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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 칼럼

귀차니스트도 재미 있으면 열광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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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심미성
KTB투자증권 브랜드실 상무

귀차니스트, 참 어려운 분들이다. 집요하게 캠페인을 벌이고, 흥미로운 이벤트를 열고, 고가의 경품을 내걸어도 꿈쩍 않는다. 강적이다. 어지간한 유혹엔 눈 하나 깜짝 않는다. 그래도 어쩌랴. 19세기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외친 ‘2080 법칙(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난다는 법칙)’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게 마케터다. 대세를 좌우하는 이들을 잡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은 오늘도 계속된다. 그렇지만 쉽지 않다. 귀차니스트는 난공불락의 요새 속에 산다.

 그런데 이들을 움직이는 게 딱 하나 있다. 바로 재미(fun)다. 자발적으로,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예를 들어 지난 9월에 있었던 ‘T24 SNS 페스티벌’을 보자. 누가 지었는지 제목도 그럴 듯하다. “제한 시간 2시간 안에 24인용 군용텐트 혼자 치기가 가능할 것인가?”라는 다소 생뚱맞은 주제에 누리꾼 몇몇의 사소한 내기가 더해지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3000명이 참여하는 페스티벌이 됐고, 120만 명이 이를 조회했다. 특별한 의미? 별로 없어 보인다. 그냥 궁금하고 재미있어서 열정적으로 참가한단다.

 전 세계 조회 수 7억 건이 넘는다는 동영상 ‘강남스타일’은 노래 가사가 무슨 뜻인지, 동양 남자의 이상한 몸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외국인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 다만 무슨 말인지 몰라도 그냥 보고 따라 하면 재미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인가 보다. 언제부턴가 광고계도 창의성을 포기했다. 한 방송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를 패러디하면 인지도가 높아진다. 개그콘서트가 웃음을 통해 지치고 힘든 대한민국 국민을 위로한다.

 필자는 증권사에서 고객의 투자 행위가 좀 더 재미있고 흥미가 있도록 고안하는 일을 한다. 고객의 소중한 자산을 다루는 딱딱한 이미지인 증권회사에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티핑포인트’가 될 재미 요소는 무엇일까.

 회사를 알리는 기업 홈페이지를 SNS 형태로 디자인해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연동시켰다. 세태를 반영한 발상의 전환이다. 고객이 주식을 거래할 때 사용하는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나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화면에 만화 캐릭터가 날아다닌다. 인디 밴드 출신 가수가 라디오 광고를 통해 “봉숙아 주식하자~”며 느끼한 사투리로 ‘0.01% 누드 수수료’를 외친다.

 어려운 점은 디테일의 완성도가 동반되지 않는 콘텐트에 고객은 절대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B급 문화를 예술이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건 그 제작 과정이나 제작 기술, 완성도가 탄탄하게 뒷받침되고 있다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싸구려, 잘하면 재미가 되는 경계선에서 묻고 또 묻는 과정을 거쳐 목표점에 다가간다.

 이 모든 걸 알지만 ‘생각대로’ 안 되기에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지막 주문을 건다. 보는 사람이 즐거웠으면 좋겠고, 즐거워서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 주면 좋겠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주식 투자가 좀 더 쉽게 다가가면 좋겠다는, ‘진심’이라는 주문을.

심미성 KTB투자증권 브랜드실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