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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실사와 허구 사이 … 한문 소설은 조선시대 콘텐트의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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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문서사의 영토 1·2
임형택 지음, 태학사
각 권 528· 560쪽
각 권 2만5000원

우리 고전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진다. 사서삼경 등 중국 고전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조선 문인의 저술을 중심으로 우리 한문학을 현대적으로 옮긴 책이 부쩍 늘었다. 한데 한 가닥 아쉬움이 있었다. 에세이나 실학 등 학술적 저서, 문학 중에선 시가와 야담에 무게가 실렸기 때문이다. 박희병 서울대 교수 등이 엮은 ‘천 년의 우리 소설’ 시리즈(돌베개) 같은 책도 있지만 이는 오히려 예외로 꼽힐 정도였다.

 이 책은 그런 아쉬움을 상당 부분 달래준다. 부제가 ‘실사와 허구 사이’이다. 한마디로 조선의 이야기를 모았다는 뜻인데 특기할 것은 기록과 창작을 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야담의 재미와 문학의 품격, 역사의 흔적을 두루 담았다. 다산학술상 등을 받은 우리 한문학계의 원로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20여 년간 공들인 덕분이어서 처음 소개되는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그 중 눈길을 끄는 것이 ‘임진피병록(壬辰避兵錄)’이다. 조선 문장 4대가 중의 한 명으로 좌의정까지 오른 월사(月沙) 이정귀의 체험담이다. 임금 측근에서 기록을 담당하는 가주서(假注書)였던 주인공은 선조의 몽진을 따라가야 하지만 예조판서로 피난 준비에 몰두하던 장인의 장례를 치러야 했기에 한양을 떠나지 못한다.

 결국 왜군의 위협에서 아버지와 가족을 구해 임금이 있는 의주 행재소로 향하는데 이 과정에서 활을 쏠 줄 아는 이들을 모아 의병을 만들어 왜군과 전투를 벌이고, 도피하는 이야기가 어지간한 읽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에는 유명한 ‘오관참장(五關斬將)’ 이야기가 나온다. 조조 밑에 있던 관우가 유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섯 관문을 돌파하며 여섯 장수를 물리쳤다는 일화다. 드라마틱하다는 면에서 ‘임진피병록’은 그에 못지 않다.

 지은이는 일반 독자, 문학· 영상예술의 작가, 전문연구자 세 층위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책을 엮었다고 했다. 책을 보면 ‘과연 그 모두를 겨냥할 만하다’란 생각이 든다. 콘텐트의 보고라 할 정도로 풍부한 이야기가 있고, 홍명희 소설 『임꺽정』의 원전이라 할 박동량의 ‘기재잡기(寄齋雜記)’, 인조 때 귀화한 네덜란드인 박연의 후일담이 소개된 정재륜의 ‘한거만록(閑居漫錄)’ 등 흔히 접하기 힘든 자료가 실려 있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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