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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4개 구 “재정 파탄 날 판 … 무상보육 못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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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 25개 구청 중 강남구를 제외한 24곳의 구청장들이 내년도 보육 예산 편성 전면 거부를 13일 선언했다. 정부 방침에 따라 늘어나는 보육 예산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무상보육 확대 공약에 따른 추가 부담액도 예산에 반영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세 대선 후보가 일제히 무상보육을 공약한 상황에서 구청장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25명의 서울 구청장 중 19명은 민주통합당 소속이며, 새누리당은 거부 선언에 참여하지 않은 신연희 강남구청장을 포함해 6명이다. 특히 대선 후보들이 기초노령연금 인상 등 각종 복지 공약을 쏟아내고 있어 관련 재원 분담을 둘러싸고 자치단체와의 갈등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주요 복지 예산은 정부와 지자체가 일정액(보육은 평균 50.6%)을 공동 부담(매칭펀드)하게 돼 있어 복지를 확대할수록 지방 부담이 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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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구청장협의회(회장 노현송 강서구청장)는 13일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지원을 늘리지 않으면 내년도 보육 예산 추가분담금 930억원을 예산에 반영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성명에서 “최근 3년 세입은 0.59% 감소했는데, 사회복지비는 34.6% 증가하면서 복지비 비중이 총 예산의 46.1%에 달한다”며 “정부와 정치권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으로 지방 재정이 파탄에 이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청장들은 내년 보육 예산을 올해(2470억원)만큼만 반영하고, 추가분담금(930억원)은 짜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분담금은 올해 무상보육 때문에 어린이집 이용이 증가(561억원)했고 내년에 양육보조금을 소득 하위 70%(올해 15%) 가정으로 확대(369억원)하는 데 필요한 돈이다. 국회가 전면 무상보육을 추진했으나 정부가 대상 확대를 유보해 구청들의 추가 부담액이 그나마 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국회가 연말 예산 심의 과정에서 전면 무상보육을 다시 추진하면 구청들의 추가분담금은 2320억원으로 늘어난다. 이성 구로구청장은 “여야가 소득 상위 30%에도 무상보육을 하겠다는데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면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민주당 공약인) 무상급식 예산 증가 부분은 함구하고, 무상보육 추가분담금에 대해서만 예산 편성을 거부하는 서울시구청장협의회의 결의가 당리당략으로 비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내년에 자치단체들의 보육료 부담 증가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 모두 0~5세 무상보육을 공약했다. 박 후보는 집에서 키우는 모든 0~5세 아이에게 양육보조금을, 문 후보는 더 나가 12세 미만 아동에게도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안 후보는 소득 하위 70% 0~2세 아동에게만 양육보조금을 주겠다고 했다. 박 후보 공약대로 하면 자치단체의 부담이 연간 7100억원 증가한다. 문 후보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이, 안 후보는 다소 적게 든다.

 자치단체가 보육 예산에 민감한 이유는 복지사업 중 지방 부담이 가장 큰 데다 지방 보육 예산이 8년 사이에 8배나 늘 정도로 가팔랐기 때문이다. 부산시 북구청 관계자는 “올해 보육 예산도 이달이면 바닥나는데 이대로 가다간 내년에 지자체들이 줄줄이 파산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서울 구청장들은 보육료 국고 보조비율 상향 조정을 요구했다. 현재 서울 20%, 지방 50%인 국고 보조율을 서울 50%, 지방은 80%로 높이라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고경환 연구위원은 “국가가 재원이 부족해 지방에 자꾸 분담을 요구하니 지자체가 아우성칠 수밖에 없다”며 “복지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되 단체장들과 함께 협의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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