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희 진희'의 두 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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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닮은 아이, 예진
예진이를 만난 건 비가 마구 쏟아지던 일요일, 드라마 <선희 진희> 촬영현장. 강남역의 한 지하 클럽에서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진행된 촬영을 지켜보면서 예진이가 지난번 드라마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야무지게 다문 입술하며, 더욱 진지해진 눈동자가 어두운 촬영장에서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뿌연 연기 가득하고, 지하인데다가 비까지 와서 눅눅한 촬영장,카메라를 응시하는 예진이의 모습은 한층 성숙한 여인으로 보여진다. 장면장면 욕심이 많은 감독님 덕분에 똑같은 장면을 촬영하기를 수차례. 어렵게 OK 사인이 떨어진 후에야 예진이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번진다.

촬영 중간중간 <선희 진희>의 또 다른 주인공 ‘진희’를 맡고 있는 김규리와 장면을 분석하기도 하고, 서로 모니터링해 주면서 남다른 우애를 과시하기도 한다. 비를 닮은 하늘빛 원피스를 입은 예진이의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왜일까.

자신감 100%, 당찬 그녀
지난 봄, 미니시리즈 <맛있는 청혼>을 끝내고 예진이는 무얼 하며 지냈을까? 지난 4개월 동안 예진이가 한 건 달콤한 휴식을 고스란히 반납하고 대신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CF 여왕에 등극했다.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예진이의 맑고 순수한 캐릭터 때문에 밀려드는 CF와 지면광고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니 어느새 꿈 같던 4개월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그새 또다른 미니시리즈의 주인공에 낙점되어 새로운 연기 고민에 빠져 있다. 그러고 보면 예진인 참 욕심 많은, 아니 당찬 아이다. 소녀같이 순수한 마스크로 여자 연예인들이 평생 꼭 한번 꿈꾸는 화장품 모델을 보란 듯이 따내고, 저 멀리 그리스로 해외촬영도 다녀왔다.

모든 게 다 처음이라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예진이는 마냥 기분 좋고 행복하기만 하다. 아직 나이가 어린데도, 힘들다는 말을 아끼고 참을 줄 아는 아이. 데뷔한 지 1년 만에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예진이를 보면 뿌듯하다.

또다시 설렘, 스크린 속으로
예진이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생각보다 앞당겨진 스크린 신고식. 지난달 중순부터 촬영을 시작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에서 주인공 장승업(최민식)의 첫사랑으로 캐스팅되면서 요즘 드라마와 영화, 두 마리 토끼를 ‘제대로’ 잡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영화 <취화선>에서 맡은 장승업의 첫사랑 역은 사실 전혀 기대하지 않던 큰 배역이라 겁도 많이 나지만, 기라성 같은 감독님과 선배들에게 배우는 자세로 최선을 다할 생각. 강원도 등지를 오가며 드라마 <선희 진희> 찍으랴, 남양주 오픈 세트와 전국 각지를 돌며 영화 <취화선> 찍으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

이제는 진짜 연기력으로 승부하고 인정받기 위해 전보다 더 대본 연습과 캐릭터 분석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영화 <취화선> 속 장승업의 첫사랑 역을 보다 리얼하게 그려내기 위해 여름 내내 예절 학교에서 구슬땀 흘리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예진이에게 올 가을은 훌쩍 진짜 연기자로 자라날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

나 운전면허 땄어요
6개월 쉬면서 규리가 제일 먼저 한 건 운전면허. 그래서 요즘 제일 하고 싶은 건 코디 언니, 매니저 오빠, 친구들 차에 가득 태우고 어디든 드라이브 가고 싶은 거. 차만 보면 막 운전하고 싶어서 큰일이다. 물론 갖고 싶은 차도 있다. BMW 320. 규리는 쉬면서 정말정말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지냈다.

영화도 비디오도 질릴 정도로 보고 또 보고. 덕분에 연기 공부도 많이 한 셈. 예뻐지고 날씬해지려고 선배들처럼 쉬면서 헬스도 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덕분에 사람들이 볼살도 빠지고 날씬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거울 공주 규리는 요즘 참 기분이 좋다.

스스로 악역을 자청하다
싫은 속내 못 감추고 낯가리던 규리. 지금은 누구와도 스스럼 없이 대화가 통할 정도로 마음의 키가 한 뼘 자랐다. 착해졌다는 얘기를 사람들이 하는 거 보면 정말 그런가 보다.

얼마 전엔 참 오랜만에 샴푸 CF도 찍었다. 대역 모델 없이, 컴퓨터 CG 작업 없이 촬영한 건데 머릿결이 예술이라며 은근히(?) 자랑한다. 머릿결 하나는 정말 타고났나 보다. 오랜만에 하는 드라마 컴백이라 어떤 역을 할까 고민했지만, 규리 대담하게 스스로 악역을 자청했다.

SBS 드라마 <팝콘> 이후 몇몇 드라마 섭외가 있긴 했지만 ‘팥쥐’ 같은 역을 자청했다. 오래 전부터 악역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선희 진희>는 10년에 걸친 친구 사이의 우정과 갈등을 그린 드라마인데 성공지향적이고, 야심만만한 여자가 바로 규리가 맡게 된 ‘진희’ 캐릭터. 이제는 악역도 선뜻 자청할 줄 아는 걸 보면 규리 참 어른스러워졌다.

두 살 어린 예진이랑 같이 연기하면서 후배도 열심히 챙기는 걸 보면 규리 이제 자신의 색깔을 점점 찾아가는 연기자 같다.

소름끼치게 악랄한 팥쥐 ‘진희’
규리가 이번에 맡게 된 ‘진희’역은 지나칠 정도로 성공집착형인 캐릭터. 예전엔 늘 청순 가련한 역을 맡았지만 이번에는 악랄해져야 한다.

드라마 주제가 20대의 사랑과 일을 다룬 거라 규리 스스로도 연기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드라마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대본이 맘에 들어서였다. 그동안 콩쥐 팥쥐 성격의 드라마는 많았지만, <선희진희>처럼 현실적인 드라마는 없었기 때문에 대본을 보자마자 맘의 결정을 내렸다.

이번엔 진짜 악랄해져야겠다고. 예쁜 규리 말고 ‘연기하는 규리’가 되고 싶어서 악역을 자청했다. 규리 얼마나 소름끼치게 연기할지 벌써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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