전 국내 최우량급 전자회사가 IR을 하면서 외국 기관에만 차별적으로 고급 정보를 공급해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며 "정보의 공개범위도 그렇지만 공평한 공개도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증권연구원 노희진 박사는 "미국의 경우 증권관리위원회(SEC)가 '정보공개의 공평성 규정' 을 만들어 기업이 일상 공시 이외에 정보를 공개할 때도 반드시 언론을 통하는 방식 등으로 모든 투자자들에게 동시에 전달하도록 했다" 면서 "우리도 이런 제도의 도입을 검토해 볼만 하다" 고 말했다.

김광기 기자 kikw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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