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키는 180cm인데…" 귀순 北병사 몸 보고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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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북한군 서해 최전방 부대인 무도방어대를 방문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장병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우리 당국은 사진에 등장한 병사 중 상당수가 육안으로 판별할 수 있을 정도로 심한 영양실조 상태를 보이고 있으며 발육도 부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키 1m80㎝에 체중은 불과 46㎏. 개성공단 진입 도로변 북측 초소에서 근무하다 지난달 6일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체격이다.

 정부 당국자는 12일 “북한 군인으로서는 신장이 상당히 큰 편이지만 몸이 지나치게 마른 상태라 합동신문 관계자들이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 당국이 개성공단을 드나드는 남측의 시선을 의식해 키 큰 병사 위주로 선발 배치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과거에는 판문점이나 개성공단 지역에 출신 성분이 좋거나 군부와 노동당에 든든한 배경이 있는 병사를 뽑아 배치했지만 최근에는 신체조건을 중시해 징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귀순한 병사도 평범한 집안 출신이며, 군 복무 2년째인 10대 후반의 어린 병사라고 당국자는 전했다. 이 당국자는 “귀순병사가 근무하던 초소는 남측과 불과 500m 떨어진 곳으로 119만 북한군 가운데 가장 가깝게 자주 남한 측과 접하게 되는 지점”이라며 “당초 상당한 고위층 자제일 것으로 판단했으나 뜻밖이었다”고 말했다.

 정부 합동신문 결과에 따르면 귀순병사가 소속된 부대는 북한군 총참모부 직할 개성 경무대로 개성공단을 오가는 남측 인력과 물자를 통제하고 공단지역을 경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개성 지역에 주둔한 2군단 6사단과는 다른 부대다. 이 병사는 조사 과정에서 “인민군 부대 중에서는 비교적 처우가 좋은 편이었고 쌀밥도 나왔지만 반찬은 거의 매일 염장무만 먹을 정도로 열악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자는 “북한 군부대에서도 식량난이 심각해 급식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곳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김정은이 직접 방문한 정예부대에서도 식량과 보급품이 부족한 정황이 드러날 정도”라고 말했다.

군 당국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지난 8월 서해 최전방 무도방어대를 방문해 찍은 사진 속에도 영양실조로 추정되는 병사들의 모습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1월 최정예 부대인 105탱크사단을 방문했을 때도 병사들에게 치약 없이 양치질을 하도록 지시한 안내판이 드러났다. 당국자는 “북한군 내부에서도 ‘강하게 영양실조가 걸렸다’는 의미의 ‘강영실 동무’란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라며 “영양실조로 복무 중 숨지거나 귀가 조치되는 경우도 적잖다”고 말했다.

 김연수 국방대 교수는 “군 복무 중인 북한군 병사들은 식량난이 극심하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영·유아 시절을 겪은 세대”라며 “발육이 부진하고 기초체력이 부실한 병사들이 군 복무 중 적절한 급양을 받지 못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난의 행군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듬해 큰 수해로 북한 주민 200만~300만 명이 굶어 죽은 사태를 일컫는다. 당국자는 “귀순병사는 관계당국 조사를 마치고 안정을 취하면서 현충원과 63빌딩 방문 등 남한 정착을 위한 견문을 넓히고 있다”고 전했다.

 귀순병사는 우발적 충동이 아니라 개성공단에 출입하는 남측 인원이나 차량을 보고 남한의 발전상을 깨달은 뒤 상당 기간 고심 끝에 한국행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자는 “사전 계획에 의한 귀순임을 입증할 중요한 자료를 남측에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 병사는 한국 정착 후 대학에 진학해 공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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