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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피치] 빈볼에도 양심이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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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볼에도 양심(良心)이 있고 패싸움에도 룰이 있다?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타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빈볼에 무슨 양심이 있으며 주먹이 난무하는 패싸움에 무슨 규칙이 있다는 건가.

최근 그라운드에서 흥분한 선수들이 빈볼을 던지고, 이에 격분해 서로 치고 받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빈볼에도 상대에 대한 배려가 묻어 있고 엉켜 싸우면서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야구에는 명문화한 규칙 이외에 그라운드에서 서로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빈볼은 이 불문율을 어긴 선수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다. 다만 정도가 지나쳐 개인적인 감정이 담겨 있어서는 안된다.

미국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지도자 연수 중인 이만수(전 삼성)는 현역 시절 유난히 몸에 공을 많이 맞았다. 당시 이만수의 몸을 맞혔던 투수들은 훗날 "이만수가 홈런을 때리고 난 뒤 그라운드를 돌며 깡충깡충거리는 것을 보면 약이 올랐다. 홈런도 화가 나는데 신이 나 '오, 예!' 를 연발하는 것을 보면 다음 타석에 몸에 바짝 붙는 공을 던져 경고를 주거나, 아니면 아예 몸에 맞혀버렸다" 고 털어놨다.

그런데도 이만수는 은퇴 직전까지 버릇을 고치지 못했고 결국 통산 두번째로 많은 1백18개의 몸맞는 공을 기록하고 은퇴했다. 1위는 통산 최다 홈런의 주인공이자 '기록의 사나이' 장종훈(한화.20일 현재 1백26개)이다.

지난 18일 빈볼 시비의 주인공이 된 매니 마르티네스(삼성)는 5회말 누상에서 한화 내야진과 투수를 지나치게 자극했다. 결국 6회말 마르티네스가 타석에 들어서자 한화 김병준은 곧바로 마르티네스의 머리 뒤로 빈볼을 던졌고 패싸움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 AP통신은 '메이저리그의 불문율 50가지' 를 골라 소개했다. 보도된 불문율 가운데 그라운드에서 지켜야 할 매너는 다음과 같다.

▶크게 앞서고 있을 때 도루를 하지 마라. 상대를 약올리는 행위다.

▶2루 주자는 상대 배터리의 사인을 훔쳐서는 안된다. 비신사적인 행위다(지난해 현대 - 두산의 한국시리즈 때 문제가 돼 빈볼 시비로 번진 적이 있다).

▶연속으로 몸맞는 공을 던지지 마라. 경고를 주기 위해 몸에 맞히는 공이라면 한번이면 된다.

▶빈볼은 타자의 등을 겨냥하라. 머리나 다리쪽은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패싸움이 벌어지면 모두가 그라운드로 뛰쳐나가라. 동료애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LA 다저스는 물론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팀에서는 몸을 사리고 싸움에 참여하지 않는 선수들에게는 벌금을 매긴다.

▶패싸움 때 맨 밑에 깔린 선수에게 주먹을 날리지 마라. 깔려 있는 것 만으로도 고통이 충분하다.

프로야구의 불문율은 선수들끼리 동업자 의식을 확인하고 내부의 질서를 지켜준다. 불문율을 어긴 선수에게는 위협구에 경고를 담아 응징의 메시지를 날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빈볼에는 양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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