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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달려라 007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96호 04면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서 중년 남자의 헛헛함을 예리하게 도려내 보여준 샘 멘데스. 그가 007 신작 ‘스카이폴’의 감독을 맡았다고 했을 때 궁금했습니다. 중년의 감성을 어떻게 건드릴까 하고요.
역시나였습니다. 007 영화 50년 역사를 함께한 중장년 관객들은 총 쏠 때 손이 떨리고, 턱걸이 몇 번에 다리가 풀리며, 새치 희끗희끗한 제임스 본드(대니얼 크레이그도 마흔넷이네요)에게 어느새 감정이입이 됩니다.
감독은 첨단과 속도와 효율의 시대에 묻습니다. 낡음과 쇠락함은 과연 무가치한 것인지. 그리고 보여줍니다. 그것이 어떻게 관록과 경륜으로 부활하는지를.
퇴물 취급을 받으며 청문회에 불려간 정보부 국장 M은 앨프레드 테니슨의 시 ‘율리시즈’ 마지막 대목을 읊죠. “… 비록 많은 것을 잃었지만/ 또한 많은 것이 남아 있으니/ 예전처럼 천지를 뒤흔들지는 못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다./ 영웅의 용맹함이란 단 하나의 기개,/ 세월과 운명 앞에 쇠약해졌다 하여도/ 의지만은 강대하니,/ 싸우고 찾고 발견하며/ 굴복하지 않겠노라.”
이 장면은 M을 지키기 위해 달려오는 007의 모습과 계속 교차 편집됩니다. ‘노구’를 이끌고 전력질주하는 그 모습이 어찌 그리 아름답고, 엄숙하고, 또 먹먹하던지요.
M은 007의 품에서 “내가 한 가지는 잘한 게 있지”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둡니다. 못다 한 말은 “다 늙은 네놈을 믿고 일을 맡긴 거” 아니었을까요. 그랬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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