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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설' 北 김정남 고민? 두 명의 첩을…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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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망명은 양상이 다르다. 그러나 지독한 독재로부터의 망명엔 공통 요소가 있다. 목을 조이는 압박과 비밀 협상에 이은 전격 결행이다. 반드시 은밀히 협상하고 신속히 움직여야 한다. 말이 새면 실패다. 죽을 수도 있다. 최근 김정남 망명설이 또 나왔다. 설은 사실일까. 아니면 말이 샌 것일까. 독재자 앞에서 실패한 망명 시도는 가혹한 탄압을 부를 텐데 시도가 가능할까. 벌써 두 번째인 김정남 망명설의 정치학을 짚어봤다.

1차 망명설이 나온 2010년 4월쯤 김정남의 상황은 긴박했다. 그 1년 전인 2009년 4월 평양 측근의 전화를 받은 직후 정남은 싱가포르로 급히 피했다. 전화는 평양의 정남 측근이 김정은의 공격 앞에 괴멸 상태임을 알렸다. 당시 정보 관계자는 “김정은이 지휘하는 국가보위부 요원이 정남이 파티를 즐기던 우암각으로 들이닥쳐 회합 중이던 그의 측근들을 잡아갔다”고 했다. 이런 내용은 2011년 11월 서올에 온 탈북자 장길호(40)씨도 확인했다. 그는 “김정은의 가짜 모임 조작에 걸려 우암각에 모인 정남 수하들이 총격전 끝에 일망타진됐다”고 했다. 당시 측근은 위성 전화로 상황을 알렸고 흥분한 정남의 목소리가 통신 감청망에 걸렸다. 정남은 “개XX, 어린 놈이 나를 죽이려 해”라며 흥분했지만 해외 떠돌이 처지에 권력 중심부에 있던 동생을 당해낼 수 없었다. 더구나 2004년 10월에도 오스트리아에 가 있던 정남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던 터였다. 끊이지 않는 생명 위협에 이번에도 숨어야 했다. 그 뒤 정남이 프랑스 대외 정보국과 비밀 망명 접촉을 한다는 첩보가 우방 정보기관에 파악돼 한국에 전달됐다. 1차 망명설은 그렇게 드러났다.

독재 권력의 압박은 망명을 부추긴다. 황장엽, 후세인의 사위의 카멜 하산, 독재자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의 망명이 그랬다.

북한 노동당 비서 겸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이었던 황장엽은 1997년 1월 30일 13일간의 일본 방문에 나선다. 미리 한국 정보기관과 접촉하고 있던 그는 일본에서 망명하려 했지만 조총련의 감시에 포기했다. 2월 11일 베이징에 도착한 다음날 오전 9시5분 그는 한국 총영사관으로 들어갔다. 북한이 경악할 만큼 전광석화였다.

이라크의 2인자였던 후세인 카멜 하산(당시 37세)도 비슷하다. 95년 8월 7일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의 이란ㆍ이라크 종전 7주년 기념 대연회에서 대통령 보좌관인 와트반 이브라히미 하산이 총격을 받았다. 후세인의 장남 우다이가 카멜의 측근인 그를 암살하려 한 것이다. 총부리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짐작한 카멜은 다음날 사막을 가로질러 이웃 요르단으로 탈출했다.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도 전격 망명했다. 아버지 사망 10년 뒤인 63년 그녀는 모스크바의 인도인 공산주의자 브라제시 싱인과 사랑에 빠졌다. 3년의 짧은 사랑. 싱이 죽고 그녀는 연인을 화장한 재를 뿌리러 인도로 갔다. 거기서 체류 8개월 만인 67년 3월 6일 뉴델리의 미 대사관에서 망명했다. 전설의 KGB도 눈치 못 챈 것이었다. 소련은 경악했고 세계가 놀랐다. 지난 4월 중국 베이징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 망명했던 시각장애인 인권변호사 천광청도 신속했다.

이런 관점에서 김정남 2차 한국 망명설을 보면 어떨까. 그의 주변 상황을 보면 망명을 부추기는 요소는 많다. 정남은 “정상적 인간이라면 3대 세습을 추종할 순 없다. 어린 세습 후계자가 어떻게 이어갈지 의문”이라고 북한 최고 권력을 공격했다. 그의 아들 한솔도 삼촌인 정은을 독재자로 표현했다. 권력의 심기를 거스를 발언이다. 끊임없이 김정은 실패 시 등장할 대타로 거론된다. 김정은의 지시가 없어도 측근이 제거에 나설 수 있다. 고모 김경희의 최근 싱가포르 방문이 경고로 해석될 수 있다. ‘김정남 암살 지령을 받았다’는 북한 보위부 공작원 출신 간첩의 진술도 나온 판이다. 그래서 그와 그의 가족이 마카오를 떠나 잠적했다는 보도를 주목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최종 목적지인 한국의 상황이다.

1차 망명설 당시 프랑스 대신 한국 망명을 추진하지 않은 데 대해 정보 관계자는 “남북관계 파국을 각오하지 않으면 독재자 김정일의 맏아들을 데려올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천안함 사태로 남북이 파국으로 치닫는데 그를 데려오면 극한 대결의 문이 열린다는 것이다.

2차 망명설의 최종 목적지는 1차 때와 달리 한국으로 거론된다. 1차 때처럼 망명지가 프랑스라면 큰 장애물은 없다. 미국 역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1차 망명설 때 같은 부담은 여전하다. 게다가 지금은 대선 국면이다. 그의 망명이 선거에 미칠 영향은 폭발적이다. ‘북풍’ 시비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야권 후보가 당선되면 청와대 청문회도 열릴 수 있다. 한 소식통은 “너무 덩어리가 커서 레임덕 이명박 대통령이 결정 못할 것”이라며 “망명 요청이 사실이어도 대선 뒤 새 당선자나 결정할 수 있는 난제”라고 봤다. 문제는 그동안 정남을 눈에 띄지 않고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느냐는 것. 망명 낌새를 북한이 눈치챈다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황장엽 망명 때 “대가를 치를 것”이라 협박한 북한은 저격조를 보냈고 한국 총영사관에 난입하려 했다.

‘앞으로의 삶’에 대한 정남의 계산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노동당, 아버지 김정일의 자금 지원으로 본인과 본처, 두 명의 첩 등 세 가족의 연 50만 달러 생활비를 마련했다. 그러나 망명 뒤 그런 보장은 없다. 망명 정부를 세워도 남남 갈등 속에서 찬밥 혹은 눈엣가시가 될 수 있다. 황장엽처럼 경호 뒤에 숨어 살아야 한다. 자금도 지금 갖고 있는 게 최후의 보루다. 그래도 올 것인가. 한 탈북자 전문 매체 대표는 “정남이 중국의 태자당의 보호를 받는다는데 뭐 하러 한국에 오겠는가”라고 한다. 정보 당국도 정남은 중국 국가안전부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남이 선뜻 한국행을 택하기 힘든 이유다. 협상도 쉽지 않고 전격적이기도 힘들다. 그래서 2차 망명설은 여전히 안갯속에 있다.

안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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