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진핑, 제도·원로 견제 속에 과감한 돌파 힘들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97호 11면

‘새 부대에 낡은 술’이었다. 지난 15일 발표된 중국 제5세대 지도부 구성 말이다. 중국은 그날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18기 1중전회)를 통해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 기율검사위, 중앙군사위 선임 명단을 발표했다. 큰 이변은 없었다. 5년 전 예상했던 대로 시진핑(習近平·59) 국가부주석이 당 총서기로 확정됐다. 당 지도부는 바뀌었지만 정책은 기존 노선 그대로일 것으로 예상된다. ‘제5세대 지도부의 제4세대 노선’이 일정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번 당대회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비상했던 데 비해 정작 새로운 것은 별로 없는 밋밋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3황제 시대’의 중국 정치리더십

그렇다고 18차 당대회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이번 당대회를 계기로 형성된 특이한 권력구조는 우리가 눈여겨봐야 한다. 가장 먼저 소위 ‘다세대 지도자의 권력 공존시대’를 꼽을 수 있다. 제3세대의 장쩌민(江澤民), 제4세대의 후진타오(胡錦濤), 그리고 제5세대 지도자 시진핑이 각각 전임 및 현임 총서기로서 동시에 존재하는 ‘3황(三皇·3명의 황제)’시대가 됐다. 그들이 각각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할 경우 중국의 정치 과정은 보다 복잡한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 게다가 당내 공식 채널보다 밀실에서의 파벌 간 담합이 더 기세를 올리게 돼 그간 점진적 형태로나마 추진해 온 당내 민주화의 수준이 크게 후퇴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총서기, 최고권력 온전히 행사 못해
그간 공산당 역사를 볼 때 이는 우려할 만한 일이다. 개혁·개방 초기에 중국은 비록 마오쩌둥(毛澤東) 시기의 ‘권력의 개인독점’ 현상은 타파했지만 그 대신 덩샤오핑(鄧小平)을 비롯한 8명의 원로에 의해 움직이는 원로정치(gerontocracy)의 특징을 보여 줬다. 아직 생존하고 있는 쑹핑(宋平·95) 외에 리펑(李鵬)·차오스(喬石)·주룽지(朱鎔基)·쩡칭훙(曾慶紅) 등 적잖은 원로가 이번 18차 당대회 주석단 상무위원으로 참석했다. 특히 장쩌민은 18대 기간 중 후진타오 총서기와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사이에 자리를 잡아 자신의 건재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새로운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인선에서도 총서기인 후진타오의 의중보다 장쩌민이나 리펑과 같은 원로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정치에서 총서기가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의 권한을 온전히 행사한 경우는 사실상 없었다. 개혁·개방 초기에 총서기를 맡았던 후야오방(胡耀邦)이나 자오쯔양(趙紫陽)은 덩샤오핑에 의해 발탁됐지만 동시에 그에 의해 실각됐다. 6·4 천안문사건 직후 1989년 그 뒤를 이은 장쩌민 역시 97년 덩의 사망 시까지 자신의 후임마저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다. 후진타오의 위상은 2002년 총서기 취임 직후는 물론 퇴임 직전까지도 전임자 장쩌민의 강한 견제와 영향력 아래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런 막후정치 현상은 세대교체 및 권력계승의 제도화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다. 정책 결정의 비(非)공식화 현상을 심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외형상 나타나는 ‘3황시대’의 갈등구조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다른 제도적 제약이 현 지도부에 미치는 영향이 보다 크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시진핑 총서기가 가지는 비교우위에 기인하는 것이다.

우선 국가 정책 결정구도에서 시진핑 총서기의 자율성은 제도적으로 크게 제한돼 있다. 집단지도체제의 구축으로 인해 시진핑은 정책 결정 시 당내 원로들의 견해를 고려해야 할 뿐 아니라 동급(同級)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갈수록 국민 여론과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정책 방침이 지도부 내 합의에 의해 이미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 의해서든 당분간은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예를 들면 미래의 정책 방향을 제시한 당대회 정치보고문의 경우 총서기직에서 물러나는 후진타오가 발표했지만 신임 총서기 시진핑이 사전준비 작업을 주도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당내 수많은 사람의 의견 수렴과 수정작업을 거쳤다. 말하자면 정치보고의 주체는 연설한 후진타오도, 준비작업을 수행한 시진핑도 아니었다. 당 지도부 전체라고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당 지도부 내 정책 갈등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당대회 등에서의 주요 인사 문제를 제외하곤 원로들이 일상 정치에 간여할 여지가 많지 않다.

또 시진핑 총서기가 전임자에 비해 갖고 있는 강점도 작용한다. 시진핑은 장쩌민이나 후진타오처럼 덩샤오핑에 의해 발탁되거나 지명된 총서기가 아니라 지도부 내에서 선임된 첫 경우다. 물론 당내 민주적 절차를 거쳐 광범위한 지지를 기반으로 했다고 볼 수는 없다. 아울러 공청단에 속하는 리커창(李克强)과의 경쟁관계에서 대세를 역전시킨 과정 등을 볼 때 여전히 투명성과 민주성에 있어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전임자들에 비해 권력의 정통성에서 우위에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정 인물에 의한 ‘개인적 발탁’이 아니라 결과적으론 당 지도부 전체의 합의에 의한 ‘제도적 선임’이기 때문이다.

세대교체 방식의 권력계승 첫 반복
특히 이번 당대회에서는 기존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의미 있는 변화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후진타오가 총서기와 동시에 당 중앙군사위 주석직도 함께 물려줬다는 점이다. 이는 2002년 당대회 때와 비교된다. 후임자인 후진타오에게 총서기직만 물려주고 중앙군사위 주석직 이양을 약 2년간 보류하는 소위 ‘반퇴(半退)’의 ‘나쁜 선례’를 남긴 장쩌민과 대조적이어서다. ‘반퇴’는 이른바 당권과 군권이 이원화된 구조를 만들게 됨으로써 유사시 당 지도부가 분열될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었다. 장쩌민이 군권을 놓고 2004년 ‘전퇴(全退)’를 하기까지 중국 정치는 매우 불안정한 권력구조를 유지했다. 따라서 후진타오의 ‘동시 이양’은 당내 권력계승의 제도화에 긍정적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시진핑의 운신 폭도 넓혀 주는 계기가 됐다.

그런 점에서 시진핑 시대는 중국 정치에서 당내의 규정된 임기 내에 최고지도자가 정상적으로 후임 지도자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일선에서 물러난 첫 사례가 된다. (5년 연임을 통한) 10년 주기로 최고지도자의 직위가 후임자에게 이양된다는 게 공식적으로 확인된 첫 사례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세대교체 방식의 권력계승 시스템이 처음으로 반복된 것이다.

이번 당대회에서는 또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정치국 상무위 구성(종전 9인)도 다시 7인으로 축소 조정됐다. 당 지도부 내 다양한 세력 간의 타협과 절충의 결과로 해석된다. 이 역시 시진핑 총서기가 지도부를 장악하는 데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과거보다 정책 결정 과정의 효율성을 제고하게 될 것으로 본다.

이런 비교우위에도 불구하고 시진핑 역시 전임자와 같은 정책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정부패와 빈부격차, 국유기업 개혁 문제를 비롯해 여러 가지 난제(難題)에 직면한 시진핑 체제가 이를 적극적으로 헤쳐 나가려면 과감한 정치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구도하에서는 그런 돌파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새 지도부의 정책 의도에 기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개혁의 주체가 동시에 개혁의 객체라는 데 근본 이유가 있다. 따라서 시진핑을 비롯한 당 지도부가 아무리 문제의 심각성과 그 해결의 긴박성을 강조한다고 해도 결국 체제 수준의 문제를 개별 정책 사안별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부분적인 개선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해결은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제5세대 지도자들이 공산정권이 수립된 49년 이후 출생으로 청·장년기에 문화대혁명을 경험했다거나, 기술관료 출신보다 인문사회 분야의 사회관리형 인물이 다수를 차지하게 됐다는 등의 변화는 시대 흐름을 반영하는 것일 뿐 향후 중국의 단기 진로와 크게 상관없다. 최고지도자로 등극한 시진핑의 경력이나 개인적인 성격 및 성향을 통해 중국의 변화를 가늠하는 것은, 대통령이 바뀌면 많은 게 바뀌는 다른 서방식 경험의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난센스에 불과하다.

내년 3월로 예정된 전국인민대표대회(의회 격)에서 국가주석, 국무원 총리 등이 임명되면 중국은 시진핑·리커창 시대의 완전한 개막을 선포하게 된다. 하지만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이들 제5세대 지도부의 정책노선은 임기 2기를 맞이하는 2017년 제19차 당대회를 전후한 시점에 가서야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 이전까지는 전임자 후진타오가 그러했듯 시진핑 역시 기존 노선의 충실한 집행 속에서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지는 데 치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성흥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정치학 박사. 현대중국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중국의 정치체제 변화를 연구해 왔다. 중국의 경제발전이 동아시아·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도 주요 연구 대상이다. 저서로는 『중국모델론:개혁과 발전의 비교 역사적 탐구』『중국의 부상:동아시아 및 한·중관계에의 함의』 『체제전환의 중국정치:중국식 정치발전모델에 대한 시론적 연구』 등이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