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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문학상 후보작] 정진규 '숲의 알몸들' 外

중앙일보

입력

정진규씨는 산문시의 대가로 정평이 나있다. 연장으로 치자면 단숨에 도끼로 찍어내는 솜씨보다는 톱으로 슬금슬금 켜내는 솜씨를 과시하는 것이 산문시의 리듬을 엮어내는 묘미일 것이다.

그의 산문시는 1990년대부터 생명의 순금 같은 이치를 밝혀내는 일에 바쳐져오고 있다. 아니, 밝혀낸다기보다는 경건하게 누리는 일에 헌신해오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살아있는 것들의 참모습을 가리는 딱딱한 껍질을 벗겨내고 싱싱한 알몸을 들추어내 그것들과 순정한 스킨십을 나누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그의 시는 자꾸 젊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가 자꾸 젊어지는 모습을 입증하는 것이 그의 '시력' 이다. 그의 눈이 밝아지고 깊어진 사실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숲의 알몸들' ( '현대시학' 2001년 3월호) 이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눈 내린 숲의 풍경을 뛰어난 '시력' 으로 관찰하면서 만끽하고 있다. 그냥 숲의 모습보다 눈 내린 숲의 모습이 더욱 절실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까닭이 무엇일까□ 시인은 먼저 '회사후소(繪事後素) ' 라는 옛말에서 그 이치를 찾아낸다.

그 말의 뜻인즉은, "그림 그리는 일은 그 바탕이 희게 극복된 다음이라야 한다" 는 것이다. 바탕이 희다는 말은 바탕이 깨끗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깨끗한 바탕 위에 그려진 풍경이 절실하게 돋보인다는 뜻을 그 옛말은 밝혀주고 있다. 함박눈 내린 숲의 풍경은 바로 그러한 사례에 속한다.

시인은 자기가 사는 우이동 부근의 "화계사 청솔 숲 암자 한 채" 를 보면서 그런 옛말의 뜻을 마음에 새겨본다.

큰눈이 온 후에 찾아간 "청솔 숲" 을 바라보며 시인은 "암자 한 채" 때문에 "청솔 숲이 기울고 있었다" 고 말한다. 실제로는 그럴 리가 없다. 그런데 밝고 깊어진 '시력'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왜 그럴까□ 바로 엄청나게 쌓인 눈 때문이다. 작은 암자 지붕에 눈이 많이 쌓여있다. 쌓인 눈의 무게 때문에 암자는 마치 한쪽으로 비스듬하게 기운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실제로는 암자 지붕이 본래부터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지붕이 약해진 상태였는데 그 위로 눈이 쌓여서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청솔가지들도 마찬가지로 눈무게로 한쪽이 기울어져 있다. 그러므로 숲은 눈 때문에 여기저기 기울어져 있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단지 기울어져 있는 숲의 풍경을 대표하여 암자를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밝고 깊은 '시력' 은 대가답게 숲의 기울어진 풍경 속에서 생명의 다른 이치를 찾아낸다. 이 숲에 어떤 힘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이 서로 끌어잡아당기면서 암자와 나무들이 기울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힘들의 겨룸이 팽팽해서 "나무들의 사이를 건드릴 수가 없었다" 고 말하기도 한다. 그저 힘들이 겨루는 풍경에 압도되고 있는 마음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표현이다.

실제로는 눈의 무게로 기울어진 모습을 보고 숲의 힘들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상상해볼 수 있는 마음의 '시력' 은 예사롭지가 않다.

더구나 시인은 그 힘의 또다른 출처를 슬픔에서 찾아내기도 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의 무게와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의 무게를 일치시켜 "오늘 아침은 눈들이 담아온 하늘 무게만큼 조금씩 더 기울고들 있었다 슬픔의 중량이 어제 오늘 더해졌다" 고 노래하는 시인의 솜씨는 어떠한가.

샘솟듯 이어지는 산문시의 리듬으로 생명의 '만다라' 를 펼쳐보이는 시인의 순정한 그 솜씨가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이경호 <문학평론가>

◇ 정진규 약력

▶1939년 경기도 안성 출생

▶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마른 수수깡의 평화』『몸시』『알시』등

▶한국시인협회상.월탄문학상.현대시학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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